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만우절 이자 부활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고, 어쩜 참 잘 어울리는 조합 같기도 하다. 부활, 누군가에겐 치열한 믿음일 터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갓 농담일 뿐.

물론 내겐 삶의 마지막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리 무거운 것은 아니다. 일 테면 어느 도(道)트인 신앙인의 절절한 기도문 가운데 탁하고 내 가슴을 치던 고백이 그렇다.

“아내에 대해 늘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시고, 혹 상처 입하는 말을 하게 될 때는 저의 혀를 묶어 주시옵소서.”

부활이란 그렇게 늘 치열하지만 농담처럼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일터의 아침

만일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무어라고 대답하시는지요? ‘내 취미가 뭐지?’라는 생각없이 바로 튀어 나오는 답이 있으신지요? 저 스스로에게 “내 취미가 뭐지?”라고 묻고는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대답이 없기에 물어보는 말이랍니다.

솔직히 저는 이렇다할 취미가 없답니다. Wikipedia는 취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더군요. A hobby is a regular activity that is done for enjoyment, typically during one’s leisure time. 여가 시간에 즐기는 정기적인 활동 이라는 정의에 맞게 제가 하는 일이란 잠자는 일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세탁소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저녁을 먹고 특별히 무언가를 할 여유없이 잠자리에 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잠자리에서 잠 들기 전에 몇 줄씩이라도 읽곤 하는 책 읽기 정도가 취미라면 취미하고 할 정도랍니다.

올해초에 나도 취미 활동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진기를 하나 장만했답니다. 사진 찍기 초보자들을 위한 카메라라는 설명에 솔깃해서 구입한 카메라랍니다. 평생 해보지 않던 일이라 배울 것이 참 많았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특별히 어딘가를 찾아 가지는 않는답니다. 그저 세탁소와 집 근처 제 일상적인 삶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답니다. 하늘, 나무, 새, 오리 등등을 찍고 있는데 평소에 눈에 뜨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답니다. 하늘만 하여도 매일 매일이 다르고 일을 나올 때와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다릅니다. 물론 그걸 다 카메라에 담지를 못한답니다.

이즈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제가 느낀 생각 하나랍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깨닫는 세상은 정말 작고 작은 세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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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are asked, “What is your hobby?” what would be your answer? Do you have an answer which you can give instantly without asking yourself the same question? For me, nothing came to my mind, however hard I’d tried to find an answer after I’d asked the question to myself. That’s why I ask you the question.

Frankly, I’ve got no hobbies to speak of. Wikipedia defines “a hobby” this way: “A hobby is a regular activity that is done for enjoyment, typically during one’s leisure time.” I almost thought that my hobby must be sleeping, if I looked back at my activities through Wikipedia’s definition. That’s because I go to bed without doing anything special. I don’t feel any time and energy left for doing some other things after I spent most of my time at the cleaners, returned home and ate dinner. If I really had to say my hobby, I might have said that my hobby was reading, as I read a book just before going to bed every night, even if I read only a few paragraphs at a time.

Earlier this year, I bought a camera with the thought that I’d make photography be my hobby. I got it as I was tempted by the explanation that it was excellent for photography novices. As it was something that I had never actually done, there were lots of things that I had to learn.

I don’t go to any places especially to take pictures. I try to capture things which I can find around my house and cleaners and in my everyday life. While I’m taking pictures of the sky, trees, geese and so on, I can see many things that I don’t think I’ve seen usually. The sky looks different every day and the sky when I come to the cleaners in the morning doesn’t look the same when I leave the cleaners in the early evening. Of course, I cannot capture all of them with my camera.

While I was carrying a camera recently, one thought which came to my mind was: the world in which I see, feel and realize is really nothing but a really small world.

후배를 위하여

볼수록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후배가 있다. 얼굴 본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만, 참 좋은 세월을 살고 있다 보니 페북을 통해 그의 근황을 가까이 마주한다. 그가 이즈음 동유럽 국가들 여행을 하고 있단다. 그 곳 사람 사는 거리들을 흑백 사진으로 전하고 있는데 참 ‘그답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그가 전하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사진들을 보고있다. 사진에 그가 달아 놓은 댓글이다. “우리나라에도 있어야할 현장!!! 우리는 없어~~~ 분통이 터져.” 그 소리에 난 그저 중얼거린다. “친구야! 분통 터트릴 나이는 이미 지났어, 건강하자구. 그런 날 오겠지. 아무렴 와야지!”

어제 저녁 스물 남짓한 벗들과 함께 했었다.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임이었다. 이명박 구속 등 점진적이나마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국을 자랑스러 하자며 모인 자리였다.

photo_2018-03-25_08-27-59그 중 몇몇은 어제 낮에 미국내 총기 규제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일었던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필라델피아 시위에 참석하고 온 터였다. 그들로부터 행사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안전과 시민 그리고 국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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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가 ‘연방 교통 안전 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NTSB)’에 대해 말했다. 항공사고를 다룬 영화 Flight를 예로 들면서 미국내외의 각종 해상, 철도, 항공과 관련된 사고를 수사하여 그 원인을 파악하고 끝내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에 대한 설명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직업이 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땅에 어디 지고지선의 국가 공동체가 있겠느냐만,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를 위한 꿈으로 역사와 공동체는 바뀌어 왔다는 믿음은 참이다.

