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편지 – 9/9

계절이 바뀌어가는 주일 아침에 편지를 띄우다. –  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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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에서 – 9. 8. 18 아침에)

엄마와 함께 세탁소에 오곤 하던 아주 작은 꼬마 아이 하나가 어느 날인가 거인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물론 제가 작고 야윈 탓이기도 하지만 그의 체구는 제 두 배가 족히 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작고 귀여운 계집아이를 이끌고 제 세탁소를 찾아와 말했답니다. ‘ 제 딸입니다.’

또 다른 중년의 사내가 있었답니다. 그는 비지니스 여행이 매우 잦았답니다. 미 전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다닌다고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그가 말했습니다. ‘나 이제 은퇴 한단다.’ 이즈음 이따금 세탁소를 찾는 그의 허리는 굽었고 걸음걸이는 느리답니다.

미스 델라웨어였던 예쁘고 쾌활한 처녀도 있었습니다. 그녀에겐 이미 자기보다 커진 큰 아이를 비롯해 아들이 셋이랍니다.

지난 삼십 여년 동안 제 세탁소에서 일어났던 변화들이랍니다.

지난 주 제 편지에 응답을 주신 노신사도 한 때는 회사의 중역으로 매우 바빳던 중년이었습니다. 이제는 은퇴 이후 그와 동행이 된 관절염과 함께 지내는 이즈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해 주었답니다.

“내가 앓고 있는 관절염을 달랠 최상의 해독제는 꾸준히 움직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일테면 내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면 매 네 시간 마다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먹어야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일에 몰두해 있을 땐 일곱시간 정도는 약 없이 거뜬히 견딜 수 있단다.”

지난 주 일요일이나 휴일들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제 물음에 대한 노신사의 답은 이렇게 끝난답니다.

“어쨌든 바빳을 때 늘 행복했었단다. 아직도 바쁘게 지낼 수 있는 약간의 인센티브는 남아 있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노신사와 함께 하는 관절염은 아니더라도 우리들 모두에겐 몸과 마음에 원치 않는 동행자들이 하나 둘 씩은 함께 하지 않을까요? 남녀노소 누구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인센티브가 주어진 것을 아닐까요?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어느새 아침 공기가 시원해졌습니다.

하루 하루 쾌적한 잠을 즐기는 날들이 이어지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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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열방교회 뜰에서 – 9. 8. 18 오후에)

One day, a little boy who used to come to the cleaners with his mother became a giant and visited the cleaners. Though I am small and slender, he looked more than twice as big as me. Not much later since then, he came to the cleaners with an adorable little girl and said, “She is my daughter.”

And there was a middle aged gentleman. He went on business travels frequently. He told me that he’s traveling not just all over America, but also to many countries in Europe and Asia. Then, one day, he said, “I’m going to retire.” He, who still comes to the cleaners once in a while, is somewhat bent with age and walks with a slow gait.

There was a beautiful and cheerful young lady who had been Miss Delaware. Now she is a mother of three sons, one of whom is already taller than her.

These are some of the changes which have happened in my cleaners for the past 30 years.

The old gentleman who gave me a response to last week’s letter had been a busy middle-aged man as an executive of a company. After retirement, he has been living suffering from arthritis which has become a companion. He told me about his life these days:

“I have found that the best antidote for my arthritis is steady movement or work on a project that absorbs my attention.  If I’m just sitting, I have to take my prescription medication for arthritic pain relief every four hours.  If I’m busy on a physically active project, I can and have gone as much as seven hours without it.”

Regarding my question last week, “How do you spend Sundays or holidays?” his answer ended like this:

“I’ve always been happier when I am busy anyway, now I just have a little extra incentive to keep busy.”

When we think about it, all of us, whether man or woman, young or old, may have at least one or two unwanted companions in our bodies and minds, though it may not be degenerative arthritis like the old gentleman. Don’t you think so?

And, an incentive to become happier may be given to us all, though we may not have figured out what it is yet. What do you think?

The air in the morning has become cool and pleasant already.

