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위하여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 어제, 오늘 내 가게 손님들이 나를 깨우친 생각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를 정말 반갑게 맞아 준 이들은 내 가게 손님들이었다. 바로 우리 부부의 일상이었다.

손님들은 저마다의 경험으로 지난 시간들을 꺼내어 ‘오늘’, ‘여기’에서 우리들의 일상을 함께 했다.

“내 마누라에게는 너희들 여행 이야기는 하지 말아줘! 마누라가 또 가자고 할지 모르니…”

“거긴 아주 형편 없는 곳이었지, 이태리가 정말 좋았어!”

“출장 길에 딱 하루 들렸었지. 언제간 나도 시간 내서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야.”

아련하게 옛 기억을 떠올린 이는 1970년대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 이젠 할머니가 된 옛 소련 출신 피겨 선수였던 그녀의 기억이다. “모나리자 앞에 서 있었단다. 마침 나를 알아 본 관광객이 있었단다. 그 이가 내게 사인 요청을 했단다. 모나리자 앞에서 사인을 해 주었었지”

그랬다. 무릇 여행이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내게 파리는 역사 속에서 오늘을 바라보며 내일을 꿈꾸게 하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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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콘서트

“표 파는 게 정말 힘드네요.”, “열심히 다닌다고 다녔는데 표를 못 팔았어요.”,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 사람에게 표 파는 일이 참 쉽지 않았어요.”

애초 시작할 때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나선 일이었다. 내 이야기는 아니고, 어느새 4년 세월이 흐른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일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대 사건’이라는 생각으로 동아리가 된 사람들 이야기다. 이름하여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약칭 ; 필라 세사모)>이다.

이들이 아직 봄을 기다리기엔 이른 2월 초에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나선 까닭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죽은 자와 산 자가 자연스럽게 만나 대화하는 기억의 공간을 만들고, 아픔을 보듬어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참여와 실천 속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 모두가 존중 받는 국가, 서로가 협력하고 환대 받는 평화와 우정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의미 있는 행진으로 우리의 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 ‘4·16재단 설립 추진 대회’ 제안문 중에서

나는 믿는다. <기억과 희망이 흐르는 밤>을 위한 티켓을 파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쉽지 않다’, ‘힘들다’는 소리로 하여 기억은 더욱 새로워 질 것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은 이루어 질 것임을.

비록 음악회 자리가 차지 않을지라도.

기억, 즉 역사는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는 수단이며, 오늘 힘들고 어려운 아픔을 보듬어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를 이룩해 내는 도구임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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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성과 속

이즈음 세상에 외국 여행 한번도 못했다면 ‘촌스럽다’라는 말 듣기 딱 십상이다. 허나 어찌하리! 그게 내 모습인 것을. 딱히 여행 경험 유무로 따지는 촌스러움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촌스러움’은 늘 내게 붙어 다니는 수식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큰 맘 먹고 첫 번 째 외국여행을 다녀왔지만 평생을 함께 한 촌스러움을 벗지는 못할 것이다.

그랬다. 정확하게 내 인생의 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반은 미국에서 살았다만 두 곳 모두 내게 외국은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내 일상을 이어가는 삶의 터전이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하여 이번 여행이야말로 첫 외국 나들이였던 셈이다.

내 나이 스무 살 무렵에 어지간히 싸돌아 다녔었다. 그래봐야 한반도 남쪽이었지만 웬만한 명산과 바닷가에 작은 발자국 꽤나 찍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서른을 넘어설 즈음 생활인이 된 내게 싸돌아 다닐 여유는 이미 사치였다. 미국 이주 이후 삶은 작은 사치도 허락하지 않았다. 변변한 재주가 없는 내게 이민은 그저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래도 차마 버리지 못한 버릇으로 돌아 다니기는 했으나 그 역시 미국을 벗어 나지는 못했다. 그나마 어찌하여 작은 여유를 부릴 기회가 오면 연어처럼 한국을 찾곤 했으므로 해외 여행은 차마 꿈꾸지 못하였다.

시간은 늘 생각과 무관하게 흘러 어느새 은퇴 시기를 저울질 하는 나이가 되었다. 몇 해 전 일이다. 아직 무릎이 쓸만할 때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 왔었다. 그 생각 끝에 속다짐을 했다. 아직 걸을 만 할 때, 해마다 며칠 동안 만이라도 싸돌아 다니며 걸어 보자고….