한국 출장길에서 막 돌아와 시차 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던 친구는 따끈한 한국소식을 전하며 다시 필라 사람이 되었다. 그가 한 상자 가득 채워 한국에서 들고 온 물건은 오는 4월 16일, 세월호 사주기를 맞아 네번 째 기억식으로 행진을 할 때 우리들이 깔맞춤으로 입을 셔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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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행사 준비와 오는 5월에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는 세월호 유가족 희망목공소 팀을 맞을 준비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며, 4월에 입을 셔츠들을 미리 입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아직 메아리조차 듣지 못하는 소리들을 외치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는 뜻이었다.

우리들 모두 너나없이 하루살이에 바쁜 삶이어서 아픈 이웃들을 기억하는 마음의 곳간은 정말 작디작다. 비록 그렇다 하여도 ‘공감’과 ‘연대’의 작은 몸짓이라도 쉬진 말아야 할 터.

이 아침, 후배의 분통을 조금만이라도 삭혀 줄 수 있다면….

 

춘분(春分)

춘분(春分)날 눈에 갇히다. 눈이 12인치 이상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맞는가 보다. 예기치 않게 다가온 시간의 여유는 게으름을 낳는다.

내리는 눈발도 그저 정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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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뉴스들은 복잡하고 시끄럽다.

이런 날은 동화(童話)가 적절하다.

“사람들이 너에게 정답이라고 내미는 곳을 그냥 믿어 버려서는 안 돼. 언제나 네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다듬어야 해. 그리고 네 믿음, 네가 옳다고 여기는 것, 네가 취하는 태도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
“하지만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래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그런 게 자유야.”

– 라이너 에를링어의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에서

기다림

일요일 아침 산책길에 누리는 축복들을 눈에 담다. 내가 피울 봉우리들을 위하여. 그 맘으로 편지 한 장 띄웠다. DSC0065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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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 곳곳엔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있고, 쌩쌩 부는 바람에 아직 외투나 점퍼를 벗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번 주에도 눈이 한차례 내린다는 일기예보입니다. 봄은 아주 더딘 걸음으로 오나 봅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도, 눈이 더디 녹아도 이제 곧 크로커스, 수선화, 히야신스, 튜울립 같은 꽃들이 대지 위에 얼굴을 내밀 것입니다. 아직은 차가운 땅 속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애쓰는 꽃뿌리들의 노력을 저는 보거나 느끼지 못하지만, 시인들의 눈에는 그 애쓰는 모습들이 다 보이는 모양입니다.

봉오리는
모든 만물에 맺는다
꽃을 피우지 않는 것들도
모든 것들은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시인 Galway Kinnell의 시 <St. Francis And The Sow>의 일부입니다.

< 꽃을 피우지 않는 것들도/  모든 것들은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라는 Galway Kinnell의 선언을 읽노라면, Ralph Waldo Emerson이 말한 잡초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화사하고 아름다움은 꽃들 뿐 만이 아니라 길가에 피어 오르는 이름없는 잡초일지라도 그 스스로 축복 속에서 뜻 깊게 삶을 노래한다는 시인들의 성찰입니다.

이제 곧 봄은 올 것입니다.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에게서 사랑스러움과 축복을 느끼는 아름다운 한 주간이 되시길 빕니다.

봄이 오는 길목,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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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snow in the shade still remains non-melt and the wind howls through the trees, I don’t dare to take off a thick coat or heavy jacket yet. According to the weather forecast, we’ll have snow once this week. It seems that spring comes at a slow pace this year.

However, no matter how hard the cold wind may blow and no matter how slowly snow may melt away now, spring flowers, such as crocuses, daffodils, hyacinths, and tulips, will come out of the soil soon. Though I cannot see or feel the great efforts to bud and bloom of those plants in the cold soils, poets seem to see them all.

The bud
stands for all things,
even those things that don’t flower,
for everything flowers, from within, of self-blessing;

This is a part of a poem, “St. Francis And The Sow,” written by the poet Galway Kinnell.

When I read Galway Kinnell’s proclamation, “even those things that don’t flower,/for everything flowers, from within, of self-blessing,” Ralph Waldo Emerson’s definition of a weed came across my mind:

“What is a weed? A plant whose virtues have not yet been discovered.”

Cheer and beauty can be found not just in flowers, but in any plants which sing their lives meaningfully, of self-blessing, though they may be unnamed weeds and may flower at the roadside. That’s poets’ reflection.

Spring will come very soon.

I wish that you’ll feel love and blessing from everything which is living and breathing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at the corner of spring’s coming.

