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이자 선배, 나아가 신앙의 스승인 이가 스무 해 전 즈음에 보내 온 편지의 한 구절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제가 이제 환갑을 맞습니다. 제가 살아 온 예순 해를 돌아보며 예순 분께 제 삶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제 삶을 당신께 묻습니다.’

나는 그가 물음을 던진 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황홀했었다. 그리고 그의 그 당돌한 물음으로 그에 대한 경의는 그 이전에 내가 품었던 크기의 배가 되었다.

그로부터 십 여년 뒤, 내가 그 나이에 이르렀을 땐 나는 여전히 고단한 삶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 뿐, 내 삶을 누군가는 커녕 내 스스로에게 조차 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기억도 또한 또렷하다.

그리고 오늘 밤, 가까이 소식 전하며 사는 후배들이 이제 예순 나이를 맞는 그네들의 선배들에게 보내는 헌사를 듣는다.

<당신은 평소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추구하는 길에 함께 하며 험한 길도 힘차고 즐겁게 갈 수 있도록 매년 한솥밥을 마련해 주셨으므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평소 청년의 꿈과 이상을 간직하고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인간적인 사회를 추구하며 우리 지역사회운동의 중심으로서 끊임없이 헌신해 오셨으므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헌사를 주고 받는 이들이 그저 좋고 사랑스럽다.

내 삶이 크게 엇나가지 않고 이런 이들과 소식 주고 받으며 나이 들어가는 나는 참 행복하다.

저녁 나절 여름 화단을 보는 즐거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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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오늘도 일터의 아침 해는 떠오르면서 이글거렸다. 가게 건너편 공사판 일꾼들은 나보다 먼저 더위를 맞고 있다.  이젠 게으름이 아니라 느긋함으로 치장된 일상을 시작하며 보일러를 켠다. 그 느긋함으로 눈치챈 사실 하나, 해는 어느새 분명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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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일터의 아침이 참 좋다. 한땐 이 아침을 피해보려고 많이 질척이던 때도 있었다만, 이젠 그저 감사다.

그렇게 하루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이즈음 친한 벗이 된 호미와 함께 놀며 저녁 한 때를 보낸다. 새소리, 매미소리, 풀벌레소리에  더위는 이미 겁을 먹은 듯하다.

자리에 눕기 전, 장자(莊子)를 손에 들다.

<대지인 자연은 나를 실어주기 위해 그 몸을 주었고, 나를 일 시키기 위해 삶을 주고, 자연을 즐기도록 늙음을 주고, 나를 쉬게 하려고 죽음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힘써 일하는 내 삶이 좋다고 한다면, 당연히 휴식인 내 죽음도 좋다고 하게 되리라.>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 제 7장에서

자연으로 읽든 신이라 읽든 아님 내 스스로라고 읽든, 아직 죽음도 좋다고 할 만한 지경엔 이르지 못했다만, 그저 하루 일과 쉼에 감사할 나이엔 이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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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보험에

새해에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좀 바꾸어 보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두루 찾아 보았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만족한 것을 선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노인보험인 메디케어 쪽에서 아내는 아직 일반 보험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야 하니 시간도 제법 쓰인다.

우리 내외의 현재 건강상태에서 보험료는 최소화하되 혜택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욕심을 채우는 일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내린 선택, 그저 내 만족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 내외에겐 벅찬 고구마 한 상자를 받아 든 지도 여러 날, 그 동안 찌거나 쪄서 말려 먹기도 했지만 양은 줄진 않는다. 오늘은 고구마 고로케를 만들어 두 누이네와 나누다. 내친 김에 밀가루와 찹쌀가루로 만든 꽈배기가 스스로 대견할 만큼 제 맛을 내었다. 재밌다.

오후에 한인 사회의 내일을 고민하며 행동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모임에 잠시 얼굴 내밀다. 어느 사회나 변화는 꾸준한 이들에 의해 온다. 그 점에서 나는 언제나 변방이다. 스스로 참 아쉽다.

엊그제 아침 한참 일에 빠져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어 습관으로 던진 ‘좋은 아침, 세탁소입니다.’라는 인사에 킬킬거리는 웃음이 답으로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말 인사였다. ‘참, 형은 변함없네! 아직도 세탁소 하네! 혹시나 하고 이 전화로 해봤는데… 야… 영원한 해병같은 세탁인이고만…’

두어 해 동안 소식 불통이었던 후배의 안부 전화였다. 어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그가 한 응답이었다.

두 해 전에 신장 수술을 받고 안되겠다 싶어 하던 일들을 접었단다. 그리고 한국엘 나갔었단다. 만만치 않더란다.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노년 계획을 세우는 중이란다. 이 때 쯤이면 나도 은퇴했으리란 생각이 들어 자문도 구할 겸 안부 전화를 했단다.

