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도

연 이틀 모질게 매운 바람 불다 그치니 내 집에 봄이 내려 앉았다. 봄 준비 한답시고 뒤뜰로 나선 내게 활짝 핀 크로커스 꽃들이 웃으며 말을 건냈다. “쯔쯔쯔 이 게으른 친구야! 난 벌써 와서 기다렸구만…” 허나 내게도 늘 핑계는 있는 법. “예끼! 비웃지 말어! 겨우내 집안 단장하느냐고 나도 몹시 바뻣다고. 네 놈 웃음을 반갑게 맞는 걸 고맙게 생각해!”

그렇게 봄이 온다.

오늘 아침 집안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작은 상자는 눈에 익지 않은 것이었다. 상자를 여니 돌아가신 장모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그 물건들 중엔 돌돌 말린 신문 쪼가리들이 담긴 백이 하나 있었다. 그 신문 쪼가리들을 펼치며 터져 나온 말 “에고, 우리 장모님”

어느새 스무 해가 빠르게 지나 간 일이다. 그 무렵에 나는 지역 한인사회 신문에 글을 열심히 썼고 한 때는 신문을 만들기도 했었다. 다 ‘지나간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모아두었던 흔적들을 모두 없앴던 일도 벌써 오래 전이다. 하여 이젠 거의 기억에도 없는 일이 되었다.

허나 장모는 그 당시에 내가 썼던 글들을 오려 고이 간직해 두셨던 것이다. 장모 남기신 물건들도 이젠 없다 싶었는데 상자 하나 남아 잠시 옛 생각에 빠져 본 아침이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중계를 보며 썼던 글을 보며 웃었다. 그 때만 하여도 내가 참 젊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중계 카메라가 비추어 주는 곳곳마다 온통 붉은 바다였다. 열 두 번 째 선수라는 응원단 곧 red devils의 상징색이란다. 더하여 그들의 가슴에는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 구호조차 선명하였다. 이 어찜이뇨? 이 넉넉함이 어디서 온 것이더뇨?

일개 축구응원단의 색깔을 비약한다 말하지 말라. 지난 세기, 우리에게 적(赤)은 오직 적(敵)이었으며 뛰어넘지 못할 벽이었다. – 그렇게 반 백년을 살아왔다. – 그럼에도 아직도 툭하면 좌파입네 우파입네 손가락질로 때리고 싸우며 저 함성 뿐인 민중을 속이는 정치꾼, 오직 양시(兩是)나 양비(兩非) 뿐인 사이비 언론들 그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쏟아 터져 나오는 저 붉은 빛의 함성, 붉은 파도 이 어찌 신(神)의 일하심 아니겠나!>

이 글의 끝을 나는 이리 맺었었다.

<비노니 언론이여! 실축(失蹴)한 젊은이에게 돌 던지지 말지어다. 분단의 세월, 그대들이 내지른 고의적 실축은 천년이 가도 남을지니.>

이즈음 한국 언론들을 보면  ‘양비양시’도 아니고 그저 장사꾼처럼 보인다. 실축도 아니고 고의적 실축 뿐.

지금 내가 사는 곳이나 그저 생각 속에 남은 한국이나 봄이 참 봄 다운 봄이었으면 좋겠다.

DSC03384DSC03385DSC03386DSC03388

기도

해가 사뭇 길다. 저녁상 물리고 뒤뜰에 한동안 맥없이 앉아 있어도 저물지 않는다. 어미가 아이들을 부르는지 아님 아이들이 어미를 찾는지, 누군가를 찾는 저녁 새소리에 생각이 잠시 내 어릴 적  옛날로 돌아갔다 오곤 한다. 하늘엔 비행기들이 긴 발자국 남기고 연이어 날아간다. 매일 저녁 그렇게 날아갈 듯 한데 나는 마치 처음 본 일인 양 신기해 한다.

