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 10

유타 – 신앙의 힘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기차는 몰몬교인들의 땅 유타로 들어섰다. 나는 몰몬교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바 없지만 잘 아는 몰몬교인은 있다. 매우 근검화순 (勤儉和順)하고 독실한 사람이다. 이민온지 거의 40여년이 된 그는 아직도 첫번 째 기도제목을 “모국통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 사랑”이 바로 신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때 나는 퀘이커 모임에 들락거렸던 적이 있었다. 집에서 오분 거리도 안되는 곳에 그들의 모임장소가 있다. 그들의 예배의식은 나를 매료시켰었다. 친교방식도 부담이 없어 좋았다. 그들과 함께한 주일아침 명상기도를 통해, 한동안 나는 1시간을 5분 정도의 시간으로 느낄만큼 명상을 즐기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였다. 결국 핑계이지만, 아내와 아이들 생각때문에 퀘이커교도가 되지는 아니하였다.

아무튼 몰몬이나 퀘이커나 장로교나 감리교나 침례교나 다 한묶음이요, 불교도나 유교도나 이슬람교도나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이나 무종교인이나 다원주의 신봉자나 모두 함께 살 수 있다는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나라가 미국이라는 모범을 보여준 땅이 유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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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몬교도들이 유타주에 정착한 과정을 보면 히브리인들이 겪었던 40년 광야 이야기나 2만 5천리 길을 걸어서 피신했던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이다.

Mormon Trail (entire route)

<지도자 브링햄 영(Bringham Young)은 박해받는 신도들을 사막지대로 인도했다. 당시 1만 5천명의 몰몬교도가 3천대의 포장마차를 타고 길을 떠났다. 온갖 고난 끝에 브링햄 영은 눈 쌓인 봉우리로 이뤄진 산맥에 둘려싸여 햇빛에 반짝이는 새하얀 호수, 즉 소금호수를 발견했다. 그곳이야말로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할 땅이라고 믿은 그는 그 사해로 들어오는 강을 요르단 강이라고 명명하고 Salt Lake시를 건설했다. – 앙드레 모로아의 미국사에서>

이 몰몬교도들은  고난의 장정과 정착과정을 통해 인디언들과 미리 정착해 있던 이민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어두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흑역사는 비단 몰몬교도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디언(원주민이라는 말이 맞겠지만)들과 멕시코인들의 땅을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점령해 나갔던 대륙의 개척자들 모두에게 드려진 흑역사일 뿐이다.

몰몬교도의 유타주 정착은 대륙의 동과 서를 잇는 전환점이었다고 한다. 어떤 신앙이든 신앙공동체는 때때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 공동체 안 구성원들이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어떤 절박함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터지는 힘으로.

어두움 속을 달려 유타주를 건너며 저절로 입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미국, 정말 크다!” 약 200만명이 산다는 유타주의 넓이는 거의 한반도 크기와 맘먹는단다.

새벽녘에 눈을 떠 차창밖을 보니 무수한 별들이 떠있었다. 기차는 네바다 사막을 달리고 있었고 열차안에서 시간은 두번째로 바뀌어졌다. Central Time Zone에서 Mountain Time Zone으로, 그리고 다시 Pacific Time Zone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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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미한 어둠속에서 첫번 째 만난 네바다주 아주 작은 마을에서 본 첫번 째 간판은 Casino였다. 먼동이 트자 이어지는 것은 광야였다. 네바다는 사막이라기 보다는 척박한 광야였다.

완장 – 갈릴리 8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4 

야훼를 너의 피난처라 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의 요새로 삼았으니,  어떤 불행도 너를 덮치지 못하리라. 어떤 재앙도 네 집을 가까이 못하리라.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뿌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 – 시편 91 : 9 – 12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장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 요한복음  8 : 44 