아직 은퇴계획이 전혀 없는 내가 그에게 건낼 조언일랑은 부질없는 그의 기대였을 뿐이다.

긴 대화 속에서 후배와 내가 한 목소리가 된 순간은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우리들에게도 이를 만큼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한 때(그와 그의 직장 모두) 유수한 언론사 워싱톤 특파원으로 제 삶에 대한 자긍이 넘쳐나던 후배나 늘 천방지축이었던 나나 이젠 하루살이가 되어 마땅한 때에 이른 것이다.

늘 흉내내기인 내가 그에게 건넨 말이다. ‘ 하늘소리 사람소리 내 속으로 들으며 하루 살면 고맙지 뭐’

‘형, 암튼 내가 조만간 세탁소로 갈께’ 그의 응답이었는데 그게 또 몇 년 뒤일지는 모를 일이다.

무릇 보험이란 하루살이가 망가질 때를 대비하는 일.

만족은 하루살이를 하는 그날그날 내가 찾아 누릴 몫이다.

해는 짧아도 뜨고 지는 아름다움은 한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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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독립기념일 연휴 이틀 동안 무념무상으로 일에 빠져 지냈다. 일을 마무리 짓고 나니 온 몸이 천근 만근 이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했다.

이 집에서 산 지 만 23년이 지났다. 이 집에서 내 두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지만 이젠 아이들이 머무르는 일은 거의 없다. 매해 때 되면 어머니 아버지와 장모 장인 모시고 밥상을 나누던 추억들도 쌓인 곳이지만 이젠 다 떠나시고 아버지 홀로 신데 거동 불편하셔 내 집에 오실 일은 없다.

올 초만 하여도 나는 조만간 우리 부부가 조촐히 살기 적합한 작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맞이한 팬데믹 상황에서 내 일상도 바뀌고 계획도 바뀌었다.

갑자기 넘쳐난 시간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일들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텃밭과 화단을 가꾸어 보는 일을 시작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카펫을 들어내고 마루를 깔기 시작한 일도 그 중 하나이다. 그저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하자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자꾸 늘어져 아니되겠다 싶어 연휴 이틀간 맘먹고 마무리를 지었다.

카펫을 들어내면서 방안의 물건들을 옮기다가 시작한 또 하나의 일은 버리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이 버렸다. 버리면서 든 생각 하나, 쓸데없거나 과한 것들 정말 많이도 끼고 살았다.

마루를 새로 깔며 마주했던 격한 감사들도 있다. 묵은 카펫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먼지처럼 나와 더불어 함께 지내온 세월에 대한 감사와 아직은 이만한 노동이 그리 버겁지 않은 오늘의 내 나이에 대한 감사, 그리고 어느 날 모처럼 하루 밤 자고 갈 아이들이 변한 방 모습에 웃는 얼굴을 그려보며 느끼는 감사였다.

일을 마무리 짓고 가구들을 원래의 위치로 놓으려 하다 바뀐 생각 하나가 있다. 방 하나는 그저 텅 빈 채로 나두자는 것이었다. 뭐 딱히 법정스님을 흉내 내어 보자는 뜻은 아니다만 문득 텅빈 방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라는 법정의 말이 그대로 내 마음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 동안 나는 이를 즐길 것이다. 또 어떤 변덕이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만.

어쩌면 텅 비우는 연습이 아니라 실전을 해야만 하는 나이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기에.

딸아이에게 바뀐 딸아이 방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보내온 답신이다. ‘다음엔 뭐해? 아빠!’ 나는 즉시 응답했다. ‘물론 계획이 있지! 또 보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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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길에

매사 그저 덤덤해 지는 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영락없는 노인이다. 성탄, 연말, 연시,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주말 등등 시간을 나누는 일에 그저 덤덤하기에 해 보는 소리다.

아내와 함께 해가 지는 공원길을 걷다.

우리 부부는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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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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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들은 지는 햇빛을 온 몸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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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모두가 일상적인 매 순간 순간들이 엄숙한 시간들인 동시에 덤덤한 시간으로 새길 수 있다면 나이 드는 일이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또 한 해를 보내는 저녁길에서 곱씹어 보는 감사가 크다.

성탄에

오랜만에 전화 안부 인사를 나눈 캘리포니아 조선생님은 여전히 왕성한 현역이었다. 올해 일흔 고개를 넘어선 그의 새해 포부는 가히 다부지다. 그런 그가 내게 말했다. ‘김선생도 늙어가나 보오.’ 칠십 고개를 향해 올라가는 내 언행에 대한 격려였을 게다.

성탄 이브에 막내 동생이 대가족을 위한 저녁 상을 거하게 차렸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귀여운 나이들인 조카 손주들 재롱에 내 어머니 총기가 되살아난 저녁이었다. 이즈음 가끔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시간이란 참 별거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조카 손주들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이백년 세월을 능히 가늠케 한다.

