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연휴에 뭐 하슈?” 친구가 물었던 일은 제법 오래 되었다. 거의 잊고 있다가 일주일 전쯤 “가까운 곳에 가서 하루 걷고 먹다 옵시다.”라는 그의 말에 “어이, 좋지”했었다.

그가 말한 가까운 곳은 딸네와 가까운 곳이었다. 하여 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가 연휴 하루 하나엄마 아빠랑 너 사는 근처에 가는데… 얼굴 한 번 볼 수 있을까?’ 딸아이의 물음, “어디?, “맨하턴하고 브루클린”이라는 내 응답에 이어진 딸 아이의 대답이었다. “어떻하지…. 우린 그때 서부에 있을텐데…. 친구 결혼식에…. 아이….”

연휴가 다 끝나는 저녁 무렵, 딸아이가 연락을 해왔다. “우린 이제 막 집에 돌아왔어. 엄마 아빠 뉴욕구경 어땠어?”

친구는 뉴욕과 뉴저지와 델라웨어를 매주 생업을 위해 오간다. 모두 그가 오늘을 살아가는 동선이다. 뉴욕 나들이는 어쩌면 그에게 나들이라 할 수도 없을게다. 그가 오늘을 살아가는 현장이므로.

우리 내외에게 도시는 이미 어쩌다 구경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붐비는 사람들, 어지럽게 높은 건물들과 귀가 멍멍하여 머리속이 아득해지는 소음들 이젠 아주 낯설어 보이는 것들이 모두 구경거리가 된 관광지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거의 하루가 넘어가는 시간에 돌아온 하루 여정,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이 먹었다, 무엇보다 친구내외와 우리 내외 모처럼 끊이지 않은 살아가는 이야기들, 그 수다 삼매경에 빠져 지낸 하루가 참 좋았다.

하루가 지난 밤, 딸아이가 건넨 물음은 우리 내외가 누린 연휴에 큰 감사를 덧입혔다. 딸아이는 이즈음도 묻고는 한다. “아빤, 언제 일 그만 둬?”, 언제나 똑 같은 내 대답, “글쎄…. 아직은….”

우리 내외가 함께 하루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어도 아쉬운 친구내외가 있고, 뭐라해도 그저 품어낼 가족들이 있고, 우리 내외 아직 걸을만하고… 하여 몸과 맘으로 하는 모든 일들은 쉬지 말아야 하고….

2024년 노동절 연휴가 저무는 밤에

아버지날에

아이 사는 모습을 보노라고 모처럼 뉴욕에 다녀왔다. 달포 전에 잡은 계획인데 오늘이 Father’s Day인줄은 그땐 몰랐었다. 하여 엊그제는 아버지와, 어제는 장인과 잠시 시간을 가졌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비가 오락가락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올라가는 길에 딸아이에게 만일 비가오면 Metropolitan Museum을, 날이 좋으면 Central Park에 가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날씨는 걷기에 딱 좋았다. 걷자면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 좀 늦은 아침 북어 콩나물 해장국으로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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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politan Museum – 딱 30년 전에 이곳을 왔었다. 그 때는 아버지와 함께 였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온 오늘은 나는 그저 쫓아다니면 족했다. 묻고 길을 찾고 안내하는 것은 딸아이가, 돈내는 일은 아내와 딸의 일이 되어 내가 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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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많이 바뀌었다. 우선 그땐 딸아이가 아직 세상에 없었다. 아내는 갓 서른 청춘이었다. 그때만해도 아버지 걸음은 빨랐다. 박물관엔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전시관을 돌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아들과 며느리가 Happy Father’s Day 문안을 전하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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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을 이용해 전시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Audio Guide랄지, 아주 작은 방일지라도 한국관이 따로 설치되어 있는 것 등도 30년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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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뉴욕 지하철이다. 새로 연장된 구간의 지하철은 서울만큼 깨끗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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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다 된 딸아이는 제법 맛있는 빵집 위치를 꿰차고 있었다. 우리는 빵과 커피를 들고 Central Park의 느긋한 오후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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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나들이 후기

어제 딸아이 사는 모습 좀 보고 오느라고 뉴욕을 다녀왔답니다. 아이가 연휴면 종종 집에 오느터라 자주 가보지는 않는답니다.