그 다짐의 하나로 짧게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내 체력이 딸릴 만큼 어지간히 걸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눈이 내려 앉은 뒤뜰을 바라보며 짧았던 여행길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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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性, 城, 成)과 속(俗, 贖, 速, 屬)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여행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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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宣傳)에

<프로파간다는 참 재밌습니다. 건망증을 목표로 하니까요. 무슨 말이냐고요? 프로파간다는 국민에게 무언가를 잊게 만드는데 목표를 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의 경우에는 잊을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애초부터 진실을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과거의 역사에 무지한 채, 권력이 쏟아내는 선전에만 귀를 기울이는 미국국민들을 향해 던진 하워드 진 (Howard Zinn)의 말이다.

그가 세상 뜨기 전인 2004년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의 말은 2018년 오늘도 미국민들에겐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미국민들이란 그저 평범한 내 이웃들이다.

한국계인 내게 친근함을 나타내려고 평창올림픽과 북한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말을 건네는 이웃들은 따지고 보면 내 개인적으로는 참 고마운 일이다.

문제는 전형적인 미국민들에게 북한이나 남한이나, 아니 베트남, 필리핀, 쿠바,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등등의 나라들에 대해 권력들이 만들어낸 선전 이상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이즈음 한국(남한) 뉴스들을 통해보는 그 곳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잊게 만들려고 온갖 힘과 꾀를 다하는 권력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언론과 돈의 권력들.

다만 건망증과 싸우며 부단히 기억을 살려내고자 하는 시민들이 예전과 다르게 많고, 그들의 노력이 치열하다는 소식에 희망을…

어머니와 스웨터

모진  추위 속 오래 전 어머니가 짜 주신 스웨터를 보며….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연일 이어지는 추위 속에서 작건 크건 일상을 허무는 일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비록 평시와 조금 어긋나더라도 마음은 늘 넉넉한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문득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추웠던 겨울은 언제 였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가장 추운 겨울은 언제 였는지요?

저는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이 생각난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십년이 지나지 않았던 때여서 그저 가난이 평범했던 시절이었답니다. 허름한 집 구조나 난방시설 등을 이즈음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과 비교해 설명드릴 수가 없을 만큼 가난했던 때였답니다.

물론 저희 가정만 그런 가난을 안고 산 것은 아니고, 제 친구들 대부분의 생활은 거의 비슷했답니다.

제겐 그 때의 겨울이 가장 추웠답니다. 일테면 방안에 있는 그릇 속에 물이 얼고, 벽에는 하얀 성에가 낀 방을 상상하실 수 있겠는지요? 그 때의 겨울이 그랬답니다.

그 때 그 매섭게 추운 겨울에 저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것은 어머니가 짜 주셨던 스웨터 였습니다. 어머니께서 털실로 짜 주신 두툼한 바지와 자켓은 그 겨울을 이겨낸 힘이었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다니며 제가 더는 털옷을 입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겨울이면 털옷을 짜 주셨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을 들어가던 그 해 겨울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더 이상 털옷을 짜지 않으셨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짜 주신 털옷을 제가 입었던 기억은 거의 없답니다. 그러나 그 털옷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오래 전 어머니가 짜 주신 털옷을 보며, 모든 추위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을 생각해 본답니다. 어머니의 사랑 말이지요.

매서운 추위로 시작한 2018년입니다.

올 한 해 내내 비록 어머니 아니어도 누군가의 사랑을 넘쳐나게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듯함이 이어지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 bitter cold continues. I wish that, above all, you’ll stay healthy. I also wish that, in spite of the continuing biting cold, you’ll manage to keep everyday life in control and to maintain an easy mind every day, though things may not work out exactly in the same way as usual.

Casually, one question crossed my mind: when was the coldest winter in my life? When was the coldest winter in your memory?

For me, about the time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came to my mind. I could say that the winters in those days were the coldest in my life. As it had not been less than ten years since the end of the Korean War, poverty was normal in Korea at that time. The housing conditions, including the heating systems, in those days were beyond explanation, especially compared with the comfort which we are enjoying now.

For example, the water in a container in the room was frozen and the walls in the room were covered with frost overnight in the bitter cold days of winter. Can you imagine that?

Of course, it was not just my family which lived in such a shabby house, but most of my friends also lived in a similar condition.

What wrapped me up warmly in the cold winter at that time was a sweater which my mother had knitted. Thanks to the thick jacket and pants which my mother had knitted, I could go through the cold winter.