마귀의 두번 째 시험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입니다. 마귀가 인용한 성서는 시편 91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시편 91편을 읽고 음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야훼 하나님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늘 함께하여 어떤 환경에서도 말짱하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히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제 오늘날 교회들과 믿는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며 ‘아멘’ 소리를 드높히는 덕에 ‘개독교’소리를 듣기도 하거니와, 참 예수쟁이들을 확장시키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시편 91편만 딱 떼어놓고 한번 생각해 본다면, 세상 그 어떤 종교들과 견주어 그 어떤 차이도 없답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새벽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신앙 역시 시편 91편과 똑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특히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 앞뒤 가리지 않고 이런 시편 91편을 내세우는 신앙적 태도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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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단을 대웅전 뒤에 마련해 놓고 사람들의 신앙적 한계를 적절히 포교의 수단으로 삼은 한국불교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털끝만큼의  재앙이나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선포들과 믿음이 설교 강단을 차지한 모습은 칠성단이 대웅전 뒤가 아니라 설교 강단에 차려진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를 향한 마귀의 시험이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전제는 바로 신앙의 전제입니다. 찬찬히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일들(역사)과 오늘 날의 일들(현재)를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라는 모습들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답니다. 근세 이전 모든 권력들의 모습이거니와 오늘날에도 지역과 상황에 따라 널려 있는 모습이랍니다. 크게는 민족과 국가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요, 작게는 지역사회,  작은 집단을 비롯하여 한 개인의 영혼과 생각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차고 넘치는 일이고요. 

그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인용한 성서는“마싸아에서처럼 너희 하느님 야훼를 시험하지 못한다.”라는 신명기 6장 1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므리바의 샘물’입니다. 

하나님(신)이 부여한 권력이나 능력을 기적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나 그것을 요구하는 일은 신(하나님)을 떠보는 일이라는 선언입니다. 신의 일은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신의 영역에 속한 일을 인간들을 설득하기 위한,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시험문제는 예수가 죽기 직전에 받았던 시험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직전에 사람들이 예수에게 낸 시험문제였습니다.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당연히 네 아버지인 신이 도와 주지 않겠느냐?”는 시험 말입니다. 

예수는 처음 광야에서 그랬듯 마지막 십자가에서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적이나 표적의 징표가 신의 아들을 입증하는 일도 아니거니와 하나님 나라를 믿는 신앙의 전제가 아니라는 예수의 선포요, 시편 91편에 나오는 신앙은 인간의응답일 뿐이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물론 그 응답은 신이 요구하는 것이지만 결코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에게 놓인 마귀의 시험은 “내게 무릎을 꿇으면,  세상을  다 너에게 주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정말 차고 넘치게 보는 일들이지요. 왈 ‘완장’이라고 하지요. 크고 작은 권력 앞에서 ‘완장’차고 제 배불리며 부끄럼 모르는 이들 예나 지금이나 동이나 서나 어느 시대건 넘쳐나는 사람들 모습입니다. 

거기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였는데 이는 신명기 6장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리 되더라도 너희는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신 너희 하느님 야훼를 잊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맹세할 일이 있으면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여라.  주위에 있는 백성들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서 어떤 신이든지 그 신을 따라 가면 안 된다.- 신명기 6 : 12 – 14”는 말씀에 근거를 둔 선언인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 이외에는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선언이며, 역사 이래 오늘날 까지 야훼 하나님 자리응 제것으로 착각하고 사람들을 무릎 꿇리게 하는 모든 신(권력)들은 “아니”라고 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시험을 마친 예수는 이제 갈릴리로 나갑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로서 그의 나머지 삶과 말씀과 행위들은 바로 이 광야에서의 선언들을 사람들의 말로 쉽게 풀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준비 – 갈릴리 5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1 

비록 기독교의 기원이 갈릴리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운동의 중심은 곧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보다 후대에 속한 신약 성서 책들은 실제적으로 갈릴리에서의 기독교의 존재와 그 운명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무시는 초기 기독교 안에서도 계속되었으며 실로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 엘리옷 빈즈(Elliott- Binns)의 갈릴리 기독교(Galilean Christianity)에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세례요한과 결별한 후)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 나가시기 전에 예수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행보를 마태, 마가, 누가는 한목소리로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비교적 짧게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가복음 1 : 12 – 13 

반면 마태와 누가는 광야에서 예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비교적 소상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마귀의 세가지 유혹 곧 시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광야의 예수

세 복음서가 똑같이 전하는 사실은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40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몇군데 등장합니다. 인생을 40년 단위로 살았던(왕자 40년, 유목생활 40년, 히브리 지도자 40년) 모세가 히브리백성들과 애굽을 탈출한 후 광야에서 지낸 세월이 40년입니다. 또한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으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출애굽기 34 : 28) 

엘리야 역시 광야에서 40일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열왕기상 19 : 1 – 8) 그리고 교회사시대에 이르러 지키게 되는 사순절기의 40일이 있고,  오늘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예수의 광야 생활 40일이 있습니다. 