I wish that you’ll enjoy comfortable rest day after day.

From your cleaners.

참 좋은 세상인데

저녁상 물리고 느긋하게 세상 뉴스들을 훑다가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나이  헛먹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처음부터 터져 나온 이금희의 눈물 “이럴 것 같았다. 노회찬은 진짜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으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눈물을 훔치며 기사를 읽고 있는데 셀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놀라 확인해 보니 밤 12시 30분 경부터 홍수주위보를 발령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홍수 피해 예상 지역 주민들은 대비하라는 경보였다.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내 기억 속에 1980대 후반 부터  2000년 초,중반 까지 한국에 대한 것은 빠져 있다. 그만큼 한국은 내게서 멀었다. 딱히 이렇다할 정보를 얻을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여기서 오늘을 사는 내 관심의 우선순위에 있어 앞자리에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홍수주위보를 알려주는 셀폰의 기능은 지금 여기서 사는 내가 겪고 있는 세상의 변화이다. 이 땅에 적응하기도 바쁜 내게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의 변화는 쫓아가기엔 좀 벅차다. 나름 세상 변화에 적응하노라고 애쓰며 살지만 아무래도 늦되다.

이른바 social media를 사용하는데는 더욱 그렇다. 말 그대로 상호 오가는 media 사용이라야 먹고 살기 위해 내 가게 손님들과 오고가는 이메일과 텍스트 메세지가 거의 전부이다.

그저 일기처럼 사용하는 블로그질은 오래 되었지만 그저 골방 샌님 놀이일 뿐이고, 트위터, 페북,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등등은 사용법에 대해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리 즐겨 하지는 않는다. 더더군다나 빤히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댓글을 다는 일도 거의 없고 좋아요를 누르는 일도 남사스런 생각에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 social media의 social 하고는 거리가 멀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톡은 가족들 끼리만 사용할 뿐이고, 텔레그램은 한군데 모임과 연관되어 있어 사용하지만 그 역시 특별한 일 아니고서는 하루 한 두차례 pc로 사용할 뿐이다. 사실 내가 셀폰을 사용한지는 아직 이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내 아내의 표현대로 한다면 나는 그저 골동품이다.

카카오톡을 즐겨 사용하는 아내가 오늘 오후 짜증스런 목소리로 혼자 쭝얼거렸다. ‘아니, 이 아줌마는 자꾸 이런 걸 보내고 그러지, 딱하기도 하고….’

왜 그러냐고 묻는 내게 던지 아내의 답이다. ‘아이구  그 지긋지긋한 가짜 뉴스지 뭐, 박근혜 이명박 찬양하고 문재인 빨갱이 노래하는 거…. 오늘은 김정은이 한테 트럼프 문재인이 놀아나고 있다나 뭐나…’

참 좋은 아주머니신데  뉴스 선택에 있어서는 아내와는 상극인 셈이다.

아마 그 아주머니는 내가 오마이뉴스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 가짜뉴스에 홀렸다고 혀 차지 않을까 싶다.

참 좋은 세상인데…. 참 좋아진 세상인데….

이즈음 나는 하늘을 보면 하늘을 사진에 담고 싶다. 오늘 오후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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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뉴스들 보다 셀폰 보다 더 많은 세상을 품는다.

손 할머니

오랜 옛 일들은 또렷한데 최근의 일일수록 기억이 희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는 내 나이를 수긍하곤 한다. 이즈음 제 아무리 ‘신 중년’이라는 말로 치장하더라도 그저 화장일 뿐, 모든 일에 내 나이에 걸맞는 생각과 행위로 측정해 보자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이미 노년이다.

모처럼 아무 생각없이 즐기던 연휴 오후,  게으른 긴 낮잠에서 깨어 일어나 아내를 재촉했다. 아내 편에서 보면, 목소리 톤만 높아가는 주제에 제 생각에 빠져 재촉하기 일쑤라고 핀잔주는 일이 당연하고 마땅할 것이다. 솔직히 이런 아내의 모습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 피곤을 더할 만큼 미련하지는 않은 나는 조용히 차 시동을 걸고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아내를 재촉해 집을 나서 찾은 곳은 필라 외곽 지역에 있는 노인 요양원이었다.

