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오늘 가게 손님 몇이 ‘Happy New Year!’라며 인사를 건넸다. 손님에게 설날 인사를 받는 세월을 누리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무렴!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함께 지난 주에 장인 장모가 삼 년 만에 다시 만나 쉬시는 묘지를 찾다. 돌아서는 길, ‘모처럼 다시 만나 싸우지들 마세요’  웃으며 말하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 ‘에이 이제 며칠 되었다고,,, 아직은 아니겠지!’

한국식당에 들려 주문한 생선찜과 탕수육을 받아 들고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뵙다.

이즈음 도통 잡숫지 못하는 어머니는 입맛 없으실 때면 비린 것을 찾곤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특별한 것을 좋아하셨다.

‘엄마! 오늘이 설날이예요!’ 퀭한 눈으로 어머니가 한 대답. ‘설날…???’

아버지는 탕수육 맛이 별나다시며 맛있게 드시고, 어머니는 오랜만에 입맛에 맞아 많이 잡수셨다며 ‘고맙다’를 말씀을 이어갔다.

기실 아버지가 드신 탕수육은 딱 두 점, 어머니는 그저 밥 두어 수저.

우리 내외 또래 한식당 주인 마님은 우리 더러 ‘참 잘 맞는 짝’이라고….

나는 또 웃으며 말했다. ‘육십 년 넘게 함께 살다 간 내 장인 장모나, 칠십 년 넘게 살고 계신 우리 부모나 사십 년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 부부나 싸움 그칠 날 없었다’고

그렇게 또 설날에.

(딸아이가 보낸 꽃은 늘 오래 간다.)

2020. 설날 밤에

장미에

‘결혼 기념일?’ 아님 ‘누구 생일?’. 카운터에 새롭게 놓인 장미 화병을 보며 손님 몇이 아내에게 던진 물음이란다.

어제 딸아이가 각기 12송이씩 묶은 장미 두 다발을 보내왔다. 나름 생각 깊은 아이가 숫자 놀음을 했겠다 싶지만 툭 튀어 나온 내 혼자 소리, ‘쯔쯔쯔, 돈 아까운지 모르고…. 뭘 …한다발이어도 족한데…”. 아내는 싫지 않은 듯 내 괜한 트집에 토를 달지 않았다.

내 젊은 시절 고약한 기억 가운데 하나인 12.12 사태 이전부터 아내의 생일을 함께 했으니 우리 부부가 함께 한 세월도 만만치 않다.

나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우기지만 아내는 큰 연(緣)이라고 믿는 우리 가족 생일력이  그 세월과 늘 함께 한다. 생일력이란  2땡, 9땡, 10땡, 12땡으로 월과 일이 함께 하는 우리 네 식구 생일에 대한 이야기다.

딸아이 덕에 집과 가게가 장미 화병으로 화사하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라 아내의 십대 초반 어린 시절이 환하게 보이는데… 쯔쯔… 어느새 아내도 은퇴연금 수령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게 웬지 또 공연히 미안하다.

이젠 제법 시간이 흘렀다만, 이민 후 살 만 하다 싶었을 무렵 내 엉뚱한 욕심으로 하여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치루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나는 거의 삶에 대해 체념(諦念) 상태였다. 허나 아내는 늘 웃었고 우스개 소리를 끊이지 않았었다.

나의 체諦가 깨달음의 제諦가 되는 세상을 맛보게 한 것은 아내였다.

하여 살며 내가 맛보는 즐거움의 반은 온전히 아내에게서 온다.

장미를 안겨 나를 깨운 딸아이에게도 아낌없는 한 몫.

고마움을.

다시 은총에

어느 해 부터인가 추수감사절 저녁상을 내 손으로 차리기 시작했었다. 아마 족히 십여 년은 넘었을게다. 이젠 내가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칠면조는 아들 녀석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아주 작은 것을 굽고, 아내와 딸과 며느리는 닭이 좋다고 해서 제법 큰 놈을 골라 구웠다. 어머니 입맛에 맞게 새우젓 듬뿍 넣고 김치찜과 코다리찜도  쪄 상 위에 올렸다. 매형과 누이 생각하며 단호박도 굽고 통오징어 구이도 곁들였다. 내 몫으로 돼지갈비를 구워 와인 한잔 곁들였다. 아내는 전을 부치고 잡채를 더해 상을 풍성하게 했다.