Though I rarely put on those knitted clothes when I was in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my mother still knitted those clothes for me every winter until I entered a university. Since then, she stopped knitting my clothes.

I don’t remember when I wore the last one which my mother knitted, or how many times I had worn it. But I still keep it carefully though it is 45 years old now.

In this morning of a bitter cold day, I’m thinking about the strength to overcome the cold and difficulties, while looking at the sweater which my mother knitted for me a long time ago. I mean mother’s love.

It is the year 2018 which began in the bitter cold.

I wish that throughout this year, you’ll continue to have the warmth enough to win someone’s overflowing love like my mother’s love and also to share this type of mother’s love with someone.

From your cleaners.

추위에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동네에 산지 서른 해가 넘었지만 이런 추위는 처음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자동차 수은주가 1도라고 가리켰다. 섭씨 영하 17도 이하였다. 일기예보로는 체감온도가 -10, 섭씨로는 영하 23도 이하란다. 벌써 몇 일 째인가? 여름 한 철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맥을 놓게 되듯 강추위에 그저 몸이 움추려 들 뿐이다.

문득 내 평생 가장 추웠던 겨울이 언제였던가 꼽아 본다. 나이 들면 지금과 가까웠던 세월보다 먼 옛날 일들이 또렷이 기억난다더니 생각은 빠르게 시간을 되돌린다.

그 땐 정말 참 추웠었다. 방안 그릇에 담긴 물이 얼었고, 자고 나면 벽엔 하얀 성에가 끼곤 했었다. 내 나이 열살 어간의 겨울이었다. 내 집이 가난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시절 내 동무들 대부분 그런 방에서 겨울을 지냈다. 그랬다. 그 땐 친구라는 말보다는 동무 라고들 했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채 십여 년이 흐르지 않은 겨울이었다. 내 동무들 가운데는 여전히 이북 사투리를 쓰던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 집 가까이에 가면 억세고 거세기가 동무들의 억양보다 몇 배나 높은 이북 사투리를 듣곤 했다. 동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 갈 무렵 즈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투리는 더는 듣지 못하게 되었고, 서울 말과 섞인 이북 사투리를 쓰시던 동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도 이젠 거의 세상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동무에서 친구가 된 내 어릴 적 벗들도 어느새 손주 손녀 이야기를 하는 나이들이 되었다.

그래, 그 땐 정말 참 추웠었다. 방안에 있는 그릇에 담긴 믈이 얼었고, 벽엔 허연 성에가 끼곤 했었다. 내 나이 열 살 어간의 겨울이었다. 내가 친구들을 아직 동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모진 추위가 이어지는 2018년 새해 벽두에 옛 일을 생각하며….

달과 일상(日常)

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다. 때마침 둥근 보름달이다.

좀 느긋해 질 나이도 지났건만 연휴에도 일상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서성거렸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에 집을 나섰다. 행여라도 가게 보일러가 얼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연휴는 일상이 연속되어 진다는 담보가 있어야 참 휴식이다. 이 추위에 보일러가 얼기라도 한다면 연휴 끝에 이어질 내 일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비록 노파심이라도 집을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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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새벽 녘에 둥근 보름달이 지고 있었다.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둥근 보름달은 운전을 멈추게 하였다. 내 일생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보름달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60여년의 세월을 빠르게 돌아본다.

일상의 연속을 위하여 휴일 아침에 일터로 향하며 누린 이 놀라운 감흥이라니!

우연이었다.

다 저녁 무렵에 홀로이신 장인을 뵈러 가는 길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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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는 일, 어쩌면 그도 일상(日常) 아닐까? 그 달이 보름달이어도.

2018년 첫날에

시간 – 그 감사에

한 해의 마지막 주간,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아픔으로 혹독한 감기를 앓다. 이제껏 큰 병이나 잔병치레 없이 살아온 것 더할 나위 없는 감사이다. 하여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감기와 싸우는 아픔이 그 감사의 크기를 줄이지는 못한다.

이제 몇 시간 남지않은 2017년 한 해를 돌아본다.

가슴 한 켠에 아직도 가시지 않고 아릿한 아픔으로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지만, 대체로 참아내고 이겨낼 만한 일들 이었음에 감사하다. 곰곰 생각하니 돌이킬 수 없는 후회도 있다만, 잊을 만한 새로운 시간들이 찾아온다는 소망이 있어 감사하다.