벌써 너 덧 해가 지났나 보다.  당시 어머니는 곧 돌아가실 듯 하셨다. 응급으로 병원에 실려 가셨던 어머니는 평소에 ‘난 죽거든 화장으로’라는 말씀을 ‘매장으로’ 바꾸셨다. 유언처럼.

그 때 그렇게 마련한 것이 어머니 아버지 묘자리부터 우리 형제들 묘자리 까지, 누울 순서까지 다 정한 우리 가족 장지였다. 누울 묘자리 순서를 정하는데 가장 입김이 센 것 역시 어머니셨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자리가 정해진 나는 혼잣 말로 웅얼거렸었다. ‘죽어서도 이 자리라니, 피곤하고만…’

그러다 병원에서 퇴원하셨던 어머니가 일주일 가량 머무르셨던 곳이 동네  요양원이었다.

올 초엔 동네 지인 한 분이 계신 뉴저지 양로원에 위로 방문을 다녀 오신 후, 어머니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시며 선언하셨었다. ‘얘야, 우린 요양원이나 양로원에는 안 갈란다!’ 그 선언으로 우리 형제들은 언젠간 맞게 될 시간에 대한 준비를 마치었다.

어머니는 오늘도 정정하신 모습으로 내 오른 편에,  아내는 당연히 팔팔하게 내 왼 편에서 나를 지탱한다.

그리고 어제 찾았던 요양원에 누워 계신 분은 손 할머님이시다. 할머님은 어제 또렷하신 목소리로 아흔 둘이라고 하셨다. 그게 만 나이라면 내 어머니와 같다.

손 할머님은 필라세사모 모임의 최연장자이시다. 나는 아흔 두 해 그녀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이웃의 아픔에 대한 진한 공감으로 살아오셨음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런 통증과 함께 병원에 실려갔던 손 할머님이 요양원으로 옮겨지신 것은 이틀 전이었다. 손 할머님 곁을 지켰던 젊은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손 할머님을 위로 방문해 달라는 통문을 보내 온 것도 그 때 쯤이었다.

아내와 내 손을 꼭 잡으시고 ‘고맙다’를 몇 번이고 되뇌이시던 할머니는 ‘이젠 곧 일어날 것 같다’고 하셨다.

한 시간 여 짧은 자식 노릇을 마치고 나온 요양원 앞 뜰에는 꽃밭을 바라보며 어린 사슴들이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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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할머니는 몇 해 전 내 어머니처럼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우연이다. 노년과 죽음 그리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까닭들에 대한 책들을 내게 권하는 호주 홍 목사님의 편지를 받은 것은.

주일 편지 – 9/2

아침에 세탁소로 나오면서 한 동안 보지 않았던 스쿨 버스들을 다시 만난 지난 주간이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의 방학이 끝난 모양입니다. 그리고 주초 며칠 동안은 몹시 더운 날들이 이어졌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 가게 문을 열 때 찍은 사진이랍니다. 해가 떠오르면서 이글거리는 느낌이었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미처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캐나디언 구스들이 소리를 내며 떼를 지어 천천히 날아갔답니다. 순간 캐나디언 구스들의 소리가 제게 이렇게 들렸답니다. ‘덥다고? 이제 여름 다 갔어!’

구월입니다. 내일은 노동절이고요. 내일은 세탁소 문을 닫습니다. 저희 부부도 모처럼 이틀을 쉽니다.

한가지 궁금증이 일어 당신께 물어 본답니다. 휴일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특히 모처럼 맞는 이런 연휴에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제 경험들을 가만히 뒤돌아보면 제대로 휴일을 만끽했던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도 쉽지 않지만 쉰다고 것도 그리 쉽지 만은 않은 듯 합니다. 연휴가 다가오면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우곤 하지만 막상 휴일이 되면 그 계획대로 다 이룬 적도 별로 없는 듯합니다.

