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들 – 4

저물어가는 2014년과 함께 역사에 기록될 이름을 꼽으라면 아마 이슬람국가(IS) 또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등으로 불리우는 반문화적, 반인륜적 미치광이 집단이 첫순위에 오르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류의 역사를 무려 1400여년 전으로 돌리고자 하는, 가히 정신나간 사람들이 종교와 신앙의 이름으로 올 한해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겨 죽인 집단입니다.

헤즈볼라나 알 카에다 같은 기존의 테러집단들과는 궤를 달리하며 국가를 참칭하고 있지만 지구상 어느나라도 그들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형국입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적은 그들 이외의 전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ISIL이 전 세계를 하나되게 하였다”라는 말이 다 나왔겠습니까.

중동 지방을 근거로 하는 테러집단들이 최우선의 적으로 삼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러시아,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터키, 이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 쿠르드족, 기독교인에 나아가 공산주의자 심지어 헤즈볼라, 알 카에다까지 몽땅 그들의 적들이랍니다.

분명 제 정신이 아닌 집단이거니와 전 세계를 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집단이기에, 전세계가 힘을 모으면 금방이라도 이들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릴 수 있겠건만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아 보입니다.

미국정부만 하더라도 이들과의 싸움이 최소 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을 한다는데 아마 지난 경험치로 본다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전 세계는 이들과의 싸움으로 시간을 보낼 듯 합니다.

그런데 알수없는 일은 이 미치광이 집단과 함께 하려는 젊은이들이 미국, 유럽, 아시아, 중동 등 가히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꾸준히 현재진형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일본, 중국은 물론 한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그런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다 나올 정도이니 말입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들 젊은이들로 하여금 희대의 미치광이 집단의 품으로 자신들의 삶을 내던지게 할까요?

도대체 왜? 멀쩡하게 잘 자라서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때인 젊은이들이 이런 반인륜적, 반문화적인 집단으로 스스로 발길을 재촉하여 함께 할까요?

여러 다양한 설명들과 해석들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저는 두가지로 생각해 본답니다. 첫째는 ISIL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보고 자란 환경이고 두번째는 잘못된 믿음 곧 종교입니다.

첫번 째, 젊은이들이 보고 자란 환경이란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모습이나 자기 가족들의 모습이 주류가 아니라는 소외감 탓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자신들이 현재 속해 있는 사회에서는 결코 그 소외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만난 잘못된 종교가 두번 째 이유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멀쩡한 자신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막장으로 스스로 밀어넣는 젊은이들의 뒤에는 바로 미치광이 집단을 이끌어가는 바로 “그 놈들”이 있습니다.

오늘자 한국 뉴스를 보면서 미치광이 집단 ISIL과 그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한반도 남쪽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연합<‘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전북 익산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었으나 한 관객이 인화물질에 불을 붙인 뒤 투척하는 바람에 관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오늘자 연합뉴스가 전한 기사 한 대목입니다.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이 남한 전국을 돌며 벌이는 토크 콘서트의 주제는 “평화와 통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연합뉴스를 비롯한 뉴스매체들은 <‘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 토크 콘서트로 의도적인 믿음을 독자들에게 심어줍니다.

그리고 이제 조만간 <‘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에서 <…을 빚고 있는>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고, <논란>이라는 말도 사라질 것입니다. 늘 그래왔듯 말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종북>이라는 말만 남기게 이들의 교묘함은 작동할 것입니다.

이렇게 거의 일상화된 습관에 이어 마침내 18살 젊은 아이가 폭발물을 투척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ISIL이 인류의 역사를 1400여년 전으로 돌리고자고자 하는 것과 ISIL 다음으로 전 인류적, 전 세계적 왕따가 된 북한을 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종북(從北)이라는 딱지가 과연 2014년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이나 전세계 한인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주술일까요?

그 18살짜리 고등학생에게 “인화물질에 불을 붙인 뒤 투척하”도록 사이비 믿음을 심어준 “그 놈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 하나는 바로 박정희의 공로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이바지한 큰 공로를 높히 기린답니다. 다름아닌 철저한 총기류 규제입니다.

총을 들고 쿠테타에 성공했던 박정희는 총기류 규제만큼은 정말 철저했습니다. 자유당 시절만해도 심심치 않게 있었던 총기사고가 박정희 통치기간 이래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안전한 나라가 된 까닭은 모두 박정희의 공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18살 아이가 총기류 대신에 “인화물질에 불을 붙인 뒤 투척”할 수 밖에 없었던 일도 저는 순전히 박정희의 공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박정희 부부 모두 총기류 사고로 세상을 뜬 일은 안타까운 아이러니지만…

그 놈들 – 3

제3세계 발전 수단으로서의 사회주의 실패는 보다 산업화된 국가들의 발전만큼이나 서구 맑시즘에 일대 타격이 되었다. 맑시즘이 사라진 뒤 중국은 자본주의적 경제기업 형태를 도입하게 되었고 급속한 경제발전 시기에 돌입했다. 아프리카와 그 밖의 사회주의 사회는 무너졌고, 나중에는 쿠바의 사회개혁이 아무리 성공했을지라도 그것이 소련의 대규모 경제원조에 의한 것임이 분명해졌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극동 지역 ‘호랑이들’의 급속한 발전이 제3세계 국가들도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리고 자본주의적 준거틀 내에서만 급격한 성공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일게다. –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 Left And Right)에서

제 가게에서 바느질 일을 20년 넘게 도와주고 있는 Lou 아주머니는 제 또래의 라오스 출신 이민자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배관공으로 일하다가 몇 해 전에 은퇴를 했고 저와 친하게 지낸답니다. 제 가게나 집 배관 시설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친구랍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해서 Lou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고 사는 사내랍니다.

