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지났다. 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Bill은 한 바구니의 감을 들고 우리 부부를 찾아온다. 십여년 이어져 온 일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Bill은 내 가게가 있는 델라웨어주 Newark 토박이이다. 이 곳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이 동네의 옛모습을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무우밭과 배추밭을 지나 국민학교를 다니던 내 고향 신촌을 떠올리곤 한다.

무우밭과 배추밭이 있던 서울 신촌을 말하면 옛사람이듯, 옥수수밭과 한참을 가야 집 한채를 만나던 Newark을 이야기하는 Bill을 이해하려는 요즘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 모를 일이다.

Bill을 안지도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보다 먼저 안 사람은 그의 부인 Mrs.민이었다. 지금이야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른다만 그때만 하여도 국제결혼이라고들 하였다.

Mrs.민은 거셌다. 그녀가 ‘뵤’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미군에 복무하던 Bill이 한국에서 근무할 때 만나 결혼한 Mrs.민은 그의 남편 Bill을 늘 ‘뵤’라고 불렀다.

Mrs.민은 거셌지만 여렸다. 같은 한국인들이 가까이 하기엔 거셌지만, 분명 Bill에게는 여렸다. 딱히 내가 노력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Bill과 Mrs.민은 친구가 되었다. 세상 뜨기 전에 Mrs.민이 무당 내림 굿을 받았을 때도 나는 그의 집을 찾기도 하였다.

Mrs.민이 세상 뜬지도 벌써 십 수년이 흘렀다. 먼저 떠난 아내가 좋아하던 감나무의 감이 익을 때면 Bill은 한 바구니의 감을 따서 나를 찾아온다.

지난해에 얻은 외손녀 이름을 지으며 middle name에 Min을 넣었다며 좋아라 하던 ‘뵤’는 외손녀가 자라면서 어찌 제 마누라 ‘민’을 닮아가는지 놀랍단다.

늘 그렇듯 나는 한 바구니의 감을 가까운 ‘한인’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