딱히 그런 생각 때문은 아니지만, 이번 연휴에 저는 아무 계획도 없이 아무 일도 않고 그냥 쉬려 한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목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Wayne Muller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모든 삶의 핵심에는 이 비어 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비어 있음은 신의 입김이 들어와 삶이라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텅 빈 갈대 같다. 모든 창조는 이 비어 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건 아주 동양적인 사고인 듯 합니다.

Wayne Muller의 말처럼 깊은 생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노는 날 푹 쉬는 즐거움을 맛보려 한답니다.

구월입니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것은 창조해 낼 만한 여유로운 쉼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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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week, on the way to the cleaners one morning, I began to see school buses which had not been on the roads for a while. Before I knew it, summer vacation for school kids might be over. And the heat continued to beat on for some days earlier last week.

Here is a picture which I took in the morning when I opened the cleaners on Thursday. I felt the rising sun was bla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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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ttle bit later, a flock of Canadian geese flew over slowly with lots of noise, of which I could not take a picture. At that moment, I felt as if they were saying, “Did you say it is very hot? Now, summer is almost over!”

It is September now. Tomorrow is Labor Day and the cleaners will be closed. My wife and I will have two days off for a change.

I’m asking a question, because I’m just curious. How do you spend Sundays? Especially, on long weekends like this week?

Looking back, I think that I have almost never really enjoyed holidays. To me, working is not easy, but neither is resting. When a long weekend was approaching, I made this and that plan. But, when it came actually, I hardly ever completed the plan.

Though it was because of that thought, I decided just to take a rest without any plan and without doing anything this long weekend. Simply, I’ll eat when I want to, and sleep when I want to without worrying about anything.

Wayne Muller, a pastor and best-selling author, said:

“All life has emptiness at its core; it is the quiet hollow reed through which the wind of God blows and makes the music that is our life. Emptiness is the pregnant void out of which all creation springs.”

It sounds like Oriental thinking to me.

Though it is not like what Wayne Muller implied, I’ll try to enjoy the pleasure of complete rest on the off-days.

It is September now and the days have gotten a lot shorter already.

I wish that you’ll always have a leisurely rest out of which your new creation springs in spite of a busy everyday life.

From your cleaners.

 

연휴 아침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연휴를 맞는다. 아니, 계획 없음이 계획이다. 그저 몸과 맘이 원하는 대로 이틀을  보내려 한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걷고 싶으면 걷고. 무엇보다 아무 걱정 없이.

이른 아침 눈을 뜨는 것은 그냥 습관이다. 주일 아침이면 늘 그러하듯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 한 장 띄우고 집을 나선다.

가을은 이미 동네 어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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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선 것은 가을 뿐만이 아니다. 이번 목요일(9/6)은 민주당 예비경선일이다. 11월 본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하던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투표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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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감사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는 사돈내외와 의견이 일치하는 때가 많다는 점이다. African American인 사돈 내외와 우리 부부는 정치적 견해나 종교 특히 교회관에 있어서 뜻이 맞다. 하여 참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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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트럼프 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들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당 내에서도 폄하하는 시선이 역력한  사회주의자  Alexandria Ocasio-Cortez에 대한 시각에서도 거의 일치한다. 그녀와 지지자들이 얻을 결과가 어떠할 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은 미국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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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는 11월 선거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 선택에 있어 최우선 순위는 트럼프가 한반도 분단 해결의 단초를 이루어 내는냐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인데, 평화라는 관점에선 언제나 의견이 일치하는 사돈내외도 우리부부와 함께 하지 않을런지.

오늘 저녁은 아들 며느리와 저녁을 함께 해야겠다. 아이들이 허락한다면…

 

나의 노래

아침 일터로 나가는 길, 한 동안 보지 못하던 아이들 학교 버스를 만난 월요일 아침부터 오늘까지 나흘 동안 찜통 더위가 이어졌다.

오늘 아침도 해는 떠오르면서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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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열기 속 하루를 염려하며 일터 앞에선 내 머리 위로 캐나디언 구스가 이글거리는 태양을 비웃으며 낮게 날아갔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쳐 돌아온 내게 세상물정에 빠른 뒷뜰 나무는 낙엽을 떨구어 보여준다.