이상의 모든 40일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전(前)과 후(後)의 상황이 완전히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40년 단위 인생은 그 때마다 매번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 의미 등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었습니다. 특히 모세의 40일 금식 사건의 전과 후 사이에는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 백성 간에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십계명을 부여받는 시기였습니다. 히브리백성의 40년 전후 상황은 노예상태로 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상태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엘리야의 40일은 도망자 신세에서 야훼 하나님의 명을 받고 용맹스럽게 앞으로 전진하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순절은 고난과 수난, 처절한 패배인 듯한 상황에서 부활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예수의 광야 40일 준비기간은 옛 세상이 새 세상으로 바뀌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40이라는 상징적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과 후가 완전히 뒤바뀌는, 노예에서 누구나 신 앞에서 홀로 서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독립된 인격으로, 절망적인 도망자 신세에서 삶의 충만한 의미와 의욕으로 넘쳐나는 활기찬 삶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아픔과 한계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삶에서 죽음까지도 이기고 부활하는 기적을 맛보는 그 뒤바뀜 현장의 의미를 되새김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굶주린 가운데 마귀에게 받은 세가지 시험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 요세푸스가 전하는 1세기 곧 예수 전후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몇 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파두스(Fadus)가 유대총독으로 있을 때(기원 후 45-46년 경) 튜다스(Theudas)라는 한 마법사가 수많은 군중들을 미혹하고 있었다. 튜타스는 자신이 선지자라고 무리들을 속이면서 명령 한 마디로 요단강을 갈라 걸어서 강을 건너게 해줕테니까 모두 요단강으로 모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에 많은 무리들이 그의 말에 현혹되어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5장 1” 

“한편 유대인이 처한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유대 전체가 강도와 사기가 들끓는 범죄의 소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벨릭스 총독은 매일 수많은 강도들과 사기꾼들을 체포하여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8장 3” 

“이 강도들로 인해 예루살렘은 온갖 악과 불의로 가득차게  되었다. 게다가 사기꾼들과 협잡꾼들은 자기들이 직접 이적과 표적을 행할 터이니 광야로 나가자고 백성들을 현혹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8장 6” 

요세푸스가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에 강도떼들과 사기꾼들이 들끓고, 각종 기적과 이적들을 행한다는 가짜 예언자난 거짓 메시야들이 넘쳐 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시대는 바로 신약성서들 곧 바울서신들을 필두로 하여 복음서들이 막 쓰여지던 때였습니다. 

요세푸스가 강도나 도둑이라고 적시한 사람들은 거의 열심당(젤롯당)을 중심으로 한 유대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요세푸스는 로마로 귀화한 유대인입니다.) 특별히 주시해야 할 것은 가짜 예언자들, 거짓 메시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각종 기적과 이적들을 미끼로 하여 메시야를 기다리며 유대의 독립을 갈망하던 백성들을 광야로 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참혹한 죽음 뿐이었습니다. 

로마군들은 위에 튜다스의 말에 속아 요단강가로 모여든 유대백성들을 반역을 도모한다고 하여 몰살을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튜다스를 전후해서 등장했던 여러 가짜 예언자들과 거짓 메시야를 중심으로 모였던 유대인들은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가짜 예언자들과 거짓 메시야들은 당시 백성들의 절실한 요구와 바램을 자신들이 들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다며 기적과 이적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번번히 속았고, 그들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 받은 세 가지 시험들은 바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절실했던 문제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바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는 예언이었으며, 그 예언의 성취자가 자신이라고 하는 자기확신의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그 시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 – 광야 7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5

