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림자

단언컨대 내 장모는 여전히 꽃이다. 오늘도 그녀를 그렇게 기억하는 이들이 있음으로.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 목사님의 기억이 그러하였고, 그 기억에 고개 끄덕이는 공동체들로 하여 오늘 장모는 여전히 꽃이 되었다.

장모 돌아가신 지 두 해, 이홍목사님과 교회는 잊지 않고 이 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우리 부부는 목사님과 그 교회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예배에 함께 했다.

사실 돌아가신 장모나 점점 기력이 쇠하여 지는 장인에게나 딸인 아내나 사위인 나보다 그 교회 식구들이 더욱 가까운 가족이어서 우린 그저 부끄럽고 미안해야 마땅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까닭은 잊혀진다는 것 아닐까?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웠던 여인, 미운 사람을 안고 살지 않았던 여인으로 기억하는, 그리고 그런 여인과 함께 했던 세월에 감사하는 이들이 있는 한, 내 장모는 여전히 꽃다운 삶이다.

살아 생전 장모가 유일하게 미워했던 사람이 장인이었다는 나와 동갑내기 이홍목사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우스개에 이목사를 향한 내 존경은 더해졌다.

예배 후 찾은 장모 계신 곳. 내 어머니와 아버지, 장인, 아내와 나의 자리가 모두 예약되어 있는 곳을 두루 둘러보다.

단 한 사람만에게라도 꽃같은 삶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오늘 하루의 삶에 감사를 느끼게 해 준 이홍목사님과 침례교회 식구들을 생각하며.

특별히 장모의 그림자를 아름답게 수놓아 주신 이목사님께 감사를.

12/ 2/ 2018

DSC04390A DSC04391A DSC04394A DSC04395A DSC04399A DSC04401A DSC04406A

첫 눈

무릇 믿음이란 제 마음가짐이다.

어제 첫 눈 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때때로 자연은 사람의 생각과 계획한 일들을 바꾸어 놓고 한다. 누구에게라도 예외는 없다.

나이 탓인지 일년 전 일이나 오 십년 전 일이나 거의 같은 간격으로 다가오는 이즈음이라 그저 세월 빠르다는 소리로 퉁 치고 말지만, 참 빠르다. 세월이.

아들 내외가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더니, 장모 떠나신 지도 벌써 일년이란다. 그저 모두 엊그제 같은 일이건만.

어제는 집에서 처부모님께서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조촐히 장모 일주기 추모 예배를 드리려 했었다. 그러나 첫 눈은 우리 부부의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 목사님과 교우들은 첫 눈의 뜻을 넉넉히 받아주었다. 공동체의 그 넉넉함 덕에 오늘 주일예배와 함께 장모 일주기 추도예배를 침례교회에서 드렸다. 장모는 아마 내 집보다는 침례교회가 좋았던가 보다. 올 첫 눈은 장모의 뜻일 거라는 내 생각은 하여 믿음이다.

1210171205-1

내 어머니께서 이즈음 입에 달고 사시는 말, ‘그저 고맙다.’를 나도 읊조린 하루다.

가족이 함께 해야 할 일에 제 일들 제치고 늘 함께 해 주는 아들, 며느리 딸아이에 대한 감사도 크다.

예배 후 찾은 장모 쉬시는 곳엔 구름 사이 햇살이 함께 했다.

1210171338-1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을 찾았다. 몇 주 전에 이미 약속한 모임 이었지만 아이들은 몰랐다. ‘아직 정신 있을 때 남길 건 남기고, 줄건 주고 정리를 해야겠노라’는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을 함께 보자고 하셨다. 그게 오늘인데 장모 덕에 우리 아이들도 함께 하였다.

여러 말씀 중에 내 귀에 남은 말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우리 죽어도 절대 눈물 보이지 말아라. 우리 복되게 잘 살았다.”

그리고 내가 형제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건 내꺼야!’ 눈독들인 물건은 아버지의 공병우 타자기다.

1210171405
아무렴 무릇 삶이란 제 믿음 두드리는 타자기 소리 듣는 일이거늘.

이 생각 하나 모두 올 첫 눈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