이들 부부의 집에는 커다란 사진 하나가 거실에서 손님을 맞는답니다. Lou 아주머니의 시아버지 곧 전직 배관공인 Ban의 아버지입니다. 사진속 인물은 마치 일본식 정장을 했던 고종임금 모습같답니다. 어깨에 술이 달린 제복에 가슴에는 각종 훈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랍니다.

Lou 아주머니의 시아버지는 1975년 라오스에 오늘날의 “라오 인민 민주공화국”이라는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라오스왕정 시대에 총리급 고관이었다고 합니다. 라오스가 공산화된 후, 망명하듯 전 가족이 미국 이민을 왔다고 합니다.

그런 Lou 아주머니는 격년에 한번씩 고국 라오스를 방문한답니다. 그녀의 고국방문이 가까와지면 저희 부부가 하는 일이 하나 있답니다. 바로 제 가게 손님들이 맡기고 찾아가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는 일이랍니다. 상태가 어떻든 입을만한 것이면 어떤 종류의 옷이든 이민백으로 하나 가득 Lou 아주머니의 여행 짐이 된답니다. 라오스에 있는 친지들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즈음 한국에 사는 이들은 Lou 아주머니가 가지고 가는 옷들을 보면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옷들일 겝니다.

벌써 지지난 해던가,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 온 Lou 아주머니가 저희 부부에게 물었던 말이 있답니다. “아니 김씨 부부는 왜 그 잘 사는 한국을 떠나서 여기서 살아요?”하는 물음이었답니다.

그녀의 귀국 길에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중간 기착을 했던 모양입니다. 공항 바깥에 나가지도 않았지만 한국은 엄청 잘 사는 나라라는 그녀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김씨 부부는 왜 그렇게 잘 사는 한국을 떠나서 여기서 살아요?”라는 Lou 아주머니의 질문은 그녀의 입장에서 던질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겝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녀의 입장이라면 던질 수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양키 고 홈”하면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서 자랐습니다. 아니 그런 말조차 몰랐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깁 미 껌”, “깁 미 쬬꼬렛”이라는 말이 친근했던 세대입니다. 미국에서 건너 온 옥수수로 만든 옥수수 빵과 딱딱하게 돌덩이같은 우유 덩어리를 배급받아 먹으며 학교를 다녔던 세대입니다.

미국하면 천국 다음으로 좋은 나라쯤으로 알던 세대입니다.

제가 십수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친구 하나가 일찌감치 회사를 그만 두고 서울 인근 외곽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답니다. 자신이 스스로 무공해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당시 유행이었던 주말농장을 분양해서 나누는 그런 농장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연좌제그 농장을 방문했을 때 제 친구의 아버님께서 밭을 일구고 계셨답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자 반가히 맞아 주시던 친구 아버님께서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려, 미국 시민 되었지! 높아졌네 높아졌어 미국 시민 높은 것이여, 아무렴!”

친구 아버님은 6.25 한국전쟁 부역자로 낙인 찍혀 평생을 사시다 이젠 돌아가신 분이랍니다. 장남이자 제 친구의 형님이신 이는 참 사람 좋고 자상하신 분이었는데(그 이도 이젠 칠순이겠다는 생각을 하니 참 세월 빠릅니다.) 사범대학을 나와 학교 발령을 기다리다가 연좌제에 걸려 꿈을 접고 사셨답니다.

Lou 아주머니의 종한(從韓), 제 친구 아버님의 종미(從美)적 발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의 경험과 ‘좀 더 잘 사는 곳’에 대한 동경(憧憬)은 지극히 사람다운 자연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거꾸로 되었을 때, 일테면 라오스와 미국의 형편이 뒤바꿨을 때나, 한국과 미국의 형편이 뒤바꿨을 때도 이것이 자연스런 일이 될까요?

그렇게 뒤바뀐 환경에서도 종한(從韓) 또는 종미(從美)적 발언이나 사고가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한 일입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대세는 가능 이전에 미친 짓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상일 겝니다.

이른바 종북(從北)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답니다.

  • 계속 이어집니다.

 

찌라시와 어떤 예언

<박대통령 “찌라시에 나라 흔들”> – 온라인 한국일보의 기사에 달려있는 작은 제목입니다. 그 기사의 큰 제목은 <朴, 찌라시·애국심 키워드로 결백 호소.. 의혹 본질엔 함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예산결산특위 위원들과 가진 오찬 회동을 보도한 기사입니다.

