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뒷뜰 언덕배미 대나무 숲을 베어낸 지 두 해 째. 대나무 뿌리는 여전히 땅속에서도 푸른 대에게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대나무 뿌리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숱한 비법과 사례들을 구글과 유튜브를 읽고 보곤 하였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많지 않았다.

하여 조금 긴 호흡으로 마음 다잡으며 실로 무지하게 맨땅에 헤딩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삽과 곡괭이 들고 뿌리를 들어내는 일을 시작하자 마자 ‘아차!’ 싶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내딛은 걸음인지라 갈 데 갈지 가보자고 삽질을 잇는다.

대나무 뿌리는 아주 견고한 동맹으로 이어져 있다. 그 뿌리들의 연결 고리를 끊어 캐내는 일을 마치기 전에 내 어깨와 팔이 먼저 지쳐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일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긴 싸움으로 가자고 맘 먹었으니, 비록 나도 이제 노년의 초입이지만 대나무 뿌리는 이길 수 있으리라.

군데군데 대나무 뿌리들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어 부근의 땅을 한바탕 엎어 들어낸 후, 내 가게에 넘쳐나는 종이상자를 깔고, 그 위에 새 흙을 덮어 내가 가꿀 수 있는 아주 작은 새 세상들을 만들어 본다.

대나무 뿌리를 거두어 낸 새 세상에 야채와 화초 씨와 모종을 심어 가꾸어 보는 일인데, 그 삽질이 만만치 않다.

허리와 어깨 두드리며 내게 넘쳐나는 감사하는 맘 두 가지.

큰 나무들은 아직 내가 격어보지 않아 모를 일이지만, 야채나 화초들은 고작 몇 인치 정도의 흙을 파면 잘 자랄 수 있거니와, 대나무 뿌리라고 해 보았자 그 역시 일 피트만 파면 끝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감사가 첫째인데, 감사의 까닭은 신은 그리 깊은 곳에 진리를 묻어 놓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

또 하나의 감사는 이 나이에 흙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언젠가 내가 될 흙과 미리 벗이 되어 지내는 시간들에  대한 이 큰 감사라니.

하여 내가 마땅히 없애려 하는 대나무 뿌리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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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2020

내 기억에 대한 정당함을 주장하는 떳떳함이 차츰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만, 단언컨데 최근 십 수년 이래 일반 가정들의 크리스마스 치장(治粧)은 올해가 단연 으뜸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일반 가정들의 크리스마스 치장은 분명 줄어드는 추세였고, ‘Merry Christmas!’ 보다는 ‘Happy Holidays!’라는 인사가 보편화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글쎄, 내가 사는 동네에 국한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올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도 많고 그 치장이 예년에 비해 사뭇 화려하다. 그 또한 다만 내 기분 탓 인지도 모를 일이다만.

너나없이 그야말로 지난(至難)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종교적 의지가 강해진 탓도 있을 터이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지며 쌓인 이런저런 욕구들이 치장으로 분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흘을 쉬며 한 해를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들을 누리게 해 준 성탄절에 치장 대신 감사를 드린다. 한 해를 무사 무탈하게 지낸 감사가 이리 컷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조심조심하면서도 ‘설마…’하는 낙관이 늘 앞서 있었지만, 바이러스 확진 소식들을 가게 손님들과 먼 이웃들에게서 듣기 시작하고, 이즈음에 들어서는 가까운 이웃들과 내 가족들과 이어진 사람들에게서 듣다 보니 아직 무사 무탈함이 그야말로 큰 감사로 다가온다.

돌아보니 신기할 정도로 감사한 것은 가게 매상이 지난 해에 비해 반토막 이상이 줄었음에도 이럭저럭 한 해를 큰 걱정없이 보낸 일이다. 지난 주 내린 폭설과 강풍 탓에 뒷뜰 소나무 몇 그루가 부러져 넘어졌다. ‘돈 들일 일 또 생겼군’하는 걱정이 들 무렵인 지난 월요일, 바이러스 재난지원금 지급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쓰러진 나무들을 제거하는 데 드는 경비와 우리 부부가 받게 될 재난지원금이 얼추 맞아 떨어져 걱정을 금새 덜었다.

