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Valley Garden 공원을 걷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나 싶더니 따스한 햇살 온기에 걸음을 늦춘 모양이다. 걷기에 딱 좋은 아침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조금은 어수선했던 한 주가 지났다. 충격에 놀란 허리와 어깨 등이 아직 풀리지 않아 약간의 통증을 이고 있다만, 생각할수록 그저 감사다. Thanksgiving Day를 함께 한 가족들 하나 하나 떠올려 감사를 이으며 공원길을 걸었다.

가게 이전 위치와 시기를 확정 짓고 그를 알리는 편지를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 대한 손님들의 답신들을 읽으며 감사의 크기가 더욱 커졌다.

어쩜 내가 살아 온 길이 오늘 아침 감사를 곱씹어 본 공원 길 아니었을까. 그저 무심하게 덤덤히 스쳐 지나왔던 그 길들이.

감사에.
11/25/2018

DSC04299A DSC04303A DSC04304A DSC04307A DSC04314A DSC04324A DSC04332A DSC04337A DSC04345A DSC04366A DSC04370A DSC04373A DSC04376A DSC04384A

관점에

해마다 이맘 때면 내가 읊조리는 시가 있다.  Shel Silverstein이 읊은 관점(Point Of View)이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주일만찬은 즐겁지 않다
부활절축제도 재수 없을 뿐
닭과 오리의 관점으로
그걸 바라 본다면.

한때 나는 참치 샐러드를 얼마나 좋아 했었던지
돼지고기 가재요리, 양갈비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식탁의 관점에서
식탁을 바라보기전까지는.

Point Of View

Thanksgiving dinner’s sad and thankless
Christmas dinner’s dark and blue
When you stop and try to see it
From the turkey’s point of view.

Sunday dinner isn’t sunny
Easter feasts are just bad luck
When you see it from the viewpoint
Of a chicken or a duck.

Oh how I once loved tuna salad
Pork and lobsters, lamb chops too
‘Til I stopped and looked at dinner
From the dinner’s point of view.
DSC04279A

관점 – 그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맞닿을 때 우린 가족이다. 그래서 감사다.

구십 대 내 아버지들과 어머니, 칠십 대 매형, 이 삼십대 내 아들과 며느리와 딸, 그리고 육십대 우리 부부가  함께 둘러 앉은 추수감사절 저녁 몇 시간.

한가지  말을 때론 엉뚱하게 서로 제 입맛에 맞게 이해하며 거기에 덧붙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이어 가곤 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은 가족이기에.

지난 한 해에 대한 감사와 함께 맞이 할 또 다른 한 해 동안 우리가 마주칠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기를.

비록 칠면조의 관점이나 식탁의 관점 에서라도…

시인이 읊은 슬픔이나 우울함이 아닌 그 관점이어서 더욱 좋고 즐거운….

가족의 관점으로…

2018. Thanksgiving Day 에

찰나에

아내의 비명과 함께 차는 빙 돌아 우리가 달려오던 쪽 갓길에 처박혔다. 순간 세상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엊그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였다. 그 찰나의 순간은 지금 느린 영상으로 기억속에서 되풀이 되곤 한다.

생각할수록 천만다행이었다. 십 수대의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들이 난리 법석을 부리고, 망가져 견인된 차의 형태에 비하면 우리 부부는 다친데 거의 없이 말짱한 편이기 때문이다. 이십 대 젊은 아이가 운전을 하고 제 또래 친구들이 함께 탄 차가 느닷없이 아내가 앉아 있는 내 차 passenger side를 들이 받았던 것인데, 그야말로 찰나의 행운으로 아내가 앉아있던 좌석 뒤편을 치는 덕에 크게 다치지 않았던 것이다.

놀라 잠 못 이룬 밤이 지나고  X-ray를 찍고 의사의 검진을 받고 처방전을 받고 무언지 모르게 어수선했던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 아침, 편안하고 긴 잠을 누린 아내와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다시 느린 화면으로 되돌려 이야기하며 감사를 되풀이 한다.

