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무침

어머니는 늘 당신이 내 울타리라고 우기셨고, 내게 어머니는 언제간 반드시 넘어야 할 담이었다. 물론 서로가 그렇게 말해 본 적은 없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그렇게 내 나이만큼 이어왔다.

불과 일년 전 까지만 하여도 어머니는 내 밥상에 당신의 손길을 올려 놓길 즐겨 하셨다.

십 수년 전 내가 밥을 짓고 음식을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할 즈음,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어느날 부터인가  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고 하셨다.

이제 어머니는 더 이상 밥을 짓거나 음식을 하시지 못하신다. 이즈음  나는 어릴 적 어머니가 내게 해 주신 밥상차림을 생각하며 그 흉내를 내곤 한다. 어머니를 위하여.

어머니가 내 울타리를 포기할 즈음 나도 담을 뛰어 넘을 생각을 접었다.

하여 평안하다.

늦은 밤, 나물을 무치며.

마지막 간 맞춤은 아내에게 맡기다.

  1. 23. 20

가짜에

한국에서 갑자기 확산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연계되어 듣게 된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에 대한 뉴스들을 보다가 다시 손에 든 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까닭은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의 전작들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했다.

5부 21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저자는 17장과 20장에서 이즈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는 거짓 뉴스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 몇 대목들이다.

<우리는 요즘 ‘탈진실(post-truth)’이라 부르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사방이 거짓말과 허구로 둘러싸인 무서운 시대다. >

<사실 인간은 늘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왔다. 호모 사피엔스야말로 탈진실의 종이다.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데서 나온다.>

이쯤해서 저자는 종교를  예로 든다.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들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뉴스’라 불러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들어왔다.>

신천지 뉴스가 다시 이 책을 들게 한 대목이다.

어찌 신천지 뿐이랴! 모든 종교와 이념과 오늘 내 삶 가운데 마주치는 정치 경제 언론 등등 모든 시장의 영역에서 마주치는 문제이다.

유발 하라리가 내어 놓는 가짜로 부터 해방되는 해결책이다.

<모든 가짜 뉴스의 기저에는 진정한 사실과 고통이 존재한다.>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니다.

종교적으로는 참 평신도가 되는 일이고, 그저 일상에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 일이다.

그저 내 식으로.

봉준호라는 이름으로 하여 고향생각에 젖어 보낸 한주간 생각을 내 가게 손님들과 함께 나누다. 내가 태어난 곳은 부모님의 피난지였던 부산이지만 그 곳에 대한 기억은 없다. 유년의 첫 기억부터 청년의 끝물까지 아련한 세월을 묻어 둔 곳은 신촌이다.

문득 따져보니 신촌 (새마을 , New Village)에서 보낸 세월보다 이 곳 델라웨어 Newark(새 방주, New Ark)에서 세탁소를 하며 지낸 시간들이 더 길어졌다. 그 생각 끝에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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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가게 손님 몇 분들이 한국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셨답니다. 그 영화가 올해 4개의 오스카상을 탔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인들에게는 그 수상 소식이 매우 큰 뉴스였답니다.

영화나 아카데미 영화제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깊지 않은 제가 영화나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랍니다.

그 영화 감독인 봉준호라는 이름 때문에 떠올린 제 고향 이야기를 드리려 한답니다.

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곳은 대한민국 서울시 신촌이라는 동네입니다. 지금은 시내 한복판이 되었지만,  제가 살 때만 하여도 서울 중심부에서 서쪽 외곽에 떨어져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신촌이라는 동네 이름의 뜻이 새마을이랍니다. 새로 생겨 도시와 시골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진 동네였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여서 제 블로그에  ‘신촌연가’(신촌을 그리워 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답니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난 오래 전 일이랍니다.

연재의 마지막 글에 ‘봉준호’라는 이름으로 댓글이 달렸었답니다. “글을 인상깊게 잘 읽었다. 신촌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듣고 싶다. 당신이 살았던 때의 거리의 풍경, 많이 보던 나무들 등등….”이라는 글과 함께 그의 이메일 주소가 남겨 있었답니다.

저는 그 댓글을 남긴 봉준호라는 이가 영화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와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제가 응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그 이름이 유명한 영화감독 이름인지도 몰랐거니와 알았다한들 역시 응답은 하지 않았을겝니다.

그렇게 지난 주 봉준호라는 이름을 들으며 다시 떠올리게 된 제 고향이랍니다. 이따금 아주 이따금 내 고향 신촌과 함께 떠오르는 얼굴들이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언젠가 한 번은 가 봐야겠다는 생각 위로 한 해 한 해 세월의 숫자만 쌓여가고 있답니다.

따지고 보니 제가 신촌에서 산 세월보다 Newark에서 세탁소를 하며 보낸 시간들이 더 길답니다. 세탁소는 현재 진행형이고, 언젠간 은퇴할 것이고 이곳에서 노년을 보낼 계획이니 또 다른 고향이 Newark인 셈입니다.

신촌(새마을 , New Village)에서 Newark(새 방주, New Ark)까지의 내 삶을 추억하게 한 지난 주 다시 만난 봉준호라는 이름에 감사하며.

지난 일요일 아침 Newark 저수지 방죽길에서 찍은 내 제2의 고향 Newark 사진 몇 장 함께 나눕니다.