배우 윤여정에 대한 뉴스를 본 때문인지 생각이 한 동안 1970년대로 돌아가 맴돈다. 돌아볼수록 내 삶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스물 나이라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세월에 대한 추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무렵에 만나고 배웠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정말 아름답게 새겨야 마땅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뭘 알았겠나. 반독재, 민주, 평화, 통일, 인권, 평등, 해방 등등 차마 감당 못할 거창한 구호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인데, 돌이켜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게 그리 거창할 것도 없는 그저 만나고 생각하는 사람들 끼리 서로 사람 대접하며 사는 세상 꿈꾸는 일. 일컬어 하나님 나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시간이 흘러 이제 2021년, 그 때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은 이미 세상을 뜨셨고, 또래 친구들 역시 이젠 사람 보다는 신(神 ) 또는 자연의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릴 나이들이 되었다.

왈, 반세기만에 세상은 참 많이 좋아졌다. 배우 윤여정의 뉴스로 그것을 다시 확인한다.

팔자라기도 하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들은 신의 뜻이라고도 하더라만, 그게 다 사람이 저 자신도 모르게 제 할 일 다 하고 난 뒤에 다다른 세상이 아닐까?

날아가는 비행기 꼬리는 길지만 사라지는 것 또한 순간이다. 허나 아름다움으로 남는 것은 사라진 긴 꼬리 뿐이다.

배우 윤여정이 삶의 허기로 만든 오늘의 뉴스를 보며, 1970년대 그 시절 벗들과 선후배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 그 꿈 외롭게 간직하며 사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해가 사뭇 긴 탓에.

DSC02090 DSC02094 DSC02099 DSC02101

기도

11월 초하루 아침, 기도 드리듯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늘 그렇듯 언제나 받는 이는 나일수도….


이즈음엔 제 세탁소를 찾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저희 가게 오랜 단골 중 한 분이 지난 주에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매우 독특했답니다. 비닐로 만든 마스크였습니다. 제 아내가 물었답니다. ‘면 마스크가 없으신가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답답해 보이네요.’ 그리고 건네 받은 그녀의 대답이랍니다. ‘답답하기야 하지요. 그런데 내 남편이 귀가 어두워 잘 듣지를 못해요. 내가 말하는 입모양을 보아야 서로 의사소통이 쉽답니다. 그래 이 마스크를 쓰고 있답니다.’

30년 전 한참 왕성하게 일하던 오랜 단골들은 이젠 모두 노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세탁소를 시작하던 때가 30대였는데 저 역시 이젠 60대이고 70을 향해 간답니다.

세월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스크가 꼭 필요한 이즈음의 일상이 나이 들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불편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엊그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분인 황동규 시인이 새 시집을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는 올해 여든 두 살이랍니다.

거의 60여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시들도 세월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여년 동안 그가 줄기차게 쓰고 있는 시편들은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노래들입니다.

그의 시와 시어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이 강해 번역해 그 뜻을 알리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랍니다.

아무튼 그가 새로 낸 새 시집의 이름이 <오늘 하루만이라도>랍니다. 저는 그 시집의 제목만으로도 그의 시에 빠질 수 있었답니다.

그 시집에 실린 그의 <오늘 하루만이라도>이라는 시의 한 연을 옮겨봅니다.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참 창으로
샛노란 은행잎 하나 날아 들어온다.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
내가 아는 나무들 가운데 떡갈나무 빼고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이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내 위층에 사는 남자가 인사를 하며 층계를 오른다.
나보다 발을 더 무겁게 끌면서도
만날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
한 발짝 한 발짝 씩 층계를 오른다.
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그의 발걸음이 몇 층 위로 오르길 기다려
오늘 하루만이라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번은 활기차게 한번은 차근차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11월입니다.

딱히 나이 뿐만이 아니라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이르면 너나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더더군다나 여느 해와 너무나 다른 한 해를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즈음 이따금 저녁 노을 물드는 하늘을 보며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하루보다 다시 맞을 하루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길 때 그 감사는 더욱 커진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감사가 이어지는 당신의 11월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DSC08089

One of my old customers, even though she has rarely visited the cleaners recently, came in last week. She was wearing a very unique mask, which was made of plastic. My wife asked her, “Isn’t it difficult to breathe with that mask on? Don’t you have a cloth mask? It looks stifling.” Her response was: “Of course, it gives me some trouble breathing. But, my husband cannot hear well. My communication with him will be better, when he sees and reads my lips. That’s why I wear this mask.”

My old customers, who had been leading active lives thirty years ago, have become old people now. When I started the cleaners, I was in my thirties. Now I’m in my sixties, and getting closer to seventy.