한여름 또 잘 보냈다.

그게 또 대견하여 늦은 밤, 월트 휘트먼의 나의 노래를 읊조린다.

나는 믿는다, 풀 한 잎이 별들의 여정에 못지 않다고,
개미도 똑같이 완전하고, 모래 한 알도, 굴뚝새의 알도,
청개구리도 최고의 걸작이며,
기어오르는 검은 딸기나무가 천국의 응접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내 손안의 아주 작은 관절 하나가 온갖 기계를 비웃을 수 있고,
풀 죽은 머리로 어적어적 여물을 먹는 암소가 그 어떤 조각상보다도 낫다고,
생쥐 한 마리가 숱한 이교도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고도 남을 기적이라고.

구월을 기다리며

많이 듣고, 많이 보되 말은 줄이고, 글을 남길 땐 생각을 한번 더 곱씹어 보자는 다짐으로 살기 시작한 일은 근자에 이르러서이다. 나이 들어 늙어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꼰대’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때문인데, 그게 딱이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는 연습엔 게으를 일이 아니다.

이즈음 온라인 모임으로 만나는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9월 말 쯤 한국의 김진향 교수라는 이를 초청해 유펜 대학에서 강연회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다. 늘 그렇듯 모임에 얼굴만 내밀다 마는 나는 이번에도 아무 하는 일 없이 ‘수고들 많으시다’는 인사만 건낼 뿐이다. 게다가 ‘김진향’이라는 이름이 낯선 나는 더욱 뒷전에서 웅크린다.

그러다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팟캐스트 파일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김진향 선생이  한 강연들을 들었다.

우선 위키 백과에 기록된 김진향 선생에 대한 소개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

그에 대한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하는 강연의 주된 내용은 ‘북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하는 그는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게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묻는데 그 물음에는 듣는 이들이 북한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북한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의 전제에 동의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북한에 대해서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남한에 대해서도 이 점은 같다. 내 유소년과 청년 시절의 추억에 남아 있는 남한과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임에도 나의 잣대는 그 간극을 측량하기엔 너무 작다.

이젠 한반도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지가 오래되어 가지만, 나는 여전히 이민자이고 때론 이방인이어서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이 땅 만큼이나 남과 북이 낯 설 때가 있다.

하여, 나는 오늘도 배워야 한다.

또 하나, 이건 내 복이다.

한국 현대사 특히 해방 이후 빨치산 연구를 하신 이선아교수의 강연을 듣게 된 일이다.

아프게 잊혀져 가는 역사와 그 시간 속에서 잊혀져 간 이들을 되뇌어 새기는 일이 결코 쉬운 일 아니다. 그것이 생업이거나 학문적 고집일 때, 나는 그를 존경해야 마땅하다.

비록 온라인 모임에서 듣게 되는 강연 이지만  내가 9월 한달을 기다리는 까닭이다.

예술에

이웃집 코스모스가 활짝 핀 주일 아침에 내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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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저녁, 세탁소 영업을 마친 우리 부부는 Delaware Art Museum엘 갔었답니다.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박물관 관람을 위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올해로 네 번 째를 맞이하는 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 행사 준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실 이 행사를 위해 제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내가  매해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답니다. 주말학교인 델라웨어 한국학교에서 한국계 어린 다음세대들을 가르치는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매해 이 행사에 참여합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아내는 자신의 한국 전통 무용 공연을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 아내의 전통 무용복을 세탁하고 다려주는 일이랍니다.

그 날도 오는 9월 29일,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추수감사절인 추석을 맞아 열리는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행사 준비 모임에 참석한 것은 아내였고 저는 단지 아내의 운전기사였을 뿐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 저녁  Delaware Art Museum 입구 hall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어록들이 제 시선을 빼앗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음악이던 미술이던 일반적으로 예술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대해 아주 무식 하리만큼 문외한 입니다. 그러니 예술에 대해 남긴 유명인들의 가르침을 본래 뜻대로 제가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유명한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 의 명언 ‘예술이란 영혼에 붙어있는 일상의 먼지들을 씻어내는 일이다.’ 라는 말도 그 중 하나였답니다.