그래 또 성탄에 이는 감사다.

이즈음에 매일 페이스북에서 기다리며 읽는 글이 하나 있다. 한국의 진혜원검사가 올리는 페북 글이다. 그의 글은 우선 재밌다. 마치 골리앗 앞에서 물매를 돌리고 있는 다윗을 보는 스릴이 넘친다. 현실은 그저 스릴만 넘치는 연속 동작이어서 그에 대한 안타까움만 이어가며 읽기는 한다만.

아무튼 어제 그가 올린 <훗, 이게 인생이지>이라는 글에서 그가 단언한 말이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권력은 종교와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떠올라 손에 든 것은 리차드 호슬리의 책 <크리스마스의 해방>이다.

크리스마스와 해방이라는 어찌보면 서로 맞붙어 싸우는 말이 하나가 된 이 책에서 호슬리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 참 예수의 모습을 찾는다.

바로 종교와 돈으로 신비스럽게 포장되고 치장된 크리스마스를 벗겨내어 해방시키고, 예수의 참모습인 ‘오늘 여기에서 고통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만나자는 주장이다.

리차드 호슬리의 주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인물 및 사건에 관련된 그들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토론 가운데서 나타난다.>

어찌보면 갇힌 듯 모든 것들이 답답한 오늘이지만, 지난 시간들에 대한 감사와 다시 시작하는 새날들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엇비슷한 고백들로 이어진 사람들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돈을 쫓고 누리되 권력이 되고자 하는 일에는 물매 들고 싸우는 이들.

그렇게 또 한 해가 저무는 성탄에.

 

일상(日常) 그리고 감사

참 좋은 친구 내외와 우리 내외가 함께 물러가는 가을 길을 걸었다. 이렇게 사람 사이 정(情)을 나누는 일도 조심스런 이즈음이다.

올해 변한 우리들의 일상이다.  일상(日常)!

철학자 강영안은 일상의 삶을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곱씹는 행위가 바로 철학이라고 가르친다. 그가 말하는 일상(日常)에 대한 정의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은 문자 그대로 따라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그러나 그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 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그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 강연안 지음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솔직히 나는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말을 길게 이어갈 만큼 배움이 크지도 않거니와 생각도 깊지 않다.

다만 할 수 있는 한 흉내라도 내보고 살아보자는 생각을 때때로 하며 살기는 했었다. 그나마 그 생각 하나 얻어, 흉내라도 내는 시늉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서 때문이었다는 고백을 하며 산다.

뚱딴지 소리 같은 철학도 종교도 아니고 그저 일상 아니 오늘에 대한 감사로.

20년 가을 끝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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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이야기 셋

  • 하나.

“어제 어떻게 지냈니?” 가게 손님 한 분이 내게 던진 물음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 아주 조용히… 당신은?”. 내 응답에 그녀의 이어진 질문, “나도 남편과 단 둘이 조용히… 우리 가족들 하고는 Zoom으로 함께 두루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는데… 넌 그렇게 하진 않았니?” 유태계 은퇴 변호사 마나님의 연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그리고 내 응답, “그랬구나,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Zoom으로 함께 했단다.”

어제 추수감사절 오후 한 때, 필라델피아에 아들 내외와 아틀란타에 있는 동생 내외와 조카 조카손주들 그리고  사촌 동생네,  시카고와 워싱톤에 사는 조카들 조카 손주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사는 누이네들과 조카들 모두 Zoom으로 추수감사절을 함께 했다.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는 늦은 저녁 아이들 전화 인사로 흡족해 하셨다.