이날 박근혜대통령은 모인 이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시작하기 전,후에 짧게 글을 읽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읽는 글 속에는 ‘나라’라는 단어는 15번, ‘대한민국’은 3번, ‘국민’은 19번 씩을 사용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들을 자주 읽어 내려가면서 스스로 “오직 나라가 잘 되게 하는(일에 빠져)…”, “일생을 나라 걱정을 하며 살았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국민(아마 그녀는 백성이라고 생각할 듯하지만)들이 이런 자신의 애국심을 믿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아니면 연출자의 뜻이었던 듯)합니다.

어쩌면 그런 믿음에 스스로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찌라시전후 사정이야 어떠하던 그 기사가 제 마음에 꺼림직한 까닭은 “찌라시”라는 말 때문이었답니다. 저희 세대쯤만 하여도 익히 아는 일본말입니다. 바로 ‘ちらし(散らし)’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광고를 위해 뿌려지는 인쇄물을 일컫습니다. 선전지, 광고지를 뜻하는 일본 말입니다.

무려 ‘나라’, ‘대한민국’, ‘국민’에 빠져 사시는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라 제겐 참 난감하게 들렸답니다. 그이나 저는 거의 같은 세대이거니와 해방후 세대랍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엄중한 직책을 맡고있는 그이가 쓰기에는 참 부적절한 낱말이거니와 그이나 저나 일본말이 그리 입에 베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그 놀라움이 컷답니다.

물론 그이가 5개 국어인가 6개 국어인가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 아무 때나 자기 나름의 적절한 외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문득 그이의 아버지 시절이 떠올랐답니다. 저는 그이의 아버지 시대에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1974년의 일이랍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아마 박근혜대통령이 대학을 졸업했던 해일 것입니다. 그해 정월달에 이웃 일본국의 수상이었던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는 동남아 5개국 친선방문 길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봉변을 당합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게양된 일장기가 끌어내려지고 찢겨지고 짓밟히고 불태워지는가 하면 일제 자동차들을 불태우는 반일 시위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호텔방에서 꼼작없이 갇혀있다가 귀국을 하게됩니다.

1974년 1월 한국에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에게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긴급조치 1호가 발동했습니다. 바로 박근혜씨의 아버지가 모든 국민의 자유과 권리를 제 멋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한을 쥔 것이랍니다. 이후 5년 동안 박정희와 국민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설정되었고, 바로 그 시절에 박근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른바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며 국민에 대해 배웠답니다.

아무튼 그 해 1월 동남아 5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다나까수상은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받게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반일데모를 잊지 못했던 다나까는 만만한 게 한반도 남한 정부였던지 이런 말을 쏟아냅니다.

“과거 한일사이에 합방시대가 길었지만 그 후 한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긴 합방 역사 속에 한민족 마음 가운데 심어 놓은 것은 일본의 휼륭한 교육제도였다.  ….역시 경제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국민생활 가운데 뿌리를 박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동남아 순방길에서 절실히 느꼈다.”

그 당시 한국인들의 공분을 자아낸 이른바 다나까 망언이라는 것이데, 애처롭게도 그 공분을 오늘까지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오히려 다나까의 말이 옳다는 이들이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는 듯하다는 생각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닌 현실입니다. 다나까는 40년 전에 망언을 한 것이 아니라, 예언을 한 셈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이 가져다 준 생각들입니다.

그날 밥상머리에서는 각하(閣下)라는 호칭도 이어졌다는 보도입니다. 집권당 원내대표라는 이의 입에서 연이어 나온 호칭이라고 하는데, 그게  일본 국왕이 임명한 문무관리들을 부르던 말인지는 알기나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놈들 2

no 2오늘(2014년 12월 4일)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날이라는 기사가 경제 전문 온라인 신문인 MarketWatch에 실렸습니다.

이제 미국은 공식적으로 세계 제 1위의 자리를 오늘로 중국에게 넘겨준 날이라는 기사입니다. 2000년도에 중국의 3배 규모였던 미국경제 규모가 2014년 12월 4일자로 중국보다 적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세계경제 지표를 발표하는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상품과 서비스 생산규모에 있어 올해 17.6조 달러를 기록한 중국이 17.4조 달러를 기록한 미국을 앞섰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 경제 점유율로 따지면 중국이 16.5%로 16.3%인 미국을 앞선 결과라고 합니다.

세월앞에 장사없다는 말이 딱히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제대로 적응못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 기사였답니다.

그리고 어제 한국의 ‘일등 인터넷 뉴스’라고 자처하는 조선닷컴에 한때 탑뉴스로 떠있던 기사의 제목입니다. <탈북여성 5人 “신은미·황선 끝장토론하자”> 그리고 그 아래 붙어있던 소제목들입니다. “재미 교포 관광객 오면 한달간 수업 중단하고 연습”, “’평양 원정 출산’ 황선씨는 최상류층 이용 평양산원… 난 보일러실서 몸 풀었다”

기사의 내용인즉은 최근 남한에서 통일토크 콘서트를 하는 연사들인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 황선씨는 탈북여성 5인의 시각으로 보니 영락없는 종북주의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북에서 살다가 남으로 온 자신들(탈북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겨우 북한에 여행이나 다녀온 주제에 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우습다는 것이고, 그들(신은미, 황선)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 탈북여성 다섯 명은 2002~2007년 사이에 탈북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황선씨는 2005 10월 북한에 방문했고 당시 평양에서 출산을 해 화제가 됐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은미씨는  2011년 10월 첫 방문을 시작으로 2013년 9월까지 여섯번 북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그런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라본 북한에 대한 느낌을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콘서트를 진행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들이 영락없이 종북주의자로 낙인이 찍힌 듯 합니다. 아무렴 그들이 틀림없이 종북주의자들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이미 꽤나 많을 것입니다. 일등 신문인 조선일보가 발벗고 나섰는데 그 정도야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이런 상황을 맞게 된 당사자인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기자회견 현장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신은미씨가 말한 한 대목입니다.

