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사랑 – 한국여행4

4. 외로운 외길

    평생 외길 걸어온 친구가 하나 있다. 이번 한국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은 바로 그 친구의 평생걸음이 녹아 있는 교회였다.

    친구 이름은 김규복, 이젠 은퇴한 목사이다. 글쎄? 은퇴의 일반적인 뜻이 ‘하던 일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을 그만두어 한가히 지낸다’라는 정도라면 그는 아직 은퇴가 아닌 현역목사다.

    그와는 대학에서 만났다. 비록 곤고하였으나 아름다웠던 내 스물 무렵 1970년대를 함께 보낸 친구다. 그리고 1980년대 내가 이민 보따리를 꾸릴 무렵 그는 목사가 되어 대전 대화동에서 그야말로 맨땅에 머리 박듯 노동자와 빈민들을 위한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물론 간간히 서로 살아있다는 소식과 어찌 지내는 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기는 하였으나 다시 그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은 사십 년이 흐른 2023년 가을 신촌 독수리 다방에서 였다. 아주 짧게 만난 시간이었는데, 만나고 헤어질 때 굳게 두 손을 마주 잡고 다시 꼭 끼어 안았었다. 젊었던 시절 아픈 경험으로 인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는 병 때문에 눈믈이 흐른다고 했고, 나는 가슴이 저며 속울음을 울었었다.

    그 만남이 너무 짧아 아쉬웠고 미안했다. 하여 올라탄 대전행 KTX였다. 2024년 마지막 주일예배를 내 친구 김규복목사와 그의 평생 사랑이자 신앙의 동지인 황선업사모가 일구어 온 삶의 이야기들이 담긴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에서 드리려는 생각으로.

    거의 오십 년만에 다시 가보는 대전은 이미 서울이었다. 그렇게 놀랍게 변한 도시에서 다시 만난 내 친구 김규복은 여전히 1970년대 청춘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내외를 반겨 주었다.

    그렇게 그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사역과 돌봄과 나눔 일들을 도맡아 하던 그의 아내 황선업 사모도 이제 은퇴를 한단다. 친구 내외의 은퇴 이후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제 다시 그들이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헤어질 무렵 친구는 책 두 권을 주며 말했었다. ‘하나는 우리 공동체 역사고, 하나는 한국교회 갱신과 우리 한국사회 변화에 대한 신앙인들, 교회의 역할에 대한 내 생각이야…. 친구 이야기를 듣고 싶네….’

    그는 그렇게 만나기 며칠 전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가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들은 이야기다만 결국 병원 신세를 지고 나서야 완쾌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그에게 응답할 만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그처럼 외길을 걷지도 못했거니와 그 외길 속에서 겪어냈을 외로움을 이해할 만큼 넉넉치도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내 손에 쥐어 준 책에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담겨 있어 옮겨 적는다.

    2023년 겨울, 목민 고영근목사님을 기리는 목민상 세번 째 수상자로 선정된 김규복목사를 축하하며 남긴 시인 서덕석 목사의 기록이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내 친구의 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서덕석 시인의 시 <바닥을 기어서 하늘까지> 일부이다.


    <전략->

    가정해체로 버림받은 아이들/ 삶의 벼랑 끝에서 몸을 내던진 장애인들/  해고와 탄압, 실업의 고통에 신음하는/ 노동자 곁을 지켰다./ 낯선 땅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이주민들과/ 정든 집 헐려 쫓겨난 철거민들의 눈물과 함께/ 독재의 폭압과 권위주의에 찌든 한숨 소리/ 분단의 아픔과 뭇 생명들의 단말마…/ 작은 가슴으로 품어야 할/ 상처와 고통이 밑도 끝도 없이 밀려왔다

    가난한 빈들공동체에 달마다/ 월세일과 일꾼들의 월급날이 닥쳐오면/ 바닥을 치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내치지 않고/ 손을 맞잡아 따스하게 끌어 안았다/ 현장에서 만난 선한 친구들의 십시일반에/ 하나님도 감동하여 기적으로 응답하니/ 믿음으로 만들어 낸 이웃 사랑이었다

    <중략>

    빈들공동체의 목회사역은/ 바닥에 엎드려 기어가는 오체투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올려보는 대신/ 낮아지고 넘어져 신음하는 하나님/ 민중들 가운데 게신 주님을 향한다/ 가진 것 많고 넉넉해서 나누어 줌이 아니라/ 도시락을 꺼내어 주님 앞에 내놓아/ 오천 명이 배부를 수 있게 한 소년처럼/ 자기를 온전히 드리는 순종이었다.