내일부터 내 일상이 아닌 일들로 조금은 번잡할 것이다. 보험회사 claim 조정관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고, 의사를 찾는 번거로움과 만나기 싫은 변호사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보험회사의 발 빠른 처리 덕에 임시 렌트카는 마련 하였다만 새 차를 구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로 잡힌 가게 건물주와의 마지막 협상과 메뚜기 한 철로 바쁜 가게 일들도 머리속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감사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대하여. 아내와 나는 일상을 벗어난 번거로운 일들을 누군가의 도움없이 치루어 낼 수 있는 건강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말 아쉬운 일이 하나 있다. 아들 며느리와 한 엊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까만 얼굴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내 며늘 아이가 한국학교에 등록한 것은 올 9월이었다. 템플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선생으로 일하고 있는 며늘아이는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등 몇 마디 한국말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와의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다. 그 아이가 엊저녁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대회에 참가했다.

뉴저지 해밀턴에서 열린 한국 재외동포재단이 후원하고 해밀톤 한국학교가 주관하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였다.

해밀톤 한국학교 교장인 시인 강남옥선생님도 모처럼 만날 겸해서 꼭 가겠노라고 약속을 했던 터였는데, 오고가는 길 세 시간 여 밤운전이 영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며늘아이가 한국말로 자신을 표현할 정도는 전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적은 영어  글을 한국 말로 옮겨 발음부호대로 외어서 대회에 나간 것이니, 솔직히 그 대회의 본래 뜻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만 내겐 아이가 참 대견한 것이었다.

그 아이의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저는 가족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남편과 가족들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한국말을 배우려고 합니다. 저는 남편과 가족들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어렵고 힘든 일들을 잘 이기고 견디어 왔는지를  배웠습니다. 제가 낳고 자란 문화와 환경도 비슷합니다. 제 부모님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잘 이겨 내어, 제가 오늘 여기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나라 한국에서 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잘 이겨낸 이야기들과 같은 것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많은 아픔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제일 큰 힘은 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렌트카를 빌려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았다.아들과 며느리, 모처럼 집을 찾는 딸, 부모님과 장인과 내 누이네들이 함께 할 Thanksgiving Day 저녁상을 위한 장보기였다.

사고 위로를 겸해 서울 처남이 보내 준 한국영화를 즐기면서 오늘은 그날 저녁상을 위해 느긋하게 만두를 빚을 것이다.

찰나에 대한 감사를 위해. 어쩌면 모든 것들이 찰나일 터이니.

시간 – 그 감사에

한 해의 마지막 주간,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아픔으로 혹독한 감기를 앓다. 이제껏 큰 병이나 잔병치레 없이 살아온 것 더할 나위 없는 감사이다. 하여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감기와 싸우는 아픔이 그 감사의 크기를 줄이지는 못한다.

이제 몇 시간 남지않은 2017년 한 해를 돌아본다.

가슴 한 켠에 아직도 가시지 않고 아릿한 아픔으로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지만, 대체로 참아내고 이겨낼 만한 일들 이었음에 감사하다. 곰곰 생각하니 돌이킬 수 없는 후회도 있다만, 잊을 만한 새로운 시간들이 찾아온다는 소망이 있어 감사하다.

여느 해 보다 유달리 장례식장을 많이 찾았던 한 해였다. 제 아무리 백세 인생을 외쳐도 유한함을 벗어날 재간은 없다. 나 역시 노년의 문으로 한발 내딛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만 할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밤, 체감온도가 화씨로 -10도, 섭씨로는 -23도 란다. 연일 매서운 추위가 이어진다.

가게 손님 가운데 Morris라는 양반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내 가게에 들어서면서 던지는 매양 똑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건 한국이지.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 한국전 참전용사이던 그는 지난 더운 여름날 어느 날 세상 떳다. 생전 그에게 한국은 언제나 1950년 겨울이었다.

어찌 Morris씨 뿐이랴! 나 역시 때때로 모국인 한국은 1970년대이거늘. 추억만으로는 결코 추위를 이기지도 못할 뿐더러 새 날을 맞지 못하는 법이다.

강추위 속에서도 새 날은 밝을 것이다. 이제 어제로 남을 2017년을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 새기는 한 그 역시 모두가 감사이다.