“종편에서 저를 난도질하고, 이렇게 빨갱이, 종북이 곧 빨갱이더라고요. 빨갱이로 몰아부쳐서 친정, 시댁, 친구, 친지 다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 민족을 위해서 노력하는 언론이십니까… 이렇게 (제가) 그대로 가면 ‘(종편 등 보수언론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간다’고 박수하겠죠.”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이 일상적인 관계에서 단절당한 왕따가 되어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가 보도하고 있는 각기 다른 두개의 뉴스야말로 “종북주의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나 한인 동포 사회나 일단 “종북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왕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어떤 사람이 종북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 종북적 사고를 지니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단지 “종북주의자”라는 낙인은 어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왕따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누군가 또는 특정한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를 종북주의자 또는 종북단체로 만들기는 아주 쉽습니다. 왕따를 시켜버리면 그만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내세운 다섯명의 탈북여성처럼 일단 왕따로 찍힌 사람이나 단체에게 화살을 날려줄 전위대들은 차고 넘칩니다. 일부 탈북자들을 위시해 어버이연합 등 실체가 빤한 실로 딱한 이들로 부터, 김영환, 하태경, 김지하류의 자기상실 환자들, 국회의원 김진태 부류의 완장들은 차고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완장들을 부리는 그 놈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오늘자 MarketWatch 보도에 따르면 당장 내일, 내년 또는 수년래에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난 200년 동안 지구상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옛날 영화를 누렸던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덧붙입니다.

중국보다 세 배나 앞서있던 미국이 중국에게 추월을 허용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4년입니다.

남한보다 세 배나 앞서 달리던 북한이 남한에 비해 40분의 1 수준으로 몰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50년입니다.

도대체 있지도 않는 종북주의자들을 양산해 내어 왕따군(群)들을 키우는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겝니다.,

“오늘 왕따로 사는 사람들은 복이 있을진저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므로”라는 믿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 놈들 – 1

비록 라디오가 뒷전으로 물러앉은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FM방송이나 최근 유행하는 팟캐스트같은 신종 라디오의 위세는 여전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제 어린 시절의 진공관 라디오가 누렸던 위세에 비하면 많이 퇴락한 셈입니다.

김일, 장영철 등이 나오는 프로레슬링을 보노라고 동네 유일하게 흑백 텔레비가 있었던 쌍둥이네 집으로 몰려갔던 제 또래 아이들과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울 신촌이었답니다.

진공관 라디오그 무렵 대세는 라디오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알지도 못하고 들었던 라디오 연속극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주인공 아로운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있답니다. 한명숙, 현미, 이금희, 위키리, 최희준에 이어 배호까지 다 이 라디오를 통해 섭렵하였습니다. 장소팔, 고춘자에 이어 구봉서, 곽규석,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의 서영춘 까지도 아무렴 라디오였답니다. 아직 트랜지스터가 나오기 전, 진공관 라디오였답니다.

그 무렵부터 제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오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까지 라디오를 지킨 프로그램이 하나 있답니다.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5분 드라마랍니다.

제 또래치고 이 라디오 프로그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듯합니다. 제 머리가 굵어지고 트랜지스터 라디오 시대가 된 이후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지만, 1960년대만 하여도 ‘두만강 푸른 물에…’에 함께 아주 귀에 익은 방송이었답니다.

내용은 거의 엇비슷해서 지옥같은 북한 인민들의 삶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리면서 천리마운동이라는 노동에 혹사 당하고 공산당 압제에 신음하는 북의 인민들의 모습을 김삿갓이라는 인물이 고발하고 풍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도 제 또래나 이즈음 한국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어버이연합에 속한 분들과 같은 세대 사람의 기억속에는 이 방송이 심어준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깊이 남아 있을겝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서서 그 때를 돌아봅니다. 1960년대 일인당 GNP가 북한은 325달러, 남한은 94달러였답니다. 거의 3.5배가 차이가 났답니다. 바로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드라마가 시작하던 무렵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무렵만해도 북은 지금과 달리 어느 정도 분배에 있어서 평등이 이루어졌던 시절이었고, 남한은 부(富)의 쏠림 현상이 오늘과 못지 않았으므로 보통의 북의 인민과 남의 국민을 대비해 본다면 당시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방송내용은 명백한 허위였습니다.

거짓이거나 말거나 남에서 살았던 저와 같은 사람들은 북은 사람살 곳이 못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답니다.