 (세례)요한 당시에 유대인들이 합법적으로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는 예루살렘이었으며, 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새롭고, 값싸며, 누구나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제사의식을 도입한 것은 요한의 위대한 창안이었다. 임박한 심판에 대한 그의 경고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즉 예언자들은 그 이전에 800년 동안 그런 심판을 경고해 왔다. 새로운 점은 대격변을 일으키며 오는 심판(그 나라)에 대해 보통사람들도 쉽게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이었다.   – 모턴 스미스(Morton Smith)의 비밀복음서(The Secret Gospel)에서 <미국 콜롬비아 대학 고고 역사학자인 스미스는 베들레헴 동쪽에 있는  미르  사바에서 마가의 비밀 복음서를  포함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서신 사본을 발견한 사람> 

세례요한의 아버지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인 사가랴라고 적시해서 기록한 것은 누가입니다. (누가복음 1 : 5 – 9) 누가에 따른 요한 아버지 사가랴의 모습으로 보아서 그는 하위직에 있는 사제였을 것입니다. 어떤 반(班)에 속해서 제비를 뽑아 자기 순번이 정해지는 자리란 바로 당시 풍습으로 하위직급  제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유대사회는 소수 최고위층의 제사장들을 제외하고는 종교적 자리의 높고 낮음이 사회적으로 부를 누리느냐 못누리느냐와는 별로 상관이 없던 때였습니다. 특히 종교적으로 하위 제사장 직분에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는 아주 하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비록 가문이 제사장가문에 속해 있었지만 세례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한 적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자기들만의 의식과 전통을 이어가며 폐쇄집단을 이루어 살던 에세네파 사람들의 주류는 바로 예루살렘에서 소외된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당시 상황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광야에서 활동한 세례요한 역시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세력들을 비판하는 편에 섰던 것 같습니다. 그의 설교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분명히 제자를 거느리고 자기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가복음 2 :18>라는 마가의 기록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이 모이면 즐겨 사용하는 주기도문이 처음 생긴 때의 일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누가복음 11 :1>

‘요한의 무리들도 하는데 우리도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 우리들도 기도문 하나 가져봅시다.’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대해 예수가 그럼 이렇게 하라면서 가르쳐 준 것이 주기도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수 있는 것은 요한은 제자들을 두고 있었으며 금식으로 훈련도 시키고, 자기들만이 사용하는 기도문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구체적인 생활지침들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직업이 세리인 사람들은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직업이 군인인 사람들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 누가복음 3 : 10 -16>등의 구체적인 생활지침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 가운데는 그를 구세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설교

세례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들은 기록한 이들이 본 관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마태는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마태복음 3 : 7)”라면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많았다고 전합니다. 나아가 세례요한의 설교는  그들을 향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가는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 마가복음 1 : 5”라면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부 유대 지방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누가는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누가복음 3 : 7”라고 기록하며 그들을 무리 곧 군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세례요한을 찾아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일단의 사람들에 대한 해석들이 왜 이렇게 다르게 기록되었을까요? 기록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적절할 것입니다. 

먼저 마태의 경우를 보면, 마태복음이 기록된 때를 대략 기원후 8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무렵은 초대교회가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유대의 완전한 멸망으로 인해 랍비종교인 유대교가 막 성립되어 가는 시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유대교의 주류는 바로 바리새파였습니다. 기독교 초대교회와 유대교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던 때에 마태복음아 기록된 것입니다. 마태가 자기 기록을 보여주고자 했던 사람들 곧 마케팅의 대상이었던 주독자층은 바로 유대인 출신 기독교도들이 였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마태가 본 세례요한의 설교대상은 당연히 바리새인들이 되어야 했던 것 아닐까요? 

두번 째 마가의 경우입니다. 마가의 주된 관심 가운데 하나는 갈릴리였습니다. 마가가 전하고자 했던 예수는 철저히 갈릴리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났었고, 예루살렘 세력에 의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가 향한 곳도 갈릴리라고 전한 사람이 마가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마가가 본 세례요한의 설교대상은 당연히 예루살렘 중심의 남부 유대인들이어야 했던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누가입니다. 누가가 원했던 주 독자층은 온 누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온 로마로 예수를 전하려고 그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쁜 소식” 으로 예수의 복음을 요약합니다. 누가복음 1장과 2장에 나오는 세례요한과 예수의 출생 이야기는 모두 “기쁨” 가운데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이제 나중에 더 깊이 이야기되겠지만 예수의 삶 자체가 “기쁨”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누가는 전합니다. 결정적으로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마지막 떠나시는 모습을 기록한 누가의 마지막 기록 역시 “기쁨”으로 마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누가복음 24 : 50 – 53”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누가가 본 세례요한의 설교대상은 당시 삶의 기쁨을 잃어 버리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자들, 여자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 곧 군중이어야 했던 것 아닐까요? 

