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게

말이 좋아 자영업이지 내 식으로 부르자면 그저 구멍가게 주인으로 한 해를 온전히 마감하는 일은 지난 해 세금보고 양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느끼는 일이지만 내 삶이 숫자로 정리되는 모습은 늘 초라하다. 그렇다 하여도 물론 내 삶이 결코 초라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릇 삶이란 숫자로 재단되는 것만이 아니므로.

무엇보다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내가 사람임을 늘 깨우치게 하는 이웃들이다. 그저 감사다.

오늘 아침 새까맣게 잊고 사는 월력(月曆)을 일깨워 알려준 보름달처럼 이따금 눈과 마음을 환하게 열어 주는 자연 또는 신(神)에 대한 감사의 크기는 가늠조차 못한다.

하늘에 지는 달과 뜨는 해를 가장 높은 곳에서 맞이하고 보내는 것은 아마 새들일지도 모른다.

때로 새들을 폄하했던 내 우둔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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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에

<어느새 이월 첫 주일. 생각 하나, 가게 손님들과 나누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그저 바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새해 계획이랄 것도 없이 일월 한 달을 보냈답니다.

모처럼 엊저녁에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지난 한 해와 올 한 해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뉴스들도 찾아 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 하나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제 세탁소에 들어오는 세탁물 중 가장 많은 숫자의 단일 품목으로는 남성 비지니스 셔츠가 단연 으뜸입니다.

그런데 손님마다 맡기는 셔츠의 모습들이 다르답니다. 남성 비지니스 셔츠에 달린 단추들은 보통 9개에서 15개 정도인데 가장 일반적인 셔츠에는 11-12개 정도의 단추들이 있답니다.

어떤 손님들은 셔츠에 달린 단추들을 모두 잘 채워서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단추들을 모두 풀어서 맡기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셔츠 앞 단추 맨 위에 한 두개를 푼 뒤 셔츠를 완전히 뒤집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도 계시고, 셔츠 단추를 모두 다 채운 뒤 새 것처럼 잘 접어서 맡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제 입장에서는 단추를 모두 풀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이 제일 반갑답니다. 왜냐하면 셔츠를 다릴 때 반드시 단추가 다 풀린 상태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셔츠를 빨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셔츠의 모든 단추를 푸는 일이랍니다. 그러니 만일 셔츠 단추를 모두 채운 셔츠 10장을 세탁하기 위해서는 세탁 전에 단추 100개 이상을 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엊저녁에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이란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 오면서, 모든 손님들이 셔츠 단추를 모두 풀어서 셔츠를 맡긴 날이 단 하루도 없듯이, 모든 손님들이 모든 셔츠 단추를 다 채워서 셔츠를 맡긴 날 역시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이랍니다.

대다수의 손님들은 그저 제가 일에 지치지 않을 정도로 목 단추 두 개, 소매 단추 두 개 정도를 제외하곤 다 풀어서 맡기신답니다. 지난 30년 거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이랍니다. 사는 게 다 그런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답니다. 내가 편하고 좋은 쪽 일들이나, 내가 하기 싫고 불편한 일들이나 모두 늘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확율 보다는 대개 내가 마주치는 일들이란 그저 불평도 만족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들의 연속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남거나 오래 기억하는 일들이란 아주 좋은 일이나 아주 나쁜 기억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 끝에 다다른 생각이랍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 하루 일상에 감사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워 본 올 한 해 제 계획이랍니다.

늘 감사가 넘쳐나는 2월 한 달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It seems like the Year 2020 started just a few days ago, but it is already February. I was simply busy every day and I had to deal with one thing and another. So I spent January without making New Year’s resolutions.

After a while, the other evening, I thought about the past year and this year with a somewhat relaxed mind and even looked for the news in which I was interested.

Then, one interesting thought came across my mind. I’d like to share it with you.

Among the items which were brought into my cleaners, a men’s business shirt is decisively at the top in terms of quantities.

But, the ways in which customers drop them off are various. The men’s business shirt has buttons from 9 to 15, and typically about 11 or 12 buttons.

Some customers bring shirts with all the buttons fastened and some do so completely unbuttoned. Some others bring shirts which are inside out with only one or two front top buttons unfastened. Some fasten all the buttons, fold them well like brand new shirts and drop them off for cleaning.

Those who undo all the buttons are my favorite customers. That’s because buttons must be unfastened in order to press shirts. The first thing that I should do before washing shirts is to undo all the buttons. So, if I process 10 shirts of which all the buttons are fastened, I should have to undo more than 100 buttons.

