<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9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이사야 7 :14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읍니까?” 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 누가복음 1 : 34 – 35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읍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영적인 것이 왔읍니다. 첫째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땅의 존재이지만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읍니다.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의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습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5 : 45 – 49
갈릴리로 향하는 예수의 발걸음을 뒤쫓기 전에 “예수의 탄생과 어린시절” 이야기를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의 탄생과 어린시절에 관한 기록은 성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두 곳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도마의 유년기 복음이나 야보고의 유년기 복음과 같은 성서외적인 기록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참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이 잡히자 바로 갈릴리 예수의 갈릴리 사역이 시작됩니다. 당연히 예수 탄생이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 1 : 14)”고 기록하므로써 예수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른바 선재설(先在說)이라고 합니다. 물론 요한복음도 그 이외에 어떤 탄생 이야기나 어릴 적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마태와 누가에 나타난 예수 탄생이야기에도 같은 점과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같은 점은 예수가 헤롯대왕 때 탄생했다는 것,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는 것, 고향은 나사렛이었다는 것, 아버지는 요셉이었는데 다윗의 후손이었다는 것, 천사들이 탄생을 미리 알렸다는 것, 예수가 후에 구세주가 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두 복음서의 일치되게 전하는 것은 마리아는 동정녀였다는 것 등입니다.
반면에 서로 다른 점을 꼽자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마태복음에는 없다는 것, 동방박사 이야기는누가복음에는 없다는 것, 세레요한의 출생과 천사의 알림 등등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있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보통 예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 즈음에 우리들이 생각하고 나누는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면 이 두 복음서 이야기를 합친 것이 됩니다.
숫처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는 동정녀 탄생을 믿느냐 안믿느냐를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교회의 힘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학문적으로는 성서가 쓰여지던 당시 고대에 유행하던 영웅탄생 설화를 기반으로 한, 복음서 기록자들의 신학적 상상력으로 나온 결과라는 학설이 오래전에 이른바 종교사학파라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습니다.
또한 기독교 교파에 따라서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생물학적인 기적이나 진실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 초대 교회 사람들의 신앙적 고백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만 오늘날 기독교 장로회와 한국신학대학교가 설립된 배경을 보면, 당시(1947년에서 1953년 사이) 한국 기독교의 보수세력들이 장공 김재준목사를 이단으로 몰고 목사직을 박탈하면서 이루어진 일인데, 장공 김재준목사를 공격한 보수세력들이 내세웠던 무기가 바로 성서무오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정녀 탄생에 대한 교리 해석차였답니다. 물론 보수세력들이 내세운 논리가 그럴 뿐이고 뒷 이야기는 길답니다. 나중 한국교회사 이야기로 다룰 수 있다면 또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이쯤 아주 최근에 있었던 동정녀 탄생에 대한 조사결과를 하나 소개 드립니다. 지난해 년말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18일에 Pew Research Center에서 성탄절 풍습, 어제와 오늘(Celebrating Christmas and the Holidays, Then and Now) 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답니다.
그 조사 항목 가운데 “예수 동정녀 탄생을 믿는가?”라는 것이 있었고 그에 대한 미국인들의 응답 결과랍니다.(옆에 도표 참조)
약 ¾인 73%의 미국인들은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고 답을 했답니다. 그 가운데 남성은 69%가 여성은 78%가 그렇게 믿는다고 답했답니다. 백인의 경우는 71%, 흑인의 경우는 90%가 그렇게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87%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은 크게 놀랄 것은 없는데, 개신교나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도 약 1/3가 그렇게 믿는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잇는다고 하자면 꽤 길게 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죽자고 이 문제에 매달려 있는 분들도 정말 많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는 많은 이정표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저는 이 문제에 크게 믿음의 에너지를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이것은 바로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리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천주교를 비롯한 많은 개신교 교회가 이즈음까지 주요한 신앙고백문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사도신경을 보도록 하지요.(사도신경은 기원 후 400년을 전후한 시대에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위해 정말 중요한 과정이 이 사도신경에는 빠져 있습니다. 바로”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와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사이에 있는 예수가 하신 말씀들과 행위들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교리에 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는 완전한 신(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인간 예수)임을 고백하는 아주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로 초대교회가 고백했던 신앙이 바로 동정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에 있어 신자와 아니냐를 가르는 잣대로 사용하는 것도 미련한 일일 뿐더러, 이 신앙고백이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는 일도 미련한 일이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이 함께 할 갈릴리 예수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충분히 이런 잣대나 걸림돌은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