지난 일요일 거의 아홉 달 만에 집으로 모셔온 내 딸아이는 거의 상전이다. 뉴욕 맨하턴에서 차를 태운 순간부터 마스크를 써라 창문을 열어라 쉬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갔음 좋겠다 등등. 집으로 돌아와서도 따로 밥상 받기, 거리 유지 하기, 마스크 쓰기 등등 까탈스럽기 그지 없다. 재택근무 중인 아이는 연말까지 내 집에 머무를 요량인데 아내와 내게 내리는 명령들이 단호하다. 나는 그런 딸애가 참 좋다.

어제 추수감사절 밥상은 딸아이 혼자  다 차렸다. 고모들네 저녁까지 넉넉히. 아이의 손 솜씨가 제법이었다.

이젠 시집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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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

추수감사절 앞에 받은 옆서 한 장. 우리 부부에겐 영원한 우체부인 Johnson씨가 보낸 은퇴 인사였다.

내 세탁소 바로 뒤편에 있는 Newark 우체국에서만 만 36년동안 일했던 그가 은퇴한다는 인사 엽서를 보며 한 동안 찡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이즈음은 검은 얼굴에 허연 머리털과 풍성하고 흰 수염으로 마치 산타가 다 된 노인이 되었다만 참으로 억척스런 사내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이긴 하지만 아이들 나이가 서로 비슷해 친구 같은 이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땐 우체국 일이 끝나면 그로서리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다듬는 등 억척스레 애비 노릇을 다했던 사람이다. 보답이랄까? 아이들 모두 정말 잘 컷다.

그가 일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들을 전하는 일에 충실했다 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 그는 좋은 소식보다는 귀찮고 듣기 싫은 소식들을 더 많이 전했었다. 내가 가게에서 주로 받는 편지들이란 거의 대부분 각종 공과금 고지서나 공공 기관들에 서 보내온 서류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따지고 보면 그런 소식들에게 응답했기에 내게 오늘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감사로 응답하는 일은 당연할 터.

그의 은퇴에 박수를, 그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삶을 위해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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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아침에 읽은 블룸버그 발 뉴스 하나.  <정말 힘든 시간들- 재택근무 시대가 세탁업을 조이고 있다. ‘Ugly, Ugly Time’: Work-From-Home Era Crushes U.S. Dry Cleaners>라는 제목의 기사다.

팬데믹 이후 자영업들이 겪어 오는 어려움들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백신이 개발되어 공급되고 치료제가 일반화 되면 식당업이나 호텔 여행업 등등은 다시 호황을 맞을 가능성이 있지만, 세탁업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상당 부분 나는 그 기사 내용에 동의한다. 지난 구 개월 사이 6개 중 한개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거나 도산하는 업체들이 줄을 이을것이라거나, 여전히 평상시의 반도 못 미치는 매출을 기록하는 업소들이 대부분 이라는 상황 인식에도 동의한다.

오랜 재택근무의 경험들로 사람들의 의복 습관이 달라져 세탁업이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한가지.

추수와 절기는 때가 있듯, 모든 업종 역시 부침의 때가 있겠다만, 감사란 늘 나에게 달린 일.

뉴스가 내 추수감사절을 범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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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삶

화복무문 화불단행(禍福無門 禍不單行)이라 했다던가? 좋은 일 나쁜 일이 내 생각대로 일어나는 일도 없거니와, 아니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는 십상이다. 화(禍)나 복(福)의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를 터이니, 무엇이 좋은 일이고 어떤 게 나쁜 일인지를 내 잣대로만 주장함은 마땅치 않다.

그렇다하여도 점점 심상치 않은 형국으로 빠져드는 이즈음 COVID 펜데믹 파동에 이르면 누구에게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게다.

세탁소 카운터를 아크릴 판으로 가리고 마스크를 쓰고 6피트 거리를 유지한 채 손님들과 몇 번씩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서야 의사소통을 이루곤 하는 불편함일지라도 그런 불편함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럠이 큰 이즈음이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내 세탁소를 찾은 오랜 단골 K씨, 내 또래인데 올들어 부쩍 허리가 휜 친구다. 그는 늘 내 까만 머리칼을 부러워 한다. 도대체 내 나이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그 점은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일흔을 턱에 건 나이에 난 아직 흰 머리카락은 거의 없는 편이다. 누군가는 머리를 얼마나 안 쓰고 살았으면 그 모양이냐고 우스개 소리를 건네기도 했었다.