그 맘으로 내 가게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12-31-17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년의 구분은 있지만 시간이 빠르기는 매양 한가지입니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빠르기만 할까요?

지난 주간 제가 경험한 일인데 시간은 때론 정말 느리고 더딘 걸음으로 가는 때가 있답니다. 하루 해가 너무나 길게 느껴질 만큼 시간은 느리고 느리게 흘렀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심한 감기로 고생을 했었답니다.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 해를 보냈는데, 특히 날씨가 몹시 추웠던 지난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은 시간이 그렇게 느리고 더디게 흐르던지요. 다행히 어제부터 몸 상태는 좋아졌고, 일요일인 오늘과 새해 첫날인 내일 쉴 수 있어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흐를 것 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빠르고 느린 속도의 느낌은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요.

때론 더디고 느리게 지나갔지만 대체로 빠르게 흐른 지난 한 해, 제 세탁소 손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제 가게 최고령 손님이셨던 할머니는 지난 봄 97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곳은 한국이지. 그땐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할아버지도 지난 여름에 돌아가셨답니다. 매 주 세탁소를 찾아 오시다가 은퇴 이후 아주 이따금 찾아 오시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 동네에 이사해 오신 젊은 부부들도 있고, 부모 손 잡고 오던 어린 아이가 훌쩍 큰 어른이 되어 단골 손님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때론 “언제부터 이 세탁소가 여기 있었느냐?”고 묻는 새 손님들도 있습니다. 제가 “1990년 부터…”라고 답을 하면 “이 동네에서 그 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이 세탁소는 처음 봤다.”고 대답하는 손님들도 있답니다.

한 해가 저무는 순간, 제 세탁소에서 만난 얼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저 모든 분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맞이하는 2018년 새해의 시간들 역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간들이 저나 당신에게 소중하고 복된 시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시간은

– 헨리 반 다이크

기다리는 이들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이들에겐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이들에겐 너무나 길고
기뻐하는 이들에겐 너무 짧다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겐
그렇지 않지


It’s the morning of the last day of this year. Though time has divisions like day, week, and year, time is flying by as ever. But, is time really going by so fast all the time?

As I experienced last week, I think that sometimes time goes by so slowly or at a slow pace. Last week, I felt that time went by so slowly to make me feel that a day was too long.

I suffered from severe cold last week. As I could not afford to have days off, I had to work at the cleaners. Especially on Thursday and Friday when it was very cold, I felt that time was passing by so slowly. Fortunately, I began to feel better as of yesterday. As I can take rest today and tomorrow, New Year’s Day, I think that time will fly by fast again.

Though time passes by without bias and without favor to anybody, the feelings of the speed of time may be different according to the conditions in which one might be.

Sometimes time flew by fast and sometimes it passed by slowly this year. But, overall, I could say that this year passed by fast. I’m thinking about my customers this year.

The lady who had been the oldest customer passed away at the age of 97 in the spring. The gentleman who around this time of year always said, “It is not cold. The really cold place is Korea. When I was there, it was even colder than Siberia!” He passed away in the summer. He was a Korean War veteran. Some customers who used to come every week began to come less often after they retired.

And then, as new customers I met young couples who had moved to the community. I have regular customers who used to come to the cleaners with their parents but now have grown up to be adults.

From time to time, new customers asked, “Since when has this cleaners been here?” When I answered “Since 1990,” some of them were surprised and said, “Though I have been living here even before 1990, I didn’t know that you are here.”

At the moment when 2017 is coming to a close, I’m recalling the faces of those whom I have met at my cleaners this year. Simply, I’m thanking all of you and I am deeply grateful to you.

In the New Year, 2018, time will fly by fast sometimes and go by slowly sometimes. However, I wish that all the time will be precious and blessed to you.

From your cleaners.

Time is.. .
– Henry Van Dyke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not.

가을 산책

칠순 나이에 산행을 즐기시는 이길영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었다. 히말라야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신 분에게 사실 말도 안되는 부탁을 드린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산행은 좀 버거운 듯하니 이즈음에 걷기 좋은 산책코스 한 곳을 추천해 주십사 하고 말이다. 가급적 왕복 하룻길이면 좋겠다고 덧붙였었다.