제가 “때려잡자 김일성”을 외치며 군생활을 할 때인 1970년대 중반까지도 북이 남쪽보다 경제력에서 앞서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 무렵 전방부대 중대장이나 대대장의 월북소식이 쉬쉬하며 장병들 사이에 떠돌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남북의 경제적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입니다.

그리고 2014년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남한은 1인당 소득 28,739달러, 경제 규모는 1조 4,400억 달러인 반면에 북한은 1인당 소득 506달러, 경제 규모는 2012년 기준 123억 달러랍니다. 도저히 서로를 비교할 수 없는 차이의 수치입니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2011년 한 해 북한 전체 예산은 2020억원이었는데, 2014년 남한의 종로구 한해 예산은 2980억원이었답니다. 정말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랍니다.

진공관 라디오 시대였던 1960년대에 3.5배 앞서있던 북한이 2014년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남한의 1/40의 수준이 된 것입니다.

지나간 50년의 과정이 이랬니? 저랬니?하며 따져 볼 이유도 없이 2014년 오늘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남에 사는 국민들 가운데 북의 인민을 부러워 하거나 북의 지배체제를 받들거나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그건 정말 정신나간 사람들이 아닐까요?

일테면 나보다 3.5배나 잘 살던 사람이었는데 50년이 흐른 후 보니 내가 그 사람보다 40배나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 사람의 지금의 삶을 부러워한다? 도대체 말이 됩니까?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아무리 상식을 뛰어넘어 생각을 해보아도 남한 국민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종북(從北)주의자’들은 차고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남한에서도, 이곳 이민자들의 동포사회에서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뿌리내리고자 이민 온 미국 동포 중에 신은미라는 분도 종북주의자라고 하는 뉴스를 보았답니다. 그 이가 북을 다녀온 모양이고, 거기에서 사람사는 모습들을 ‘오마이 뉴스’라는 남한 정부가 허락한 매체에 기고를 했고, 그 글을 즐겨 읽은 이들이 제법되었고, 그래 책도 내고  토크 컨서트라는 행사도 한 모양입니다.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그이의 글을 읽어보니 2014년을 스마트폰 전성시대로 사는 그이는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찍은 북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들었다고 생각한 남한의 정부 당국과 1960대로 살아가려는 일부 세력들은 신은미씨가 진공관 라디오시대의 <김삿갓 북한 방랑기>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종북주의자라고 한답니다.

2014년 이 문명의 시대, 선진조국 대한민국에서 진공관 라디오 시대로 살고자 하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어찌 알랴?

추수감사절 연휴를 참말 잘 쉬었습니다. Thanksgiving day 전날에 눈이 좀 오고 바람이 불었는데, 그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으되 집에 전기와 인터넷, 전화가 불통이 되었었습니다. 다행히 당일 늦은 밤 전기는 다시 들어왔지만 인터넷과 전화는 주일(오늘) 오후까지 나흘 동안이나 불통이었답니다.

다석강의전화는 휴대전화가 있으니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인터넷이 끊어지니 저녁시간이 몹시 길었답니다. 컴퓨터나 TV를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에 든 것이 유영모선생님의 ‘다석강의’입니다. 제 정신 차리며 사노라고 틈나면 꺼내들곤 하는 책인데, 모처럼 사흘밤을 끼고 살았답니다.

유선생님의 말씀들을 읽으며 이즈음 두루 흐트러져 어찌할 바를 모르던 생각 조각들이 하나로 꿰어지면서 머리 속이 환해지는 참 쉼을 누렸답니다.

왜 한국교회와 한인교회는 유영모님이 가르친 ‘뜻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맛의 믿음’만을 쫓게 되었을까?

왜 한인교회와 한국교회에는 ‘예수의 뜻을 쫓아 살고자 했던 유영모’류의 사람들을 보이지 않고, ‘맛 곧 돈과 권세의 누림만을 쫓는 이명박, 문창극, 이인호, 조용기, 김홍도……’류들이 창궐할까?

왜 한국교회와 한인교회는 “지금 멸시받고, 버림받고, 고통 받고 조롱받는 이들에게  조용하라고 윽박지르는 권력 앞에서 조용히 가만있기만 하는 것일까?

왜? 자기 일에 책임지지 않는 권력자들과 제 배불리우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도 않는 종북주의자들을 양산해내며 정, 경, 군, 관, 언, 학, 종교 등 제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악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시편 73:4)”는 세상이 되었을까?

왜? “하나님의 백성마저 그들에게 솔깃하여 그들의 물에 흠뻑 젖어 들어서 한다는 말이, “하느님이 어떻게 알랴, 가장 높은 분이라고 세상 일을 다 아느냐?”고 할까?

왜? “그들은 악인이어도, 몸은 항상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시편 73 : 11-12)” 세상이 되었을까?

이제 저물어가는 2014년 오늘, 제 앞에 놓인 물음들에 대해 유선생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참 예수쟁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이 되신 후, 유불선(유교, 불교, 선교)을 통달하여 꿰뚫고 그 곳에도 길이 있다하셨지만 끝내 참 예수쟁이로 살다가신 선생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자유, 독립, 통일, 공평, 평등 같은 거창하고 큰 것을 말씀 하시면서도 그것이 구름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제가 발딛고 사는 현장에서, 내 가정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이루며 사는 예수쟁이가 되라는 권고였습니다.

