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내겐  매우 특별한 저녁이었다.  Delaware Art Museum에서 열린 한국 국악 그룹 Black String 연주회는 분명 내 분에 넘치는 호사였다.

연주회 시작을 알리는 이의 일성은 좀 과하다 싶었다. ‘델라웨어에서 한국의 전통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내겐  ‘이런 시골 델라웨어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동양의 소리, 한국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조금 거슬렸던 것은 Korea가 아닌 South Korea라는 지칭이었지만 이내 수긍하였다. 현실이었으므로.

Delaware Art Museum의 메인 홀 150여 좌석을 메운 청중들은 연주회 시작과 동시에 소리에 빠져 들었다.

신기한 것은 다른 청중들이 아니라 내게 일어난 반응이었다. 나는 음악에 대하여는 그야말로 문외한이다. 오늘 같은 행사(내겐 그저 행사일 뿐이었다)는 그저 아내의 채근으로 따라 나섰을 뿐이다. 그런 내가 연주와 함께 내 속의 나와 함께 고개를 까닥이고, 어깨를 들썩이고 발장단을 맞추곤 했던 것이다.

매료!

난 매료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오늘 밤 느낌으로 깨달았다.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청중들의 반응을 보고서였다.

우리 안에 내제된 힘이 비단 소리 뿐은 아닐 듯.

Korea를 다시 생각해 보는 밤에.DSC04709 DSC04710 DSC04715 DSC04718 DSC04720 DSC04760

산책

Newark에서 세탁소를 처음 열던 날, 아버지가 내게 던지셨던 말이다. ‘이 곳 이름이 Newark이니 New Ark이구나. 이 곳이 네 삶의 새 방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느새 서른 해 훌쩍 넘긴 저쪽 세월 이야기가 되었다.

이즈음 나는 그 세월 동안 자주 지나치면서도 알지 못했던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찾아 산책을 즐기곤 한다.

평생 운동 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내가 새삼스레 운동으로 하는 산책은 아니다. 깜작할 사이에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서 지난 시간들을 다시 만나기고 하거니와, 때론 나와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다가 올 시간들과 언젠가 만나게 될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시간들은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들로 하여 감사로 휘감길 때가 많다. 하여 산책은 오늘 내 삶을 기름지게 한다.

오늘 아침, Newark 저수지 길을 걸으며 떠오른 오래 전 아버지의 기원 –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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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Valley Garden 공원을 걷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나 싶더니 따스한 햇살 온기에 걸음을 늦춘 모양이다. 걷기에 딱 좋은 아침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조금은 어수선했던 한 주가 지났다. 충격에 놀란 허리와 어깨 등이 아직 풀리지 않아 약간의 통증을 이고 있다만, 생각할수록 그저 감사다. Thanksgiving Day를 함께 한 가족들 하나 하나 떠올려 감사를 이으며 공원길을 걸었다.

가게 이전 위치와 시기를 확정 짓고 그를 알리는 편지를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 대한 손님들의 답신들을 읽으며 감사의 크기가 더욱 커졌다.

어쩜 내가 살아 온 길이 오늘 아침 감사를 곱씹어 본 공원 길 아니었을까. 그저 무심하게 덤덤히 스쳐 지나왔던 그 길들이.

감사에.
11/2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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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주일 아침 아내가 교회에 간 시간에 거닌 동네 White Clay Creek 공원 숲길은 이미 늦가을이었다.

낙엽 밟는 내 발자국 소리와 풀벌레 소리, 새소리에 취한 탓이었는지 생각은 자꾸 어린 시절 신촌 안산길을 걷고 있었다. 귓속말로 사랑을 나누던 노루 두 마리가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튀는 통에 화들짝 안산길에서 White Clay Creek 공원 숲길로 돌아왔다.

숲이 동네 가까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 고마움을 이 나이에 깨달은 내가 이즈음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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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쟁이

‘언제 어디로 옮기느냐?’ – 이즈음 내 가게 손님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우리 부부의 대답은 ‘아직..’이다. 이래 저래 생각이 많은 이즈음이다. 은퇴하려니 아직은 아니고, 어느 정도 더 일을 할 것인지, 가게 이전에 어느 정도 비용을 투자해야 적절한 것인지, 이전 장소로 어디가 가장 적합할 것인지 등등 모두가 ‘아직…’이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올 겨울이 지나면 가게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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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위치에서 30년 세탁소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우리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건물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만, 리모델링 후 우리에게 이전할 장소를 권하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렌트비 30% 인상은 분명 내 감사의 크기를 뛰어 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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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아내와 나는 틈나면 근처 건물이나 샤핑 센터 빈 자리를 찾곤 했지만 눈에 딱 들어오는 장소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 한 군데 현재 위치에서 약 5마일 떨어진 곳에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어 그 곳 건물주에게 여러 번 연락을 해 보았지만 무응답이었다.