두 해 전부터 먼저 떠난 장모가 자리를 비우고, 올핸 거동할 수 없는 장인이 함께 하지 못했다. 올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셔 오기 위해 누이와 나는 많이 망설였었다. 그러고보니 그 사이 며늘아이가 새 식구가 되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나는 전도서 가운데 한 구절을 읊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을 일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전도서 3: 12-13)’

몇 젓가락 입에 넣어 오물거리시던 어머니가 말했다. ‘당최 입맛이 없어 먹질 못하겠더만,,, 오늘은 입맛에 딱 맞아 많이 먹었네…’

오늘 내가 누린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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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사족 – 내 서재 한 구석에서 발견한 약 상자 둘. 웬만한 통증에는 타이레놀 하나 먹기 싫어하는 내게 달포 전 서울 큰 처남이 보내 온 보약이었다. 인삼이야 익히 아는 것이고 황보단이 뭔가 하여 검색해 보다 그 가격에 놀라다.

바라만 보아도 은총에 은총을 더하는 감사절이다.

구름

미풍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아침 느긋하게 즐기는 커피향이 참 좋다.

어제 오후 모처럼 아들 내외와 함께 샤핑도 하고 저녁식사도 함께 즐겼다. 한가로운 시골길을 한 시간여 달려 닿은 Lancaster, 비록 자주는 아니어도 많이 왔던 곳인데 어제는 아주 새로웠다. 내 뜻이 아니라 아들녀석이 앞장 서 가는 길을 쫓아 다녀서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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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운에 있는 작은 한식당에서 1970년대 남도 작은 소읍에서 들어섰던 다방을 떠올렸다. 음식 맛이 기대 이상이었다. 한식을 무엇이나 잘 먹는 며늘아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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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생각에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훑어보는 뉴스들,  200만과 5만 숫자 논쟁이라는 허접 쓰레기 기사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제 오후, 아내와 아이들이 옷가게 순례를 하는 동안 나는 상가 벤치에 앉아 구름이 노는 모양에 빠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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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돌아오는 길, 하늘에선 마른 번개와 천둥이 이어졋었다.

때론 게으른 일요일 아침이 정말 좋다.

초보(初步)

참 이상한 일이다. 올들어 몸이 딱 반쪽으로 줄어드신 장인의 얼굴 크기는 예나 다름없다. 반면 한 두어 주 사이에 몸이 쫄아 드신 어머니는 얼굴도 그만큼 작아지셨다. 덩달아 아버지의 등도 딱 고만큼 더 휘어지셨다.

어깨수술 후 운동부족인 아내와 함께 하루 길 거리에 있는 강가 나들이에 나설 요량이었는데 간밤에 자꾸 노인들 모습이 눈에 밟혀 그만 두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두 주나 교회에 못 갔으니 주일예배 참석이 우선이라며 잘 되었단다.

나는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길을 좀 걷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DSC06665 DSC06683 DSC06697 DSC06700 DSC06726 DSC06733

쉬는 날, 길을 걸으며 만나는 숲과 나무들, 들꽃과 나비와 새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스치는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눈에 담는 순간들은 이즈음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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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독 노란 들꽃들이 눈에 담긴다. 노란색은 돌아가신  장모가 참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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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걸었는데 어느새 해가 몹시 따갑다. 생각해보니 걷다 마주쳤던 이들 거의 모두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쳐간 생각 하나. ‘난 산책 뿐만 아니라 어쩜 아직 모든 일에 초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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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홍건한 땀을 배고 필라 한국식품점으로 달려 올라갔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각종 젓갈 조금씩 담아 내려온 내게 하신 어머니 말씀. ‘그래 내가 며칠 전부터 짭조름한 게 생각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장모는 여전히 노란색 꽃에 취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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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안 나서기 참 잘한 하루였다.

어느 아침

아침부터 찌는 날이다. 한 주간이 이리 긴 것은 딱히 날씨 탓만이 아니다.

아내는 의사가 minor surgery라고 했다고 거듭 강조했었다. 그저 간단한 수술일 뿐이라는 말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루 일과 같은 것이거니 했었다.

