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어머니는 늘 부지런하셨다. 추석이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전, 이 맘 때면 방문 창호지와 문풍지를 가셨다. 어머니가 연탄광을 정리하고  김장 독을 점검하는 일이 끝날 때이면 김장철이 다가오곤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네 남매 계절 옷정리도 오로지 어머니 몫이었다

딱히 내 어머니를 흉내 내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처럼 부지런 하지도 않거니와 아버지처럼 꼼꼼하지도 못한 내가 어제 오늘 가게와 집, 계절 정리와 맞이로 시간을 보냈다. 애초 아내와 나는 어제 근사한 저녁을 보낼 요량이었다. 시간 계산이 오락가락하시지만 여전히 부지런하신 어머니 가 어제 급작스럽게 우리 부부의 계획을 바꾸어 주셨다.

그렇게 주말 이틀을 보내고, 일요일 늦은 밤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그저 감사다. 그래 흐르는 눈물이었다. 모니터에는 한국 서초동에서 있었던 촛불집회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뉴스들은 반반의 갈등을 부추기고, 원래 그런 이들은 그렇다 치다라도 이른바 진보연하던 이들 중 몇몇은 언제나 그렇듯 제 얼굴 드러내는 일에 충실하고….

그러나 역사란 늘 즉흥과 저항을 무기로 한, 그저 하루 걱정에 매인 사람들의 외침에 따라 흘러 왔다는 생각은 내 눈물 끝에 얻은 생각이다.

그래 또 감사다.

아침나절 내 가게 손님들에게 이 계절에 대한 감사 편지를 보냈더니 손님 하나가 제법 긴 답신을 보내와  또 눈물이다.

그의 말이다.

“너의 계절에 대한 감사에 꼭 덧붙일 또 다른 감사가 있다. 최근 몇달 동안 우리들이 살고 있는 Newark 날씨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더웠다한들 남쪽 볼티모어나 워싱톤 만큼 덥지 않았고, 여타의 지역처럼 허리케인 토네이도 홍수나 폭우, 거센 바람들도 겪지 않았다. 이건 사계절을 누리는 감사에 마땅히 덧붙일 일이다.”

그래 무릇 감사란 바꾸어진 환경에서 드릴 수 있어야 참 감사다. 내가 사는 NewarK이 볼티모아나 워싱톤 보다 더워도, 홍수 폭우 토네이도 거센 바람을 겪어도… 사계절을 누릴 수 없어도…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부질없던 때는 없다. 그렇게 모든 감사가 부질없던 때는 없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은 늘 자신을 뺀 가족 사랑이었으므로.

가족에서 이웃으로 뻗어 나가는  촛불에 흐르는 눈물은 그저 마땅할 뿐.

어제 함께 못한, 지금 가까운 이웃들 사진을 보며 눈물을 그치고 웃음을.

이 나이에 눈물…

이 나이에 TV를 보며 운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운다.

광주 항쟁 37주년 기념식 대통령 문재인의 연설을 들으며 운다.

그 때, 서울내기인 우리는 몰랐다. 광주의 아픔을. 그저 우리, 아니 단지 나의 아픔이었다. 쫓기던 나는 그 해 5월과 6월, 합수부 지하실에서 알몸의 수치와 치도곤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아픔은 그 때 뿐, 나는 그 날 이후 오늘까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았다. 그저 건강한 생활인으로. 더더우기 멀리 멀리 미국까지 흘러와 이젠 미국시민으로, 딴나라 사람으로.

그렇게 나이 들어가던 내가 운다.

오늘 내 울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부러움이다. 자랑스러움이다.

대통령 문재인의 연설은 부러움이자 자랑스러움으로 내 눈물이 되었다.

겪어낸 아픔을 마주보고 치유할 때임을 대통령 문재인이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와는 다른 알 수 없는 아주 강력한 힘이 그와 함께 하였다. 그게 내 눈물의 원인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나와 당신 뿐만이 아니라 그 누군가가 하나 둘 늘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 힘.

이 저녁, 이 나이에 흘리는 눈물이 부끄럽지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