하여 오늘 아침 내가 하늘을 담았었나 보다.

먼동 트는 하늘이 그리 멋지게 다가온 까닭은 금새라도 꺼질 듯한 가는 빛으로 떠 있는 그믐달 때문이었기에.

먼동에서 그믐달까지 연이 닿아 함께 세월을 이어가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기를.

내 안에  그 맘 하나 들어와 성탄이다.

  1. 2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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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어느새 12월이 코 앞에 다가섰다. Thanksgiving day 하루를 쉬고 습관으로 이른 아침 가게로 향했다. 연휴 새벽 도로는 한산했다.

어제 밤, 딸아이가 물었었다. ‘아빤 언제까지 일해?’ 아무 생각없이 튀어나온 내 대답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였는데 그에 대한 딸아이의 간단한 물음이 내 앞에 놓인 질문이 되었다.  딸아이가 던졌던 아주 간단한 질문은 ‘왜?’였다.

내 나이 마흔이 다 되어 낳은 딸아이가 사는 세상을 내가 모두 이해할 수 없 듯, 아이 역시 내가 사는 세상을 다 알 수는 없을게다. 어쩜 내 스스로도 모르는 일일 수도 있거늘.

간 밤에 모처럼 나눈 딸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르른 가게 앞 하늘 풍경에 홀려 내 눈에 담아 보았다.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열리는 아침에 홀려 아직 어둑한 상가를 덮은 추위를 잊은 채 아침 풍경을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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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든 생각 하나. 동 트는 아침 해를 맞기 위해  산이나 바다 등 명소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내 일터의 아침은 내가 누리는 큰 축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 나절에 맞은 손님 한 분, 며칠 전 작고 예쁜 포인세티아 화분과 분에 넘치는 찬사를 담은 손편지를 전해 주셨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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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편지와 화분을 받던 날, 문득 내 눈에 들어 와 박힌 풍경은 가게 뒤편 우체국 담장 너머에 있는 단풍나무였다. 사철 푸른 나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들이 누런 잎새들을 다 떨어 버리고 열반에 이른 계절에 우체국 담장 안 단풍나무는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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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우체국 나무인데…. 좋은 소식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시들지 않는 단풍 나무 하나 오래 품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이쯤 내 딸아이에게 보내는 응답을 찾다.

내 일터에서 찾는 즐거움이 있기에… 적어도 그 즐거움을 잃는 날까지는…

철들 나이

시간 또는 숫자란 때론 참으로 뜻 없다. 숫자로 일컬어지는 나이 또는 2019년 모월 모일로 표시되는 시간은 언제든 나와는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봄이거니 했는데 눈이 많이 내린 날, 느닷없이 철든 내 생각이다. 허긴 사회 통념상 노인 반열에 이미 올랐건만 그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으니 철없기는 참 여전하였다.

손님 하나 없는 가게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이 자리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내 평생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인 생각들이다.

내 아이들을 낳고 키워온 삼십 년을 함께 해 온 가게를 옮기는 준비를 하며 맞는 눈손님에 참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하여 일찌감치 가게 문닫고 집에 돌아 와 눈 치우며 눈을 느끼다. 시간 또는 숫자를 세며.

역시… 난 아직 완벽히 철들 나이는 아닌가 보다.DSC0478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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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이젠 밤운전은 엄두를 못내겠다는 서선생님은 나보다 딱 열살이 많다.

그가 한 십여 년 전에 내게 한 말이다. “내 나이 돼 보라구! 그 전엔 큰 일 날 일도 별거 아냐… 움직이기 귀찮아서 안 움직여도 세상 큰 일 나지 않는다구.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적당한 게으름을 받아 들이는 걸꺼야!”

눈 내리는 아침, 가게 나갈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움직이기가 싫었다. 나갈 생각 않고 창문 밖 눈 내리는 풍경만 바라보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 “당신도 이젠 늙나보다.”

  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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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年食

이젠 조금 과한 노동은 버겁다. 예전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래도 메뚜기 한철이라고 가게 빨래감이 밀린다. 바쁘게 움직이다가 문득 가게 밖에 머문 가을에 끌려 일손을 멈추고 하늘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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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어느 천재는 신은 없다고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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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쟁이인 내가 천재의 고뇌와 고백에 고개 끄덕일 수 있음은 그만큼 연식年食이 쌓였다는 증표다. 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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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신의 자리에 올려 놓은 ‘자연발생적 우연’에서 나는 신을 고백한다. 그런 내 모습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또한 살아온 연식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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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테면 사람과 신 사이에서 제 배 채우는 이들이 말하는 신은 없음에 분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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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도움을 청하며 부르는 이름의 신은 분명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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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담는 내게 오늘에 대한 감사를 토해 내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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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내겐 신이 함께 했다. 내 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