뉴욕 맨하턴 나들이에서 제가 즐기는 몇가지가 있답니다. 주차비에 치이고, 맨하턴에서 차 사고를 한번 당한 이후에는 맨하턴 나들이는 언제나 기차 아니면 버스를 이용한답니다. 우선 그 교통 수단의 편안함입니다. 버스나 기차나 오고가는 시간에 누리는 편안함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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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턴 한인거리에 있는 서점 방문과 한식당에서 누리는 한끼 입맛의 호사와 곁들이는 소주 한잔의 즐거움 등이 나들이를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랍니다.

지난 가을에 뉴욕 나들이를 했을 때는 서점이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문을 닫아 그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놓쳤었답니다. 딸아이에게 서점이 공사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여서 내심 알라딘을 통해 구입하려던 책들을 이번 나들이 몫으로 미루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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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과 판매 서가에 꽂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책방과의 차이는 맛이 다름에 있지요. 같은 책을 구입해도 정말 맛이 다르답니다.

새로 꾸민 서점의 모습에 실망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움이 밀려 왔습니다. 우선 규모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 들었답니다. 그렇게 줄인 나머지 공간은 화장품 매장과 의류 매장으로 꾸며져 있었답니다.

그렇게 줄어든 공간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증폭시킨 것은 서가에 진열된 책들이었습니다. 웬 요리책들이 그리 많이 꽂혀있던지요. 좁은 공간에 거의 한 섹션을 이루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기독교 서적들과 자기 개발서들이 주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서점 비즈니스의 현실을 들어내고 있었답니다. 저만해도 서점 나들이는 그저 이따금 누리는 재미일 뿐, 아마존이나 알라딘이 편한 것을요. 그나마 서점을 그렇게 유지하려는 주인장의 아픔을 느꼈다할까요.

서점 방문에 앞서 들렸던 macy 백화점에서의 느낌도 새로운 것이었답니다. 사실 저는 뉴욕 macy 백화점 안에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아내와 딸아이가 샤핑을 할 때면 저는 늘 따로 놀곤 했었는데 이번엔 함께 했답니다. 늙어가는 징조일겝니다.

매장에 들어가서 제가 놀란 것은 매장 일층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의 춘절 곧 우리 설날을 중국풍으로 드러낸 장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 3, 4층으로 올라가면서도 똑 같은 느낌을 받았답니다. 바로 빨간색을 주조로 한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 서점에서 사온 책들을 훑어 보다가 눈에 들어온 대목입니다.

『논어』의 이 화동론(和同論)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IMG_20150426_082042얼마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 162-163쪽에 실려 있는 말입니다.

세상은 늘 변하고 시대의 대세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딱히 자본주의의 변화 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또는 한국 이라는 국가 단위 공동체도 부단히 변해갑니다.

점점 설자리 잃어가는 서점 주인과 쇠락해가는 macy 뿐만 아니라  동(同)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이 사회가  화(和)를 주창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이는 밤입니다.

어느 섣달 그믐

단지 몇 달 사이인데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뉴욕행 버스를 타노라고 차를 터미널 인근 주차장에 대었더니 평소와 달리 티켓 대신에 동전만한 플라스틱 칩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데 칩을 잃어버리면 거의 세배가 넘는 금액을 물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차를 대놓고 아내와 저는 작은 다툼을 벌렸답니다. 아내는 칩을 가지고 가자는 쪽이었고 저는 차에 두고 가자는 쪽이었답니다. 암튼… 늘 그렇듯…

외지인 뉴욕에 도착해서는 몇 달 사이 어리버리 노인네가 된 우리 부부는 살가워질 수 밖에 없었답니다.

모처럼 만난 딸아이는 우리 부부가 노인네라는 것을 직파한 모양입니다. 매사 집에 있을 때와 다르게 침착하고 꼼꼼히 애비 에비를 챙기는 모습이었답니다.

어느새 딸아이가 툭!

아내와 어머니보다 더 윗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섣달 그믐이었답니다.

돌어오는 길 우리 부부는 다 큰 딸아이 이야기로 “쎄쎄쎄…” 하다가…

다시 주차장에 이르러 그 놈의 칩 때문에… 다시 다툼을…

그렇게 우리들의 일상을 돌아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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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매표소 한글 안내를 보며… )

*** 사족 : 차이나 타운에서 우리 세 식구가 정말 맛나게 먹고도 남은 만두와 국수 값에 비해 코리아 타운에서 먹은 순두부와 비빔밥은 거의 두배 반에 이르는값에 비해 서비스도 그에 역비례였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