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축복

노동절 연휴가 끝나간다. 여느 해 같았다면 세탁소가 활기를 띄는 계절을 맞아 마음이 분주해지는 시기이지만 올해는 그럴 기미가 전혀 없다. 가게 일은 그저 강태공이 되어 세월을 기다릴 뿐이다.

연휴 사흘 동안 빡센 몸 노동을 즐겼다. 나 혼자 들기 버거운 나무 목재들과 자갈과 모래 그리고 돌덩어리들과 땀 흘리며  씨름하며 보냈다.

지난 한달 동안 틈 나는 대로 땅을 파고 고른 땅에 지주를 세워 deck을 만들고, 자갈과 모래를 다진 땅 위에 pavestone을 깔아 patio 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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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계획대로 정말 잘 쉬었다.

삼시 세끼와 간간히 특식까지 내 쉼의 원천이 되어준 아내에게 감사다. 한국학교 동료가 주었다는 포도는 쉼의 농도를 더해주는 설탕물이었다.

체질에 맞지 않아 잘 입에 대지 않던 맥주의 시원한 참 맛도 많이 즐겼다.

노동이 곧 쉼이고 창조이자 사랑이어야 한다고 외쳤던 이가 있었다. 신학자 도로테 죌레 (Dorothee Soelle)다.

신과 내가 노동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뭔 크고 엄청난 일들이 아니다. 신과 나 사이에 중간자 없이 일에서 쉼을 맛보고 그 일을 통해 사람살이 기쁨을 맛본다면 그게 바로 천국이다.

쉼이든 일이든 신 앞에서(또는 신 앞에 선 내 모습에서) 하루의 즐거움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삶은 축복이다.

노동에

“미쳤어, 미쳤어, 모두가 미쳤어!” 가게 문을 들어서며 Rose  할머니가 내게 던진 말이다. 내 가게 30년 단골인 할머니는 부부 모두 유태계이고 남편은 은퇴 의사이다. “내가 여기로 오는 길에 바닷가로 가는 1번 도로를 거쳐왔는데 엄청 막히더라고… 아니 지금이 바다로 놀러갈 때냐고… 암튼 다 미쳤어!” 바닷가에 부부 소유 콘도가 있는 할머니의 코로나 상황에 대한 걱정이었다.

적당히 눙치며 대꾸해 주고는 그녀의 세탁물들을 차에 실어 준 뒤 눈에 들어 온 이웃 그로서리에 자리잡은 가을을 만났다. 누런 호박들과 장작들, 그래 어느새 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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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드니 하늘빛도 이미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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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엇비슷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생각은 정말 저마다 다르다. 그래 아직은 사람인게지.

‘공감’ – 그 폭과 크기의 확대를 위해 누가 더 최선을 다하나 하는 싸움을 보는 이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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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촐한 아침 식사에 감사하며 내 노동의 한계를 측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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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 Day 연휴에.

노동과 쉼

‘노동’과 ‘근로’ – 말 하나 어찌 쓸까로 여전히 다투고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오랜 다툼이다.

그런 다툼을 일찌감치 세계 노동자의 날인 May Day를 버리고 9월 첫 월요일을 Labor Day로 정리한 미국은 영악스럽다 할까?

아무려나 부지런히 일한다는 근로 보다야 먹고 살기 위해 들여야만하는 정신적 육체적 노력으로써의 노동이 썩 적합하지 않겠나? 그래야만 ‘쉼’의 뜻이 깊어지는 법. 그게 성서가 쓰여진 까닭이기도 할 터이고.

어찌 부르고, 어떤 날을 기념하던 앞서 고민했던 이들 덕에 연휴를 즐겼다.0903171913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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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과 밤바람 맞으며 맛난 것으로 배를 채우고, 그저 일상의 이야기로 편안함을 나누며 쉼을 만끽했다. 때로 쉼에 있어 아내의 흥은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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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아들 내외는 홀로이신 제 외할버지와 잠시 시간을 함께 했노라 했고, 예비사위는 딸아이를 위해 깜작쇼를 펼치며 즐겁게 했노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연휴 쉼을 정리하는 시간, 알량한 찹쌀떡과 아이들의 대견한 소식으로 노부모와 장인에게 건강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아직은 노동이 필요한 내일을 위해!