I know that nobody can go against time. But, current everyday life, in which everybody has to wear a mask until a time which nobody knows, may be more uncomfortable to those who are getting old, I think.

The other day, I heard the news that Dong-gyu Hwang, one of my favorite poets, had published a new book of poems. He is eighty-two years old.

He has been writing poems for almost sixty years and his poems have been undergoing changes over time. Especially his poems in the last 20 years have been songs about himself getting old.

The title i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The title was attractive enough for me to indulge in this book of poems.

As his poems and poetic words have things very Korean, some of them may be lost in translation. Though I’m afraid to do it,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stanza of the poem,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the book.

<Through the window at the landing of the staircase leading to the second floor
A bright yellow gingko leaf is flying in.
A gingko leaf! Who would imagine a dark green leaf?
Among the trees that I know, except oak trees,
Most leaves are desperately beautiful generally just before falling down.
A man who lives on the upper floor is nodding and climbing up the stairs.
Though he drags his feet heavier than me,
He, who never loses his smile whenever he sees me,
Is climbing up the stairs step by step.
Right, he and I, both are like leaves just before falling down!
After waiting for his climbing up a few floor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As Ravel’s Boléro makes dancing repetitions by musical instruments one kind by one kind,
Once briskly, the other calm and orderly,
Let me climb up the stairs step by step.>

It is November now.

At the time when a year is drawing to an end, a flood of thoughts may course through everybody’s mind. This year, it may be even more so, because we all are having a year which is so different from other years.

These days, I so often felt grateful, when I was watching the sky aglow with the sunset. When I saw it as the beautiful scenery which was conveying hope for a new day instead of the past day, the gratitude became even greater.

I wish that gratitude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your life will go on continuously in November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DSC08123DSC08122DSC08104DSC08096

기도(祈禱)에

‘부인과 가족 모두 편안 하신지요?’ 이즈음 오랜만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내가 건네는 인사를 받은 Tom은 대답대신 똑같은 질문을 내게 다시 던졌다. ‘네 아내는?’, ‘네 아들과 딸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낸다는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그와 나 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세탁소 카운터를 휘 돌아보고는 낮고 여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한참을 이어간 이야기다.

그의 맏딸은 올해 마흔, 내 또래인 Tom은 어린 맏딸과 함께 내 세탁소를 찾았던 오래 전 이야기들을 되짚으며 내가 그 아이를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당연히 내가 기억한다는 뜻으로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했다.

그의 딸과 사위는 제법 반듯한 회사원들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COVID 상황이 일어난 이후엔 재택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단다. 둘 사이에서 얻은 Tom의 외손주들은 셋이고 그의 긴 설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그의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그 외손들 가운데 하나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단다. 나머지 아이들과 딸과 사위도 염려란다.

그의 아내는 딸네 집엘 가봐야겠다고 하지만 딸과 사위가 펄쩍 뛰어 그저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걱정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다른 손님이 가게로 들어 오기까지 나는 그의 긴 이야기들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가게를 떠나며 그가 나직하게 내게 던진 말, ‘기도 좀 해 주렴.’

하루가 지난 저녁, 지는 해와 쉴 곳 찾는 구름과 빠르게 도망치는 비행기와 새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그리고 때때로 내 귀를 여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는 혼자 말, ‘젠장, 내 기도 빨에 힘이 있어야지…’

그럼에도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저녁에.

DSC01099 DSC01107 DSC01108

눈을 치우며

‘이젠 이 집을 떠나야지…’ 눈 치우는 일이 온전히 내 몫인 된 어느 해 겨울부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다. 다행히 호들갑스런 일기예보와 달리 운동삼아 눈 치우기에 딱 적합할 만큼 내렸다.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DSC04688

집보다 먼저 이사를 하게 된 곳은 내 가게다. 지난 주에 새 가게 꾸미는 일을 시작하였다. 가게 간판을 주문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DSC04677정말 막무가내로 시작했던 세탁소였다. 세탁소 일에 대한 경험이라곤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세탁소 안에 들어가 구경해 본 적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아무리 세탁소 간판만 내걸면 먹고 산다던 호시절 옛일이어도 무모한 일이었다.