    사십 년을 대전시 대화동 공단마을에서/ 한 눈 팔지 않고 민중선교 외길로만 걸어 온/ 김규복, 황선업 부부의 섬김은/ 소외당하고 아파하는 민중들을 교인으로/ 발 닿고 눈길 가는 모든 곳을 교회로 삼았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 두루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께 올리는 기도이며/ 민중과 함께하는 시위와 집회와 축제는/ 해방공동체를 경축하는 하늘 백성들의 잔치였다

    ‘없이 계시는 하나님’앞에서/ 아무 것도 없으면서 모두를 가진 듯이/ 가난한 삶이어도 더없이 풍요롭게 산/김규복, 황선업부부에게는 주변 모든 이들이/ 스승이요, 어버이요, 친구요 자녀였다/ 조지송과 정진동의 산업선교를 이어받아/ 배우고 익힌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곧이곧대로 실천하여/ 노동자, 농민, 빈민을 형제 삼아 더불어 사니/ 바닥에서 하늘에 가 닿은 참된 예배였다.

    <후략>


    내 친구 김규복목사와 그의 아내 황선업 사모, 두 내외 은퇴 후에도 꿈꾸는 세상 역시 바로 바닥을 기어 하늘에 닿는 예배 같은 삶이었다.

    그 외로운 외길 평생 마다치 않는 내 친구 내외에게 내 온몸과 온 맘으로 보내는 박수와 응원을, 더하여 내가 그의 친구가 될 수 있음에 감사를!

    나무(木)의 노래

    이른바 불알친구들은 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수 십 년 만에 어쩌다 목소리를 들어도 서로간 이내 옛날 날(生) 모습으로 돌아간다.  내 경우에는 신촌 고향 친구들과 고등학교 이전 친구들이 대개 그러하다. ‘쨔샤’, ‘새꺄’ 등의 호칭이 절로 나온다.

    청년 시절 이후에 만난 친구들은 아무래도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 각기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기 마련이다. 물론 내 경우에 한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내 스물 무렵,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 대 초반에 연을 쌓았던 친구들이 있다. 친구 뿐만 아니라 선후배 나아가 많은 선생님들까지 대개의 경우 내 삶에 큰 스승들이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의 교류는 내 삶에 누렸던 큰 축복이었다.

    그 시절 우린 모두 동지(同志)였다. 유신 철페, 독재 타도, 민주화, 통일의 담론들로 뜻이 엇비슷했던 만남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시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세상을 뜨셨고, 친구와 선후배들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제  저녁 노을 길들을 걷고 있다.

    그 시절 벗들을 생각하면 일찌감치 떠나와 살고 있는 나는 늘 부끄럽다.

    그 숱한 얼굴들 가운데 내가 아는 한. 그 스물 무렵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 온 친구가 하나 있다.

    내가 이민을 오던 그 무렵 그는 빈들로 나아갔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는 빈들에서 머물고 있다.  그 곳에서  <누군가 만져주>고 <누군가의 손을/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들 곁에서 <나무>처럼 살아 왔다. 노동자,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그 나무 아래 함께 하는 빈들에서 오늘도 머문다.

    그 긴 세월 나는 그를 본 적은 없다. 종종 전해 듣는 소식은 언제나 그대로다.

    그는 조금 이른 은퇴를 했다. 듣기로는 젊은 시절 겪어낸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다고 했다. 그가 은퇴 후 시집 한 권을 펴냈다. 그의 자전 시집이란다. 시집 제목이 <바닥이 하늘이다>이다. 그 답다.

    그의 시집을 넘기며 그가 부른 삶의 노래들을 듣는다. 그 중 하나이다.

    <나무>

    한 곳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 서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지나 보낼지/ 바람을 맞을지

    당신의 사랑은 그런 것인가요/ 한 곳에 서서 한 곳만을 향하여/ 항상 손을 벌리는 것….

    – 중략 –

    하늘이 좁아/ 가리고 싶은 마음으로/ 넓게 안테나를 세우고/ 모든 것을 끌어 안으려는 마음/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작은 소리에도 상처 받으며/ 견디고 또 견디며/ 뿌리 내리는 것

    -중략 –

    누군가 만져주지 않으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는 / 외롭고 쓸쓸한 사랑

    그래도 모든 것을 주기 위하여/ 긴 세월을 참으며/ 무심하게/ 누군가의 손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 노래하며 춤추며/ 기도하며 바라며

    긴 세월 올곧게 빈들에서 머문 그는 이미 신이 믿고 쓸만 한 거목이 되었다. 신은 그를 잘라 참 좋은 교회당 하나 지으실만 하실게다.