춘설(春雪)

경칩(驚蟄) 지난 삼월에 오신 춘설(春雪). 가게에서 손님으로 오시는 눈 구경하다 집에 돌아와 쌓인 눈 치우노라니 허리가 휜다. 이럴 때면 살림 차려 나간 아들놈이 그립다. 이웃집 눈사람 쳐다보다 웬지 설운 생각이… 춘설(春雪)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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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春雪)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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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이월 – 이 나이에도 여전히 봄을 기다리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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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慾心) 에

달포 전 일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 났는데 몹시 어지러웠다. 멀쩡하게 잠 잘자고 일어나서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조심스레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영 서있지 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이어지는 심한 구토 증세로 그만 소파에 눕고 말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 누워 있고 나서야 어지럼증은 가셨다.

아내가 family doctor에게 전화를 해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일주일 후에나 오라고 했다. 딱히 emergency로 병원을 찾을 정도는 아닌 듯하여 정해진 시간에 의사를 찾기로 했었다.

느닷없이 처음 맞는 내 몸의 이상 증세에 나는 좀 당황했었다. 솔직히 나는 내 몸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한 편이다. 계절 따라 이따금 찾아오는 감기 몸살이나 어쩌다 한 번 씩(? 이제껏 평생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앓아 본 적 있는 복통 정도가 내 몸이 알고 있는 병의 전부였기에 그저 시간이 지나면 몸은 늘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무지한 믿음을 신봉하는 편이었다.

이웃간의 대화 속에서 흔히 듣는 병명이나 약명들에도 나는 거의 무지하다. 약명은 커녕 그 흔한 바이타민 종류에도 무지하다. 그나마 최근에 이르러 아내가 챙겨주는 바이타민을 이따금 먹기는 하지만 그게 무언지도 모르거니와 아내가 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느닷없이 찾아온 어지럼증에 나는 좀 쫄고 있었다. 말이 family doctor이지 의사란 나와는 참 거리가 멀었다. 내가 찾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찾아온 thyroid 증세와 나이 들어 함께 하는 혈압 문제로 아내가 자주 찾아야만 하는 아내의 의사였을 뿐이다.

몇 해전 봄에 뒷 뜰 잡목들을 정리하다가 poison ivy로 온몸에 번진 두드러기와 가려움 증상으로 의사를 찾았을 때, 의사는 몇 가지 기본적인 몸에 대한 검사를 받아 볼 것을 내게 권유했지만 나는 poison ivy를 치료하는 약을 받아오는 것으로 그 권유를 가볍게 무시했었다. 이제 나이도 있고하니 바이타민 c던가 d, 아니면 e던가를 권유하는 의사의 소리도 한 귀로 흘렸었다.

아무튼 일주일 후에 찾아간 의사는 이런 저런 검진 후에 내 몸에 느닷없이 찾아왔던 어지럼증은 단순 바이러스 감염 현상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혈액검사를 비롯한 몇가지 기본적인 검사를 받아 볼 것을 권유했었다.

그 검사 중에는 colonoscopy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 colonoscopy 곧 대장 내시경 검사가 뭔가하고 찾아보니 하루 전에 온 종일 굶고 뱃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빼내고서야 받는 검사란다.

마침 오래전에 계획했던 여행이 코 앞에 있었던 터라 검사는 좀 뒤로 미루자 하였다.

그리고 어제, 나는 그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아주 작은 양성 종양이 발견되어 제거했고 대체로 양호하다는 판단이었다.

어제 그 검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대기실에 누워 혈압 체온 등 이런 저런 검사와 수액 주사를 놓던 피부색이 까만 간호사와 흰색 보조 간호사 모두 매우 수다스러웠다.

나에 대한 기본 정보들과 나와 가족 병력을 묻고 난 그녀들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녀들의 묻는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되 나는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대었다. 그녀들은 소리내어 웃더니 내 본래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단다. 그제서야 나는 ‘한국’이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그녀들의 물음은 ‘동계 올림픽’과 ‘서울’에 대한 것들이었다. 물음을 이어가는 앞뒤 이야기로 보아 그 전날에 있었던 Super Bowls 중계 때 전파를 탄 평창 동계 올림픽 광고 영향이 컷던 듯 하였다.

한국뉴스를 보면 내가 이해 못할 것들이 참 많다만, 평창 올림픽은 평범한 미국 시민들에겐 한국을 가까이 알리는 참 좋은 기회가 될 듯 하다. 아무렴 잘 치루어 졌으면 좋겠다.

수다스런 그녀들이 ‘잠시만 기다리라’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는 의사가 나타가기 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병실 침대에 누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누어 있기는 처음인 것 같다는 내 말에 의사는 복되게 살았단다.

그 길었던 시간, 순간으로 찾아온 욕심이 하나 있었다.

언젠간 내게도 다가올 그 시간, 눕지않고 서서 더 큰 욕심으로는 걸으며 그 알 수 없는 시간을 맞을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었다.

내 몸에 대한 내 무지함에 비해 나는 아직 괜찮다.

욕심(慾心)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