그리고 몇 주 전에 손님 가운데 한사람, 일흔을 코 앞에 둔 꽃 가게 주인이 던진 말로 상황이 급전하였다. 그는 이따금 그가 꽃배달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로 우리 부부 배꼽을 빼곤 하는 사내다.

그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 – 뉴저지 어느 곳에 꽃배달을 갔었단다. 주말 오후, 배달 간 곳은 한적한 마을 개인 주택이었는데 차들이 꽤 많았더란다. 도어 벨을 누르니 한 사내가 문을 열어 주는데, 얼핏 눈에 들어 온 집안 풍경에 아연했었단다. 남녀들이 모두 벌거 벗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좀 더 자세히 볼려고 고개를 내미는데 사내가 급히 문을 닫더란다. 그 때의 아쉬움을 말하며 킬킬거리는 그런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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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가 우리 부부에게 던진 말 – ‘이제 너흰 어디로 옮기니? 혹시 우리 건물로 올 마음 없니?’ 늘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작업복 세탁이나 맞기며 킬킬거리던 노인이 말한 ‘우리 건물’은 바로 내가 건물주를 만나기 위해 여러 번  연락을 해 보았지만 무응답이었던 바로 그 샤핑센터였다. 약 30만sf(약 8,500평)면적의 제법 규모 있는 건물주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사실 그 동안 몇몇 손님들이 자기 소유 건물로 이전이나 매입을 권유하였지만 세탁소 장소로 적합하지 않거나 내겐 다소 버거운 곳들이었다.

그 이튿날, 그는 그 건물 관리 직원을 보냈고, 이후 몇 차례 리스 조건들 조정에 대한 이야기들 오갔다. 그리고 며칠 후 꽃가게 주인은 우리에게 아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우리를 혹하게 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손님들에게 설문조사를 시작하였다. 리모델링이 끝난 후 현 샤핑센터내로 이전하는 것과 꽃가게 주인 소유의 샤핑센터로 이전하는 것 중 어느 곳이 당신에게 편리한가? 라는 질문과 만일 우리가 당신이 편리하지 않다고 대답한 곳으로 이전한다면, 그래도 내 세탁소를 이용할 것인지?를 묻는 것 이외에 몇 가지 물음을 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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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간 동안 실시한 이 조사에서 응답한 이들은 편리한 쪽을 묻는 질문엔 정확히 반반으로 갈리었고, 나머지는 어느 쪽이나 같다는 선택을 하였다. 어느 쪽으로 가든 내 세탁소를 계속 찾겠노라는 응답은 거의 100%였다.

지난 주에 우리 부부는 현 샤핑센터 주인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꽃가게 주인 소유의 건물로 이전할까 한다고 전했다. 젊은 주인은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 30% 인상은 없던 것으로 하고, 그 쪽에서 제시한 조건에 걸맞는 조건으로 우리 건물에 그냥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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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부부의 결정은 ‘아직’이다.

젊은 건물주를 만나고 돌아 오는 길, ‘이거 다 내가 착하게 살았기 때문 아닐까?’하는 내 말에 아내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내의 웃음은 비웃음이었고, 내 웃음은 가당치 않은 내 말이 겸연쩍어 터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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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곳 건물주와 내 세탁소 손님들이 같은 목소리로 우리 부부에게 크레딧을 부여한 첫 번 째 조건은 3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세탁소를 이어 왔기 때문이란다.

딱히 특별한 재주와 능력이 없어 한 자리에서 고만한 세탁소를 꾸려온 이력도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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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평생 동네 세탁쟁이 이다.

  • 주말, 동네 Winterthur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들

깊어 가는 가을, 숲 속 정원 길을 걷다.

시간이 바뀌어 밤이 부쩍 길어진 날, 동네 Mt. Cuba Center에서 – 1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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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첫 일요일에

휴일 오전 내내 서중석이 지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읽다. 1945년8월 15일 부터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는 순간 까지를 기록한 책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하기 바로 전 해인 1959년까지 읽다가 책을 덮었다.

