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을 보고 돌아온 밤,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귓가에 맴맴 돌며 떠나질 않는다.

“김복동, 그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되어 주시겠습니까?”라는 나를 향한 물음이었다.

<기억> – 내가 이해하는 한, 성서를 제대로 꿰뚫는 열쇠가 되는 말이 곧 ‘기억’이다. 다만 성서는 묻지 않고 ‘기억하라!’고 명령한다.

모세의 마지막 말들을 전하는 성서 신명기는 ‘기억의 신학 책’이라 할 만큼 ‘기억하라!와  ’잊지말라!’는 명령을 반복한다.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넘긴 말은 바로 ‘기억하라!’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 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24절)

성서가 말하는 ‘기억하라!’는 명령은 단지 머리 속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뜻이 아닌 ‘삶’속에서 ‘함’을 이루라는 재촉이다.

일테면 ‘김복동을 기억하라!’는 말은 ‘김복동이 못 다 이룬 일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라!’라는 명령이라는 말이다.

영화 <김복동>이 던져준 마지막 물음이 그렇게 무겁게 다가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세월호를 기억해 주시겠습니까?’, ‘바로 엊그제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기억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물음도 마찬가지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사람의 존엄을 망가뜨리는 숱한 행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산다는 일 역시 매 한가지일 터.

기억에 대한 물음과 명령은 바로 신 앞에 선 이들에게 던져지는 것, 하여 사람으로 제대로 살게 하는 일.

기억에,

***필라델피아 소녀상 건립 추진 위원회 위원들의 치열한 실천과 도전에 존경을 더해 격려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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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망각의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으며, 망각이 가능하기에는 이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단 한사람이라도 항상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시아의 유태, 아시아의 독일이라면 혹 하면서, 수천년 동안 노예의 후예임을 잊지 않고 기억하거나 ‘모든 정부는 그의 선임 정부의 행위와 과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으며, 모든 민족은 과거의 행위와 과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는다’는 선언에 충실한 두 나라의 모습에는 애써 무관심한지…

 

기억(記憶)에

알프레드(Alfred), 이 양반은 내 오랜 단골이지만 좀 골 아픈 손님이다. 그가 가지고 오는 세탁물이란 언제나 정장 예비군복 한 벌, 아니 대개는 바지 하나인데 늘 당일 아니면 이튿날 찾겠노라 한다. 지난 이십 수 년 간 한결같다. 여기까지야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올 때 마다 우리 내외의 시간을 턱없이 많이 빼앗곤 하기에 골 아프다. 그것도 매양 한가지 이야기로 그리 한다. 바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다. 보다 정확하게 하자면 한국에 대한 그의 기억들이다.

그는 늘 한국전쟁 참전 기념 모자를 쓰고 다닌다. 아직도 걸음걸이가 꼿꼿하여 그가 칠십 년 전에  있었던 한국전쟁에 파병 되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허나 나이는 숨길 수 없어 최근 몇 년 이래 청력도 많이 잃었고, 정신도 이따금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모습 하나가 우리 부부를 만나기만 하면 이어지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다. 우리 부부는 그의 칠십 년 전 사진들을 많이도 보았으므로, 그의 기억을 탓하지는 않는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가게 카운터 옆 벽면에 걸어 놓은 내 가족 사진들 가운데 아내와 딸이 함께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그가 물었다.  “여기가 한국의 어디니? 내가 한국에 있을 땐 …” 나는 그의 말을 급히 잘랐다. “거긴 한국 아니고요. 뉴욕주에 있는 Minnewaska State Park에서 지지난 가을에 찍은 거고요. 저도 한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 되어서요… 오늘 맡기신 제복 내일 찾아 가시려면 제가 일을 해야되서요…” 그렇게 그를 내어밀 듯 인사를 끝내었다.

칠십 년 전 한국에 대한 기억으로 한국을 이야기하는 알프레드나 일천 구백 칠십 년 대를 위주로 한국을 기억하는 내게나 오늘날의 한국은 그야말로 외국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기억의 파편 속에 남아 있는 내 모습이 피할 수 없는 나의 단면이듯, 알프레드와 내 기억 속 한국 역시 오늘날의 한국 모습에 닿아 있을 게다.

늘 절박하고 간절한 것은 ‘오늘 그리고 여기’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어제 그리고 거기’와 연결되어 있다.

알프레드(Alfred), 그를 성급히 내어 밀어 낸 미안함으로.

