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기엔 숲길이 딱 제 격이다. 동네 Middle Run Valley 숲길을 걷다. 나무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타고 가을이 숲속에 내려 앉았다. 아직 미련이 많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여름도 그 숲속에 함께 했다. 두어 시간 숲길을 걷는 사이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일주일 쌓인 노동의 피로와 이런저런 삶의 염려들을 땀과 함께 숲속에 내려 놓다. 오늘따라 인적이 매우 드물어 숲속을 홀로 향유한 즐거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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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아내와 함께 필라 나들이를 다녀오다. 모국의 조국 정국에 맞추어 뜻 맞는 이들이 만든 행사에 머릿수 하나라도 채울 겸 해서 나선 길이다.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건만 준비들을 참 많이 했다. 생각이 엇비슷한 이들의 얼굴을 보는 일만으로도 살아있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으로 또 한 주간의 삶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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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려 두어 시간 길을 달렸다. 한때 뻔질나게 달렸던 길이다. 신문을 한답시고 뉴욕, 필라, 볼티모어, 워싱턴을 무던히도 돌아다녔었다. 북쪽 길인 뉴욕, 필라는 지금도 여전히 오가곤 하지만 남쪽인 볼티모어나 워싱턴 쪽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버지니아 쪽 나들이는 거의 십여 년 만이다.

낯익은 표지판 지명들과 함께 떠오르는 많은 얼굴들로 십 수 년 전 세월이 나와 함께 달렸다.

생각할수록 낯 뜨거운 내 치기(稚氣)였다. 이민(移民)과 한반도 그리고 통일과 평화를 운운하며 다녔던 길이었다. 내 치기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다. 다만 그 길을 쉽게 접을 수 밖에 없었던 내 한계에 대한 부끄러움은 여전하기에  분명 치기(稚氣)였다.

옛 생각으로 두어 시간 달려 도착한 곳, 버지니아 Potomac 강변 Great Falls 국립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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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風光)은 이름처럼 대단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매료시킨 것은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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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길, 숲길, 오솔길, 자갈길, 모랫길, 돌길 등 걷는 맛이 정말 쏠쏠한 곳이었다. 바위 길을 걷다  문득 휘어잡은 나무가지가 그리 반들거릴 수가 없었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손을 빌려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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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주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숨쉬는 생명들에게 눈인사 건네며 걷는 길에서 느낀 즐거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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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란, 사과 몇 쪽, 포도 몇 알과 빵 한 쪽… 그 달콤함을 만끽한 길 걷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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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로 들어서서 땀 닦으며 벗은 모자, 평소 모자를 써 본 적 없는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서며 옷장에서 눈에 띄어 집어 든 것인데,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들은 모자의 내력. – 이젠 장성해 서른을 바라보는 처 조카딸 아이가 초등학교 때 잠시 내 집에 머무를 때 쓰던 모자라고…. 무릇 모든 것에 연(緣)이 없는 것은 없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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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일요일 오후 교통 체증은 두 시간 거리를 세 시간으로 늘여 놓았지만 그 길에서 되짚어 본 생각 하나. 사람 살이는 때론 정말 더디지만 결국 옳은(또는 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뭐 내 믿음 같은 거.

딱히 통일 평화 운운 하지 않더라도 어디서나 그저 그런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

오늘, 되돌아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게 해 준 이길영 선생에게 감사를…

***때론 아내가 동행하지 않는 길이 편할 때도 있다. ‘더불어 함께’란 ‘홀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 있기에.

 

 

 

십여 년 전에 결석증으로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 허리를 가르는 듯한 통증을 견디다 못해 응급 환자로 병원을 찾았었다. 요 며칠 사이 그 당시와 엇비슷한 증상이 몸을 괴롭힌다. 아무래도 내일엔 의사를 만나야 할 것 같다.

아침 나절 한바탕 폭우가 지나가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오후에 숲길을 걸었다. 내 가게 오랜 단골이자 벗인 Charlie가 소개해 준 공원 길이다.