여느 해 보다 유달리 장례식장을 많이 찾았던 한 해였다. 제 아무리 백세 인생을 외쳐도 유한함을 벗어날 재간은 없다. 나 역시 노년의 문으로 한발 내딛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만 할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밤, 체감온도가 화씨로 -10도, 섭씨로는 -23도 란다. 연일 매서운 추위가 이어진다.

가게 손님 가운데 Morris라는 양반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내 가게에 들어서면서 던지는 매양 똑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건 한국이지.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 한국전 참전용사이던 그는 지난 더운 여름날 어느 날 세상 떳다. 생전 그에게 한국은 언제나 1950년 겨울이었다.

어찌 Morris씨 뿐이랴! 나 역시 때때로 모국인 한국은 1970년대이거늘. 추억만으로는 결코 추위를 이기지도 못할 뿐더러 새 날을 맞지 못하는 법이다.

강추위 속에서도 새 날은 밝을 것이다. 이제 어제로 남을 2017년을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 새기는 한 그 역시 모두가 감사이다.

그 맘으로 내 가게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12-31-17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년의 구분은 있지만 시간이 빠르기는 매양 한가지입니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빠르기만 할까요?

지난 주간 제가 경험한 일인데 시간은 때론 정말 느리고 더딘 걸음으로 가는 때가 있답니다. 하루 해가 너무나 길게 느껴질 만큼 시간은 느리고 느리게 흘렀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심한 감기로 고생을 했었답니다.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 해를 보냈는데, 특히 날씨가 몹시 추웠던 지난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은 시간이 그렇게 느리고 더디게 흐르던지요. 다행히 어제부터 몸 상태는 좋아졌고, 일요일인 오늘과 새해 첫날인 내일 쉴 수 있어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흐를 것 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빠르고 느린 속도의 느낌은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요.

때론 더디고 느리게 지나갔지만 대체로 빠르게 흐른 지난 한 해, 제 세탁소 손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제 가게 최고령 손님이셨던 할머니는 지난 봄 97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곳은 한국이지. 그땐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할아버지도 지난 여름에 돌아가셨답니다. 매 주 세탁소를 찾아 오시다가 은퇴 이후 아주 이따금 찾아 오시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 동네에 이사해 오신 젊은 부부들도 있고, 부모 손 잡고 오던 어린 아이가 훌쩍 큰 어른이 되어 단골 손님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때론 “언제부터 이 세탁소가 여기 있었느냐?”고 묻는 새 손님들도 있습니다. 제가 “1990년 부터…”라고 답을 하면 “이 동네에서 그 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이 세탁소는 처음 봤다.”고 대답하는 손님들도 있답니다.

한 해가 저무는 순간, 제 세탁소에서 만난 얼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저 모든 분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맞이하는 2018년 새해의 시간들 역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간들이 저나 당신에게 소중하고 복된 시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시간은

– 헨리 반 다이크

기다리는 이들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이들에겐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이들에겐 너무나 길고
기뻐하는 이들에겐 너무 짧다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겐
그렇지 않지


It’s the morning of the last day of this year. Though time has divisions like day, week, and year, time is flying by as ever. But, is time really going by so fast all the time?

As I experienced last week, I think that sometimes time goes by so slowly or at a slow pace. Last week, I felt that time went by so slowly to make me feel that a day was too long.

I suffered from severe cold last week. As I could not afford to have days off, I had to work at the cleaners. Especially on Thursday and Friday when it was very cold, I felt that time was passing by so slowly. Fortunately, I began to feel better as of yesterday. As I can take rest today and tomorrow, New Year’s Day, I think that time will fly by fast again.

Though time passes by without bias and without favor to anybody, the feelings of the speed of time may be different according to the conditions in which one might be.

Sometimes time flew by fast and sometimes it passed by slowly this year. But, overall, I could say that this year passed by fast. I’m thinking about my customers this year.

The lady who had been the oldest customer passed away at the age of 97 in the spring. The gentleman who around this time of year always said, “It is not cold. The really cold place is Korea. When I was there, it was even colder than Siberia!” He passed away in the summer. He was a Korean War veteran. Some customers who used to come every week began to come less often after they retired.

And then, as new customers I met young couples who had moved to the community. I have regular customers who used to come to the cleaners with their parents but now have grown up to be adults.

From time to time, new customers asked, “Since when has this cleaners been here?” When I answered “Since 1990,” some of them were surprised and said, “Though I have been living here even before 1990, I didn’t know that you are here.”

At the moment when 2017 is coming to a close, I’m recalling the faces of those whom I have met at my cleaners this year. Simply, I’m thanking all of you and I am deeply grateful to you.