비록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고 떠드는 이들이 세상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상일지라도 말입니다.

모처럼 푹 쉰듯한 추수감사절 기간이었습니다.

인터넷은 다시 연결되어 이슬람 국가(IS), Ferguson사태, 세월호 유가족 등등 ‘하나님이 어찌 알랴?’는 세상은 다시 제 곁으로 왔지만 말입니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포박자세상은 참 빠르게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하고 있고,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을 멈추고, 변(變)하지 않고 정지(停止)하고 있는 것들을 따져 보기로 한다면 그 역시 엄청나게 많거니와 어쩜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하는 물음을 지울 수 없답니다.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여길 줄 모르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람이 아닐까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살이를 보며 해 보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세상 역시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을 보노라면 깜작깜작 놀랄 때가 있답니다.

어느 사회건 신과 사람 사이에서 브로커 노릇을 하며 사기를 일삼는 종교 브로커들이 늘 있어왔다는 종교적 무변화 곧 정지상태는 이어져 왔고요.

인류사에 있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이 없었던 때는 어느 사회든 단 한차례도 없었다는 무변화가 있을 것이고요.

이런 저런 이유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꾸 사람들의 생각에서 점점 뒷전으로 밀려가는 듯한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초기에 있었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 곰곰히 따져보면 인류 역사 이래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던져 온 질문이랍니다.

어쩌면 이런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질문으로 하여 사람들의 역사는 발전해 나왔고, 발전해 가고 있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기원후를 따질 것도 없이 오늘날에 똑같이 품고있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을 곱씹어봅니다.

“도시국가의 상태는 개인의 몸과 아주 닮아있다. 일테면, 우리들의 손가락 하나가 상처를 입으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끼듯이, 제대로된 국가는 이러한 유기체와 아주 흡사하다. 국민 가운데 어느 누구든 고통을 당하면 국민 전체는 그것이 마치 자기의 것인양 느낄 것이고, 국민 개개인의 즐거움이나 고통은 국민 전체의 그것이 될 것이다.” – 플라톤의 국가론

국가는 마치 하나의 선박이나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다. 그 일부의 와해는 전체의 보전에 치명적인 붕괴 요인이다. – 플라톤의 법률

인간의 몸은 국가를 상징하는 바와 같다. – 중략 – 정신(精神)은 제왕(帝王)과 상응하고, 피는 신하와 기(氣)는 백성과 상응한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의 몸을 자제할 수 있는 이는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므로써 국가에 화평을 가져올 수 있고, 자신의 기를 함양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국가는 와해, 붕괴될 것이고, 기가 다하면 사람의 신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 포박자(抱朴子)

그들의 차이

제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주는 한적한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해가 떨어지면 캄캄하답니다. 가로등을 거의 볼 수가 없답니다. 물론 시내 중심가나 상점가들에는 가로등이 밝게 빛나지만 저녁 9시즈음이면 대부분 상가들이 문을 닫고 조용하답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이번 분위기에 맞추어 살다보니 이런 풍경이 몸에 아주 익숙하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웃 대도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제가 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답니다.

그러다보니 아주 급격한 변화도 없는 곳이랍니다. 미국 남부 여행을 하다가 돌아오면 이 곳 사람들도 급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긴 합니다만, 1970년대 서울 풍물에 익숙한 제 눈에는 여전히 느긋한 촌냄새가 풍기는 곳이랍니다.

이 마을에서 제가 세탁소를 하며 밥먹고 살기 시작한지도, 거하게 말씀드리자면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답니다. 손님들의 모습들과 그들이 맡기는 세탁물 역시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행의 변화는 있어왔지만 그저 이 곳 분위기(제 가게가 위치한 동네 분위)에 맞을 성 싶은 가격대의 옷들을 세탁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젠 제법 경륜이 쌓인 세탁소 경험 가운데 딱 두번 제 세탁소와 이 지역 형편에 맞지않는 고가품의 옷들을 세탁한 때가 있답니다.

한 때는 약 십오륙 년 전의 과거 일이고, 또 다른 한 때는 바로 이즈음이랍니다. 제 가게 근처에 대학교가 있고 이 대학교의 어학연수원에 해마다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배우고 간답니다.

십 오륙년 전, 한국에 IMF사태가 터지기 직전 한 때 한국에서 온 어학연수원 학생들이 들고 온 세탁물들은 동네 사람들의 세탁물과는 차원이 다른 가격의 옷들이었답니다. 한 때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이즈음에 세탁료는 묻지도 않고 고가의 옷들을 맡기고 가는 젊은이들의 거의 백프로가 중국에서 온 연수원 학생들이랍니다.

“중국” – 이제 가히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는 세력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늘 CNBC 뉴스는 그런 중국에 대해 다루는 프로를 내보냈답니다. 초강대국인 중국이 이미 경제, 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세계는 물론 아시아를 지배하지는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에 비해 아직은 20년 이상 쳐져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그 뉴스를 보다가 생각난 미국과 중국에 대한 생각, 그리고 한국, 한국민에 대한 생각 하나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중국의 영향을 받는 문화 관습속에서 자라고 사고하며,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사는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국적 사고와 미국적(또는 서구적) 사고방식의 근원적인 차이는 “신(神)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일 것입니다.

