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편히 쉬고 있는 숲길을 걸었다. 먼 길 걸어와 노곤한 몸 따뜻한 온돌에 누인 듯 가을은 그렇게 쉬고 있었다. 이따금 이는 소슬바람과 내 발자국 소리가 가을을 깨곤 했지만 숲은 이미 가을을 깊게 품고 있었다.
횡재였다. 집 가까이 새로운 산책길을 찾은 오늘 내 운세다. 숲길에 홀려 걷다 보니 지나쳤던지 오랜만에 긴 낮잠도 즐겼다.
김진균이 쓴 ‘죽음과 부활의 신학’을 만지작 거리다 책장을 덮었다.
아침 나절 찾아 뵌 어머니는 넋 나간 눈길로 중얼거리셨다. ‘왜 이리 안 데려 가신다니…’.
아버지는 우리 네 남매 전화번호만 달랑 저장하고 있는 아이폰을 목에 걸었다 어깨에 걸었다 하시며 ‘빨리 받지를 못해요…’를 반복하셨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놓인 쟁반에는 자른 사과 조각들이 마르고 있었다. 삐뚤빼둘 도무지 어느 한군데도 가지런한 곳 없는 조각들도 보아 아버지 솜씨였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가 사과도 다 깍아서 말리시나?’하는 내 소리에 아버지는 나쁜 짓 하다 걸린 아이처럼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마른 사과 혹시 네 어머니가 자실까해서…’
가을이 쉬는 계절이다.
깨어날 봄을 믿으며… 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