주초,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 가기 전에 간호원은 아주 간략하게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아주 간단한 어깨 수술로 마취 후 한 시간 정도 내외의 수술 시간과 30분 정도 회복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수술 후 집도 의사가 수술 결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라고…. 간호원의 설명을 듣는 시간에 아내는 이미 마취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넉넉잡아 두 시간이라…’ 나는 대기실에서 나른한 낮잠에 빠졌었다. 수술실에 들어 간 후 한 시간이 지나면서 연신 시계에 눈이 갔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는 앉아있지 못하고 오줌 마려운 노인이 되어 엉거주춤 대기실 안에서 서성거렸다.

두 시간 반쯤 되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 온 의사는 말했다.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12시간 정도는 수술 후 통증이 이어질 것인데, 약이 처방될 것이고… 마취에서 깨어날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릴게고…’ 준비된 대본을 읊조리 듯 이어진 그의 말이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내 이름이 호명되어 들어 간 회복실에서 만난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었다.

최근 이년 사이에 수술 후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전에 보았던 장모, 장인 그리고 어머니의 낯 선 모습처럼 아내가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모두 minor surgery라는 말에 대책없이 느긋했던 내 탓이었다.

긴 한 주간 시간에 비해 다행히 아내의 회복 속도는 빠르다.

이른 아침 찜통 더위를 예고하는 아침풍경이 반가웠던 까닭이다.

휴일

애초 세운 계획을 잊을 정도로 여러 번 생각이 바뀌었다. 모처럼 맞는 주중 휴일, 여느 해 같았다면 과감히 나흘 연휴를 즐길 법도 했다. 내 뜻 세우지 말아 할 나이에 이른건 노부모 뿐만 아닌 내 이야기다.

가까운 동네 공원을 찾아 걷다가 저녁식사나 함께 하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었다. 허나 일기예보는 그 계획조차 받쳐 주지 않았다.

하여 선택한 마지막 계획, 그저 먹고 쉬는 하루를 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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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며느리, 딸과 함께 홍합, 새우, 게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즐기다 다시 세운 계획, 간단한 바베큐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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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장을 보고 누이네들과 부모님 모시고 저녁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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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신 못하시는 장인에게는 식사 후에 아들녀석이 과자 하나 입에 물려 드리다.

십 수년 만에 딸과 함께 집 앞 공원에서 펼쳐 진 불꽃놀이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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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는 거, 참 별거 아니다.

그저 맘 가는대로 시간을 맡길 수 있음은 지금 내가 누리는 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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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기예보는 완벽히 빗나갔다. 사람살이 계획을 바꾸게 하는 게 비단 일기예보 뿐이랴!)

2019. 독립기념일에

어느 하루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엊그제 딸아이가 던진 물음이다.

어제 낮에 내 일터로 전화를 한 장인은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뭔가 좀 이상해. 여기 반란이 일어난 거 같아!.’ 장인이 장기 요양원에서 꼼작 않고 누워 계신지는 이미 몇 달이 지났다.

엊저녁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귀가 전화 인사를 드리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너 오늘 일 안나갔었니? 아까 너희 집에 들렸더니 네 차가 집 앞에 있더라.’ 어머니 역시 누군가의 도움없이 집을 나서지 못하신지 여러 달 째이다.

장인이나 어머니나 이즈음 정신이 많이 오락가락 하신다. 때 되어 겪는 수순이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아버지도 기분이 크게 오락가락 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연유로 딸 아이에게 한 번 간다 간다 하면서 미루다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게 엊그제였다. 모처럼 나선 길에 아들 내외가 함께 했다. ‘올라 가마!’라는 내 말에 딸아이가 ‘어디 가고 싶은데 있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교회엘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들 내외가 다니는 교회엔 가본 적이 있지만 딸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대핸 그저 아이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멋진 brunch에 이어진 교회 안내, 예배 후 Brooklyn Bridge 걷기와  인근 상가와 강변 안내 그리고 풍성한 저녁 식탁, 오가는 교통편 까지 딸아이의 준비와 배려는  매우 세심하고 고왔다.