저는 그 피카소의 말을 몇 번 되 뇌이다가 어느 스님이 남긴 말을 떠올렸습니다.

<행복의 예술은 이 순간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입니다. 다른 때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지 마세요. 참된 행복은 오직 여기 이 순간에 있습니다.>

예술이던 행복이던 뭐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일상 속, 매 순간 순간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맞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예술일 터이고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여름도 어느새 끝 무렵 입니다.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끼며 행복을 누리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Last Friday evening, my wife and I went to the Delaware Art Museum after work. We didn’t go there to see the museum in the evening out of the blue. We went there to participate in the preparatory meeting for the fourth annual 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

Frankly, I don’t do anything for the festival. But my wife, Chong, has involved in the festival actively every year. She has been participating in it every year with the Korean American children who she has been teaching at the Delaware Korean School, which is a weekend school. As she did last year, she will perform a Korean traditional dance at the festival again this year. All I do is to clean and press her Korean traditional clothes for the dance.

On that day, I was just a driver, and it was my wife who participated in the meeting for the festival which will be held on September 29 in celebration of Chuseok (traditional Korean Thanksgiving day).

That evening, well-known people’s quotes about art, which decorated the wall of the hall at the entrance of the Delaware Art Museum, caught my attention.

Frankly, I don’t know the first thing about the area which is called art, whether music or paintings. So it was hard for me to understand the real meaning of the quotes. One of them was Pablo Picasso’s: “Art washes away from the soul the dust of everyday life.”

While I was reiterating Picasso’s words in my mind a few times, what a Buddhist monk said flashed across my mind: “The art of happiness is to be fully content in this moment. Don’t seek happiness at any other time in any other place. It only lies here in this moment.”

Art or happiness may not be so difficult to catch or feel. If we can meet and value every moment in everyday life preciously, all that we see and hear at that moment may be art and happiness, I think.

Now summer is nearing its end. I wish that you will feel art and enjoy happiness in everyday life in every single day.

From your cleaners.

차이에

다가오는 동네 잔치 준비 모임장소에서 모처럼 만난 A가 B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크게 놀랐다. 내 놀람은 A와 B가 서로 가까이 알고 지낸다는 그 사실 자체에서 오는 것이었다.

A와 나는 3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살고 있지만, B는 다른 동네 사람이다. A와 B는 모두 이민 온 지 사십여 년이 다 된, 그야말로 성실한 삶을 이어온 이제 막 칠순 나이에 들어 선 이들이다.

나는 두 어른들을 선생이라 부르며 존경한다. 그러나 두 양반과 나는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들에서 엇나가는 점들이 많다.

특히 신앙에 대한 관점과 우리들의 모국인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 차이가 극명하다.

A의 관점에서 나는 좌이고, B의 관점에서 나는 우편이다. 때론 셋 사이의 간격은 닿지 못할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 A와 B가 서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안 오늘이었다.

때론 생각의 차이란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일까? 그것이 신앙과 사상일지라도.

함께 걸어가야 하는 삶에서.

세월

이즈음 들어 이따금 겪는 일이다.

어쩌다 주일 예배에 참석해 주일학교 아이들 노는 모습에서 내 유년이 떠오른다거나, 활기찬 청소년들을 보며 느닷없이 내 생각이 일천구백 육십 년대 어느 날로 돌아가곤 한다.

어제 결혼식장에서는 나는 일천 구백 팔십 년대 내 이민 초기로 돌아가 있었다.

신랑은 내 아들 녀석의 친구, 부모들은 이민 초기에 만난 오래된 지인들이다. 그 무렵 그들은 갓 신접살림을 차린 싱그러운 젊음이었다.

신랑의 아비는 아들과 새 며느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머리에 하얀 세월을 이고 있는 그나 나나 어느새 덕담을 즐길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