이런 누가가 본 무리들 곧 군중에 대해 마태도 동의하는 구절이 있답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 21 : 31”라고 말입니다. 

세례요한을 따르거나 그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었던,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이었던, 아니면 가난하고 소외된 무리들(군중)들이었던, 세례요한 주변에 모였던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세례요한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새 날 또는 반역 – 광야 6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4 

이즈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때 계룡산(鷄龍山)의 신도안(新都內)은 각종 신흥종교의 집합소로 알려졌었습니다. 조선조 중엽부터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진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의 영향을 받은 현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계룡산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도읍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실제 조선 순조임금(재위기간 1800년-1834년)때 서북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난 이후 동학혁명에 이르는 19세기의 여러 농민 봉기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정감록입니다. 

홍경래의 서북지방이나 전봉준의 전라도 고부나,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성지에 가까운 곳들이겠지만 권력자 입장에서 보면 반란의 땅인 것입니다. 

전라도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눈길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천 년 전 세례요한이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마태 3 : 2, 공동번역)”고 외쳤던 유대 광야(曠野)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는 마태가 세례요한에게 투사한 예언자 엘리야(실상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 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태복음 17 : 12)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땅이었습니다. 

그들의 세대에는 망해 없어진 마지막 유대왕국 하스몬왕조 시조였던 마카베오가 광야에서 봉기했듯이 광야는 메시야가 오실 곳이었습니다. 실제 세례요한 당시에 “스스로 자기가 메시야”라며 백성들을 광야에 모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요세푸는 그의 책 유대전쟁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광야

당시 광야는 메시야가 오실 땅이고, 새 날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광야는 반역의 땅이고, 반란의 진원지요, 도둑들의 발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로마와 헤롯을 비롯한 로마의 권력 대리인들, 그리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종교 권력자들에게 유대광야는 늘 불온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별명처럼 세례를 주는 사람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유대의 전통적인 정결례법과는 다른 그만의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세례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세를 이룰만한 학문적 성과는 아직 없답니다. 

다만 당시 에세네파 공동체에서 세례의식을 행했는데 에세네파의 세례는 일정기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회원이 된 사람끼리만 이루어진 것인데 반해 세례요한의 세례는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에세네파의 세례는 정례적인 의식이었던 것에 반해 세례요한의 세례는 단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일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누구나 다 받을 수 있었지만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회개하라”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마가복음 1 : 4, 공동번역)”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선포, 곧 회개와 세례를 통한 죄의 용서에 대한 선포가 광야에서 긴박하게 이루어진 까닭은 바로 세상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는 종말론 때문이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마태 3 : 2, 공동번역)”는 선언은 바로 세상 종말을 준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요한이 종말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바로 아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의 종말사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세례요한이 행한 세례를 바로 아는 길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행했던 설교를 통해 요한의 생각을 알아보는 일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마태복음 3 : 7 – 12, 개역개정) 

마태가 기록한 요한이 선포한 설교의 핵심입니다. 

내용인즉은 “이미 지녔다고 생각하는 기득권은 안 통한다”는 것이 첫째요, 회개가 우선이다를 것입니다. 나아가 지금 내가 물로 세례를 주지만(그저 물로 적시는 것이니 그냥 의식에 불과한 것이지만) 때가 이르러 능력자가 오셔서 줄 세례는 단지 의식이 아니라 불과 성령으로 주는 것으로 단지 의식이 아닌 심판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선택의 여지가 아직 있는 것이지만 뒤에 오는 실력자가 주는 세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때에는 불에 타는 심판을 피하느냐 마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경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죄에 대한 용서에 있는데 거기에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이기 때문에”라느 등의 기득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전제는 회개라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를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선택받았다는 옛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미래를 감사함으로 받는 길을 선택할 것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와 선포는 유대전통의 예언자들의 예언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에덴과 출애굽의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믿음이 아니라 새롭게 다가 올 새 세상을 향한 새로운 선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만나게 될 예수의 선포에 비하면 세례요한 역시 옛사람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구시대의 막내이자 새시대의 전령으로서의 요한, 그의 삶과 그를 따르던 이들, 성서에서의 그의 의미와 죽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광야 5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3 