DSC04681

DSC04683

그렇게 서른 해가 흘렀다. 그 동안 다섯 군데 세탁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30년 꾸준히 해 온 곳은 지금의 세탁소 한 곳이다. 한 때 우후 죽순으로 생겨났던 주변 세탁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더니 이즈음엔 30년 전으로 돌아간 형국이다.

DSC04684

DSC04686

세탁소, 이젠 일에서 손 놓을 때까지 떠날 수 없는 내 업이다.

DSC04687

DSC04694

늦은 나이에 새로 가게를 꾸미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기도 세 가지.

DSC04698

손님들이 드나들며 기분 좋은 세탁소로 꾸미기, 우리 부부 일터와 쉼터가 공존할 수 있게 꾸미기, 언제든 손 놓을 때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넘길 수 있는 세탁소로 꾸미기.

DSC04695

DSC04700

모두 내 욕심이 드러나는 기도임에 틀림없다만…

DSC04692

어찌하리, ‘이젠 이 집을 떠나야지…’ 하는 생각보다 어쩌다 한 번 묵어가는 아이들 방을 치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큰, 내 본래 모습인 것을.

DSC04691

기도

일흔 세 해를 함께 살고 있는 부부가 몇 이나 될까? 여전히 티격태격 다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딴소리들 하시는 일흔 세 해 차 부부, 내 부모님 이시다.

어제도 여전한 모습들이었다. 모처럼 먼 길 오가는 일이 두 분들에게 만만치 않으셨나 보다. 모시러 갔더니 두 분은 이미 한 판 중이셨다. ‘가시겠다’, ‘못 가시겠다’ 로 붙은 다툼의 시발은 막내 딸년이 주문한 드레스 코트 탓이었다. 평소엔 전혀 먹히지 않는 삼녀 일남, 환갑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외아들의 입김이 먹히는 순간은 이 때였다.

‘아니! 그 아이는 먼 길 오가시는 노인들에게 불편한 한복 타령을 했다니…’, ‘쯔쯔쯔…’ 과하게 혀까지 차면서  두 노인들의 다툼에 무승부를 선언한 결과였다.

그렇게 오간 뉴욕 Flushing 금강산 연회장이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룬 조카 아이가 여기서 피로연을 치루는 자리였다.

오가는 길, 두 노인들이 입을 모아 여러 번 반복한 말… ‘이젠 둘 남았구나…’ 아직 결혼 안 한 손주 둘을 말씀 하신 것인데, 그 중 하나가 내 딸이다. 나는 차마 입 안에서 뱅뱅 도는 그에 대한 내 뜻을 말하지는 아니하였다.

뉴욕 가는 길 운전은 내가, 돌아 오는 길은 내 아들 녀석 몫이었는데 부모님 집에 이르러 두 분이 함께 하시는 말씀. ‘운전은 아들보다 손주가 한 수 위다. 오는 길 아주 편하게 왔구나!’하시며 손주에게 사례금을 하사하시다.

바라기는 올 겨울도 티격태격 하시다 한 목소리로 아들 놈 꾸지람 이어가시길. 내 아들 , 며느리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덤으로 그 티격태격에 묻혀 있을 터이고.

DSC03656ADSC03659ADSC03780ADSC03782ADSC03836ADSC03857ADSC03861A

 

오늘을 위한 기도

“이 자리에서 장사 몇 년이나 했니?” 제 가게에 처음 오는 손님들이 종종 제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제가 거의 30년이 되어간다고 답을 하면 깜짝 놀라며 “진짜니? 내가 Newark에 산지도 오래 되었고, 이 샤핑 센터를 한 두 번 와 본 것도 아닌데 너희 가게가 여기 있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구나.”라고 말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답니다.

이런 경험은 딱히 그 손님들 뿐만 아니라, 제게도 일어나곤 한답니다. 제가 매일 오가는 길이지만 새로 개업한 곳이 아닌데도 처음 본 듯한 상점들이 이따금 눈에 띄곤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경험들이 비단 상점에 국한되어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매일 똑같이 오고 가는 길에서 문득 바라 본 하늘이 마치 처음 본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어느새 푸른 색으로 풍성한 몸이 되어버린 나무들이 낯설 때도 있답니다.