    마루 깔고 남은 잡목으로 나 혼자 즐길 의자 하나 만들어 놓고 낄낄대는 내게 이렇게 거목이 된 벗 하나 있다는 건 오로지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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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복목사. 그의 건강과 아직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위해 기도하며.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바닥이 하늘>인 세상을 위해 나름 꿈꾸며 사는 후배들과 함께 그의 자전적 시집을 나누려 한다.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하며 살아온 벗의 이야기 – 1

    Thanksgiving day 아침입니다.

    모처럼 아이들도 집으로 오고, 온가족이 모이는 날입니다.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부터 수선을 피웁니다. 칠면조구이는 이제 완전히 제 몫이 된 일입니다. 올해는조금 색다른 레서피를 사용해 봅니다. 야채를 잘 안먹는 아들녀석을 위해 어제밤에vegetable stock을 끓여 푹 담구어 놓았지요.

    음식준비를 하면서 올 한해 감사함들을 꼽아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필라세사모 식구들을 만나게 된 일입니다. 필라세사모는 “세월호를 잊지 않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약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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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만난 이들을 통해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느껴본 한해랍니다.

    무릇 신앙의 궁극적 목표라면 구원이 될 것입니다. 한두해 전부터 제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의 같은 소그룹에 속해있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죽은 후 구원 문제에 대한 성서적 이해를 돕기위해 한동안 열심히 성서 이야기를 썻던 기억이 납니다. 그 그룹에 속한 멤버들이 대충 저보다 연상들이었으므로 죽음의 문제가 결코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 현재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죽음 이후에 문제로 국한지어 생각하는 것은 좀 따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차에 필라세사모 식구들을 만난 것이지요. 구원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은 매우 중요하고 함께 가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런 뜻에서 이들과의 만남은 올 한해 제게 가장 큰 감사가 되어야할 것 같답니다.

    그 모임에서 엊그제 대전에서 목회하는 김규복목사를 온라인으로 초빙해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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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쌍전(文武雙全) 또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문(文)과 무(武)를 다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김목사를 향해 ‘이론’과 ‘실천’을 쌍전(雙全)했다거나 겸전(兼全)했다고 칭송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구원에 있어 궁극의 목표라고 할만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 곧 “인간성의 총체적인 회복”을 위해 평생을 ‘이론’과 ‘실천’을 함께해 온 사람라고는 말씀 드리고 싶답니다.

    그날 밤 김목사의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 필라세사모 식구들 뿐만 아니라, 단 한사람만이라도 더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차례에 걸쳐 그의 이야기를 올리려 합니다.

    아내의 원성 소리가 들리기 전에 부엌으로 가야할 시간입니다. 오늘은 짧게 첫번 째 이야기입니다.

    30년만에 만나는 자리에 당신을…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온지도 벌써 여러날 되었습니다. 이렇게 올 한해도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이번 주간엔 한해에 대한 감사(thanks)를 드리는(giving) 날인 Thanksgiving Day를 맞습니다. 한해의 감사를 드려야만 할 대상들을 꼽아보는 일도 제법 뜻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입니다.

    제 자신과 가족들이 드려야할 감사의 내용들과 드려야할 대상들을 헤아려봅니다. 꼽자하니 꼬리를 잇습니다.

    그러다 올 한해 제 마음이 자꾸 흐트러질 때마다 붙잡아 주었던 옛 선생님의 말씀 하나 떠올려봅니다.

    올 한해 동안 제 마음이 자꾸 흐트러져 일상을 벗어났던 까닭은 “내가 이제껏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일테면 그것은 제 신앙적 물음이었습니다.

    이즈음에 이르러 오만하거나 무지한 자들에 의해 거의 “빨갱이들의 언어”로 규정지어지는 듯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민중”입니다. 이 “민중”이란 말은 어찌보면 제가 살아오면서 (비록 가까이 하지도 못했고, 스스로 그 범주에서 자꾸 벗어나려고 애써왔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지만) 꼭 붙잡고 싶었던 화두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제가 이해하고 믿는 성서의 가르침 탓인데, 올 한해 그 이해와 믿음이 자꾸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추스리고 깨우쳐주신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바로 “민중과 함께 했던 예수”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안병무목사님은(1922-1996) “민중이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할것없이 ‘어떤 체제로부터 버림받고 밀려난 소외계층’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 민중이란 오늘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그때 그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객관화시켜 절대화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셨답니다.