먼저 글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세례요한에 대한 초기 기록들을  정리해 소개 드렸습니다. 다섯가지였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렇게 사복음서와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나타난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이론 곧 설(說), 말들은 많지만 오늘날에 많은 학자들이 대충 의견을 일치하는 순서대로 따지자면 마가(기원후 60-70년 사이), 누가(기원후  이른 80년 전후),  마태(기원후  늦은 80년 전후), 요한( 기원후 90년대), 요세푸스(기원후 약 95년경) 이런 순서라는게 대세랍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책들처럼 저자 , 출판사, 인쇄소, 초판 발행 연월일이 남아있지도 않거니와 그 원본조차 남아있지 않은 책들을 정확하게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특정지을 수도 없거니와, 아무리 지금 대세라고 하여도 학문적인 영역의 일이므로 대세라는 것도 바뀔 수 있는 여지는 있는 셈이랍니다. 

다만 이천 년전 이런 책들이 쓰여질 때부터 오늘날 저와 같은 사람들이 똑같이 믿는 어떤 하나의 믿음을 찾아내는 일이 제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므로 학문적으로는 최신의 결과물들을 의지하면서 결코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의 맥을 찾는 일에 정진해 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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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선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는 베드로와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나는 이제야 사실을 알았다. 주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건지시고 유다 백성들이 잔뜩 꾸민 흉계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셨다” 하고 말하였다.   이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사도행전 12 : 11- 12) 

또한 바울 이야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바나바와는 사촌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골로새서 4 : 10) 

그는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첫번째로 복음서를 작성한 사람이고 이후에 기록된 마태와 누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그의 주관심은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관점에서 본 예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행한 기적들에 촛점을 맞춥니다. 

다음 누가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바울에 가까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전세계가 목표였습니다. 누가 역시 전 세계를 향한 예수를 기록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로마가 다스리는 전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누가 2장 1절인데 역사적으로는  당시 유대에 국한된 일이라는 게 정설이랍니다.) 

세계을 향한 그의 눈길이 닿은 것은 가난한 자, 소외자, 여자들이었습니다. 그가 본 예수입니다.  또한 예수를 ‘기쁜 소식’으로 전한 것도 누가입니다. 

마태의 주관심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예수의 족보 로 이야기를 시작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가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초대교회 교인들에 의해 신약성서의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된 연유입니다. 그는 예수의 족보를 철저히 유대와 연계시켰습니다. 

또한 마태는 교회에 관심을 보입니다. 마태가 복음서를 쓸 시기에는 이미 기독교 교회가 자리잡았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마지막 책 요한은 앞에 이야기한 세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뜻으로 예수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입니다. 

우선 그가 누구냐라는 문제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심지어 요한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과 일치하는 것들을 뽑아보면 약 8%도 안될만큼 다릅니다.공관복음서의 주된 주제는 하나님 나라인데 비하여 요한은 영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공관복음서의 주된 관심지는 갈릴리인데 비해 요한의 촛점은 예루살렘입니다. 

요한은 유월절을 세 번 이야기하므로써 예수가 삼년 동안 공생애를 사셨다고 기록한 반면에 공관복음서는 단 한 번만 이야기 하므로 예수가 단 일년 또는 그보다 더 짧게 활동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의 활동 순서가 공관복음서들과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제 역사서 요세푸스입니다. 

그는 로마인들에게 유대인들과 유대문화를 알리는데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정작 정통 유대인들에게는 민족의 반역자, 변절자로 취급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이 기록에 남은 예수와 세례요한에 대한 언급의 분량과 중심축은 예수가 아닌 세례요한에게 있습니다. 

자! 이쯤 어제에 이은 교과서 소개 및 간략한 해설을 마치고 요한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성서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일의 첫 걸음은 교과서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 두번 째는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내 자리를 잘 일고 이해하는 일입니다.

*** 세번 째는 성서(교과서Text )와 삶(내 자리 Context)를 잇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읽는 일입니다.

**** 모든 교과서는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