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에

일요일 아침, 사진에 글을 얹어  가게손님인 이웃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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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며칠 동안은. 봄이 어느새 가고 벌써 여름이 온 듯이 날이 더웠습니다. 엄마와 함께  prom dress를 고치려고 가게를 찾는 10대들을 보면 아직은 봄이지만, 졸업 가운을 다려 달라고 찾아오는 20대들을 보면 어느덧 여름 같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사계절을 나누어 말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봄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5월 6일 오후 9시에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된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물론 봄의 첫날이니 여름의 첫날이라는 말들을 쓰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딱 그 날짜에 정확한 선을 그어 계절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봄인지 알았는데 어느새 여름이네, 여름인지 알았는데 어느새 가을이 되었네 하는 말들을 쓰는 것이지요.

봄과 여름 사이에 어떤 시간들이, 어떤 느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것은 지난 목요일 더운 날 오후였답니다.

보일러 스팀을 사용하는 세탁소 사정상 여름 더위는 제 직업이 주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랍니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그해 첫번째 오는 더위는 몸을 몹시 피곤하게 한답니다. 아직 몸이 적응되기 전에 찾아온 더위 때문이지요. 그런 날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꼼짝하기가 싫답니다.

그날도 지쳐 집으로 돌아왔는데 뜰에 핀 꽃들이 제 피로를 덜어주었답니다. 만개한 봄꽃과 이제 막 꽃잎을 피우는 여름 꽃을 보며 제 머리 속에 떠오른 말이 ‘봄과 여름 사이’였답니다. 특별히 ‘사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제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답니다. 그날 제가 사진으로 찍은 ‘봄과 여름 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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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뿐만 아니라 많은 일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 등은 딱 금으로 그어 나눌 수 없는 어떤 ‘사이’들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랍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떤 하모니가 이루어진다면 봄이나 여름처럼 홀로 이름 불리우는 시간보다 더욱 아름답고 귀한 순간들이 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덤으로 올들어 처음으로 더웠던 그날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도 있었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입니다. 자연과 이웃들 사이에 하모니가 잘 이루어져 아름답고 귀한 시간들을 만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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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ew days in the last week were hot as if spring had passed already and summer has come. When I saw teenagers come to alter their prom dresses with their mothers, I thought that it was spring. But, when I was asked to press graduation gowns by youngsters in their twenties, I asked myself whether it was already summer.

Though we identify four seasons, spring, summer, fall and winter, we don’t say that spring is exactly from such day to such day. For example, nobody would say that spring ends and summer begins at 9:00 pm, May 6.

Sure, we use the words like the first day of spring or the first day of summer, but it is not like people feel the season at those dates. That’s why we say that it is already summer, though I’ve thought that it is spring, or that autumn is already in the air, I’ve thought that it is summer.

It was hot in the afternoon last Thursday when I thought that a certain time and feeling might be there between spring and summer.

Summer heat is one of the difficulties to cleaners like me, as I have to use steam from a boiler. While I feel it every year, the first heat wave of the year always makes me utterly exhausted. That’s because the heat has come before my body gets adjusted to hot weather. On such days, I don’t want to move an inch after I return home after work.

Last Thursday, I felt exhausted when I came back home. But, flowers in the yard relieved my fatigue. While I was watching full-blown spring flowers and buds of summer flowers, the words, “a gap between spring and summer,” came to my mind. Especially, the word, “a gap between,” stayed long in my mind. These are the pictures that I took at that time, “a gap between spring and summer.”

I’ve wondered whether there might be gaps not just between seasons, but also between many things and incidents, and human relations.

And, I wondered that if there is nice harmony in the gaps, a gap of time between spring and summer might become even more beautiful and precious than spring or summer itself. In that way of thinking, I could feel gratitude on that day when it was hot for the first time this year.

It is May, the queen of seasons, now. I wish that all of you will enjoy a beautiful and precious time as there is nice harmony with nature and neighbors.

From your cleaners.

처음처럼 – 그 배신에 대하여

따지고 보면 연휴를 맞은 느긋함 탓이었다. 크거나 작거나 장(場)을 볼라치면 사야할 물건 목록표를 들고 다녀야 마땅할 일이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모처럼 대도시 나들이에 예정에 없던 장보기였으므로.

빵집 순례에서 넉넉히 장바구니를 채운 아내는 한국장을 보면서 내게 큰 선심을 썼다.

“여기 소주도 있고 막걸리도 있네, 골라보셔!”

그 소리에 내 머리 속은 빠르게 움직였다. 막걸리로 40년을 되돌려 볼까, 아무렴 오늘 한 잔은 쐬주 아닐까 하는 생각은 돈 계산보다 빠르지 못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막걸리는 구경도 못하거니와 소주는 2홉들이 한 병에 거금 10불은 주어야 하므로 큰 맘 먹지 않고서는 입에 대지 못하는데, 소주병에 붙여진 가격표에 우선 반할 수 밖에 없었다. 2홉들이 6병 한 박스에 24불 – 이건 거의 공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주병에 그려진 빨간 딱지라니! 이게 도대체 몇 십년 만이냐! 아내는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게다. 오호 빨간 딱지라니!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온 세 시간 드라이브 길에 아내는 물었었다. ‘쉬지 않고 그냥 가?

‘쉬긴 뭘…’하던 내 응답에는 예의 그 빨간 딱지의 유혹이 숨어있었다.

