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페북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 하나가 머리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머물고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故) 이보미양과 가수 김장훈씨가 부른 듀엣곡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입니다.
생전에 이보미양이 학교 행사를 준비하면서 녹음했던 노래에 가수 김장훈씨가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 만든 작품이랍니다. 보고 들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냥 쓰리고 아팠습니다.
어제 오늘은 증인으로 법정에 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언들이 “거위의 꿈”으로 인한 아픔을 더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연관져서 떠오른 그림이 제 블로그 대문을 꾸미고 있는 피카소 그림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입니다. (연관 글 그림하나)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0년 10월부터 12월 7일 사이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주민 대학살 사건을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 당시 신천군민의 4분의 1인, 약 3만 5천 여명이 희생된 끔직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숱한 사람들을 죽인 주체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확실치가 않답니다.
한반도 북쪽 정권은 그 학살자의 주범은 미군이라고 하고, 한반도 남쪽 정권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북의 노동당과 인민군에 대항한 우파 지하조직 및 신천군민의 저항이며 반공투쟁 사건이라는 당시 월남민(越南民)의 소리만을 부각시킨 채 그저 침묵일변입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보면 미군은 아닌 것 같고, 당시 극심한 좌우 대립과 신천군의 특징상 토지개혁으로 첨예화된 지주와 소작인들 사이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하는 설이 우세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한쪽은 무방비 상태이고 다른 한쪽은 완벽한 무장 상태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生水葬) 학살 사건을 단순 교통사건로 치부하는 잡놈(들)도 있다는 뉴스도 보았답니다. 천걸음, 만걸음을 양보해 교통사고쯤으로 치부한다하여도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보행자가 파란 불에 길을 건너다 완벽한 무장 상태로 질주하는 차량에 치어 죽었는데 정상적인 국가(기관)권력이라면 그 사고의 원인을 따져 묻는 게 지극히 정상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질주하던 차량의 운전사(이것조차 분명하지 않지만)가 죽었으니 이 사건은 없던 일과 똑같다는 투입니다.
약 65년 전에 수만 명이 누군가에 의해 죽었는데도 누가 죽였는지를 모르는 우리들의 역사랍니다.
25년 전, 광주 학살을 보고 당한 눈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학살자들은 시침 뚝 떼고 살아가고, 엄한 곳으로 핑계를 돌리는 역사가 연속인 오늘입니다.
거위의 꿈을 부르던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아픔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은 여전히 그저 무방비 상태입니다.
무릇 국가란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삶을 편안히 누릴 수 있는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소총과 포와 미사일로 완전 무장하여 무방비 상태인 사람들을 죽여야만 학살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편안히 누려야 할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죽음을 방치한 권력 역시 학살의 주범입니다.
아픔 가운데, 오늘 법정에서 검찰측 물음에 증언한 단원고 어느 학생의 말에서 희망을 봅니다.
문 : 먼저 탈출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을 탈출시키면서 남아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답 : 내가 안하면 (아이들이) 그냥 그대로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움직였다.
(거위의 꿈이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게하는 해답일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