이즈음 사진 찍는 일에 재미를 붙이다 보니, 꼭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늘 보던 하늘이며, 나무며, 꽃들과 풀 한 포기까지 새롭게 보일 때가 많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는 더욱 무심하게 그냥 스쳐 지나가게 버려 두는 일이 제겐 많은 듯합니다. 매일 맞이하는 똑 같은 ‘오늘’을 그저 특별하다거나 소중하지 않게 흘려 보내는 일이 많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새 세상이 푸르러 가는 유월입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가 버린 ‘오늘’ 이었던 어제들에 대한 감사와, 세탁소의 소음 대신에 아침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이 일요일 아침 ‘오늘’에 대한 행복과 “이 자리에서 장사 몇 년이나 했니?”라고 묻는 손님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기다릴 ‘오늘’이 될 내일의 기쁨을 상상해 보는 유월의 첫 일요일 아침이랍니다.

이 아침에 제가 누리는 감사와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이 당신에게 끊이지 않는 유월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How long have you been doing business here?” It’s a question which new customers so often tossed to me. When I answered, “Close to 30 years,” some of them were really surprised and said, “I’ve lived in Newark for a long time and have visited this shopping center quite a few times. But, I didn’t know that you are here until today.”

This kind of experience happens not just to them, but also to me. For example, though I have driven the same roads every day, I often find stores which I haven’t noticed before, though they are not newly-opened.

It’s not just those stores which I feel that I’ve never seen before. Sometimes, the sky to which I happened to look up on the same road which I’d driven every day looked new as if I had never seen it before. Sometimes, trees which became thick with green leaves looked unfamiliar.

Especially, as I get interested in taking pictures, things that I see every day, such as the sky, trees, flowers and a blade of grass, so often look new and fresh, even at the moments when I’m not trying to take picture of them.

When I was leaving the cleaners after I cleaned the store on Sunday morning  a couple of weeks ago, I happened to see families of geese. While I was watching them, a thought, which I’ve never held before, crossed my mind. It was that all living things are beautiful. These are the pictures which I took on that day. They are different families: the first one with two baby geese, the second with four, and the third with six.

It seems that I’ve passed by so many visible things without noticing them. Even more, I feel that I let a day slide by thoughtlessly so many times. I think that I haven’t regarded “today,” which I meet every day, as special and precious and have let it flash by so often.

Before we know it, it is June in which the world becomes green.

It is the first Sunday morning of June on which I can feel gratitude about yesterday, which was ‘today’ yesterday and slipped by casually, and listen to birds’ singing instead of the noise of the cleaners. I also feel the happiness about ‘today’ and imagine the joy of meeting customers who may ask me the question, “How long have you been doing business here?” tomorrow which will then be ‘today’.

I wish that the gratitude, happiness, and joy which I enjoy this morning will also be with you ceaselessly in June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기도

주일 아침 기도처럼 이 땅에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어제는 제 어머니의 92회 생신이었습니다. 93세로 나이가 제일 많으신 제 아버지부터 지난해 태어난 어머니의 증손녀까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보행기 없이는 걷기 힘드신 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용사입니다. 그 전쟁에서 수류탄 파편이 다리에 박힌 채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이제는 홀로 사시는 장인 역시 한국전 참전용사입니다. 장인은 전쟁 당시 KATUSA라고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이었습니다. 이젠 은퇴한 노인이 된 매형은 월남전 참전용사입니다.(모두 한국군으로 전쟁에 참여했었습니다.)

DSC01430A

모두 함께 모여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족의 중심축인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한 것이지요.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던 중 지난 주에 있었던 남한의 대통령 문재인과 북한의 리더인 김정은 두 정상의 회담이 화제에 올랐답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과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해 대학에 입학을 했었고, 당시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로 인해 학교에서 제적 당하고, 구속되었다가 군대에 강제 징집되는 같은 경험을 했답니다. 물론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랍니다. 당시엔 그런 젊은이들이 많았답니다.

미공군에 다녀온 제 아들과 북의 김정은은 같은 나이 또래 랍니다.

북한이 고향이었던 장모는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두 해 전에 돌아가셔 Kirkwood highway 선상에 있는 묘지에 누워 계시답니다.