지난 주간에 또 한 차례 다리 수술을 받은 Charlie가 십 여년 전 까지  그의 아내와 함께 즐겨 걸었다는 길이다. 그가 이 산책길에 대한 장황한 설명 끝에 덧붙인 말이다. You might like it.

그 길을 걷는 동안에도 통증은 멎지않고 오갔지만 그 길이 내게 준 위안은 매우 크다.

늦은 저녁 노자(老子)의 한마디가 낮에 길에서 얻은 위안을 크게 더하다.

“내게 큰 병(걱정)이 있음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없다면 어찌 병(걱정)이 있으리요.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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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Valley Garden 공원을 걷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나 싶더니 따스한 햇살 온기에 걸음을 늦춘 모양이다. 걷기에 딱 좋은 아침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조금은 어수선했던 한 주가 지났다. 충격에 놀란 허리와 어깨 등이 아직 풀리지 않아 약간의 통증을 이고 있다만, 생각할수록 그저 감사다. Thanksgiving Day를 함께 한 가족들 하나 하나 떠올려 감사를 이으며 공원길을 걸었다.

가게 이전 위치와 시기를 확정 짓고 그를 알리는 편지를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 대한 손님들의 답신들을 읽으며 감사의 크기가 더욱 커졌다.

어쩜 내가 살아 온 길이 오늘 아침 감사를 곱씹어 본 공원 길 아니었을까. 그저 무심하게 덤덤히 스쳐 지나왔던 그 길들이.

감사에.
11/2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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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미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그녀는 실제 미술 선생으로 오랜 교단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이다.

그녀의 남편 역시 미술 선생이었고 우리 두 아이 고등학교 시절의 미술선생님이기도 하다. 내 눈에 미술에는 영 재간이 없어 보이는 우리 아이들을 많이 부추겨 주신 선생님이다. 그 시절 내 아이들이 그린 소묘들은 지금도 내 방에 걸려 있다. 내 아이들 만큼도 못한 내 눈에는 그게 참 대견해서이다.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제 70대인 미술선생님은 우리들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늘 화장기 없는 민낯이다. 까맣던 머리칼들은 이젠 백발이지만, 한번도 그녀가 염색을 한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런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이 아름답다. 내가 어릴 적 한국에서 미모로 이름 꽤나 날리던 여배우의 친 언니라는 수식어는 그녀에게 가당치도 않은 아름다움이다.

어제 낮에 그녀가 내 가게에 들렸었다. 그녀는 최근 십 수년 만에 방문했던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과 여기 사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말했고, 우리 부부는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차이와 다름과 낯설음 등에 대해 더욱 강조했던 것은 오히려 내 쪽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엊저녁에 필라델피아 작은 소극장 Painted Bride Art Center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필라델피아 한국문화 재단과 남부 뉴저지 한국학교가 공동 주관한 Heart of Korea라는 연주회 공연에서였다. 우리 부부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였다.

집단 북 치기 공연을 시작으로 한복 패션 쇼, 태평무, 홀로 큰 북 치기, 판소리, 진도 북 춤, 가야금, 칼춤, 사물놀이 등이 이어졌는데, 역시 우리넨 흥으로 타고 났나 보다.

그 곳에서 생각지 않던 얼굴들도 몇 만났다. 그 중 하나 이즈음 한국 현대사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었다. ‘남편은 어쩌고 왜 혼자시냐?’는 내 물음에 그녀가 한 대답이었다. ‘함께 하려 했는데 남편은 피츠버그에서 일어난 유태계 참사 추모하느랴 그 곳에 가서요….’

그랬다. 역사 선생님과  미술 선생님의 남편은 유럽계, 내 며늘 아이는 아프리카계… 우린 모두 이따금이지만 한국계로 서로 통한다. 어쩜 흥으로… 모든 길들이 서로 만나곤 헤어지듯이.

