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에

비록 하룻길 여행일지라도 시간과 노잣돈, 건강 등 나름 제 형편에 맞아야 나서는 법이라는 내 생각으로 보면 나는 이미 노인이다. 어느 날 문득 쌀 몇 되와 고추장 된장 짊어지고 집을 나서 한 달 여포 산과 바다를 헤매던 젊은 때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큰 맘 먹지 않고 며칠 여행길을 즐긴 아내와 나는 아직 청춘이다.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 온 시계 바늘이 가르친 숫자에 놀라다. 매일 마주하던 시간들이 특별히 다가올 때가 있듯.

날고 뛰지는 못할지 언정 그저 잠시 일상을 벗어나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그 축복을 누리는 아내와 나는 아직은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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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어느새 맞은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 밤, 간만에 나와 마주해 앉아 본다.

지난 두어 주 동안 장인 누워 계시는 병원을 오가는 길, 어느 순간 문득 아내에게 던진 말이 있었다. ‘행여 내가 아파 눕거든 당신이나 아이들이나 딱 두 번만 찾아오셔! 병원을 찾는 첫 날과 퇴원하는 날 아니면 그냥 가버린 날, 그렇게 딱 두번 만. 나중에 내가 딴 소리하더라도 듣지말고…’ 이 말은 오래된 내 진심이다.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도 이미 웃으며 던졌던 말이다.

이즈음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다. 장인과 부모님 특히 내 아버님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게다가 올해가 다 저물어 가는 때이고 보니 그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아내가 주일예배에 참석한 시간, 모처럼 즐긴 산책길에서 떠올린 ‘홍목사의 잡기장’에서 읽었던 글 한 줄. “늙으면 외롭게 사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홍목사, 그와 내가 인생 길에서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채 이년을 채우지 못한 세월이었다만 그는 내 평생 잊지못할 선생 가운데 하나이자 벗이자 감히 말하건대 신앙의 동지이다.

나 보다 무려 열 살이나 위인 그가 연말 소식을 이렇게 전해왔다. “우린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되었네요….” 그렇게 시작되는 편지였다.

나는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 양반이 이젠 나하고 맞먹으실려고 하네! 내가 왜 함께 늙어? 난 아직 청춘인데!”

오늘 산책길에서 마주 친 내게 내가 던진 말, “그래, 이젠 자네도 진짜 익숙해질 나이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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