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밀린 뉴스들을 훑다가 느긋함이 분노로 바뀔 즈음 떠오른 김수영의 시 <하······ 그림자가 없다>의 시작 연이다.
제법 긴 그의 시 마무리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적으로 싸워야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그림자가 없다
하······그렇다······
하······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
응응······응······뭐?
아 그래······그래 그래.>
뉴스를 덮고 뒷뜰 떨어진 나무가지들 그러 모으며 봄을 구상하다. 곧 눈이 많이 내리고 춥단다.
오후에 아내와 딸과 함께 동네 공원을 걷다.
언제적 김수영이었던가? 환갑 세월이 흘러도 역사의 적들은 그림자가 없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