공연이라 카메라를 들고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어, 오늘 오후 동네 공원길을 걸으며 어제 생각으로 길들을 담았다.

이제껏 걸어 왔고, 지금 걷고 있고, 언제 일지 모를 그날까지 걸으며 만났거나 만나거나 만날 모든 사람과 사물들을 위하여

10/2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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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 15

길 – 두 개의 다른 시선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두 개의 시각. 성장으로 보는가, 아니면 쇠퇴로 보는가! 시인의 눈으로 보면, 신의 눈으로 보듯이 삼라만상은 활기차고 아름다워 보이리라. 그러나 역사의 눈으로 본다면, 혹은 과거의 눈으로 본다면 모든 것은 활기없고 공격적으로만 보여지리라. 만약 자연을 중단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은 즉시 죽고 부패 하겠지만, 진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은 더없이 아름다워지리라.”

초기 미국의 정신이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남긴 말이다.

그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항거하며 동부 메사추세스 콩코드 강변 월든 숲속에서 오두막 집을 짓고 살았다 . 그가 숲속에 작은 길들을 만들며 사색했던 그 무렵 서부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전쟁에 승리한 후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차지한 지 얼마 안되어 신생국가 미국인들에게 꿈 같은 이야기들이 급속히 번지기 시작하였다. 일확천금의 꿈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의 복음이 퍼진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을 앙드레 모로아는 그의 미국사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이 소식이 동부로 전해지면서 소위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1849년 한 해에만 캘리포니아 인구는 6,000명에서 8만 5천명으로 늘어났다. 그전까지 한 어촌에 지나지 않던 샌프란시스코는 몇면간 인구 5만이 넘믐 도시가 되었고 얼마 후에는 20만의 대도시로 발전했다.하지만 교통은 여전히 불편했다. 어떤 사람은 해로로 남미의 케이프혼을 돌아서 들어왔고, 또 어떤 사람은 파나마 지협을 넘는 육로와 해로를 거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리건과 유타를 거치는 산길을 통해 찾아왔다. 도중에 수천 명이 피로와 기아, 험난한 산맥, 인디언에게 희생되었지만 무덤으로 뒤덮힌 길을 지나 끝내 목적에 도달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동부 콩코드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산책으로 숲속 길을 만들던 그 무렵 누군가는 황금을 얻으려  캘리포니아로 가는 육로를 만들고 있었다. 정신과 물질, 어느 것이 우선일까? 과연 선택해야만 하는 명제일까?

우리는 시에라네바다산맥을 넘어 샌프란시시코로 가는 그 길을 기차 대신 버스를 이용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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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하운드 버스.

내가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그 무렵 막 경부고속도로가 놓였고, 서울역 맞은 편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부산을 가보는 일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2016년 미국에서 그레이하운드를 타는 일이란 꿈이 아니라, 마지못해 선택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교통수단으로는 환영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경험을 즐기는 일일 수도 있거니와, 네바다 Reno에서 캘리포니아San Francisco 까지220마일(약 354km)을 일인당 단돈8달러에 탈 수 있었던 그레이하운드를 마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시 착각을 하고 호텔에서 그레이하운드 정류장까지 채 반마일도 안되는 길을 택시를 이용해  15달러를 지불하고서야 버스를 탄 이야기 역시 경험을 즐겼다고 말하기는 아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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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네바다를 넘어선 후  캘리포니아  풍경은 이중적이었다. 이제껏 본적 없는 넓고 풍요로운 과수 농장과 함께 화재로 민둥산이 된 곳에 위치한 주택가들, 태평양 물을 받아 안은 멋진 해안을 배경으로 한 도시 풍경과 함께 시야에 들어 온 거리 노숙자들의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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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이중적이었다.

길 – 쉬어가는 길

오늘 하루는 “하나님 나라 가는 길” 이야기 잠시 쉬어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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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가을 구경을 갔었답니다,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주립공원이었답니다.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 시 하나 읊을 분량도 안되었답니다.

신경림시인의 길입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