이선생님은 French Creek State Park에 한번 가보라고 즉답을 해주셨다. 지도를 검색 해보니 집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여서 솔직히 좀 실망이었다. 늘 보던 동네 풍경을 벗어나지 못한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을 나선 후 약 10분쯤 지나자 네비게이션은 평소 전혀 다니지 않던 길로 접어 들라고 명령하였다. 그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이 선생님에게 대한 감사가 시작되었다. 가을걷이에 들어선 옥수수밭들과 목장 풍경들이 우리 부부의 시선을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가을 아침 한 시간여 드라이브 코스 눈요기만으로도 오늘 산책길 추천에 대한 감사는 모자랄 것이다.

French Creek State Park 호수를 끼고 돈 산책길과 덤으로 즐긴 사과 따기, 산속에서 만끽한 비빔밥, 돌아오는 길에 즐긴 샤핑까지, 오늘 하루에 대한 감사는 이 치부책에 남겨 갚을 날을 꼽아본다.

DSC03008DSC03024DSC03036DSC03033

DSC03038

DSC03003

1022171715b

노동과 쉼

‘노동’과 ‘근로’ – 말 하나 어찌 쓸까로 여전히 다투고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오랜 다툼이다.

그런 다툼을 일찌감치 세계 노동자의 날인 May Day를 버리고 9월 첫 월요일을 Labor Day로 정리한 미국은 영악스럽다 할까?

아무려나 부지런히 일한다는 근로 보다야 먹고 살기 위해 들여야만하는 정신적 육체적 노력으로써의 노동이 썩 적합하지 않겠나? 그래야만 ‘쉼’의 뜻이 깊어지는 법. 그게 성서가 쓰여진 까닭이기도 할 터이고.

어찌 부르고, 어떤 날을 기념하던 앞서 고민했던 이들 덕에 연휴를 즐겼다.0903171913ab

0903171916ba

0903172100ab

좋은 친구들과 밤바람 맞으며 맛난 것으로 배를 채우고, 그저 일상의 이야기로 편안함을 나누며 쉼을 만끽했다. 때로 쉼에 있어 아내의 흥은 필요충분조건이다.

KakaoTalk_20170904_175345005A

그 사이 아들 내외는 홀로이신 제 외할버지와 잠시 시간을 함께 했노라 했고, 예비사위는 딸아이를 위해 깜작쇼를 펼치며 즐겁게 했노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연휴 쉼을 정리하는 시간, 알량한 찹쌀떡과 아이들의 대견한 소식으로 노부모와 장인에게 건강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아직은 노동이 필요한 내일을 위해!

여유(餘裕)

모처럼 맞은 연휴, 습관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서성이다가 창문을 여니 새소리와 풍경소리, 후두둑 떨어지는 비소리로 집안에 여유가 가득찬다.

무릇 신앙이란 치열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 역시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니, 때론 소소한 감사에 취해도 족하다. 아침 뉴스 속 세상사가 온통 옳고 그름의 싸움처럼 다루어지지만, 사람살이가 매양 그렇게 치열한 것만은 아니다.

오늘 아침 내가 누리는 이 여유는 아마 엊저녁에 함께 시간을 보낸 벗들에게서 비롯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에서 누리는 소소한 감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신을 확인하고 고백했다. 한 주간 부딪혔던 일상의 치열함은 각자의 몫일 뿐, 서로가 털어놓은 아주 작은 감사에 모두가 여유로웠다.

그 여유로 우리는 이웃 마을 필라델피아로 진출하여 식도락을 즐겼다.

5-28-17

1923년에 개업해 4대 째,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deli sandwich 식당의 sandwich 크기는 어마무시해서 허리띠를 풀고 즐겨야만 했다. 음식 뿐만 아니라 주인이나 종원업, 인테리어 까지 지나온 세월만큼 여유로웠다.

느긋한 포만을 즐기며 가는 비 내리는 도시의 밤거리를 걷는 재미를 누려본 적이 언제였던지 가물거렸다.

