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2020

내 기억에 대한 정당함을 주장하는 떳떳함이 차츰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만, 단언컨데 최근 십 수년 이래 일반 가정들의 크리스마스 치장(治粧)은 올해가 단연 으뜸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일반 가정들의 크리스마스 치장은 분명 줄어드는 추세였고, ‘Merry Christmas!’ 보다는 ‘Happy Holidays!’라는 인사가 보편화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글쎄, 내가 사는 동네에 국한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올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도 많고 그 치장이 예년에 비해 사뭇 화려하다. 그 또한 다만 내 기분 탓 인지도 모를 일이다만.

너나없이 그야말로 지난(至難)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종교적 의지가 강해진 탓도 있을 터이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지며 쌓인 이런저런 욕구들이 치장으로 분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흘을 쉬며 한 해를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들을 누리게 해 준 성탄절에 치장 대신 감사를 드린다. 한 해를 무사 무탈하게 지낸 감사가 이리 컷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조심조심하면서도 ‘설마…’하는 낙관이 늘 앞서 있었지만, 바이러스 확진 소식들을 가게 손님들과 먼 이웃들에게서 듣기 시작하고, 이즈음에 들어서는 가까운 이웃들과 내 가족들과 이어진 사람들에게서 듣다 보니 아직 무사 무탈함이 그야말로 큰 감사로 다가온다.

돌아보니 신기할 정도로 감사한 것은 가게 매상이 지난 해에 비해 반토막 이상이 줄었음에도 이럭저럭 한 해를 큰 걱정없이 보낸 일이다. 지난 주 내린 폭설과 강풍 탓에 뒷뜰 소나무 몇 그루가 부러져 넘어졌다. ‘돈 들일 일 또 생겼군’하는 걱정이 들 무렵인 지난 월요일, 바이러스 재난지원금 지급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쓰러진 나무들을 제거하는 데 드는 경비와 우리 부부가 받게 될 재난지원금이 얼추 맞아 떨어져 걱정을 금새 덜었다.

그래 또 성탄에 이는 감사다.

이즈음에 매일 페이스북에서 기다리며 읽는 글이 하나 있다. 한국의 진혜원검사가 올리는 페북 글이다. 그의 글은 우선 재밌다. 마치 골리앗 앞에서 물매를 돌리고 있는 다윗을 보는 스릴이 넘친다. 현실은 그저 스릴만 넘치는 연속 동작이어서 그에 대한 안타까움만 이어가며 읽기는 한다만.

아무튼 어제 그가 올린 <훗, 이게 인생이지>이라는 글에서 그가 단언한 말이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권력은 종교와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떠올라 손에 든 것은 리차드 호슬리의 책 <크리스마스의 해방>이다.

크리스마스와 해방이라는 어찌보면 서로 맞붙어 싸우는 말이 하나가 된 이 책에서 호슬리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 참 예수의 모습을 찾는다.

바로 종교와 돈으로 신비스럽게 포장되고 치장된 크리스마스를 벗겨내어 해방시키고, 예수의 참모습인 ‘오늘 여기에서 고통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만나자는 주장이다.

리차드 호슬리의 주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인물 및 사건에 관련된 그들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토론 가운데서 나타난다.>

어찌보면 갇힌 듯 모든 것들이 답답한 오늘이지만, 지난 시간들에 대한 감사와 다시 시작하는 새날들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엇비슷한 고백들로 이어진 사람들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돈을 쫓고 누리되 권력이 되고자 하는 일에는 물매 들고 싸우는 이들.

그렇게 또 한 해가 저무는 성탄에.

 

걱정에

너나없이 걱정과 염려가 많은 이즈음, 내 스스로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에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벌써 41년이네!’ 며칠 전 아내가 툭 던졌던 말입니다. ‘뭐가?’라는 제 물음에 아내가 한 대답은 ‘우리가 만난 거.’였습니다.(이튿날 아내는 42년 이라고 정정을 했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아내와 함께 해 왔습니다. 그 세월 중 세탁소를 이어 온 30여년 동안은 거의 24시간을 함께 했으니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온 셈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얼마나 많이 싸우며 살아 왔을까요?