모처럼 그와 오랜 시간을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 이야기까지 이르도록 이어지기 까지는 한가한 가게 형편의 도움이 있었다.

그는 참정권을 가진 나이에 이르러서 부터 오늘까지 영원한 공화당 지지자라고 하였다. 그는 내 가게가 위치한 동네 수준으로 보자면 경제적으로 중상위층에 속하는 아주 전형적인 백인으로 그 역시 칠십이 코 앞인 친구다.

그가 말하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찍지 않은 일은 딱 두 번 있었단다.  첫 번 째는 ‘아버지 부시’라고 일컬어지는 George H. W. Bush였고, 두 번 째는 이번에 트럼프였단다. 아버지 부시는 전쟁을 일으켜서 마음에 안 들었었고,  트럼프는 지난 번에 찍어 준 자기 손가락이 미울 정도로 수준 이하란다. 특히나 펜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슨 게임하듯 제 속만 차리려하는 게 너무 밉단다.

모처럼 신이 난 듯한 그의 일장 연설을 듣고 몇 마디 건넨 내 응답이었다.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공화당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나 뭐 크게 다른 게 있을까? 당신 말대로 전쟁 일으키고,  펜데믹 현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 소리가 커지면 좋은 거 아닐까?’

이건 이즈음 내가 뉴스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뉴스나 매 한가지로 통하는 프리즘이다.

사람 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속에는 늘 그렇듯 정치도 종교적 신념으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사람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곧 역사에는, 스스로 홀로 서서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종교처럼,  세상 정치적 일들을 그리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징표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사람 살이는 늘 신비한 지경이다. 화불단행(禍不單行)과 점입가경(漸入佳境)은 늘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 살아 있는 한 삶은 늘 살 만한 것이다. 그것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든, 내 스스로 선택할 일이 남아 있는 순간은 언제든…

그렇게 또 추수감사절이 코 앞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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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미쳤어, 미쳤어, 모두가 미쳤어!” 가게 문을 들어서며 Rose  할머니가 내게 던진 말이다. 내 가게 30년 단골인 할머니는 부부 모두 유태계이고 남편은 은퇴 의사이다. “내가 여기로 오는 길에 바닷가로 가는 1번 도로를 거쳐왔는데 엄청 막히더라고… 아니 지금이 바다로 놀러갈 때냐고… 암튼 다 미쳤어!” 바닷가에 부부 소유 콘도가 있는 할머니의 코로나 상황에 대한 걱정이었다.

적당히 눙치며 대꾸해 주고는 그녀의 세탁물들을 차에 실어 준 뒤 눈에 들어 온 이웃 그로서리에 자리잡은 가을을 만났다. 누런 호박들과 장작들, 그래 어느새 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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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드니 하늘빛도 이미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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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엇비슷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생각은 정말 저마다 다르다. 그래 아직은 사람인게지.

‘공감’ – 그 폭과 크기의 확대를 위해 누가 더 최선을 다하나 하는 싸움을 보는 이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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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촐한 아침 식사에 감사하며 내 노동의 한계를 측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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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 Day 연휴에.

구름에

손님들이 묻는다. ‘장사 어때?’, ‘견딜만 해?’, ‘가족들은 다 건강하지?’ 나는 마스크 속에서 활짝 웃으며 응답한다.’고마워요. 제가 여기 있잖아요. 당신은요?’ 손님들은 웃으며 떠난다.

손님 뜸한 오후,  가게 밖 하늘에 홀려 빠지다.

흐르는 구름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을 보면 내 삶의 연식도 제법 되었나보다.

살며 이렇게 반년이 흐른 것은 처음이다.

태초 이래 구름은 늘 변화무쌍이었을 터이지만 내겐 늘 처음이다.

그래 삶은 늘 홀릴만한 게다.