    바로 2015년 오늘, 소외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민중들이고, 그 소외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이들이 민중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2015년의 제 삶이 민중적인 것이 아니고, 민중과 함께하는 삶도 아니였지만,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흉내라도 낸 까닭은 바로 안목사님의 가르침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감사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이해와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성서를 손에 들고 질문하게 했던 신앙에 대한 감사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나그네나 이방인으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 모두 2015년 감사절에 위하여 기도해야만 할 민중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30년 넘는 세월동안 흔들림없이 민중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외길 걸어온 벗을 소개 드립니다. 저도 30여년만에 이 친구를 처음 만납니다. 헤어져 만난지 30년이 넘었지만, 그가 서 있는 곳에서 한결같이 첫 마음 그대로 “어떤 체제로부터 버림받고 밀려난 소외계층”과 함께 하고 있는 김규복목사입니다. 그는 오늘도 함께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희망과 소망으로 산다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내일을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을 초대합니다. 뜻깊은 2015년Thanksgiving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김규복목사 초청 온라인

    제목 : 한국내 이민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

    일시  : 2015 11 24() 오후 9오후11(미국 동부시간 기준)

    장소 : 온라인 모임방https://zoom.us/j/6998016922  ) – 당일(11/24) 오후 8시 50분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녹색 글씨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필라 세사모에서 당신을 온라인 강의에 초대합니다.

    Join from PC, Mac, Linux, iOS or Android: https://zoom.us/j/6998016922

    Or join by phone:

    +1 646 558 8656 (US Toll) or +1 408 638 0968 (US Toll)

    Meeting ID: 699 801 6922

    참조 : http://conta.cc/1Lrc3ug

    김규복목사 약력보기 (http://www.seomna.or.kr/page/m1s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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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이주민과 함께하는 모임> 사진첩에서

     

    빈들에서 보낸 초대장

    <바닥이 하늘이다. 빈들이 희망이다.> – 주초에 받아 본 어느 초대장에 적힌 첫 글입니다.

    해마다 받는 초대입니다. 대한민국 대전시에 있는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 빈들교회에서 보낸 초대장입니다.

    김규복목사가 그 공동체를 일구어온지 올해 서른해가 되었답니다. 올곧게 외길을 걸어온 벗을 생각하며 이곳을 방문해 주신 당신에게도 초대장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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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시는 글

    예수와 함께  민중과 더불어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위하여

    섬기고 나누고 희생하는 공동체

     

    낮게 작게 느리게,

    가난하고 겸손하고 소박하게,

    그러나 참되고, 끝까지 기쁘게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 것이고

    보잘것없는 것이 존귀한 것이고

    작은 것이 아름답고,

    바닥이 하늘이다.

     

    가난이 축복이고, 고난이 영광이고

    죽음이 생명이고, 희생이 영생이다.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가

    30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며 춤추며 불렀던 노래입니다

     

    아무에게나 손벌리지 않고

    꼬리표 붙은 나쁜 돈 바라지 않고

    힘있는 자에게 기대거나 줄서지 않고

    사람과 조직과 인기에 집착하지 않고

     

    날마다 바닥을 긁어 나누고

    차라리 자신의 살과 피를 떼어 주고

    땀과 눈물을 함께 흘리며

    강물이 흐르듯 한눈 팔지 않고

    앞만보고 달려온 길 위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눈을 뜨고 귀가 뚫리고

    손발에 힘을 얻고

    희망과 감사를 가득 안고 돌아갔으나

     

    어떤 이는 힘들어서 돌아가고

    어떤 이는 이해못해 돌아가고

    어떤 이는 상처받고 돌아서고

    어떤 이는 실망하고 돌아서고

     

    어떤 이는 마리아가 되고, 니고데모가 되고, 베드로가 되고

    어떤 이는 삭개오가 되고, 마르다가 되고, 가롯 유다가 되고

    어떤 이는 구레네 시몬이 되고, 막달라 마리아가 되고, 백부장이 되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라합처럼

    남은 자는

    오직 12척의 배와 같은 작은 사람들

     

    승리한 패배자들

    성공한 실패자들

    지혜로운 바보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진리와 자유와 평화와 생명의 땅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걸어갈 남은 10년의 힘찬 시작을 위하여

     

    얼굴 한 번 보고

    손 한 번 잡아주길

    차 한 잔 정성껏 차려놓고

    함께 부를 노래 몇 곡 준비하고

    님들을 기다리겠습니다.

     

    1. 빈들교회와 함께 하는 날 – 사랑의 찻집

    2014년 10월 20일(월) 10-22시

    까페 수다떠는 도서관 (한밭도서관 앞)

     

    2. 빈들의 열린 문화제 – 섬김과 나눔과 십자가의 노래

    2014년 10월 28일(화) 저녁 7시

    한남대 56주년기념관 서의필홀

     

    3. 빈들교회 창립 30주년 감사예배

    2014년 11월 23일(일 오후 4시

    대화동 빈들교회당

     

    빈들바람 김규복 목사

    빈들교회 창립 30주년 감사마당 준비위원회

     

    <공동체 후원하기

    천사계좌:우리은행(김규복)

    563-039690-02-004

    www.seomna.or.kr >

    초대1

    초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