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정리를 하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내 서재 한구석에 쌓아 둔 상자 두개가 있다. 제법 많은 양의 VHS 테이프들이다.
당시만 하여도 제법 큰 돈을 들여 만들었던 우리 부부 결혼식 영상을 비롯해 아이들을 키우면서 담아두었던 기록들, 부모님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담긴 테이프들이다. 80년대에 비디오를 찍는 가정용 카메라는 가히 이즈음 방송용 카메라 정도의 크기였거니와 한국과 미국을 왕복할 수 있는 비행기 값보다도 비쌀 만큼 내겐 고가(高價)였다. 과감히 그 돈을 들여 담아 두었던 기록들이다.
그냥 버리자니 너무 아깝고, 쌓아 두자니 부피도 크거니와 딱히 누가 시간 내어 볼 일도 아니어서 그냥 한구석에 처박아 둔 것이다.
VHS테이프를 디지털화해서 CD나 USB 등에 담아 준다는 광고들은 이따금 보았지만 또 다시 돈 들여 그렇게 남겨둔 들 그게 뭔 소용이 있겠나 싶은 생각에 그야말로 유기상태로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자들이다.
그러다 맘먹고 내 스스로 VHS테이프 영상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시켜 USB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을 구글에게 묻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경험들을 찾아본 뒤 파일 변환기와 편집기를 구입해 작업을 시작한다. 따져보니 128기가 USB 하나나 두개면 족할 듯 하다.
저 큰 상자 두개를 내 새끼 손가락 하나 크기에 다 담을 수 있는 그야말로 천지개벽 세상이다. 물론 이즈음 젊은이들에겐 싱겁지도 않은 일이겠다만.
아무튼 세상은 그렇게 변했다.
아직도 날은 뜨겁다. 이제 겨우 팔월 초입이니 이 더위는 한동안 이어질 게다.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큰 변화없이 이어지는데 사람들은 이미 다시 느슨해졌다.
또 다시 찌는 오후에 어머니와 장인, 장모 쉬시는 곳을 찾다. 우리 부부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와 장인 장모는 아직 살아 계신다. 우리 부부의 삶에서 느껴야 할 족(足)함이다.
세상은 차마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놀랍게 바뀌고 변하게 마련이지만 아주아주 오래전 먼저 깨달은 사람들의 고민들은 여전하고 답(答)도 이미 정해진 그대로다.
누구에게나 똑 같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시간 또는 신(神)의 간섭은.
하여 오늘 하루 누린 시간에 대한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