The interesting thought which had flashed across my mind the other day was that there had never been a day in which all the shirts were unbuttoned and also not a single day in which all the buttons of the shirts were fastened for my thirty-year-long cleaners’ life.

Most customers brought unbuttoned shirts except a few buttons on collars and sleeves, but not enough to make me too tired. It seems that it has been pretty much like that for the past 30 years.

It led me to an idea that life might be like that, too. Though we could face, anytime in life, the things which we feel good and comfortable in doing or the pesky things which we don’t like to do, the things that happen to us most of the time might be a series of simple everyday life events, without complaint or satisfaction.

However, the things which stayed long in our minds and memories might be ones which were extremely good or really bad. Just my thought.

It ultimately led me to the end. I should feel gratitude for simple everyday life. That became my New Year’s resolution.

I wish that you’ll feel overflowing gratitude in February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저녁길에

매사 그저 덤덤해 지는 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영락없는 노인이다. 성탄, 연말, 연시,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주말 등등 시간을 나누는 일에 그저 덤덤하기에 해 보는 소리다.

아내와 함께 해가 지는 공원길을 걷다.

우리 부부는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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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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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들은 지는 햇빛을 온 몸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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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모두가 일상적인 매 순간 순간들이 엄숙한 시간들인 동시에 덤덤한 시간으로 새길 수 있다면 나이 드는 일이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또 한 해를 보내는 저녁길에서 곱씹어 보는 감사가 크다.

사는 기쁨

한 해 마무리를 재촉하는 주일 아침에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 한 통 띄우다. 어쩌면 내게 보낸 편지일지도.


어느새 12월 중순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새로운 꿈들을 꾸어 보는 때입니다.

연 이틀 비가 내리던 어제 오후, 가게가 한가해진 시간에 잠시 저의 한 해를 돌아보았답니다. 그렇게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 되여 본 말은 그저 감사랍니다.

올 한 해 가게 자리를 옮겼고 그 과정에서 여러 걱정들이 있었지만 그 걱정들이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가 첫째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제껏 살아오며 제일 많이 병원을 드나든   였지만저희들을 그렇게 병원을 찾게 했던 노부모님들이 오늘도 살아 계심에 대한 감사가 둘째입니다.

카운터에 놓인 장미 화분을 보며 든 아내와 제 아이들에 대한 감사가 세번 째입니다. 며칠 전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제 딸아이가 보낸 장미 화분이랍니다.

그 감사에 대한 생각 끝에 이어진 것은 아쉬움입니다. 올 한 해 이루지 못한 것들, 계획과 엇나간 일들, 여전히 이어지는 이런 저런 불안과 아픔들입니다.

그리고 어제 늦은 밤, 새로 산 시집 시들을 읽다가 번쩍 눈이 뜨이는 즐거움을 맛보았답니다.

<내비게이터를 꺼버려/ 대충 방향 잡고 돌아 오는 길/ 도로가 한갓지다. / …  / 하늘에는 멎은 듯 흐르는 넓은 구름 강물/ 있다가 없다가 다시 있는 것들의 모습

이왕 길을 벗어난 김에/ 물새들과 알 듯 모를 듯 같이 걷는 해변, 번지는 황혼/ 금빛 우려낸 빛이 사방에 어른댄다./ …  / 하늘에 희한하게 하얀 반달 하나/ 찾으면 있고. 않으면 없고.>

황동규라는 시인이 쓴 ‘내이비게터를 끈 여행’이라는 시의 일부랍니다. 시인의 나이 올해 여든 한 살인데 아직도 왕성히 시를 쓰고 있답니다.

그가 시집을 내며 하는 이야기랍니다.

<시를 좇아가다 보니 바야흐로 삶의 가을이다. 주위에 자신의 때깔로 단풍 들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가득 찬 잔만큼 아직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 한다.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

이제 올 해도 겨우 보름 남짓 남았습니다. 뭐 크게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올 한 해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하는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Mid-December came so soon. It is a time to wrap up a year and to dream a new dream for a new year.

Yesterday afternoon when the store was quiet and while the rain continued for two consecutive days, I tried to look back over the year. It was just gratitude which I reiterated and listened to myself, while I was looking back on the year 2019.

This year, I moved the store and had many worries in the process of moving. But, it was like I cried before I was hurt. To get to realize it was the first gratitude.

Though my wife and I had to go to the hospital this year more often than any other year because of my father-in-law and my parents, the gratitude for their being alive today was the second.