남북의 정상들은 이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운 시대로 나가자고 선언을 했습니다만 그 일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많은 난관들을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 중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곧 다가올 북의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입니다.

어머님의 생신에 함께 모인 가족들이 바라본 남북정상의 회담에 대한 생각들은 서로 같지는 않았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의견이었답니다. 바로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는 같았습니다.

비단 한반도 뿐만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 어디나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답니다.

참 좋은 4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입니다. 평화로운 하루, 평화로운 한 주간, 한 달, 한 해 온 삶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마지막 순서로 평화를 소원하는 영상쇼 상영이 있었답니다. 그 영상쇼를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DSC01425A

Yesterday was my mother’s 92nd birthday. From my father, who is 93 years old, the oldest, to a great-granddaughter, who was born last year, all the family members gathered together and celebrated my mother’s birthday.

My father, who has difficulty in walking without a walker, is a Korean War veteran. He has been living with shrapnel lodged in his leg from a grenade during the war. My father-in-law, who is widowed, is also a Korean War veteran. During the war, he was a member of 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which consisted of Korean soldiers who augmented US forces. My brother-in-law, who is retired now, is a Vietnam War veteran. (All of them served in the wars as Korean soldiers.)

All of them gathered together to celebrate my mother’s birthday. She is still the central axis in the family. While we talked about many things, the South-North Korean summit between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and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which was held last week, came up in conversation.

Although the universities were different, I entered the university the same year in which President Moon did. While I was in college, I participated in student demonstrations against the late President Park’s dictatorship. For that reason, I was expelled from the university, was placed under arrest, and was conscripted into the army. Though President Moon had a similar experience, I don’t know him personally. In fact, quite a few young people in those days had a similar experience.

North Korean leader Kim is the same age as my son, who served in the US Air Force.

My mother-in-law, whose hometown was in North Korea, passed away two years ago and was placed in the cemetery on Kirkwood Highway without attaining her life-long dream of visiting her hometown once.

Though the leaders of South and North Korea announced their agreement, which commits the two countries to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continuing talks to bring a formal peace treaty ending the Korean War, there may be many hurdles to overcome, I think. One of them, and the most important event, may be the meeting between President Trump and North Korean leader Kim which will be held in the near future.

All the family members at my mother’s birthday party didn’t have the same views and thoughts about the South-North Korean summit. However, all of them agreed on one thing which was the hope of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It was the hope of peace, not just in the Korean Peninsula, but also everywhere in the world.

It is a really pleasant morning on the last Sunday in April. I wish that you will have a peaceful day, a peaceful week, month, year, and life.

From your cleaners.

*** The last segment of this South-North Korean summit was the performance to express the wish for peace. I’d like to share it with you.

한국 대통령의 방미 뉴스에

당신이 뉴욕 또는 LA, 아니면 시카고 어디쯤 살고 있다 치자. 그런데 텍사스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여럿 다친 큰 사고가 났다고 하자. 그리고 며칠 후 당신은 한국에 있는 지인이나 친척의 안부전화를 받는다. ‘미국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괜찮으냐?’고 묻는 전화 말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아제 개그를 하느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만, 실제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게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살아온 연식이 제법 되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있었던 이런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 갔다가 한 두어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한국 말하는 코미디 말이다. 코미디가 아니라 실제 그런 이들도 있었다. 1960, 70년대 쯤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내가 이즈음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최근 한국 뉴스를 보면서 이런 옛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믿게 된 것인데, 특히 한국 TV 뉴스 가운데 해외 특파원들의 말투를 유심히 듣고 난 후에 굳힌 생각이다. 내 믿음이 옳고 그름을 당신이 판단하고 싶거든 한국 TV 뉴스 중에 해외 특파원들(일테면 뉴욕, 워싱톤, LA, 런던, 파리, 동경 등등 어디라도 좋다)의 말투와 억양을 유심히 들어 보시라.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쉽게 눈치채게 될 것이다. 뭐가 다르냐고?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말투와 억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더구나 한국내 아나운서나 앵커들의 말투와 억양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다시 옛날 코미디로 돌아가자. 당시 이어지던 우스개이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빠다 바른 소리로 한국말하는 이의 뺨을 치면 바로 김치 냄새나는 한국말이 튀어 나온다던 이야기인데, 그 우스개 역시 지금도 여전히 통하지 않을까 싶다. 분명 연습했다 싶은 해외 특파원들의 말투와 억양 역시 뺨 한 대만 치면 그들의 평시 억양과 말투로 되돌려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때 언론사를 기웃거렸던 경험 탓에 워싱톤 주재 특파원들의 취재환경이나 그들의 행태에 전혀 문외한은 아니다. 단언컨대 현지인 출신이 아닌 한 평소 억양과 말투가 한국인들과 다른 이들은 없다.

