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 – 약속 3

(당신의 천국 – 여덟번 째 이야기) 

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출애굽기 20: 1, 공동번역) 

노벨상의 계절입니다. 이맘 때이면 늘 한국계 가운데 수상자가 나오기를 소원한답니다. 물리나 화학, 경제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문학부분에서 이제 한 명 정도 나올만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노벨상하면 유태계가 대세이지요. 현재까지 역대 수상자 가운데 유태계가 35%에 달한다고 하지요. 경제학상에 이르면 65% 정도 된다고 하고요. 

미국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들은 거의 유태계라는 말이 있을만큼 유태계의 힘은 막강하지요. 심지어 수년 전에 대한민국 서해 바다에서 일어났던 천암함사건에도 이스라엘 잠수함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그것이 사실인지 낭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세계에 그 존재를 알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부자들도 많고 천재들도 많은 유태인들의 교육과 축재 방법들에 대한 책들도 전세계적으로 넘쳐나지요.

 그게 엄청 부러웠던지 자칭 타칭 식자(識者)라고 하는 이들 가운데 우리 한국계를 일컬어 동양의 유태계라고 하는 이야기나 글을 말하거나 쓴 것을 듣거나 볼 때면 쓴 웃음을 짓곤한답니다. 

유태인들의 잘난 모습만 보면 결코 그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태인들의 숫자는 대략 1700만 정도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최근세사에서 나치정권 아래서 학살 당한 유태인들의 수는 600만 이라고 하고요. 

우리들이 지금 이야기하는 출애굽 시점인 3500여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태인들 가운데 똑똑하고 잘나고 떼부자였던 사람들의 수보다 수 천배, 수 만배, 아니 수 백만배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 땅이 아닌 떠돌던 땅에서 진짜 맥없이 이름없이 죽어 간 족속이 바로 유태인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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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붕 위에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이나 앤소니 퀸의 영화 “25시(The 25th Hour)를 보셨거나 기억하시는 분들은 그들의 모습을 그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똑똑하고 잘나고 엄청 떼부자이거나 맥없이 이름없이 죽어갔거나 그 모든 유태인들의 조상 히브리족과 야훼 하나님이 계약을 맺는 3500여년 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무릇 모든 약속이나 계약은 상대방이 있게 마련입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 혼자 하는 약속도 있고 계약도 있겠습니다만 이 경우는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거나 판단할 방법은 없는 것이지요. 다만 이 경우에도 자신을 객관화 시킬 수 있는 능력 여부에 따라 그 약속이나 계약 이행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여러 과학적 검증들이 확인시켜 주고 있지요. 

3500여년전 시내산에서 맺어진 야웨신과 히브리족 간에 약속 곧 계약은 오늘날 모든 계약이나 조약 또는 일반적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갑(甲)”과 “을(乙)”의 정의로  시작됩니다. 

계약과 약속의 한 축인 갑(甲)이 된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정의(定義)와 또 다른 한 축인 을(乙)이 된 히브리족의 정의가 계약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갑인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히브리족을 해방시킨 해방자이고요, 을인 히브리족은 노예였다가  갑에 의해 해방된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갑, 을 관계의 정의에 의해 맺어진 계약이 바로 십계명을 비롯한 하위의 율법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조상은 노예였다. 그리고 내가 해방 시켰다.”는 이 명제는 지난 3500여년 동안 유태인들을 지탱시켜준 지주인 것입니다. 

“내 뿌리는 노예였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께서 나를 해방시켜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는 고백은 우리들이 오늘 누릴 수 있고, 죽어서 가게 될 천국 곧 하늘나라에 이르는 구원(救援) 역사의 원형이 되는 고백입니다.  

유태인들이 자그마치 이천여년 동안을 남의 나라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도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첫번 째 요인은 바로 “을”이었던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45년 해방의 경험이 고작 70년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격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식민지 노예였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정당화하는 2013년 오늘날 교학사 역사교과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극히 일부 철딱서니 없는 부류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만큼  “을”의 처지를 간직하고 역사를 이어 온 족속이 바로 히브리족이랍니다. 

디아스포라 곧 흩어지고 나누어지고 퍼져나가는 자신의 고향 땅을 등지고 삶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의미의 이 말이 유태인들과 연결되어진 역사는 정말 오래된 것입니다. 바베론 포로 시대부터 따진다면 자그마치 2600여년이 넘은 일입니다. 

한민족과 디아스포라가 연결된 일은 고작 백 년 전일입니다. 간도로 나갔다가 조선족이 된 이들 블라디보스톡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어 고려인이 된 이들, 징용 등의 수단에 의해 재일동포되어 버린 이들 – 바로 일본에 의해 디아스포라가 된 한인들입니다. 

제 나라 땅에서 먹고 살 만한 처지에 있는 배 부른 놈들이 제 뱃속 더 불려보자고  식민지 식민이었던 제 조상의 역사를 뒤바꿈질하려는 소식들을 듣노라면 일제에 의해 디아스포라가 된 백만이 넘는 한민족들을 이렬로 세워 그 한가운데를  걸어가게 하고 싶습니다. 그 길을 걷는 그들에게  양 귀싸대기를…  

신(神) 앞에서 갑과 을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고  이해하고 어느 순간에도 잊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일이 바로 천국으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된다는 이야기의 시초쯤 된다는 이야기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제 그 약속의 뜻, 약속의개념이랄까 본질이랄까 아무튼 그 약속에 어떤 뜻이 숨어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