송곳

페친 한분이 웹툰(미국에서는 Webtoon보다는  Webcomic 이라 합니다만) ‘송곳’ 이야기를 꾸준히 올리실 때만 하여도 제 눈길은 거기 가닿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드라마 ‘송곳’ 이야기가 연이어지면서 티저 영상을 올리셨고, 제가 그걸 보게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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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드라마 ‘송곳’을 찾아 보기 시작했고, 5회까지 보았답니다. 매회 드라마가 시작될 때 똑 같은 자막이 되풀이 됩니다. “이 드라마는 2003년 6월 어느날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라는 자막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제 머리속엔 2003이 아니라 1970년대와 2015년 오늘의 모습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답니다.

조지송, 조화순, 김경락(이 양반은 1980년대 미국와서 만났지만)목사님들의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인천과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었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이들을 이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내 중반(제가 이민온 이후는 모른답니다)까지 이른바 노동운동에 삶을 바친 이들의 얼굴들을 떠올려 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 어제 송곳 5회를 보다가  “같은 색인지 알았는데 아니였다.”라는 대사에서 떠오른 이가 있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 기억속에 있는 1970년대에 비하면 2015년 지금의 대한민국은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비단 대한민국 뿐만 아닙니다. 이곳 미국내 동포사회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먹고, 입고, 자는 환경의 변화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제가 이민온 1980대 중반만 하더라도 개밥통조림 사다먹은 이야기가 그냥 우스개소리만은 아닌 때였습니다.

아무리 못입고, 못먹고, 열악한 잠자리라 하더라도 그 때에 비하면 오늘날은 가히 천국에 가깝다고도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나, 2003년이나, 2015년 오늘에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줄세워 평가하고, 가르고, 나누어 차별하는 일입니다. 어찌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차별이 더욱 더 심화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쯤, “같은 색인지 알았는데 아니였다.”라는 대사에서 떠오른 분 이야기입니다. 조지송, 조화순목사 이상으로 유명세를 탓던 이입니다. 이즈음에도 종종 뉴스에 이름이 오르락하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 결혼식 때 축복기도를 해주신 분이기도 하십니다.

올초에 그 이에 대한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그와 가까이 지내는 분에게서 전해들은 것이지요. 꽤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그 이에게 물었답니다. “(목사로서) 이거 좀 과하지 않은가?”라고 말이지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답니다. “우리 고생할만큼 했잖은가? 이젠 이 정도는 우리도 누릴만 하지!”라고요.

저는 목사가 최고 고가의 차를 타고 다닌다고 문제가 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그 차를 어떤 생각으로 타고 다니고, 그 차를 이용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따져 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무엇보다 “우리 고생할만큼 했잖은가? 이젠 이 정도는 우리도 누릴만 하지!”라는 말은 2015년 한국인들 특히 60대 이후 세대들의 굳어진 생각을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우리 고생할만큼 했잖은가? 이젠 이 정도는 우리도 누릴만 하지!”라는 말을 고민없이(내가 느끼기에) 뱉어내셨을 이 어른이 두 분 조목사님들과 어깨 나란히 노동현장을 누비고 다니셨던 1970년대에는 분명 성서에 뜻을 두고 예언자적 사명을 다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성서 예언자들은 그들이 예언자적 소명을 다할 때만 기록으로 남겨졌고, 그 소명을 다했을 땐 소리없이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2015년 오늘은 여전히 ‘송곳’같은 예언자들이 요구되는 시대랍니다. 어쩌면 1970년대나 2003년 보다 더욱 절실하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