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리는 아침

지난 주에 눈 치우며 무리했던 허리가 ’이젠 좀 살만하다’ 큰 숨 내쉬려는데, 에고 아침나절부터 눈이 또 다시 펑펑 쏟아져 내린다.

눈 치울 염려랑은 눈 그치면 다시 만나도 되는 일, 그저 한없이 내리는 창밖 눈 구경에 빠져 일요일 아침을 보내다.

어제 밤 늦은 시간까지 스무 명 남짓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세월호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서 출애굽기 이야기를 종종 인용하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은 “모든 해방 활동은 출애굽기에 덧붙여지는 성서 이야기”라고 했다지. 결코 끝나지 않은 예수 이야기를 쓴 것은 마가였고.

오늘을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간절한 이들에게 실망이나 좌절은 그저 넘어야 하는 언덕일 뿐.

뜻을 품고 산다는 일은 그저 단 한 걸음만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것 뿐.

쉬지 않고 눈 내리는 주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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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눈발이 끊겼다 싶어 드라이브 웨이 쌓인 눈을 치웠다. 예보는 더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하지만 이미 쌓인 눈을 치우면 나중에 힘이 덜 부칠까 하여 부지런을 떤 일이었다.

깨끗이 치웠다고 한 숨 크게 쉬자 눈발이 다시 이었다. 땀 식히는 사이 ‘네 놈이 언제 눈을 치웠더냐’ 싶게 다시 눈밭이 되었다.

‘헛짓이었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만, 아무렴 내일 아침에 눈 치우는 일은 한결 수월할 터이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히 눈만 쌓여 가는 오후, 이즈음 틈틈이 읽고 있는 선가(禪家)  이야기 중 하나가 머리에 꽂히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있었던 장헌충의 난(亂) 중에 있었던 일이란다. 잔학한 학살로 유명했던 장헌충의 난에 대한 기록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니 당시 310만명이었던 사천성(四川省) 인구가 장헌충에 의해 2만 명 이하로 줄었을 만큼, 장헌충은 점령한 도성 사람들을 거의 전멸시켰단다.

그의 부하였던 이정국이라는 이가 어느 성을 함락시킨 후 그 곳 백성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단다. 그 성에 파산선사라는 선승(禪僧)이 죽기를 각오하고 이정국을 찾아가 사람 죽이기를 그치라고 간청했단다. 그 때 이정국이라는 자가 양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등 각종 육류로 거하게 차린 상을 내어 놓고, 파산에게 이르길  ‘중은 고기를 먹지 않는 계율이 있다지? 중들에게 계율은 생명일 터이니… 만일 네 놈이 이 고기들을 먹으면 백성들을 죽이지 않으마!’라고 했단다.

이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파산이 한 마디 하고 그 고기들을 먹어 치웠단다. ‘사람 살리는 일인데 그깟 계율 따위가 뭔 소용이랴!’

나같은 중생이야 고기 앞에 계율이 뭔 소용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중인데!

가히 참 중이었던 파산의 이야기를 읽으며 든 생각 하나.

이런 저런 한국 뉴스들 보면서 이즈음 든 생각이지만, 특히나 내 어렸던 시절 추억이 하나하나 배어 있는  신문로 사거리에서 청와대 인근 백악까지 그 정든 거리에서 아직도 눈물 마르지 않는 얼굴들로 한 서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도대체 계율 따위가 무엇인지?

원칙과 절차의 정당성 운운에 얽매인 계율들이 이른바 사람이 먼저인 촛불의 뜻에 앞서는 것인지?

흔히들 촛불혁명 이라고들 한다. 성공이나 완성된 혁명은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없었다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혁명은 늘 헛짓이었나?

아무렴, 혁명은 이미 권력을 누리는 자들과는 닿을 연이 없다.

다만, 그저 사람으로 살고파 오늘을 아파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오늘도 혁명은 계속된다.  역사 이래 언제나 그렇듯. 비록 오늘은 헛짓일지라도.

내일은 분명 수월할 터이므로.

혁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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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 나이

시간 또는 숫자란 때론 참으로 뜻 없다. 숫자로 일컬어지는 나이 또는 2019년 모월 모일로 표시되는 시간은 언제든 나와는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봄이거니 했는데 눈이 많이 내린 날, 느닷없이 철든 내 생각이다. 허긴 사회 통념상 노인 반열에 이미 올랐건만 그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으니 철없기는 참 여전하였다.

손님 하나 없는 가게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이 자리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내 평생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인 생각들이다.

내 아이들을 낳고 키워온 삼십 년을 함께 해 온 가게를 옮기는 준비를 하며 맞는 눈손님에 참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하여 일찌감치 가게 문닫고 집에 돌아 와 눈 치우며 눈을 느끼다. 시간 또는 숫자를 세며.

역시… 난 아직 완벽히 철들 나이는 아닌가 보다.DSC0478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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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과 봄(春)

시간이 바뀌며 낮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주중 일터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일요일 한낮의 길이가  생각보다 많이 길다. 교회를 다녀온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다. 화창한 봄날인 줄 알고 노란 꽃잎 내민 개나리가 서 있는 곳은 눈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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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밭을 뚫고 잔디들은 이미 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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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게 일을 도와주는 미얀마 출신  Lou가 알래스카에 사는 동생이 보내주었다며 선사한 양념된 훈제 연어를 들고 부모님을 찾았다. 가려움증으로 오래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새로 처방받은 약이 잘 듣는다며 모처럼 화사하게 웃으신다. 아버지는 ‘마침 잘 왔다’며 나를 컴퓨터 앞으로 끄신다. 컴퓨터에 이상이 있다는 말씀이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다룰 줄 몰랐을 뿐.

이 겨울이 시작할 무렵에  병원에 들어가셨던 장모가 세상 뜨신 지도 벌써 백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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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 계신 곳에서 가까이 눈에 닿는 거리에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누울 곳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곳은 이미 완연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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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내외 먹을 거리 장을 보고 돌와왔건만 아직도 한낮이다.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낸 장자 이야기에 대한 응답들을 보며 저녁을 맞는다.


오늘은 동양의 고전 가운데 하나인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날 장자와 혜시가 호(濠)라는 강의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물에서 자연스럽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데, 저것이 피라미의 즐거움이라네” 그러자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 또한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지 안단 말인가?”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니까, 물론 자네의 마음을 모르지.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네도 물고기는 아니니까,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확실하지 않은가”

당신은 두 사람의 생각 중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이야기를 들은 옛날 시인 한사람은 이런 시귀를 남겼답니다. “내가 청산을 보며 매우 아름답다고 여기니 청산도 나를 보면 똑같이 느끼겠지!”

이제 봄이 다가옵니다.

보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재미있고 즐거운 한 주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oday, I would like to share a story from “Zhuangzi,” one of the old Oriental classics:

Zhuangzi and Huizi were strolling along the bridge over the Hao River. Zhuangzi said, “The minnows swim about so freely, following the openings wherever they take them. Such is the happiness of fish.”

Huizi said, “You are not a fish, so whence do you know the happiness of fish?”

Zhuangzi said, “You are not I, so whence do you know I don’t know the happiness of fish?”

Huizi said, “I am not you, to be sure, so I don’t know what it is to be you. But by the same token, since you are certainly not a fish, my point about your inability to know the happiness of fish stands intact.”

Which one do you think is right?

Having heard this story, an old poet left the following line of a poem: “As I regard nature very beautiful when I see it, nature must feel the same about me when it sees me!”

Now, spring is just around the corner.

I wish that all that you see and feel will be beautiful, joyful and amusing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