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애국가를 부르며

잊고 살다가 일년에 한 두차례라도 애국가와 미국가를 부를 수 있음은 모두 한인회 덕이다. 목청 높여 온 힘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사를 읊조리며 따라 부를지언정 그런 때이면 한인회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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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저쪽 세월을 돌이켜보니 손에 잡힐 듯 한건만 강 건너 아스라히 저 편에 있다. 그 때만 하여도 한인회는 없었고, 다운타운에서 장사하는 한인들 중심으로 실업인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한인들을 조직해 나가는 때였다. 몇 해 후 각종 직능단체들이 생기고, 그를 터삼아 델라웨어 한인회가 발족하였다.

매해 한인들의 수도 늘어갔거니와 아직 인터넷 등이 출현하기 전이라 이민사회의 각종 정보 유통이 원활하지 않던 때여서 한인회 행사에는 제법 많은 한인들이 모이곤 하였다.

그 중 5월 메모리얼데이 한인 축제와 설날 전후로 열리는 새해맞이 잔치에는 삼 백여명이 넘는 한인들이 모여  함께하곤 했다. 매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초대하는 단골손님들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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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점점 나이 들어 사라져 가면서 줄어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행사에 참석하는 한인들의 수는 줄어갔다. 까닭을 찾자면 여러가지가 있겠다.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의 수가 이젠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스마트폰 안에 차고 넘치는 정보들이 사람들이 마주할 기회를 앗아갔다는데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한인회를 붙들고 이어가고자 씨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꿈은 결코 큰 것이 아니다. 다만 ‘나’와 ‘우리’를 잊지 않고자 함이다.

오늘 저녁 그네들이 마련한 설날맞이 잔치에 가서 애국가와 미국가를 부르고 왔다. 아직은 정정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함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인들의 권익신장과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웃에게 알리고자 애쓰는 델라웨어 한인회 김광실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모두에게 속깊은 박수를 보낸다.

놀라운 세계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단풍나무 숲이나 길게 뻗은 소나무 가지 밑으로 비를 피하게 되었을 때도 그 후미진 곳을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그 잎사귀나 나무껍질 속, 혹은 발 아래의 버섯에서 새로운 놀라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리라.>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남긴 말에 귀를 기울이며 메모리얼데이 연휴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년에 한번 애국가와 미국가를 불러보는 날입니다. 올해로 델라웨어 한인축제가 27년 째를 맞습니다. 모처럼 만난 동네 올드 타이머의 얼굴들을 보며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을 실감했습니다.

해마다 이 행사에 초청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가족들 수는 이 행사의 주인들인 한인들 숫자 만큼이나 부쩍 줄었습니다.

때마침 공원 나들이를 나오신 종(種)을 알수없는 견공 연세가 올해 12살, 사람 나이로 치면 여든 넷이랍니다. 모두 세월 탓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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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행사를 위해 현악기를 연주해 주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가족이 끼인 악단도 있었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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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땜방을 마다치 않고 징채를 잡은 제 아내가 끼인 사물놀이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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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손주사위가 드린 선물에 흐믓해 하시는 제 아버님의 생신이었습니다. 조카사위(아버님의 손주사위) 녀석이 건넨 선물 보따리에는 백세주도 담겨 있었답니다. 아버님의 백세, 채 십년도 안되어 맞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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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델라웨어 한국학교가 봄학기 종강과 함께 개교 30주년 기념을 하는 조촐한 행사를 치루었답니다. 27년 째 이 학교 선생으로 지내온 아내가 교장으로 치룬 행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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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 부부도 올드 타이머가 되어 버섯 키우는 이끼 낀 나무가 되어가는 모양입니다. 아니 그냥 이끼가 되어 가는 줄도 모를 일입니다.

놀라운 세계란 딱히 숲속에 있는 것만도 아니거니와 무릇 멀리 있지 않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