하여 구름에게 감사.

6. 3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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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월에

비단 내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으되 돌이켜보니 꿈같은 석달이었다.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내 사망자가 10만을 넘어섰고 확진자 수에 이르면 전세계 확진자 수의 거의 1/3에 이르는 숫자인 18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하여도 거의 일만명에 가까운 확진자와 350명이 넘는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 수 고작 백만명이 안되는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 석달 동안에.

내 나이 서른 초반에 이민 온 이후 이런 저런 변화들을 여러 번 겪어 왔지만 올들어 일어난 일들에 비하니 모두 잔파도들이었다.

며칠 전 내가 주로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을 옮겼다. 서재에 놓인 책상 바로 위에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을 걸어 놓았더니 자꾸 어머니가 나를 보시고 있는 듯하여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사진을 옮길가 하다가 그래도 내 시선이 하루 중 가장 많이 가는 곳에 어머니가 계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간혹이라도 혼자 있을 방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래 생각해낸 것이 아들녀석이 쓰던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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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이 장가간 이후 거의 창고방 정도로 사용하던 방을 정리하고 어쩌다 책이라도 읽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시간을 보낸 요량으로 작은 책상 하나 들여 놓았다.

그렇게 만난 새 세상이었다. 창문을 여니 새들의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창문 밖 풍경은 제법 큰 화폭의 그림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진 것들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미안함과 감사함이었다. 그 감사함과 미안함은 거의 같은 크기로 잇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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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와 뉴욕에 있는 아이들 얼굴을 못본 지도 석달이 지났다. 모두들 건강하고 일자리 잃지 않고 제 밥벌이들 하고 있으니 감사하고 웬지 모를 미안함이 따른다.

올 정월에 돌아가신 장인에게 고맙고 미안한 생각도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에 노인 요양원에서 돌아가셔 참 다행이다는 생각에 이르러 감사하기도 하고, 마지막 일년에 대한 미안함이 그 크기만큼 밀려오기도 한다.

그 꿈같던 석달 동안 어머니를 보낸 일만큼 큰 일이 어디 있으랴. 허나 그 또한 감사함이 앞선다. 어머니가 다 태우고 가셨기 때문이다. 그래 또 미안함이다.

그 석달 동안 평생 처음 해 본 씨 뿌려 꽃 피우고 채마 밭 일구어 본 시간에 대한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허나 미안함은 여기에도 따른다. 내 어설프고 섣부른 초행길에 싹조차 틔우지 못하고 흙이 된 씨앗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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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펴든 책 종교학자 아론슨이 쓴 ‘위대한 스승 예수와 노자의 대담’ 이다.

< 이 두 스승(노자와 예수)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고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덕을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우며 온전한 삶을 주장했다.>

이제 6월, 다시 세탁소 문을 정상적으로 연다.

Covid-19 이후의 세상이 오래 전 선생들이자 오늘의 인도자들의 꿈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 – 22, 그리고 다시 일상

어머니 마지막 길 배웅하고 돌아와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내가 어머니 속 끓이는 일을 하곤 하면 어머니는 머리 싸매고 곧잘 누우셨다. 그렇게 몇 끼 식사 거르시곤 당신 스스로 제 풀에 일어나 ‘이 눔아!. 이눔아!’하시며 일상으로 돌아가시곤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내 일탈된 일상을 적어 놓고 싶어 하루를 세기 시작했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할 무렵 어머니가 더는 일상을 이어가시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 떠나시고 오늘 장례를 치루었다.

이제 어머니가 늘 그러하셨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늘 예식에서 내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그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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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증손들은 제 어머니를 왕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집안에 많은 할머니들 중에 연세가 제일 많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저희 집안에서 실제로 왕이셨습니다.

왕은 왕이로되 섬기는 왕이셨습니다. 넉넉치 않은 소농의 6남매 중 둘째 맏딸로 태어나신 어머니는 딸로서 동생으로 언니로 누나로 출가외인이 되어서도 왕처럼 친정가족들을 돌보셨습니다.