The third was the gratitude for my wife and children, which came across when I looked at the pot of roses on the cleaners’ counter. It was what my daughter had sent to my wife as a birthday gift the other day.

What followed after the gratitude was a sense of regrets and frustration, because of the thoughts about things to be done but unfinished, things that went awry, and this and that anxiety and suffering.

Then, last night, while I was reading a new book of poetry which I had gotten recently, I enjoyed an eye-opening happiness.

<Turning off the navigator/I took the course roughly, returning/the road was deserted./… /A wide river of clouds which looks to halt but flows in the sky/the look of things which appear, disappear and appear again.

Once straying from the right path/the beach on which I walked with waterfowl as if we both knew or not, spreading twilight/the lights brewing golden light glimmered everywhere./ … /The strangely white half-moon in the sky/was there when I looked for it and was not there when I didn’t>

It is a part of a poem, “A Trip with the Turned-off Navigator,” which Dong-gyu Hwang wrote. Though he is eighty-one years old, he is still very active in writing poetry.

He wrote in the preface of the book:

<As I have followed the poetry, I now stand at the autumn of my life. Those who have turned or are turning into their own colors around me are beautiful. A still-some-left glass makes my mind thrilled as much as a full glass. Please forgive me for this ‘joy of living’ which is small and itchy like a bug bite.>

Now only about half a month is left before the end of this year.

I wish that you will have time in which a still-some-left glass makes your mind thrilled for the remaining days of this year, if not life itself.

From your cleaners.

흐르는 시간에

긴 한 주간이 지났다.

하루와 주간과 월, 년이 구분되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저 구분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 뿐이라면 삶이 얼마나 피곤할까? 게다가 오늘 밤은 시간이 바뀌는 날, 한 시간 더 잘 수 있다는 여유까지 누리는 이  순간으로 하여 그 긴 한 주간의 피로를 던다.

지난 일요일, 온 종일 내리는 가을비에 집에 갇혀 어머니 흉내를 내 볼 요량으로 녹두 빈대떡을 부쳤다. 녹두 빈대떡 몇 장 들고 부모님을 찾았는데 어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셨다. 맥없이 누워 계시던 양반이 나를 보더니 일어나 서랍 속 자잘한 물건들을 내어 미셨다.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이런 저런 패물 들에서 동전에 이르기까지 내게 내어 미시며 ‘이젠 정말 끝이다. 이건 다 내겐 필요없다. 니 딸에게 주렴.’

이튿날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 드렸다. 누나와 막내와 나는 번갈아 밤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리고 어제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지금 당신께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맘껏 누리고 계시다. 이즈음 들어 부쩍 기복이 심하시지만 그래도 지극히 건강하신 아버지가 정말 고맙다.

주로 어머니를 보살피는 누나가 내게 건냈던 말이다. ‘얘! 어머니는 그저 니 얘기만 하신다. 어쩜 그렇게 아들 뿐이시다니?.’ 엊저녁 내가 한 대답. ‘그려 그게 내겐 또 벽이라우!’

그리고 오늘, 양로 시설에 계시는 장인의 생신. 아내와 내 아들 며느리 정성 덕인지 장인 어른 최근 들어 최고조로 몸과 맘이 지극히 정상이셨다. 웃고 울고 모처럼 한 순간 장인이 살아 있던 순간이었다.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 목사 기도빨이 생각보다 쎈게 아닐지? 우리 부부가 이목사님 내외를 비롯한 그 교회 교인들에게 진 빚이 정말 크다.

솔직히 나는 예수쟁이지만 교인은 아닌데… 이럴 때 내 미안함이 정말 크다.

툭하면 빼먹지만 그래도 한국학교에 등록해 한글을 배우고 있는 며늘 아이가 쓴 카드를 보다가 얻는 기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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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되어 있던 아내와 내 건강 진단까지 겹쳐 몹시도 길고 길었던 한 주간을 보내며.

그래 또 사는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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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어머니는 늘 부지런하셨다. 추석이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전, 이 맘 때면 방문 창호지와 문풍지를 가셨다. 어머니가 연탄광을 정리하고  김장 독을 점검하는 일이 끝날 때이면 김장철이 다가오곤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네 남매 계절 옷정리도 오로지 어머니 몫이었다

딱히 내 어머니를 흉내 내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처럼 부지런 하지도 않거니와 아버지처럼 꼼꼼하지도 못한 내가 어제 오늘 가게와 집, 계절 정리와 맞이로 시간을 보냈다. 애초 아내와 나는 어제 근사한 저녁을 보낼 요량이었다. 시간 계산이 오락가락하시지만 여전히 부지런하신 어머니 가 어제 급작스럽게 우리 부부의 계획을 바꾸어 주셨다.