그런데 왜 특파원 뉴스를 전하는 그들의 말투가 독특할까? 답은 간단하다. 뉴욕, LA, 시카고, 텍사스를 뭉뚱그려 동일한 미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저 친구는 전문가이므로 나와는 다른 말투와 억양을 써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해외 특파원쯤 되면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도 있다. 더하여 의도적으로 그런 독자나 시청자들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언론사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사실 억양이나 말투 같은 형식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그 형식 속에 담긴 내용들이 가짜이거나 거짓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인데, 이때 형식은 거짓이나 허위를 위장하는 수단이 된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미 행사를 앞두고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늘 그렇듯 한국의새로운 권력자가 첫 번 째 방미를 하면 동포사회도 이런저런 이야기거리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 사람들이란 수십년이 지나도 매양 한가지 타입의 얼굴들이다.

이제 앞으로 두어 주 동안 이른바 특파원들이 전하는 무수한 뉴스들이 쏟아질 것이다. 때론 빠다칠한 억양과 말투로 사실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그들의 이해에 맞춘 소설들이 뉴스로 둔갑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없다. 빠다 칠한 소리로 한국말하는 이들의 뺨을 후려치는 시민들이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197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돌출행동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이 한반도와 미주에 사는 동포들에게 위안이 되는 뉴스들이 넘쳐나기를 빌며.

기도를…

넋두리 – 쓰기 싫었고 쓰기 힘들었던 글입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으면서 지역 동포사회 교회들이 함께 기도할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고, 그런 소망을 교회에 전달해 보자는 의견이 필라세사모 모임에서 나왔었습니다. 그런 뜻을 교회에 전달하는 편지작성이 어찌어찌 몫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어서 힘들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들어 주신다는 믿음과 한사람, 단  한 교회만이라도 함께 주었으면 하는 기도로 것입니다.


 

기도 부탁 드립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수난과 고난을 되새기는 기간에 귀 교회와 목사님께 기도해 주십사는 부탁의 말씀을 올립니다.

무엇보다 먼저, 수난과 고난을 딛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첫 징표를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하나님의 은총이 목사님과 교회위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는 필라델피아 인근에 살면서 두해 전 이맘 때 한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그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끊이지 않고 있는 필라세사모(‘세월호를 잊지 않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약칭입니다.)에 속한 기독교인들입니다.

photo_2016-03-12_20-18-42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에 대한 서로 다른 수많은 소문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2년이라는 세월은 늘 오늘의 문제로 바쁜 사람들에게 잊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아직도 아픔을 안고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들은 “아직도 아픔을 안고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나는 전능하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다.>고 한 욥의 고백처럼 지금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저희들처럼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두해 전 4월 16일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고로 자식과 가족을 잃기 전까지 말입니다. 물론 사건과 사고로 인해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그들 뿐만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지난 두해 동안 유가족들이 지내온 모습들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던 여느 사람들과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네들은 그들이 겪은 비극적 상황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주먹을 쳐들며 항거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져가는 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체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어지는 아픔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희망은 믿는 우리들에게 성서적 언어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사야 11:3-5>

<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계시록 21: 3-4>

바로 그들이 희망하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목사님과 교회가 드리는 기도와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업들이 많고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이 드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두해 째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튿날은 주일입니다.

원컨대 바로 그 주일(4/17)에 자식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어가지만,  하늘을 향한 원망이나 항거, 또는 삶의 체념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하여 귀 교회가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지금 울고 있는 사람들 –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필라세사모 기독인들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세월호 사건 및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소식을 원하시면 전화 000-000-0000, 또는 이메일 [email protected] 주시면 자료들을 보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