집에 돌아와 마주 앉은 늦은 저녁 상, 반주를 핑계로 뚜껑을 따, ‘크 한 잔’ 빨간 딱지의 소주를 입에 털어놓은 내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 “이런…..ㅉㅉㅉ “

30도 짜리 혀끝에서 목구멍까지 훅 쏘던 그 맛, 빨간 딱지 쐬주는 어디가고 복숭아 주스 맛 14도 가짜 와인 맛이라니! 오, 이 ‘처음처럼’의 사기 맛이란…

소주가 변한 것일까? 내가 변한 것일까? ‘처음’과 ‘지금’ 사이에.

아니면 ‘처럼’의 사기질일까?

아니다. 그 순간 내가 돋보기를 쓰지 않았던 탓이다.

기차여행 – 1

<그 사이>

신촌역에서 연세대앞 철다리까지 철길부근은 어릴적 놀이터였다. 산딸기, 뱀딸기, 까마중, 도토리 등 먹을거리와 강아지풀, 채송화 등의 놀이기구,  계집아이들 손톱 물들이던 봉숭아 같은 화장품까지 아이들이 하루를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신촌역

철길 위에 대못을 올려놓고 침을 잘 발라놓은 뒤 기차를 기다리곤 하였다. 못은 기차가 지나간 뒤면 납짝하고 날렵한 모습으로 바뀌여 땅따먹기나 못치기 놀이 도구가 되었다. 연세대 앞 철다리는 사내아이들의 간크기를 재는 시합장이었다. 기차가 오기 직전에 누가 먼저 철다리를 건너냐는 시합에 나는 늘 그저 구경꾼이었다.

머리가 조금씩 굵어지면서 신촌역에서 수색이나 능곡역까지 몰래 기차를 훔쳐(쎄벼) 타서 오가는 것이 놀이가 되던 때도 있었다.

신촌역에서 기차표를 끊어 교외선을 타고 송추, 일영, 벽제 등지로 하루길 소풍을 오가던 때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의 일이다.

신촌역에서 이대쪽으로 들어선 막걸리 작부집들이 눈에 들어올 무렵엔 나는 이미 스물이 넘어있었다. 신촌역 앞에 인력시장이 서고, 그 곳에서 하루 몸팔이에 실패하고 빈속에 막걸리 기운으로 고함 한번 지르다가 막걸리 반공법에 걸려 잡혀온 사내와 함께 유치장에서 밤을 보낸 이후 신촌역과 철길은 내게서 멀어졌다.

기차를 타고 제법 먼 여행길에 나섰던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청량리에서 동해안 북평까지 열시간 넘게 걸렸던 중앙선 기차여행이었다. 그해 초가을 심한 폐렴으로 병원신세를 지게되었는데 그때 병실에서 듣던 기차소리는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나는 처음으로 홀로 집을 나서 경부선을 탓었다.

열 여덟을 넘기던 그해 여름부터 여름과 겨울이면 쌀과 모포 한장으로 꾸린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곤하였다. 경부, 호남, 전라, 장항, 중앙선을 타고 산과 강과 바다를 쏘다녔다.

기차와 배를 타고 몇차례 제주행을 하고 열시간 넘게 배를 타고 울릉도를 다녀온 뒤로 나는 기차소리를 잊었다. 이미 서른이 넘어 일상에 매인 나이가 되었으므로

벌써 몇 해 전이 되었는지 – 먼 옛일들에 대한 기억들은 새록새록 떠오르건만 가까운 최근의 일들 일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나이 탓일 것이다.- 한국에서 경부선 KTX를 타 본 일이 있다. 그날 일은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한국도 아니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국도 아닌 어느 외국에서의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직 인터넷을 모르던 때에 뉴욕을 오가던 하루길 기차여행은 내 이민생활에 누리던 호사였다. 고작 맥주 두어 캔 즐기는 사이 도착하는 짧은 기차여행이지만 맨하턴 서점에서 만나는 한글 신간서적들을 만나고, 입에 맞는 설렁탕이나 해장국 한그릇의 호사를 즐기고 돌아오던 날이면 그냥 여기가 신촌이었던 것이다.

빠른 세상의 변화로 이런 소소한 즐거움조차 잊은지도 제법 되었다. 오가는 기차값과 한끼 식사 값이면 내 방에 앉아서도 책 대여섯 권은 족히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가는 길이 번거로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행일랄까?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아이를 보러 간다는 핑계로 이따금 기차여행은 이어지고 있다.

이번 계약기간이 끝나면 서른 해가 되어가는 내 가게 뒤편으로는 미국 동북부를 잇는 Amtrek 철도가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기차는 경적을 울리며 그 길을 오간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늘 막연한 꿈을 꾸었었다. “언젠간 기차를 타고 미국 대륙여행을 해 보아야지”하는 꿈이었다.

그리고 올 여름, 비록 절반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는 첫 걸음으로 나는 기차여행 길에 올랐던 것이다.

“더 늙기 전에…” 기차 안에서 아내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 인사차 들린 내게 구순 어머니께서 던진 말씀이다.  “아무렴, 아직 젊을 때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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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 기차여행 끝에,  나는 아직 “더 늙기 전에”와 “아직 젊을 때” 그 사이에 서있었던 것이다.

<멀리 산꼭대기에 하얀 천같은 것이 덮어 있는 모습을 처음 본 이후, 우리는 그것이 “눈이다! 아니다!”로 서로의 생각을 세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