그렇게 주말 이틀을 보내고, 일요일 늦은 밤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그저 감사다. 그래 흐르는 눈물이었다. 모니터에는 한국 서초동에서 있었던 촛불집회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뉴스들은 반반의 갈등을 부추기고, 원래 그런 이들은 그렇다 치다라도 이른바 진보연하던 이들 중 몇몇은 언제나 그렇듯 제 얼굴 드러내는 일에 충실하고….

그러나 역사란 늘 즉흥과 저항을 무기로 한, 그저 하루 걱정에 매인 사람들의 외침에 따라 흘러 왔다는 생각은 내 눈물 끝에 얻은 생각이다.

그래 또 감사다.

아침나절 내 가게 손님들에게 이 계절에 대한 감사 편지를 보냈더니 손님 하나가 제법 긴 답신을 보내와  또 눈물이다.

그의 말이다.

“너의 계절에 대한 감사에 꼭 덧붙일 또 다른 감사가 있다. 최근 몇달 동안 우리들이 살고 있는 Newark 날씨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더웠다한들 남쪽 볼티모어나 워싱톤 만큼 덥지 않았고, 여타의 지역처럼 허리케인 토네이도 홍수나 폭우, 거센 바람들도 겪지 않았다. 이건 사계절을 누리는 감사에 마땅히 덧붙일 일이다.”

그래 무릇 감사란 바꾸어진 환경에서 드릴 수 있어야 참 감사다. 내가 사는 NewarK이 볼티모아나 워싱톤 보다 더워도, 홍수 폭우 토네이도 거센 바람을 겪어도… 사계절을 누릴 수 없어도…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부질없던 때는 없다. 그렇게 모든 감사가 부질없던 때는 없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은 늘 자신을 뺀 가족 사랑이었으므로.

가족에서 이웃으로 뻗어 나가는  촛불에 흐르는 눈물은 그저 마땅할 뿐.

어제 함께 못한, 지금 가까운 이웃들 사진을 보며 눈물을 그치고 웃음을.

아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해 뜨는 아침이 감사했던 날들은 얼마나 될까?

토요일 아침, 일터 가까이 제약회사 굴뚝 연기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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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침

아침부터 찌는 날이다. 한 주간이 이리 긴 것은 딱히 날씨 탓만이 아니다.

아내는 의사가 minor surgery라고 했다고 거듭 강조했었다. 그저 간단한 수술일 뿐이라는 말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루 일과 같은 것이거니 했었다.

주초,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 가기 전에 간호원은 아주 간략하게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아주 간단한 어깨 수술로 마취 후 한 시간 정도 내외의 수술 시간과 30분 정도 회복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수술 후 집도 의사가 수술 결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라고…. 간호원의 설명을 듣는 시간에 아내는 이미 마취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넉넉잡아 두 시간이라…’ 나는 대기실에서 나른한 낮잠에 빠졌었다. 수술실에 들어 간 후 한 시간이 지나면서 연신 시계에 눈이 갔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는 앉아있지 못하고 오줌 마려운 노인이 되어 엉거주춤 대기실 안에서 서성거렸다.

두 시간 반쯤 되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 온 의사는 말했다.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12시간 정도는 수술 후 통증이 이어질 것인데, 약이 처방될 것이고… 마취에서 깨어날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릴게고…’ 준비된 대본을 읊조리 듯 이어진 그의 말이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내 이름이 호명되어 들어 간 회복실에서 만난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었다.

최근 이년 사이에 수술 후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전에 보았던 장모, 장인 그리고 어머니의 낯 선 모습처럼 아내가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모두 minor surgery라는 말에 대책없이 느긋했던 내 탓이었다.

긴 한 주간 시간에 비해 다행히 아내의 회복 속도는 빠르다.

이른 아침 찜통 더위를 예고하는 아침풍경이 반가웠던 까닭이다.

어느 하루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엊그제 딸아이가 던진 물음이다.

어제 낮에 내 일터로 전화를 한 장인은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뭔가 좀 이상해. 여기 반란이 일어난 거 같아!.’ 장인이 장기 요양원에서 꼼작 않고 누워 계신지는 이미 몇 달이 지났다.

엊저녁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귀가 전화 인사를 드리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너 오늘 일 안나갔었니? 아까 너희 집에 들렸더니 네 차가 집 앞에 있더라.’ 어머니 역시 누군가의 도움없이 집을 나서지 못하신지 여러 달 째이다.

