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口號)에

내가 사는 델라웨어 주는 몇 개의 별칭을 갖고 있다. ‘The First State’, ‘Diamond State’ 또는 ‘Small Wonder’ 등이다. 최초 13개 주들이 미국헌법에 서명을 할 때 델라웨어 대표가 제일 먼저 서명을 했다 해서 생긴 것이 ‘The First State’이고,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 동해안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델라웨어라고 했다는 전설에 따라 전해온 말이 ‘Diamond State’이다. ‘Small Wonder’는 한 때 델라웨어 주가 슬러건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미국에서 두 번 째로 작은 주이지만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충청북도 면적과 엇비슷하니 정말 작은 곳이다. 내 집에서 5분 거리면 펜실베니아 주경계를 넘고, 15분이면 뉴저지에 닿는다. 내 가게에서 5분이면 또 메릴랜드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별칭 하나가 ‘Dela Where?’이다.미국인들도 델라웨어라고 하면 어딘지 잘 모르거니와  ‘아니 그런 주가 다 있어?’ 할 정도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일게다. 그게 또 이 곳의 홍보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 델라웨어주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뉴스의 생산지가 된 며칠 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때문이다.

이 곳 신문은 “첫 번 째 주에서 첫 번 째 대통령이 나오다”라는 제목의 들뜬 기사를 비롯하여 전 세계 유수한 신문들이 일면 머리기사로 장식한 바이든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한국신문은 소개하지 되지 않아 좀 아쉬웠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관련뉴스를 종종 비중있게 다룬 것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이라는 국가 위상 보다 한국언론은 아직 거기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참 다행이다. 바이든이 당선 되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빨리 큰 혼란이 없을 정도로 제법 격차를 이루고 드러난 선거 결과 때문에 해보는 말이다.  선거 후 두 후보자들이 내세운 구호들로 하여 자칫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현재로선 판세가 완전히 기울어 조금은 차분히 선거 후유증을 가라앉힐 가능성이 열려 다행이다.

만일 Count Every Vote와 Stop the Count 라는 구호가 엇비슷한 힘으로 맞붙어 오랜 시간을 끌었다면 그 혼란은 가히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걱정을 덜어 정말 다행이다.

가만 돌아보니 셀 수 없이 많은 구호의 시대를 살아왔다. 시대의 권력자들이 만든 구호들이거나 때론 군중들이 만든 구호들도 있었다. 멀리는 ‘반공통일’에서 부터  ‘때려잡자 김일성’, 독재 타도’, ‘선진 조국’ 가까이는 ‘United we stand’, ‘Occupy Wall Street’, ‘Yes we can’,  ‘America great again’ 등등.

구호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그 구호 아래 사람살이는 때론 진보하고 많은 경우 그 시대의 혹독한 시련이 되기도 한다.

편 갈음, 증오, 혐오의 언어보다 치유, 화해, 공감 등등의 언어를 내세운 바이든의 연설은 때에 맞는 듯하여 듣기 좋았다.

허나 트럼프라는 캐릭터와 그가 내세운 구호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살며 듣기 좋은 구호만 앞세우는 축들에게 등돌렸던 이들이었을게다.

문제는 누가 내세우는 구호이던 그 구호에 담긴 속내를 곱씹어 꿰뚫어 저항하거나 박수치는 시민들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일 게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겪으며 한국사회가 진일보 했듯, 트럼프시대를 지낸 미국사회도 여러모로 진일보 하는 시대를 맞기를 바란다. 내 아이들을 위하여.

화창한 가을날, 한껏 부지런 떨며 하루해를 바삐 보내다.

일주일치 아침 양식 빵도 굽고, 내년 봄을 맞이할 준비로 튜립, 수선화, 아이리스, 무스카리, 히아신스 등 구근을 심고, 배추 절여 김치를 담그다.

김장 끝나면 어머니는 맛난 배추찜을 상에 올리곤 하셨다.

살며 이런 저런 흉내는 즐기지만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내가 어머니에 이르면 벽이다. 그래도 그 덕에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감사에 배추찜 하나로 아내와 넉넉한 저녁상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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