몇 가지 생각들이 스치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 하여도 나도 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첫째요, 내가 한국 현대사 운운하며 책을 읽고 이야기하던 시절의 현대사란 19세가 말에서 해방 공간까지 곧 내가 살아온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이젠 내가 살아온 시절들이 현대사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 둘째요, 마지막으로 놀라운 민(民)의 힘을 다시 깨닫고 확인하는 책 읽기 였다는 생각이다.

이즈음 우리 동네 한국학생들 가운데는 한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자 등록하는 영어권 미국인들이 제법 있다. 이들을 성인반으로 분류하여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그 반들 중 하나를 내 아내가 맡고 있다.

그 학생들 중 하나가 주정부에서 일을 한다는데 어제 아내에게 선물을 주었단다. Longwood Gardens이라고 미 동북부에선 제법 알아주는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인데, 그 곳 입장권 두 장을 주더란다. 물론 작은 부탁을 겸한 것이었으므로 부담없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었다.

하여 오후에는 Longwood Gardens 나들이에 나섰다. 이미 여러차례 가 보았던 곳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만, 오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은  집에서 고작 16분거리, 내 가게보다도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전에는 4-50분 정도 걸리는 길이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단축된 까닭은  놀랍게 발전된 GPS 덕이었다. GPS는 산속 지름길로 우리를 16분만에 그 곳을 찾게 하였다.

아내와 함께 꽃과 분수(噴水) 사이에서 휴일 오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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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르간 공연도 있어 문화생활(?)도 누렸다. 연주 제목들이 불꽃 춤, 성(聖) (누군가?)의 종소리, 무슨 변주곡 등이었는데 음악엔 영 무식 덩어리인 나는 짜장면, 우동, 짬뽕을 다 맞본 기분이라고 아내에게 내 느낌을 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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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을, 그 곳의 주인은 다람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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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부호 DuPont이 그의 아내를 위해 만들었다는 Longwood Gardens을 오늘 우리 부부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본디 주인은 다람쥐와 여우, 사슴 등이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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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뒤적여 본다는 뜻도 본디 주인인 민(民)을 찾는 일 아닐까?

가을, 주일 편지

뉴스 이외에 한국 TV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엊그제 일이었고 ‘알쓸신잡’이라는 프로였다. 편집의 힘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 하여도, 출연진들은 이 시대에 대단한 입심을 보유한 지식들이었다. 시청 후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 하나 있어 주일 아침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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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모님은 Pike Creek 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 장인은 Wilmington 시내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 살고 계십니다. 아흔 줄 연세 노인들의 가장 큰 일과 가운데 하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일입니다.

한국 TV 방송을 직접 시청할 방법이 없으므로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해 드라마들을 시청하십니다. 그러니 노인들이 드라마를 즐기기 위해서는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TV 모니터가 필요하답니다. 이 세 가지들이 아무런 이상이 없을 때는 노인들에게 참 좋은 친구들이지만, 셋 중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노인들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물건이 되고 맙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은 노인들을 찾아 뵐 때가 되었다 싶으면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TV 모니터 셋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곤 한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오작동이나 기기들을 다루는 것이 서툴러서 생긴 일이랍니다.

지난 주에 가게 문을 닫은 후, 하루는 장인에게 다른 하루는 제 부모님에게 같은 일로 들리게 되었답니다. 대부분의 같은 경우처럼 문제를 해결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일들이었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돌아왔답니다.

엊그제 부모님 집에 들렸다가 돌아 온 늦은 밤, 평소에 잘 보지 않던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답니다.

Italy Florence에 있는 유럽 최초의 보육원이라는 Ospedale degli Innocenti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프로였습니다. 보육원이 생기게 된 배경과 과정 500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그 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최근에 그 보육원에서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동영상에 담아 방문객들에게 보여 주기도 한답니다.

그 중 한 여성의 이야기가 제 머리 속에 깊이 박혔답니다. 보육원과 그녀를 입양한 양부모, 그리고 다시 만난 친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녀가 말하는 ‘가족’에 대한 정의였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가족’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바뀌어 나간다고들 합니다. 가족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서로 간의 깊은 배려 속에  함께 만들어 나가는 가족이 있는 한 세상은 따듯할 듯 합니다.