엊저녁 포만이 이어져 여유로운 아침에 장자 한편을 읽다.

무릇 눈과 귀를 밖이 아닌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의 작용을 안이 아닌 밖으로 쏠리게 하면 귀신마저도 머무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는 두말 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夫徇耳目內通(부순이목내통) 而外於心知(이외어심지) 鬼神將來舍(귀신장래사) 而況人乎(이황인호)

 

거한 생일상

냉이무침, 가지무침, 가지튀김, 사골 도가니탕, 녹두빈대떡, 아구찜, 마파두부, 깐풍기, 깐쇼새우, 유산슬, 난자완스 – 지난 주말에 제가 만들었던 요리들입니다. 요리의 완성도나 맛에 대한 평가는 접어 두고, 제 손으로 만든 음식들로 누군가를 대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은 주말이었답니다.

이따금 음식 만드는 일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한 오륙 년 전부터 입니다. 누가 시켜서는 아니고, 그저 제 스스로 내켜서 시작한 일이랍니다.

지난 주말에 식탁에 둘러 앉은 이들에게 한 오륙년 전에 제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연유를 설명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며 웃음을 끊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제 두아이들 이었답니다. 아들과 딸아이는 아마도 애비가 자기들을 위해서, 아니면 엄마를 위해서 음식을 시작한 일이거니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깊은 뜻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고, 입이 짧은 제 식성 때문이었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내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식투정이나 부리는 사내는 아니었답니다.

아마 그 무렵의 일이었을텐데 어머님께서 이따금 만들어 보내주시는 음식들에서 제가 어릴 적 느꼇던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지 못하곤 하였답니다. 어머니께서 늙으신 탓도 있겠지만 제 입맛이 그만큼 변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내의 손맛에 만족하기에는 제 입맛은 늘 까탈스러웠답니다.

그러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 스스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본것이 오늘에 이르른 것이랍니다.

제가 음식 만드는 일을 크게 고무시키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을 겁내지 않게 해 준 이들은 다름아닌 제 아내와 아이들이랍니다. 식구들이 던지는 “맛있다”는 한마디에  설거질도 당연한 일이 되곤 하였답니다.

그리고 한 달포 전 일이랍니다.

부모, 처부모를 비롯하여 누님댁, 여동생네, 조카들 등등 대가족이 가까이 모여 살고 있는 덕에 가족 대소사가 끊이지 않는 집안이랍니다. 이런 연유도 있거니와 제 별난 성격 탓도 한 몫하여 이제껏 제 생일상은 차려 본 적이 없답니다. 해마다 아내가 던지는 “어떻게?”하는 물음에 “그냥 넘어가!”하는게 제 대답이었답니다. 비록 환갑, 진갑 다 넘긴 나이지만 “아직 애인데… 무슨 생일상을…”하며 넘어가곤 했답니다.

그러다 달포 전에 제가 아내에게 던진 소리랍니다.

“생각해 봤는데….이번 내 생일은 내가 상차려서 부모님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어.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나이로 모두 구순을 넘기셨고, 장인도 그만 하시고, 장모도 병 잘 이겨 내시고 있고…. 나도 이즈음엔 늙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고….. 모두들 아직 건강할 때…. 내가 만든 음식으로 상 한번 차려서 보내는 것도 뜻이 있겠다 싶어서….”

IMG_4889a아내는 스스로에게 모험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건만 흔쾌히 동의를 해 주었답니다.

그래 토요일에는 처부모님과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제 생일상을, 이튿날인 일요일에는 부모님들과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들 내외분들을 모시고 제 생일상을, 그 다음날엔 형제들과 함께…. 그렇게 거한 생일을 보냈답니다.

이런 저런 뒷일들을 도와준 아들딸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평소 교회도 잘 나가지 않는 저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저희 가족들을 위해 귀한 시간 내주신 목사님들 내외분께 감사를…무엇보다 진짜 모처럼의 효도를 흡족하게 즐겨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한 삼주 동안 독감으로 고생을 했었는데, 때 맞추어 감기도 떨어져 계획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 주신 제가 믿는 신(神)에게도 감사를…

(딸아이가 일주일이 지나서야 보내준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부모님들이 아니라 제가 좋았나봅니다.)