최근 가정에 머무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부부싸움이 늘고 아동학대도 심해졌다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생각난 저희 부부의 지난 시간들이랍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세탁소를 한 10여년 했을 무렵이랍니다. ‘세탁소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세탁소 하려고 이민을 왔었나?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에 빠져 세탁소를 아내에게 맡기고 제가 새로 시작한 일은 신문사였습니다. 워싱톤에서 뉴욕까지 미국 동북부 지역에 사는 한국계 시민들을 위한 한국어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물론 아내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일천한 경험과 이재에 밝지 못했던 저의 부족함으로 신문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한 이년 후 다시 세탁소롤 돌아온 제게 남은 것은 빚 뿐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고 오직 세탁소 일에만 매달려 빚을 갚았답니다. 그 때 이후 세탁소는 내 천직이 되었고, 그 무렵부터 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님들에게  보내는 주말편지랍니다.

다시 세탁소로 돌아왔던 그 해 겨울 매우 추었던 어느 저녁이었답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아내와 제 차를 모두 판 뒤 600불을 주고 산 아주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다녔답니다. 자동차 창문이 열리지 않는 차였답니다. 그 추운 저녁 세탁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시동을 걸었답니다. 그 때 아내가 웃으며 제게 했던 말이랍니다. ‘야! 이 차가 벤츠보다 좋네! 이렇게 추어도 단 한번에 시동이 걸리네!’

그 날 이후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며 살지만, 그 추운 겨울 저녁에 아내가 제게 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사랑을 넘어서는 싸움은 해 본 적이 없답니다.

너나없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들을 안고 사는 이즈음입니다. 저희 부부도 마찬가지랍니다. 당장 내야 할 렌트비를 비롯한 금전적인 걱정 뿐만 아니라 노부모와 아이들에 대한 염려 등등  그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답니다.

하여 오래 전 읽었던 아주 짧은 이야기 하나 나눕니다.

<어느 마을에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마을사제에게 돌림병으로 200명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을사제는 죽음의 사자와 담판을 지어 사망자의 수를 100명으로 줄였습니다. 그런데 돌림병이 지나가고 난 후에 살펴보니 마을 주민이 700명이 죽었습니다. 마을 사제는 죽음의 사자에게 왜 약속을 어겼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죽음의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100명밖에 죽이지 않았어, 나머지 600명은 염려로 죽은 거야”>

제 이야기를 늘어 놓다보니 오늘 편지는 조금 길어졌습니다.

서로 간에 거리 두기를 해야만 하는 이런 상황도 결국은 끝날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 가족들 그리고 안녕을 묻는 이웃들 사이에 걱정, 염려, 두려움 대신에 사랑과 이해, 용기와 희망이 넘쳐나는 이 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https://conta.cc/3bjFd44

걱정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사는 동네는 이른바 청정구역이었다. 미 동부 쪽에선 유이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없는 주로 메인 주와 델라웨어 주를 꼽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받은 경보 뉴스,  ‘왔다! It’s here.’ 였다. 내가 사는 동네 델라웨어 주에 첫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나왔다는 뉴스였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뉴스가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한 것은 감염자의 신분이었다. 그가 50대 델라웨어 대학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내 세탁소는 바로 델라웨어 대학교 바로 코 앞에 있고, 내 가게 손님들의 주 고객들 중 많은 이들이 대학교와 연관된 이들이다.

우리 부부는 이런 저런 염려와 걱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곧 이어진 뉴스는 델라웨어 대학이 오늘부터 봄방학을 앞당겨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작 반시간 정도 지났을까? 내 이웃 가게인  liquor store에 학생 아이들이 줄을 이어 술들을 사가고 있었다.

마침 세탁물을 찾으러 가게로 들어 선 경찰 하나가 한 말, ‘에고, 오늘 밤 애들이 저리 마시면 밤 근무 하는 이(경찰)들이 고생 많겠네!’

그리고 늦은 밤, 필라에 사는 벗이 전해 준 성철 선사의 말씀 하나.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안 나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안 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죽을 병이면  두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갈 거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