물씬 가을 냄새가 나는 때입니다. 딱히 피붙이들이 아니어도 따듯한 세상을 만드는 이웃 가족들이 함께 하는 가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My parents live in a senior apartment in Pike Creek and my father-in-law also lives in a senior apartment, but in Wilmington. They are in their nineties. One major part of their routine or entertainment is to watch and enjoy Korean dramas.

As there is no other way to watch Korean TV here, they watch Korean TV programs through the internet site. So, in order to enjoy Korean dramas, they need a computer, internet connection and a TV monitor. When there is no problem in any of these devices, they are good friends to them. But, when there is a problem in any of them, they become troublesome machines which break their everyday lives.

Looking back, interestingly, whenever I thought that it was about time to see my parents or father-in-law, they called and asked me to fix a problem which arose in the devices. Actually, in the majority of cases, the problem came up, not because any of the devices malfunctioned, but because, understandably, they were not good at dealing with these technical devices.

Last week, after closing the cleaners, I had to stop by at my parents’ apartment one day and at my father-in-law’s another day, for such a reason. In most such case, it did not take even 10 minutes for me to fix the problem. But I stayed and talked with them for a while.

A couple of days ago, when I stopped by at my parents’ and came back home late at night, I happened to watch a TV program which I had not watched usually.

It was a story about “Ospedale degli Innocenti” in Florence, Italy, which was the first orphanage in Europe. The program covered the background of its establishment and those who passed through since it had founded about 500 years ago.

According to the program, the orphanage shows videos about those who used to live there recently to visitors.

One woman’s story among them was stuck deeply in my head. She grew up in the orphanage, under adoptive parents, and later under her real parents who she met again later. She said that “a real family” is not something given, but something molded.

They say that the world has changed and is changing. So is the concept of family, I think. However, as long as families are molded in mutual consideration and care, the world will stay warm, I believe.

The fragrance of fall pervades the air. I wish that you’ll be with neighbor families who make the world warm, though they are not your flesh and blood, this fall.

From your cleaners.

여유(餘裕)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왜 그리도 허둥거렸을까? 모든 시간이 내 선택에 달린 일이었는데…

집과 가게에서 딱 10여 분 거리. 오가며 숱하게 지나쳤던 공원.

아내는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이후이니 20여년, 나는 처음이었다.

여유(餘裕)란 늘 코 앞에 있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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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이하며. – 10/3/18

감과 ‘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지났다. 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Bill은 한 바구니의 감을 들고 우리 부부를 찾아온다. 십여년 이어져 온 일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Bill은 내 가게가 있는 델라웨어주 Newark 토박이이다. 이 곳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이 동네의 옛모습을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무우밭과 배추밭을 지나 국민학교를 다니던 내 고향 신촌을 떠올리곤 한다.

무우밭과 배추밭이 있던 서울 신촌을 말하면 옛사람이듯, 옥수수밭과 한참을 가야 집 한채를 만나던 Newark을 이야기하는 Bill을 이해하려는 요즘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 모를 일이다.

Bill을 안지도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보다 먼저 안 사람은 그의 부인 Mrs.민이었다. 지금이야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른다만 그때만 하여도 국제결혼이라고들 하였다.

Mrs.민은 거셌다. 그녀가 ‘뵤’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미군에 복무하던 Bill이 한국에서 근무할 때 만나 결혼한 Mrs.민은 그의 남편 Bill을 늘 ‘뵤’라고 불렀다.

Mrs.민은 거셌지만 여렸다. 같은 한국인들이 가까이 하기엔 거셌지만, 분명 Bill에게는 여렸다. 딱히 내가 노력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Bill과 Mrs.민은 친구가 되었다. 세상 뜨기 전에 Mrs.민이 무당 내림 굿을 받았을 때도 나는 그의 집을 찾기도 하였다.

Mrs.민이 세상 뜬지도 벌써 십 수년이 흘렀다. 먼저 떠난 아내가 좋아하던 감나무의 감이 익을 때면 Bill은 한 바구니의 감을 따서 나를 찾아온다.

지난해에 얻은 외손녀 이름을 지으며 middle name에 Min을 넣었다며 좋아라 하던 ‘뵤’는 외손녀가 자라면서 어찌 제 마누라 ‘민’을 닮아가는지 놀랍단다.

늘 그렇듯 나는 한 바구니의 감을 가까운 ‘한인’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