서울내기인 내게 도시는 어느새 낯선 곳이 되었다. 높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움 속에서 졸음이 자꾸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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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곳엔 어디나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에 녹아 있는 아름다움도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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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도시에서 우리 가족이 저녁상을 함께 나눈 곳은 ‘초당골’이었다. 딸아이는 그 ‘초당골’에서 내게 물었었다.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소주 한 잔에 풀어진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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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외가 다니는 교회나 네가 다니는 교회 예배 형식과 분위기는 솔직히 아빠 취향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정말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 여러가지들을 인정하면서 자유로워지는게 진짜 믿음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주일 하루 예배가 일주일 동안 너희들이 사는 일에 기쁨이 된다면 좋겠어. 그런 뜻에서 오늘 참 좋았어.’

흔쾌히 하루를 함께 한 아들과 며느리,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여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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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웃음은 아내로 부터 이루어졌던 하루를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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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瑞雪

얼음비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졸다가 깨다.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싶었는데 그새 생각이 아니라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언제나 좀 호들갑이다. 4에서 7인치 정도의 눈과 얼음비가 내린다고 아침부터 요란을 떨었다. 손님들을 초대해 놓고 일기예보에 지친 하루였다.

일기예보는 변덕스런 날씨나 사람들 마음에 비해 비교적 정확한 쪽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예보대로 비가 오다가 눈이 내리고 얼음비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다시 눈이 내리는 밤이다.

가게 이전을 한 주 앞두고 가족들과 손님들을 초대해 조촐한 잔치를 벌였다. 눈길에 함께 한 가족들과 오랜 친구가 된 내 가게 손님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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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지 못한 딸아이 대신 잔치 사회를 맡은 며늘아이를 넋 놓고 바라보는 아들녀석 만큼 나 또한 아이가 대견스럽다. 눈길에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내게 며늘아이가 물었다. ‘아버님, 저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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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그 자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위한 자리였다. 그 자리가 한번 있어야 맘이 편한 분들이었기에 장로인 매제의 기도와 함께 형제들이 함께 했다. 모두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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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길을 마다 않고 함께 한 내 손님이자 이젠 모두 머리에 허연 눈들을 이고 사는 인생의 길동무들이 참 고맙다. 이런 길동무들을 이어주는 이는 언제나 내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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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미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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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내외가 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부모님에게 감사 전화를 드린 후 밀려든 잠에 그렇게 잠시 빠졌었던 모양이다.

아버님은 서설瑞雪이라고 하셨다.

무릇 세상 일이란 받아 느끼는 사람의 몫일 터이니.

하여 서설瑞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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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

해마다 이맘 때면 내가 읊조리는 시가 있다.  Shel Silverstein이 읊은 관점(Point Of View)이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주일만찬은 즐겁지 않다
부활절축제도 재수 없을 뿐
닭과 오리의 관점으로
그걸 바라 본다면.

한때 나는 참치 샐러드를 얼마나 좋아 했었던지
돼지고기 가재요리, 양갈비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식탁의 관점에서
식탁을 바라보기전까지는.

Point Of View

Thanksgiving dinner’s sad and thankless
Christmas dinner’s dark and blue
When you stop and try to see it
From the turkey’s point of view.

Sunday dinner isn’t sunny
Easter feasts are just bad luck
When you see it from the viewpoint
Of a chicken or a duck.

Oh how I once loved tuna salad
Pork and lobsters, lamb chops too
‘Til I stopped and looked at dinner
From the dinner’s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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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 그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맞닿을 때 우린 가족이다. 그래서 감사다.

구십 대 내 아버지들과 어머니, 칠십 대 매형, 이 삼십대 내 아들과 며느리와 딸, 그리고 육십대 우리 부부가  함께 둘러 앉은 추수감사절 저녁 몇 시간.

한가지  말을 때론 엉뚱하게 서로 제 입맛에 맞게 이해하며 거기에 덧붙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이어 가곤 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은 가족이기에.

지난 한 해에 대한 감사와 함께 맞이 할 또 다른 한 해 동안 우리가 마주칠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기를.

비록 칠면조의 관점이나 식탁의 관점 에서라도…

시인이 읊은 슬픔이나 우울함이 아닌 그 관점이어서 더욱 좋고 즐거운….

가족의 관점으로…

2018. Thanksgiving Day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