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열 세번 째 이야기)
이것이 온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속에 들어 와 몸붙여 사는 사람이 누구든지 실수로 살인을 했을 경우에 피신하도록 지정된 성읍들이다. 그들은 회중 앞에 출두하기까지 피살자의 앙갚음을 할 근친의 손에 죽어서는 안 된다. (여호수아 20: 9, 공동번역)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의 일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로자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았다가 체포되는 일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흑인 해방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타는 버스를 탈 수 없다는 당시의 몽고메리시 법안에 대해 항거하는 일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습니다.
지금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있는 시대에서 보자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느껴지지만 고작 오십년 전의 일이랍니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제가 냉면이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 본 것은 대학을 막 입학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학교 앞 식당에서였습니다.
그 때까지 저희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냉면이라는 국수를 만들어 주신 적이 없었답니다. 한남동 토박이 경기도 사람이었던 어머니에겐 냉면은 타지의 음식이었을 뿐입니다. 어쩜 그 당시까지 어머니는 냉면을 전혀 모르시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냉면은 이북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토속 지방 음식의 벽이 허물어진 역사적인 사건은 바로 6.25 전쟁입니다. 전쟁의 전 과정을 통해 마구 섞이게 되면서 지방 토속 음식 문화 역시 한정된 지역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찌보면 지역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이 발단이 되어 역사의 흐름이 바뀌거나 전쟁이나 천재지변이라는 사건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경험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흑인 해방 운동이나 제가 처음 먹었던 냉면의 경험처럼 말입니다.
히브리족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처음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바로 이러한 바뀌는 경험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섞임입니다.
히브리족이 들어간 가나안에는 이미 그 땅을 차지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야훼라는 신의 깃발 아래 뭉쳐져 침략(? – 원주민의 관점으로 보자면)한 히브리족 보다 먼저 그 땅을 차지하며 살았던 그 땅의 본래 주인인 셈입니다. 가나안족, 모압족, 미디안족, 블레셋 등등 숱한 그 땅의 먼저 주인들이 도시국가나 부족국가 또는 왕권국가로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히브리족을 기다리며 “어서오십쇼”하고 반기는 아무도 없는 땅이 아니라 이미 살던 주인이 있는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족이 그 땅에 있던 원주인들을 밀어내고 새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는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이름으로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하는 히브리족은 가나안 도시와 성을 하나 하나 점령해 나갔던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히브리족에서 이스라엘족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답니다. 바로 도피성을 기록한 저 위에 인용한 여호수아서 기록에서 그 단면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속에 들어 와 몸붙여 사는 사람이…”
야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을 점령해 나가는 무리들과 원래 그 땅 가나안에 살았거나 다른 지방에서 유입된 무리들이 섞인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여호수아와 판관(사사기)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가 바로 이스라엘 부족 동맹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들은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 계약의 중심엔 역시 야훼 하나님이 있는 것이고요. 애굽으로 부터 온 노예 무리인 히브리족과 본래 가나안 땅에 살았던 종족, 그리고 타지에서 흘러 들러 온 종족들이 야훼 이름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며 이스라엘의 원형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새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