오랜 기간 기독교 영향 아래서 역사발전을 이룩한 서구 및 미국적 사고의 바탕에는 창조주(創造主)이자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신(神)이 있습니다.  나아가 인간은 자연에 대해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수준의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고의 틀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에 반해 중국의 전통적 사고에는 이런 서구적 개념의 신(神)이 없습니다. 물론 하늘(天)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이 역시 서구적 신의 개념은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중국적 사고의 시발입니다. 해, 달, 별은 물론이거니와 인간, 소, 개, 말에서 신(神)조차도 자연를 이루고 서로 상생하는 일부분들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중심에는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서구적 사고의 윤리 또는 도덕적 기준이 신(神)에게 있다면, 중국적 사고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은 바로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윤리(倫理)의 윤(倫)이 사람 인(人)변으로 시작하는 것이나 도덕(道德)의 덕(德)이 마음 심(心)변으로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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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과 믿음이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하고 끝난다는 것이 중국적 사고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소련을 상대하며 세계를 이끌었던 시대와는 사뭇 다른 까닭입니다.

군사, 경제적인 힘으로만 양국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생각의 바탕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교적인 틀로 기독교를 해석하고 벼락부자들의 천민 자본주를 신이 주신 복으로 믿고 사는 일부 한국인들도 곁들여 생각해 보면서…

촌구석 세탁쟁이가 모처럼 중국 아이들이 맡긴 고가의 옷들과 CNBC의 방송을 생각하며 몇 자 적어 보는 것입니다.

세월호,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지난 일요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이 주최한 걷기대회에 다녀왔답니다. 그리고 그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답니다. 오늘 그 영상들을 함께 참석했던 이들에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조금 편집을 해 보았답니다.

그러노라고 세월호 생수장 사건과 관련한 동영상들을 두루 찾아 보았답니다.

그러다 든 생각입니다.

DSC01844첫째는 과연 “문명(文明)”이란 무엇일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뭐 거창한 질문을 하자는 뜻이 아니고, 보통사람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안에서 동영상을 남겨 여러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된 것은 채 십년도 안된 일입니다. 엄청난 문명의 발전이지요. 그런데 그 문명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아픔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았답니다.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이토록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뒤짚어 놓지는 못하지 않았을까하는 물음이었답니다.

두번째로는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뻔뻔해 질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천개의 사실도 하나의 진리(힘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로써의 진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대한 물음이랍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러므로 더욱 해야할 일들이 많은 세상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로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저 제가 살고 있는 이 땅끝에서, 작은 몸짓 하나라도 아픈 이들, 더불어 함께 살려고 애쓰는 이들과 함께 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한 감사랍니다.

 

 

이민 복권(Green Card Lottery)

매주 제 세탁소 손님들을 비롯하여 (제게 의뢰한)한인 세탁인들의 가게 손님들에게 매주 일요일 아침 짧막한 이메일 편지를 보내는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일곱해가 지났습니다.

us-dv-lottery-2014-300x218단 한차례도 쉰 적이 없으니 제법 오래 이어져 온 일입니다. 편지를 띄우고나면 이런 저런 답신들을 많이 받게됩니다.

오늘은 이번 주에 제가 받은 답신 가운데 하나를 여기에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일요일 제가 띄운 편지 내용은 <미국 복권 이민 비자(American Green Card Lottery)>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답니다.

복권 사보신 적 있으신지요? 복권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요? 어떤 종류의 복권을 사보셨는지요? 그 런데 혹시 복권 이민 비자(American Green Card Lottery)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말 그대로 미국에서 살 수 있는 비자를 복권 추첨을 통해 발급해주는 것이랍니다.

로또 이민 비자의 정식명칭은 ‘다양성 이민 비자 (Diversity Immigrant Visa)’랍니다.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전 세계 사람들 가운데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추첨을 통해 매년 최대 55,000명에게 미국 이민 비자를 발급해 주는 제도랍니다.

지난 6일 월스트리트 저널 온라인판에 실린 이 로또 이민 비자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저는 깜작 놀랐답니다.

올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비자를 얻기 위해 응모한 사람들의 숫자가 1,10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추첨을 통해 55,000명이 미국 이민 비자를 얻게된다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놀란 사실은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나라들, 일테면 멕시코, 브라질, 캐나다, 영국, 중국, 인도, 한국, 필리핀, 베트남 등등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로또 응모 자격조차 주지 않는답니다. 이미 그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 미국내에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만일 세계 모든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권에 응모할 자격을 준다고하면 아마 응모자가 몇 천만명이 될 지도 모를 일인 것이지요.

제가 무슨 이민제도나 이민비자발급 제도 같은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저도 이민 일세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다만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거나 미국민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복권을 사보신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쉽게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이민 일세는 저는 이미 복권에 당첨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건강한 미국시민이 되는 일, 우리 동네에서 꼭 필요한 세탁소 주인이 되는 일은 이미 제가 당첨된 복을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감사의 계절입니다. 이 땅에서 뿌리 내리고 사는데 가장 크게 도와 주시는 우리 세탁소 손님들에게 드리는 감사가 매우 큰 계절입니다.