이즈음 내 일터 아침은 내일을 꿈꾸는 부근 건설 노동자들이 열고 있다. 내 옛 세탁소 자리를 밀어낸 터 위에서.

기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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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위하여

볼수록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후배가 있다. 얼굴 본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만, 참 좋은 세월을 살고 있다 보니 페북을 통해 그의 근황을 가까이 마주한다. 그가 이즈음 동유럽 국가들 여행을 하고 있단다. 그 곳 사람 사는 거리들을 흑백 사진으로 전하고 있는데 참 ‘그답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그가 전하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사진들을 보고있다. 사진에 그가 달아 놓은 댓글이다. “우리나라에도 있어야할 현장!!! 우리는 없어~~~ 분통이 터져.” 그 소리에 난 그저 중얼거린다. “친구야! 분통 터트릴 나이는 이미 지났어, 건강하자구. 그런 날 오겠지. 아무렴 와야지!”

어제 저녁 스물 남짓한 벗들과 함께 했었다.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임이었다. 이명박 구속 등 점진적이나마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국을 자랑스러 하자며 모인 자리였다.

photo_2018-03-25_08-27-59그 중 몇몇은 어제 낮에 미국내 총기 규제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일었던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필라델피아 시위에 참석하고 온 터였다. 그들로부터 행사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안전과 시민 그리고 국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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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가 ‘연방 교통 안전 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NTSB)’에 대해 말했다. 항공사고를 다룬 영화 Flight를 예로 들면서 미국내외의 각종 해상, 철도, 항공과 관련된 사고를 수사하여 그 원인을 파악하고 끝내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에 대한 설명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직업이 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땅에 어디 지고지선의 국가 공동체가 있겠느냐만,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를 위한 꿈으로 역사와 공동체는 바뀌어 왔다는 믿음은 참이다.

한국 출장길에서 막 돌아와 시차 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던 친구는 따끈한 한국소식을 전하며 다시 필라 사람이 되었다. 그가 한 상자 가득 채워 한국에서 들고 온 물건은 오는 4월 16일, 세월호 사주기를 맞아 네번 째 기억식으로 행진을 할 때 우리들이 깔맞춤으로 입을 셔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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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행사 준비와 오는 5월에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는 세월호 유가족 희망목공소 팀을 맞을 준비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며, 4월에 입을 셔츠들을 미리 입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아직 메아리조차 듣지 못하는 소리들을 외치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는 뜻이었다.

우리들 모두 너나없이 하루살이에 바쁜 삶이어서 아픈 이웃들을 기억하는 마음의 곳간은 정말 작디작다. 비록 그렇다 하여도 ‘공감’과 ‘연대’의 작은 몸짓이라도 쉬진 말아야 할 터.

이 아침, 후배의 분통을 조금만이라도 삭혀 줄 수 있다면….

 

엇박자와 문(門)

연애 6년에 결혼 34년 차이니 꽉 찬 40년인데, 아내와의 엇박자는 여전하다. 이즈음 겪는 엇박자는 젊은 시절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예전엔 그 삐걱거림이 대부분 성격차이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즈음엔 기억 차이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들이 많다.

엊그제 이어진 일들 모두 우리 부부가 이즈음 겪고 있는 기억력 차이에서 온 엇박자 행보였다.

지난 토요일 약속은 벌써 달포 전에 이루어진 것인데 아내와 나는 그야말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점은 엇박자가 아니라 정박에 완벽한 화음까지 이루어진 망각이었다. 해마다 초대해 주는 우리 가게 손님 Gaskin씨의 연말 파티 초대였는데, 당일 오후에 Gaskin씨가 가게로 찾아와 다시 알려 줄 때까지 우리 부부는 완벽하게 정박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엇박자는 Gaskin씨가 가고 난 뒤에 일어났다. 나는 Gaskin 내외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 계획했던 내 시간을 갖는 쪽으로 고집을 세운 반면, 아내는 초대에 응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 엇박에 화음과 추임새를 넣어 준 것은 아들 내외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사는 아들 내외가 마침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샤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는 아이들에게 Gaskin씨네 연말 파티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에 아이들이 흔쾌히 승낙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 저녁은 아내와 내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아내는 한국학교 연말 행사에,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키로 주초에 서로 간에 확인까지 마친 터였다.

분명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두 행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는 것이어서 함께 갔다가 행사가 마칠 즈음 만나서 함께 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문제는 역시 기억의 차이였다.