시집와서 꽉 찬 30년, 홀 시아버님 한복 계절마다 시치시고 다려 준비해 올리셨습니다. 제 할아버지 마지막 임종을 지키신 이도 어머니입니다.

저희 네 남매를 섬기는 일은 그냥 어머니의 즐거움이셨습니다. 딱 일년 전 아흔 둘 연세에도 저희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맛있는 것 먹일 수 있을까 그 생각으로 늘 분주하셨습니다.

손주들과 증손자들을 위한 축복의 기원과 기도는 그냥 어머니의 일상이었습니다.

73년 함께 사신 제 아버님 삼시 세끼 어머니 손 안 거친 음식 잡수신 횟수를 셀 수 있을 만큼 지극히 섬기셨습니다.

어머니의 93년 한 평생은 온전히 가족들을 위한 삶이셨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머니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저 감사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아픔과 슬픔에 더해, 제가 눈치조차 채지 못한 어머니만의 아픔과 슬픔 모두 가슴에 묻고 오직 그저 감사로 당신의 삶을 정리하신 어머니셨습니다.

하여 오늘은 어머니처럼 모든 게 감사입니다.

먼저 어려운 때에 제 어머니 마지막 환송예배를 집례해 주신 송종남 목사님과 배성호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델라웨어 한인 감리교회 믿음의 성도 여러분들께 드리는 감사도 큽니다.

저나 저희 가족들이 알지 못하더라도 어머니 살아 생전 제 어머니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속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제 가족들에게 보내는 감사도 큽니다. 어머니께서 누리신 마지막 일년은 제 누나의 극진한 정성 덕입니다. 외조 해 주신 매형과 누나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전화 인사 이어와 어머니의 한 주간을 즐겁게 마치게 해 준 아틀란타 동생 내외에게 어머니가 전하는 감사 위에  형제들의 감사를 덧붙입니다. 우리 집안에 웃음과 활력을 도맡아 준 막내동생 내외 특히 우리 집안의 기도 담당 막내 매제 덕에 어머니 편하게 떠나셔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말 잘 안 듣는 집안의 유일한 골치거리이자 걱정거리였던  제가 그나마 이 만큼이라도 아들 노릇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제 아내에게 드리는 감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73년 만에 맞는 아버지의 새로운 일상에 이어질 감사의 몫은 이제 왕을 잃은 우리 모든 가족들이 나눌 일입니다. 어머니처럼.

마지막으로 오늘 온라인으로 함께 한 저희 아이들에게 주는 감사 인사입니다.

In memory of your grandmother or great-grandmother, what I want to say is two things. The first is that she lived a life of dedication and sacrifice for her family; that is, your grandfather or great-grandfather, your uncles and aunts, me, and of course, all of you. The other one is that what she said most often in her lifetime was “Always and simply be grateful.”

I believe that she will reach heaven comfortably, thanks to you all being with me today.

Thank you all.

이 모든 감사를 오늘과 어머니와 우리들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립니다.

새들에게

말이 좋아 자영업이지 내 식으로 부르자면 그저 구멍가게 주인으로 한 해를 온전히 마감하는 일은 지난 해 세금보고 양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느끼는 일이지만 내 삶이 숫자로 정리되는 모습은 늘 초라하다. 그렇다 하여도 물론 내 삶이 결코 초라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릇 삶이란 숫자로 재단되는 것만이 아니므로.

무엇보다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내가 사람임을 늘 깨우치게 하는 이웃들이다. 그저 감사다.

오늘 아침 새까맣게 잊고 사는 월력(月曆)을 일깨워 알려준 보름달처럼 이따금 눈과 마음을 환하게 열어 주는 자연 또는 신(神)에 대한 감사의 크기는 가늠조차 못한다.

하늘에 지는 달과 뜨는 해를 가장 높은 곳에서 맞이하고 보내는 것은 아마 새들일지도 모른다.

때로 새들을 폄하했던 내 우둔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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