In the New Year, 2018, time will fly by fast sometimes and go by slowly sometimes. However, I wish that all the time will be precious and blessed to you.

From your cleaners.

Time is.. .
– Henry Van Dyke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not.

성탄과 별

해방과 구원은 성서 이야기의 두 핵심이다. 히브리족속의 탈애굽과 예수의 십자가는 두 핵심 이야기를 대변하는 사건들이다. 나머지 무수한 이야기들을 단지 두 핵심 이야기를 위한 치장으로 내칠 수는 없겠다만, 무게가 처짐에는 틀림없다.

예수 탄생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와 부활에 닿지않는 예수 탄생 이야기는 큰 뜻이 없다.

<그 분은 그 옛날 호숫가에서 그분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름이 없는, 알지 못하는 분으로 찾아 오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똑같이 말씀을 하시며, 우리 시대에 그분이 성취하셔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정해 주신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현명한 사람이건 단순한 사람이건 간에, 그분의 제자로 살기 위해 거치게 될 수고와 갈등, 고난 속에 그분 자신을 계시하시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그분이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다.> –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역사적 예수의 탐구에서)의 말이다.

<예수가, 아마도 처음이자 유일하게, 성전의 화려함에 맞서서 그 합법적 브로커 기능을 브로커 없는 하나님의 나라(unbrokered kingdom of God)의 이름으로 상징적으로 파괴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시대의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 역사적 예수에서)이 만난 예수의 모습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전적으로 믿는 이들 개인 신앙고백에 닿아 있듯이, 예수 탄생의 뜻 역시 온 세상 각 사람들과 신이 그 어떤 브로커 없이도 만나는 지점 곧 오늘 여기에서 세워진다.

2018년 성탄 전날 아침에 빌어보는 기도이다. “곤고한 모든 이들의 가슴에 한 점 별빛으로 찾아오소서. 별빛에 크기와 상관없이 오신 당신으로 인해 오늘, 여기에서 누리는 삶의 뜻을 찾게 하소서.”

그 마음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12-24

이제 2017년도 딱 한 주간을 남겨 놓았습니다. 지나간 한 해 동안 있었던 여러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꼭 즐겁고 기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느 해처럼 때론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돌아볼수록 커지는 것은 감사입니다. 특별히 제 세탁소를 통해 만난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감사의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전 날 아침에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 띄웁니다.

겨울 길을 간다

–       이해인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아는 이 하나 없다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화사한 봄도 아니고, 호사스런 여름도 아니고, 풍성한 가을도 아닌 텅 빈 겨울에 흰 눈 덮힌 오솔길을 걷는 시인은 올해 73살의 카톨릭 수녀입니다. 그녀는 아는 이 하나없이 별 빛조차 없는 어두운 겨울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겨울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은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놀라운 반전을 선포합니다.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녀가 행복한 까닭은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녀가 가슴에 품은 별이란 종교적 고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저 같은 보통사람들 누구에게라도 그 별 하나 묻을 가슴이 있는 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고운 별’ 같은 사람 하나쯤을 있지 않을까요?

이제 한 주간 남은 2017년의 당신의 시간들이 고운 별들로 반짝이는 길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 year 2017 has just one week left now. I’m thinking back over various things that happened this year. As is of the case with life, not all of them were happy and pleasant. Just like other years, some of them were painful, sad, upsetting or irritating. However, as I’m looking back over the year, what becomes bigger is gratitude. Especially, I am grateful to you who I got to know through my cleaners.

With the gratitude in mind,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one of my favorite poems on this morning one day before Christmas.

Walking on a winter path

– Hae-in Lee

Along with spring and summer
Woods which was dazzled,
When they take off clothes slowly with autumn,
Desolate at sunset
The sounds of winter coming are whistling around.

When I open the window casually,
On the snow-covered footpath,
Darkness becomes deeper and no one who I know is there.
In the winter woods without stars
There is no one that I know.

Thirsty from a long journey
Happiness of poverty, a beautiful star
Burying in my heart,
I’m walking on a winter footpath in the woods.

Not in cheery spring, not in dazzling summer nor in abundant fall, but in desolate winter, the poet who is walking on the snow-covered footpath is a Catholic nun at the age of 73. She is walking on the dark winter footpath in the woods without stars.

If we look at her with the eyes of ordinary people, the poet may look pitiful and sad. But, she declares the reversal which is shocking to ordinary people like me. She says that she is a happy person.

