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게으름을 즐기기엔 딱 좋은 날씨다. 아침나절부터 흩뿌리던 눈발이 오후 들어 쉬지 않고 내린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모레 화요일 아침까지 7인치에서 14인치 가량의 눈이 내릴 것이란다. 제법 오긴 올 모양이다. 음력 섣달 말미에 내리는 눈 덕에 연휴를 즐길 모양이다.

눈 치울 걱정일랑은 뒤로 미루고 오늘 하루는 그저 몸과 맘이 가는 대로 쉬기로 작정했다.

이즈음 일요일이면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일주일치 빵을 굽는다. 이 일이 제법 재미있다. 오늘은 내가 새로운 빵에 도전해 보았다. 각종 야채 듬뿍 넣은 호빵이었는데 첫 작품 치고는 만족도가 높았다.

내친 김에 점심으로 수제비 떠서 해물 육수에 콩나물 넣어 땀 흘리며 배 불렸다.

밀려오는 낮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약속되어 있던 줌(zoom)모임에 참석했다.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리 센터(Woori Center) 이사회 연수회 모임이었다. 우리센터는 이젠 여러 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한인사회 및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조직하여 지역 및 국가 시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 목소리를 내어 주장하고, 스스로의 권익을 찾아 보자는 뜻으로 2018년에 설립된 단체이다.

나는 그저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 하는 일은 없지만 이 단체에 대한 애정은 지극하다.

적어도 내가 이민을 온 후 이제 까지 한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인근 외곽지역에서, 전문가들도 아니고 명망가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꽤나 있는 부유층들도 아니고 교회나 종교를 앞세우지도 않고 더더구나 진보적 가치를 내걸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큰 가능성을 보인 단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더해 이 단체에 대한 기대가 큰 까닭은 단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나누고자 함께 모였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른한 오후의 졸음 떨치고, 연수회 머리 수 하나 채웠다.

내 아이들 다 독립해 떠난 이후, 지펴 본 적 없는 벽난로에 불장난도 하면서 일월의 마지막 날 한껏 게으름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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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이즈음 나는 많이 게으르다. 여느 해 이 맘 때이면 장사 나가는 아침은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을 터.

오늘도 게으른 아침, 이미 훤한 아침 햇살에 밀려나는 서편 구름 사이로 음력 팔월 보름달이 노닌다. 그 노는 모습에 한참을 넋 놓다. 이젠 이런 게으름이 싫지 않다. 흐음… 이젠 정말 나이 들어 가는 게다.

게으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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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이젠 밤운전은 엄두를 못내겠다는 서선생님은 나보다 딱 열살이 많다.

그가 한 십여 년 전에 내게 한 말이다. “내 나이 돼 보라구! 그 전엔 큰 일 날 일도 별거 아냐… 움직이기 귀찮아서 안 움직여도 세상 큰 일 나지 않는다구.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적당한 게으름을 받아 들이는 걸꺼야!”

눈 내리는 아침, 가게 나갈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움직이기가 싫었다. 나갈 생각 않고 창문 밖 눈 내리는 풍경만 바라보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 “당신도 이젠 늙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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