두 행사 장소는 모두 집에서 한시간 거리여서 행사 시작 한시간 십여 분 전에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어! 우린 6시네!’

내가 가야 할 곳은 ‘5시’였다.

늘 그렇듯 우린 잠시 다투었고, 엇박자를 맞출 궁리를 하였던 바, 여느 때처럼 ‘아차!’하는 내 실언 탓에 모든 일들은 아내가 두드리는 박자대로 움직이었다.

5시, 반가운 얼굴들이 모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를 함께 보며, 끝내 이산 가족이란 이름으로 지난 해 세상 뜬 장모 생각에 눈물 찔끔 흘리다 먼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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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한국학교 연말 잔치. 공식명은 <재미한국학교 동북부지역 협의회 제 16회 교사 사은회>. 행사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자칫 아내의 부속물이 될 뻔한 나를 구원해 준 이는 시인이었다.

시인 강남옥, 그녀의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는 아내와 나 사이 엇박자와 <민우씨 오는 날>의 연희와 민우 사이 세월의 간격과, 장모와 처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만남과 세월호와 아직 풀리지 않은 숱한 한(恨)들 사이에 문(門)들을 내게 보여 주던 것이었다.

아무렴 때론 엇박 역시 삶의 흥을 돋는 추임새거늘.


 

JFK

  • 강남옥

우리 훗날 건너가
더 훗날 다시 만나자던 그
요르단 강인듯

70년대 명절 단대목에 가던 목욕탕인 듯

한국 소주 까며 끼리끼리
그리운 섬처럼 사는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JFK는
미간 넓은 재클린 케네디의 남편 이름 아니다

치약이나 손톱깍이 모조리 훑어 뺏는 무정한 손
가고픈 곳, 가고 싶지 않은 곳, 바람 많은 눈물의 징검다리
그 게이트 건너지 않고는 위독한 어머니께
직항으로 갈 수 없는 좁은 문이다

가슴에 넣어 온 작은 종 딸랑딸랑 흔들며
미국에게 이리 오너라~ 할 때
낯선 집 앞 우두커니 문 열리기 기다리는
막다른 골목이다

생을 뒤집어 단숨에 돌아가기엔
오래 서성거려야 하는
서성이다 발길 돌려 정글로 돌아가는
미국 동북부 보통 한국 사람들에겐 언제나
Just From Korea

기억에

뉴저지나 뉴욕시 쪽 나들이를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이 다리를 만나면 ‘집에 다 왔다’하는 생각이 든다. Delaware Memorial Bridge이다.

필요와 의미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북쪽에서 델라웨어주로 들어오는 길목에 반드시 필요한 다리였기에 세웠을 터인데 누군가를 기념한다는 뜻이 있단다.

이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걸프 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의 희생자들이 바로 그 누군가들이다. 델라웨어주 쪽 다리 부근에 그들을 기리는 탑이 서있다.

내가 이 다리를 오고 가는 길에 오늘처럼 꽉 막힌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저 생각없이 빠르게 다리를 건너 뉴욕 쪽으로 페달을 밟거나, 내려오는 길엔 ‘옛날엔 75전이었는데 4불씩이나!!!’ 걷는 통행료에 혀차며 이내 잊고 마는 아주 짧은 시간에 건너는 다리이다.

오늘 그 다리 위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다리가 까닭없이 주차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벌써 20년? 그렇구나! 저쪽 전쟁 기념탑에서 주지사와 주 의원 몇몇, 한국전쟁 참전자들 그리고 십 수 명 한인들이 모여 한국전을 기렸던 일이 있었다. 그랬던 일이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일이었다.

누굴 탓하랴. 돌아보면 아픈 구석이 어디 한둘일까?

Memorial!

3분이면 건넜을 다리에서 반시간을 보냈던 오늘. 내가 기억해야 마땅한 것들을 돌아보며.

기억에

자신의 개인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점을 제외하고 아이히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중략)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를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로 만든 건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중략)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유태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전범으로 교수형을 받고 처형된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은 자신은 단지 상부의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끝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런 아이히만에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의 죄를 묻고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아렌트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를 강조”했다고 해석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순전한 무사유’에 빠진 이들이 아닌, ‘악의적 사유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만이라도 ‘사유’ 곧 생각하며 사는 일을 의무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다짐할 일이다.

잊지않고 기억하는 일이 소중한 까닭이다.