장인이나 어머니나 이즈음 정신이 많이 오락가락 하신다. 때 되어 겪는 수순이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아버지도 기분이 크게 오락가락 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연유로 딸 아이에게 한 번 간다 간다 하면서 미루다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게 엊그제였다. 모처럼 나선 길에 아들 내외가 함께 했다. ‘올라 가마!’라는 내 말에 딸아이가 ‘어디 가고 싶은데 있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교회엘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들 내외가 다니는 교회엔 가본 적이 있지만 딸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대핸 그저 아이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멋진 brunch에 이어진 교회 안내, 예배 후 Brooklyn Bridge 걷기와  인근 상가와 강변 안내 그리고 풍성한 저녁 식탁, 오가는 교통편 까지 딸아이의 준비와 배려는  매우 세심하고 고왔다.

서울내기인 내게 도시는 어느새 낯선 곳이 되었다. 높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움 속에서 졸음이 자꾸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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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곳엔 어디나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에 녹아 있는 아름다움도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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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도시에서 우리 가족이 저녁상을 함께 나눈 곳은 ‘초당골’이었다. 딸아이는 그 ‘초당골’에서 내게 물었었다.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소주 한 잔에 풀어진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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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외가 다니는 교회나 네가 다니는 교회 예배 형식과 분위기는 솔직히 아빠 취향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정말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 여러가지들을 인정하면서 자유로워지는게 진짜 믿음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주일 하루 예배가 일주일 동안 너희들이 사는 일에 기쁨이 된다면 좋겠어. 그런 뜻에서 오늘 참 좋았어.’

흔쾌히 하루를 함께 한 아들과 며느리,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여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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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웃음은 아내로 부터 이루어졌던 하루를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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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모처럼 느긋한 주일 아침이다. 내 맘을 아는지 시간조차 느리게 흐른다.  간만에 넉넉한 마음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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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여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모처럼 아주 느긋하게 여유 있는 일요일 아침을 맞는답니다.

Long term care 시설에 계시는 장인이 병원 응급 환자로 옮기셨다 딱 일주일 만인 엊그제 상태가 좋아져 다시 시설로 돌아 오셨답니다. 어제는 딱 석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가 일주일 간 의 재활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셨답니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가게 이전과 마무리를 하느랴고 한 달여 매우 바빳었답니다.

이제 두 노인들도 제 자리를 찾았고, 가게 이전으로 어수선했던 제 일상도 이젠 거의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맞는 일요일 아침에 누리는 여유에 정말 감사한답니다.

한 열흘 전 아침, 어머니 병실에서 밤을 지내고 가게 문을 열 때, 문득 눈에 들어 온 하늘을 보며 떠오른 생각들이 있답니다. 삶의 아름다움과 일상에 대해 늘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답니다.

누구나 살며 아프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과 이웃들 모두 겪는 일입니다. 그 모든 삶의 과정들을 아름답다고 새기고 곱씹어 보는 것은 바로 제 자신이라는 생각을 아침 하늘이 제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또 다른 생각 하나는 매일 똑같은 생활, 때론 지겹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그 똑같은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생각해 본 것이랍니다.

그날 아침 하늘 풍경에 감사하답니다.

온 천지가 봄입니다.

좋은 계절, 아름답고 감사가 넘쳐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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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I was busy and nervous for about a month, today I’m leisurely greeting Sunday morning with ease.

My father-in-law, who had been staying at a long-term care facility, was taken to the emergency center, was recovered in a week and moved back to the facility the other day. Yesterday, my mother, who had been hospitalized for three weeks, moved back home after a week-long rehab treatment.

Furthermore, I was busy completing moving the store, as you might know.

Now, my mother and my father-in-law are recovered and my everyday life, which was disordered, has almost fallen into place. So, I’m really grateful for the relaxed feeling which I’m enjoying in this Sunday morning.

About ten days ago, when I opened the store and looked at the sky after I had spent the previous night in my mother’s hospital room, a couple of thoughts came across my mind. It was that I should always be grateful for the beauty of life and everyday life.

We all get sick in life and have to face death someday. We also must look at our loved ones’ situations of those kinds. What the morning sky taught me was that it would be me who imprints all the courses of life as beautiful and thinks about them over again.

The other thought was that I should realize how grateful I should be for everyday life, though so often I feel that it seems to be a tedious repetition of the same things over and over again every day.

I’m thankful for the sky tha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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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around is shouting that it’s spring.

I wish that you’ll have over-flowing gratitude every day in this pleasant and beautiful season.

From your clea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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