The reason why she is happy is because she is walking <on a winter footpath in the woods/Burying in my heart/Happiness of poverty, a beautiful star>. The star which she buries in her heart may mean religious confession.

But, thinking it over deeply, to all the ordinary people like me, if we have a heart to bury that star in, I think that we must have at least one person who is like a beautiful star which brings happiness to us. Don’t you think so?

I wish that the last week of 2017 will be like a path sparkling with beautiful stars to you.

From your cleaners.

엇박자와 문(門)

연애 6년에 결혼 34년 차이니 꽉 찬 40년인데, 아내와의 엇박자는 여전하다. 이즈음 겪는 엇박자는 젊은 시절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예전엔 그 삐걱거림이 대부분 성격차이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즈음엔 기억 차이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들이 많다.

엊그제 이어진 일들 모두 우리 부부가 이즈음 겪고 있는 기억력 차이에서 온 엇박자 행보였다.

지난 토요일 약속은 벌써 달포 전에 이루어진 것인데 아내와 나는 그야말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점은 엇박자가 아니라 정박에 완벽한 화음까지 이루어진 망각이었다. 해마다 초대해 주는 우리 가게 손님 Gaskin씨의 연말 파티 초대였는데, 당일 오후에 Gaskin씨가 가게로 찾아와 다시 알려 줄 때까지 우리 부부는 완벽하게 정박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엇박자는 Gaskin씨가 가고 난 뒤에 일어났다. 나는 Gaskin 내외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 계획했던 내 시간을 갖는 쪽으로 고집을 세운 반면, 아내는 초대에 응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 엇박에 화음과 추임새를 넣어 준 것은 아들 내외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사는 아들 내외가 마침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샤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는 아이들에게 Gaskin씨네 연말 파티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에 아이들이 흔쾌히 승낙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 저녁은 아내와 내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아내는 한국학교 연말 행사에,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키로 주초에 서로 간에 확인까지 마친 터였다.

분명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두 행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는 것이어서 함께 갔다가 행사가 마칠 즈음 만나서 함께 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문제는 역시 기억의 차이였다.

두 행사 장소는 모두 집에서 한시간 거리여서 행사 시작 한시간 십여 분 전에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어! 우린 6시네!’

내가 가야 할 곳은 ‘5시’였다.

늘 그렇듯 우린 잠시 다투었고, 엇박자를 맞출 궁리를 하였던 바, 여느 때처럼 ‘아차!’하는 내 실언 탓에 모든 일들은 아내가 두드리는 박자대로 움직이었다.

5시, 반가운 얼굴들이 모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를 함께 보며, 끝내 이산 가족이란 이름으로 지난 해 세상 뜬 장모 생각에 눈물 찔끔 흘리다 먼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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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한국학교 연말 잔치. 공식명은 <재미한국학교 동북부지역 협의회 제 16회 교사 사은회>. 행사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자칫 아내의 부속물이 될 뻔한 나를 구원해 준 이는 시인이었다.

시인 강남옥, 그녀의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는 아내와 나 사이 엇박자와 <민우씨 오는 날>의 연희와 민우 사이 세월의 간격과, 장모와 처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만남과 세월호와 아직 풀리지 않은 숱한 한(恨)들 사이에 문(門)들을 내게 보여 주던 것이었다.

아무렴 때론 엇박 역시 삶의 흥을 돋는 추임새거늘.


 

JFK

  • 강남옥

우리 훗날 건너가
더 훗날 다시 만나자던 그
요르단 강인듯

70년대 명절 단대목에 가던 목욕탕인 듯

한국 소주 까며 끼리끼리
그리운 섬처럼 사는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JFK는
미간 넓은 재클린 케네디의 남편 이름 아니다

치약이나 손톱깍이 모조리 훑어 뺏는 무정한 손
가고픈 곳, 가고 싶지 않은 곳, 바람 많은 눈물의 징검다리
그 게이트 건너지 않고는 위독한 어머니께
직항으로 갈 수 없는 좁은 문이다

가슴에 넣어 온 작은 종 딸랑딸랑 흔들며
미국에게 이리 오너라~ 할 때
낯선 집 앞 우두커니 문 열리기 기다리는
막다른 골목이다

생을 뒤집어 단숨에 돌아가기엔
오래 서성거려야 하는
서성이다 발길 돌려 정글로 돌아가는
미국 동북부 보통 한국 사람들에겐 언제나
Just From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