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6년에 결혼 34년 차이니 꽉 찬 40년인데, 아내와의 엇박자는 여전하다. 이즈음 겪는 엇박자는 젊은 시절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예전엔 그 삐걱거림이 대부분 성격차이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즈음엔 기억 차이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들이 많다.
엊그제 이어진 일들 모두 우리 부부가 이즈음 겪고 있는 기억력 차이에서 온 엇박자 행보였다.
지난 토요일 약속은 벌써 달포 전에 이루어진 것인데 아내와 나는 그야말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점은 엇박자가 아니라 정박에 완벽한 화음까지 이루어진 망각이었다. 해마다 초대해 주는 우리 가게 손님 Gaskin씨의 연말 파티 초대였는데, 당일 오후에 Gaskin씨가 가게로 찾아와 다시 알려 줄 때까지 우리 부부는 완벽하게 정박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엇박자는 Gaskin씨가 가고 난 뒤에 일어났다. 나는 Gaskin 내외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 계획했던 내 시간을 갖는 쪽으로 고집을 세운 반면, 아내는 초대에 응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 엇박에 화음과 추임새를 넣어 준 것은 아들 내외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사는 아들 내외가 마침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샤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는 아이들에게 Gaskin씨네 연말 파티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에 아이들이 흔쾌히 승낙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 저녁은 아내와 내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아내는 한국학교 연말 행사에,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키로 주초에 서로 간에 확인까지 마친 터였다.
분명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두 행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는 것이어서 함께 갔다가 행사가 마칠 즈음 만나서 함께 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문제는 역시 기억의 차이였다.
두 행사 장소는 모두 집에서 한시간 거리여서 행사 시작 한시간 십여 분 전에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어! 우린 6시네!’
내가 가야 할 곳은 ‘5시’였다.
늘 그렇듯 우린 잠시 다투었고, 엇박자를 맞출 궁리를 하였던 바, 여느 때처럼 ‘아차!’하는 내 실언 탓에 모든 일들은 아내가 두드리는 박자대로 움직이었다.
5시, 반가운 얼굴들이 모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를 함께 보며, 끝내 이산 가족이란 이름으로 지난 해 세상 뜬 장모 생각에 눈물 찔끔 흘리다 먼저 일어섰다.
6시. 한국학교 연말 잔치. 공식명은 <재미한국학교 동북부지역 협의회 제 16회 교사 사은회>. 행사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자칫 아내의 부속물이 될 뻔한 나를 구원해 준 이는 시인이었다.
시인 강남옥, 그녀의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는 아내와 나 사이 엇박자와 <민우씨 오는 날>의 연희와 민우 사이 세월의 간격과, 장모와 처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만남과 세월호와 아직 풀리지 않은 숱한 한(恨)들 사이에 문(門)들을 내게 보여 주던 것이었다.
아무렴 때론 엇박 역시 삶의 흥을 돋는 추임새거늘.
JFK
우리 훗날 건너가
더 훗날 다시 만나자던 그
요르단 강인듯
70년대 명절 단대목에 가던 목욕탕인 듯
한국 소주 까며 끼리끼리
그리운 섬처럼 사는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JFK는
미간 넓은 재클린 케네디의 남편 이름 아니다
치약이나 손톱깍이 모조리 훑어 뺏는 무정한 손
가고픈 곳, 가고 싶지 않은 곳, 바람 많은 눈물의 징검다리
그 게이트 건너지 않고는 위독한 어머니께
직항으로 갈 수 없는 좁은 문이다
가슴에 넣어 온 작은 종 딸랑딸랑 흔들며
미국에게 이리 오너라~ 할 때
낯선 집 앞 우두커니 문 열리기 기다리는
막다른 골목이다
생을 뒤집어 단숨에 돌아가기엔
오래 서성거려야 하는
서성이다 발길 돌려 정글로 돌아가는
미국 동북부 보통 한국 사람들에겐 언제나
Just From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