그리고 Driggs씨에게서 받은 편지 번역과 원문입니다.

영에게,

당신이 이곳에 와서 기쁘다. 당신 아내와 당신은 분명히 열심히 일하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며, 하는 일을 통해 가치를 더하고 있다.

대형 함선이 등장하여, 이곳에서 새 삶을 일구려는 다양한 사람들을 데려오기 (시작한 때로부터) 대략 6만년 전에, 머나먼 그리고 아마도 험난한 여정을 통해 걸어서 원래 이곳에 도착한 아메리칸 인디안들만이 부족 시민인 나라가 바로 이 미국이다. 하지만, 아마도 “불과” 10만년 전에는 이 땅에 인간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 나라의 남부 국경을 넘어 도착하는, 그들 중 상당 수는 범죄 전력이 있거나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있는 이민자들에게는 “당신이 이곳에 와서 기쁘다”는 말을 나는 할 수가 없다.

다행히도, 그들은 최근 까지 남서부 지역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인들의 99%는 이민자였다; 단지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오래 살았을 뿐 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 아니면 초등학교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애당초 그것을 배우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전쟁에서 싸웠으므로, 그들은 이곳에서 살 권리를 획득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부계와 모계 쪽 모든 내 선조들은 프랑스와 인디언간의 전쟁 (French & Indian War),’ ‘미국 독립전쟁,’ ‘1812년 전쟁’에 참전했지만, 나는 그것을 이 나라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데 내 조상들이 기여한 것으로 보며, 또한 그것이 내게 특별한 특전을 수혜할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조상들의 본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여긴다.

보다 최근에 낙원에 온 이민자들은 찾은 것을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지키기 위해, 그들 보다 후에 오는 사람들에게 문을 닫고 싶어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자신 보다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려 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기술과 재능을 들여오려 하거나, 이 땅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조력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에 한해, 그 생각이 공정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경제학을 수년 동안 공부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기술과 재능을 소지한 이민자들을 지역사회에 들이면, 모두가 보다 나은 상태가 되며, 그것은 보통 모두의 삶이 개선되는 결과를 낳게된다.

 현재 처한 불쾌한 또는 희망이 없는 상황이 어떻던지 간에, 단순히 해를 끼치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에 오고 싶어하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겠지만, 만일 그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처한 특별한 상황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이유가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도 남서부 국경지역 주(州)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만일 기꺼이 지역사회의 건설적 일원이 되려한다면, 그렇다면 어디지역에 살고 있든지, 모두에게 (이민비자) 복권추첨에 신청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뉴스 레터를 계속 보내도록하라. 시사하는 바가 많은 내용들이다!

Charlie

그리고 편지 원문입니다.

Young,

I am glad you came here.  You and your wife certainly work hard, participate in the community, and add value by what you do.

As this is a country in which only the Native American tribal citizens originally arrived by a long and possibly torturous journey on foot before large ships started showing up, bringing a variety of people wanting to make a new life here some 60,000 years later.  But we do know that perhaps “as little” as 100,000 years ago, there were no people here at all.

I cannot say “I’m glad you came here” about some of the immigrants currently arriving by unauthorized means across the southern borders of our states, as a few too many of them have criminal backgrounds or a criminal intent for being here.

Fortunately, they have tended to stay in the Southwest until recently.

But the truth is that 99+% of Americans were immigrants; some have just been here longer than others.  A few too many Americans tend to forget that — or didn’t pay attention in grade school and learn it in the first place.

Some of us think that because their ancestors fought in a war, they earned a right to be here that others didn’t earn.

My ancestors on both my father’s and my mother’s side of the family did fight in the in the French & Indian War, the American Revolution and the War of 1812, but I look at that as their contribution to helping make this country a place people can live in relative freedom — not a grant of special privileges for me, but an obligation to live up to their example.

I have learned though that more recent immigrants coming into paradise have a habit of wanting to slam the gate on those coming in behind them, to protect what they’ve found all for themselves.

To me, that only seems fair if those coming in next are not willing to work hard, be a part of the community, bring some skills or talents we don’t need or want, or are unwilling to help make this a better place.

Several years of studying Economics taught me that we are all better off when we let immigrants with skills and talent into the community, as normally doing that results in everyone’s lives improving.

It is unusual for people to want to come here from whatever unpleasant or hopeless situation they are in simply because they want to do harm here, but when that is the situation, whatever that unusual reason might be is never going to be seen as a good reason to keep the door open for them.

I wish we would fix the problem in the southwestern border states for that reason alone.

Everyone else from wherever they come from — if they are willing to be constructive part of the community, then they should have a chance in the lottery!

Keep up the newsletters.  Good thought provoking stuff!

Charlie

우리는 이 땅에 최근에 이주한 이민자들입니다. 한국(남한)사회도 이즈음에 들어 다문화사회로 막 진입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Driggs씨는 이 땅을 살아가는 한 건강한 중년 사내이며, 그 역시 이민자의 후손입니다. 그의 생각에 귀기울여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