세월 – 그래도 감사함에

어제 손님 가운데 올해 일흔 네살인 유태계 Rose할머니와 나눈 이야기랍니다. 은퇴 의사인 남편과 늘 함께 오시곤하는데 어제는 혼자였답니다. 성탄 인사로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였지요.

“나이따라 세월의 속도가 달라진다더니, 60 넘고서부터는 시간이 거의 100마일로 달려가는 것 같아. 그 속도 보다는 좀 느리지만 자꾸 몸도 줄어들고 말이야. 삼년전에 왼쪽 다리 수술하고는 한쪽이 짧아졌는데… 우스운 소리같지만, 오른쪽 다리로 서서 보는 세상과 왼쪽 다리로 서서 보는 세상이 그게 몇인치 차이뿐이지만 달라보여. 그래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지. 내가 지금 걸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야.”

몇 해전 까지만 하여도 하누카 인사를 내세운 고집스런 할머니와 성탄인사를 나누며 든 생각은 바로 세월이랍니다.

2015년을 뒤돌아보는 성탄 아침입니다.

이맘 때면 늘 그렇듯 아쉬움들이 먼저 다가옵니다. 올해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일들, 끝내 포기하고 만 일들을 따라 떠오르는 아쉬움들입니다.

그 아쉬움들을 감사함으로 덮을 수 있는 생각은 누가 무어라해도 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때론 아슬아슬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네 분 노인들이 모두 올 한해를 무탈하게 지내신 것이 큰 감사입니다.

90대로 진입하신 두분(제 부모님), 90대를 코 앞에 두신 장인, 80대를 손에 잡으려는 장모 – 이렇게 네 분이랍니다.

Tom's beer1-12-24-15제일 막내격인 장모가 이즈음 재발한 암과 씨름 중이신데, 아주 밝게 잘 견디어 내시는 모습에 감사하답니다. Chemoembolization(색전술) 치료중이신데 함께하는 아내나 장모나 늘 밝은 모습이어서 감사의 크기가 큽니다.

모처럼 집에서 함께하는 아이들과 맛난 것 사먹으라고 쌈지돈 내미시는 제 부모님들에게 느끼는 감사의 크기 역시 그 못지 않답니다.

5주 동안 숙성시켜 어제 아침에 받아낸 맥주에 그야말로 한정판 레이블을 붙여서 성탄선물을 건네 준  Kennedy씨의 맥주는 오늘 저녁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할 만찬에서 나눌 요량이랍니다.

저 역시 100마일의 속도를 느끼는 세월이지만 오직 감사함으로.

2015년 성탄 아침에.

초복(初伏)과 감사

내일이 초복이랍니다. 여름 한철 복더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델라웨어 날씨는 얼추 서울과 비슷하답니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봄, 가을은 짧고, 바다가 가까워서 여름철 습도도 높은 편이랍니다.

이즈음은 찌는 날씨의 연속이랍니다.

cats그래도 복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가을이 이미 오기 시작했다는 전주이기도 합니다. 초복은 하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미 낮은 밤에게 쫓기기 시작했다는 말이고요, 말복이 지나면 입추이니 여름의 기승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몸보신용 음식들을 챙기는 오랜 관습들이 있지요. 삼계탕에서 시작해서 보신탕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따라 기호에 맞는 여름 보양식들을 찾기 마련인 때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사람들이 이맘때면 즐겨찾는 음식이 있답니다. 바로Maryland Crabs 또는Blue Crabs이라고 부르는 게찜요리랍니다.

요리방법이라야 별게 없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게들을 찜판에 올리고 그 위에old bay seasoning이라는 양념을 듬북 뿌려 찜통에 쪄낸 것입니다.

마침 모처럼 아들 딸과 함께 식사를 나눌 시간이 있어(이젠 아이들이 큰 맘 먹고 동시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는 일은 매우 드물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게찜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답니다.

또 한해의 복날들을 건강하게 보내시는 아버님과 어머니께서 저희 부부와 아이들에게 주신 말씀이랍니다.

“그저 감사하며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