2017년 4월 16일 부활주일,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뜻을 새겨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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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성실하고 깨끗하기를…

며칠 전 모처럼 만난 지인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최근 한국에서 새로 임명된 장관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새로 임명된 그 장관과 지인은 동향이었으며, 장관이 한때 미국에서 지낼 때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그 친구를 아주 성실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공직자으로써 자기 일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기도 했고요. 내가 뭐 한국 떠나온지 40여년인데 그쪽 뉴스 어디 그렇게 잘 보나요? 낯익은 이름이 뉴스에 나오길래 좀 눈여겨 보았지요. 처음엔 참 잘됬다 싶었어요. 그만한 사람이면 장관 한번 할만하지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허 근데…. 그거 아니더구먼요. 내가 사람을 잘못 봤었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니면 사람이 많이 바뀐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였고요. 아무튼 그 친구에 대한 뉴스들을 주욱 보면서 한국사회 이른바 엘리트계층이 참 많이 상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사는 동네 한인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이야기, 특히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화제가 그쪽으로 달려가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경험상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남이나 호남 출신들이 주를 이루는 모임에서 한국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그날 하루 기분을 잡치는 일이 되고 만다. 출신지역 뿐만 아니라, 언제쯤 이민을 왔는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 들어보나마나 그들이 하려는 말은 이미 들은 것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여 가깝게 지낼수록 한국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 좋고 착하며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들이다.

여기 살다보면 한국에서 연수나 연구차 또는 파견근무 등등으로 일이년 정도 단기 거주를 하거나 수년 동안 장기거주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과 연을 맺을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 가운데 회사원들도 있지만 주로 공무원들이나 교수들이 많다.

내 기억 속에도 손으로 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 얼굴들이 있다. 생각해 떠올릴수록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착하고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종종 한국 뉴스에 오르내리던 인물들도 있었다. 대개의 경우 며칠전 지인이 이야기했던 신임장관과 같은 인물의 모습으로 뉴스에 오르내리던 것이었다. 그 때마다 나 역시 지인처럼 혀를 차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지인이나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대변한다고는 결코 생각치 않는다. 그들보다 많은 이들이, 아니 그들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착하고 성실하며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공직이나 교직에서 땀흘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聖)금요일 그리고 기억

성(聖)금요일, Good Friday 밤입니다.

예루살렘과 로마 권력, 그리고 당시 평범한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수난을 받던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일을 기억하는 날, 밤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하는 믿음의 고백은 바로 이 날 밤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그의 죽음은 나와 인류의 속죄 제물이었다는 신앙고백이 시작된 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에 대한 믿음이 시작되는 밤입니다.

예수의 부활 곧 믿음 가운데서 일어날 나와 인류의 부활은 바로 오늘밤이라는 예수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聖)금요일인 동시에 Good Friday입니다.

그리고 이천여년 전 이 날 밤 일어났던 일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해 우리들에게 남겼습니다.

<유다인의 대사제는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 가서 속죄의 제물로 바칩니다. 그러나 짐승의 몸은 영문 밖에서 불살라 버립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영문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 – 히브리서 13 : 11-13, 공동번역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죽음이 그가 수난과 고난을 겪었던 예루살렘 성안이 아닌 성밖에서 이루어진 것에 촛점을 맞추어 우리에게 그 죽음의 의미를 전해줍니다.

예수를 통한 구원이 성문밖에서 이루어졌다는 히브리서 기사의 해석은 오늘을 예수쟁이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명쾌한 삶의 해답을 줍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내 것으로 삼고자하는 삶을 살아가고저 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예수를 삶의 구세주로 믿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성문 밖에서 그리고 성문 밖의 사람들을 위한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그와같은 삶을 추구할 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39940_29753_918오늘자 기독교타임즈는 <교회협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눈물로 성금요일 예배>라는 제목으로 팽목항을 찾아 예배를 드린 교회협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 말미에 이덕주 감신대 교수가 한 말들이랍니다.

“역사왜곡과 같은 역사적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기억’하지 않는데 있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과 전망은 항상 같이 가야하며, 미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도 정확한 기억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비전을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현장에 참여한 이유 역시 아이들의 꿈과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고, 살아남은 우리는 이들의 비전을 이뤄야할 의무가 있다.”

“이제는 잊으라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기억을 방해하는 것이고 이는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2015년 성(聖)금요일밤, 제가 무교회주의를 주창하지 않는 희망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