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치룰 가장 혹독한 대가

“만약 국가가 윤리적 제 목적을 실현키 위한 집단이 아니거나 도덕적 근거에 의해 결집되어 있지 않다면 , 그것은 ‘고속도로상의 대규모 강도떼’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 죠지 세이빈(George Holland Sabine)의 ‘정치사상사’에서

약 일년 전 많은 이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겨주었던 참담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무릇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게 마련이듯, 그 사고 역시 원인과 결과가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고로 인해 삼백 명이 넘는 사망자가 있었다는 결과 이외에는 명확한 원인과 사고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규명, 결과에 대한 처리 및 정리 등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년여의 시간이 지나가는 사이,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서 이 사건은 잊혀져 가기 시작했고,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거니와, ‘이젠 지겨우니 제발 그만해라, 니들 혹시 종북 아니냐?’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 형국입니다.

바로 세월호 참사 이야기입니다.

오늘자 한겨레신문은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의 조직·예산안 처리를 한달 넘게 미뤄오던 정부가 조직 규모를 특위 쪽 요청안보다 대폭 축소한 최종안을 특위 쪽에 제시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는 보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조사하고 추후 유사한 사건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기로 하고 구성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가 축소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는 올 1월부터 일년이라는 기한을 정해 놓고 활동하는 한시적인 기구입니다. 그런데 집권 여당과 정부는 이런 저런 핑계거리로 이미 3개월이라는 기한을 흘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위원회 기구를 축소하고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지난해 4월 이 참사가 일어났을 때 많은 이들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졌던 까닭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참사를 풀어나가는 정부의 불합리, 부정직, 무책임한 행태 때문이었습니다.

아파하는 이들의 소리와 원한 맺힌 이들의 원성에 귀 기울이고, 불합리하고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이들의 책임을 묻는 것이 사람사는 일의 기본이라고 생각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법 위에 존재하는 자연법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100여년 전 사람인 키케로(시세로, Marcus Tullius Cicero)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cicerobustb“시공을 초월해서 만인을 결집시키는 영구 불변하고 단일한 법이 존재할 뿐이며, 또한 이 자연법의 제정자이며, 해석자이며, 후견인인 인간의 공통된 주인이며 지배자인 신이 존재할 뿐이다. 이 자연법을 어기는 인간은 보다 나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며, 인간의 진정한 본질을 부인함으로써 비단 그가 이른바 모든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가장 혹독한 죄과를 치러야 할 것이다. “– 키케로의 <공화국론(On the Commonweath)>에서

자연법을 어기는 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죄과를 치루게 하는 첫 번째 일은 바로 잊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삼배일보 중인 이호진씨가 그의 페이스북에 공유한 동영상 하나를 보면서 떠올려 본 생각이랍니다. 한국사회 언론문제로 종편들과 조중동, 공중파 TV 등을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정말 문제는 한겨레, 경향과 오마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랍니다. 어느 곳에서도 한 젊은이의 물음과  얼버무리는 김무성에 대해 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왜일까라는 물음 때문입니다.

그 동영상 함께 나눕니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포박자세상은 참 빠르게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하고 있고,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을 멈추고, 변(變)하지 않고 정지(停止)하고 있는 것들을 따져 보기로 한다면 그 역시 엄청나게 많거니와 어쩜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하는 물음을 지울 수 없답니다.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여길 줄 모르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람이 아닐까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살이를 보며 해 보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세상 역시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을 보노라면 깜작깜작 놀랄 때가 있답니다.

어느 사회건 신과 사람 사이에서 브로커 노릇을 하며 사기를 일삼는 종교 브로커들이 늘 있어왔다는 종교적 무변화 곧 정지상태는 이어져 왔고요.

인류사에 있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이 없었던 때는 어느 사회든 단 한차례도 없었다는 무변화가 있을 것이고요.

이런 저런 이유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꾸 사람들의 생각에서 점점 뒷전으로 밀려가는 듯한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초기에 있었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 곰곰히 따져보면 인류 역사 이래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던져 온 질문이랍니다.

어쩌면 이런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질문으로 하여 사람들의 역사는 발전해 나왔고, 발전해 가고 있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기원후를 따질 것도 없이 오늘날에 똑같이 품고있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을 곱씹어봅니다.

“도시국가의 상태는 개인의 몸과 아주 닮아있다. 일테면, 우리들의 손가락 하나가 상처를 입으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끼듯이, 제대로된 국가는 이러한 유기체와 아주 흡사하다. 국민 가운데 어느 누구든 고통을 당하면 국민 전체는 그것이 마치 자기의 것인양 느낄 것이고, 국민 개개인의 즐거움이나 고통은 국민 전체의 그것이 될 것이다.” – 플라톤의 국가론

국가는 마치 하나의 선박이나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다. 그 일부의 와해는 전체의 보전에 치명적인 붕괴 요인이다. – 플라톤의 법률

인간의 몸은 국가를 상징하는 바와 같다. – 중략 – 정신(精神)은 제왕(帝王)과 상응하고, 피는 신하와 기(氣)는 백성과 상응한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의 몸을 자제할 수 있는 이는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므로써 국가에 화평을 가져올 수 있고, 자신의 기를 함양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국가는 와해, 붕괴될 것이고, 기가 다하면 사람의 신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 포박자(抱朴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