그리워하는 모든 것들로 하여 새 힘이 솟는 시간들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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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week, some customers talked to me about the Korean movie, “Parasite.” That was because it won four Oscars this year. Of course, it was very big news to Korean people.

I don’t have much knowledge about movies and Academy Awards, and I’m not trying to talk about them.

The name of the director, Bong Joon-ho, reminded me of my hometown, and I’m going to talk about it.

The place where I spent my childhood and youth was Shinchon in Seoul, South Korea. Now it has become a part of the heart of the Seoul Metropolitan area, but when I lived there, it was like a village distant from the downtown of Seoul. The meaning of “Shinchon” is “new village.” As it was a newly developed village, it had the urban atmosphere alongside the countryside feeling.

If anyone starts to reel off a story about the hometown where he/she grew up, it would be endless. Like anybody else, I have lots of stories and memories about my hometown. I had posted a series of them at my blog site with the title, “Shinchon Yeon-ga (a song for missing Shinchon).” It was more than a decade ago.

At the last post of the series, a comment was written under the name of “Bong Joon-ho.” It said, “I read the series of your posts and was impressed. I’d like to hear more about Shinchon, such as scenes of trees, streets and so on when you lived there…” He also left his e-mail address.

I’m not sure whether the comment writer, “Bong Joon-ho,” and the director of the movie “Parasite” is the same person. That’s because I didn’t respond to the comment. At that time, I didn’t know that it was a famous director’s name. Even if I had known it, I would not have responded.

Like that, when I heard the name, “Bong Joon-ho,” last week, I recalled my hometown. Occasionally, really occasionally, I have missed faces sweeping across my memory along with my hometown. On the thought that I’d visit there sometime, the number of years has been heaping one by one.

After calculation, I realized that the years which I have spent in Newark running a cleaners are longer than ones which I spent in my hometown, “Shinchon.” Furthermore, I’m running a cleaners now, and I’ll retire sometime in the near future and spend the rest of my life here. So, Newark is definitely my second hometown.

Thanking the name, “Bong Joon-ho,” for prompting me to go on a trip down my memory lane from “Shinchon (New Village)” to “Newark (New Ark).”

I’m sharing with you some pictures of my second hometown, Newark, which I took at the causeway of the Newark Reservoir last Sunday morning.

I wish that you will be reinvigorated with thoughts of everything and everyone that you are missing.

From your cleaners.

뉴스와 꿈

내가 사는 곳에서 뉴욕 맨하턴까지 거리는 고작 130마일 정도이다. 교통 사정이 원활하기만 하다면 고작 두어 시간 걸려 닿을 수 있다. 그런데 뉴욕 맨하턴과 유리 동네 유행의 간격간 거리가 반 년이 훨씬 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아주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6,70년 대 돈을 세다가 밤을 지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풀어 놓던 이민 일세대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당시 가발이나 의류, 운동화. 각종 장식들을 팔았던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뉴욕 맨하턴에서 유행하던 품목들은 한 반년 쯤 지난 후 우리 동네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그 유행의 기간을 잘 맞추어야 한 몫 잡을 수 있었다고들 했다.

모두 옛날 이야기다. 이제는 뉴욕과 우리 동네 뿐만 아니라 서울과 우리 동네가 거의 동시에 함께 돌아간다.

이 촌 동네 작은 내 세탁소에 드나드는 손님들이 한국 영화 기생충을 이야기하고 영화 감독에 대해 묻는다. 물론 우리 동네 신문에도 크게 실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뒤지지 않는다. 바로 내 가게와 한 동네에 있는 대학교에서 바이러스 의심 환자가 발생해 격리 중이라는 기사도 오늘 내 눈길을 뺏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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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유행의 간격이 비례했던 시절이나 오늘이나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다.

그저 다 제 식일 뿐이다. 호들갑 또는 덤덤함으로.

하루 일을 마치고 그러저러한 뉴스들을 훑어 보다가 그저 스쳐 지나가며 빌어보는 소원 하나.

한반도 분단 상황을 숙주로 하여 제 배 불리는 모든 기생충들이 박멸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었으면….

꿈을 이어가는 한,  살만한 게 사람살이일 터.

새들에게

말이 좋아 자영업이지 내 식으로 부르자면 그저 구멍가게 주인으로 한 해를 온전히 마감하는 일은 지난 해 세금보고 양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느끼는 일이지만 내 삶이 숫자로 정리되는 모습은 늘 초라하다. 그렇다 하여도 물론 내 삶이 결코 초라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릇 삶이란 숫자로 재단되는 것만이 아니므로.

무엇보다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내가 사람임을 늘 깨우치게 하는 이웃들이다. 그저 감사다.

오늘 아침 새까맣게 잊고 사는 월력(月曆)을 일깨워 알려준 보름달처럼 이따금 눈과 마음을 환하게 열어 주는 자연 또는 신(神)에 대한 감사의 크기는 가늠조차 못한다.

하늘에 지는 달과 뜨는 해를 가장 높은 곳에서 맞이하고 보내는 것은 아마 새들일지도 모른다.

때로 새들을 폄하했던 내 우둔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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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에

<어느새 이월 첫 주일. 생각 하나, 가게 손님들과 나누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그저 바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새해 계획이랄 것도 없이 일월 한 달을 보냈답니다.

모처럼 엊저녁에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지난 한 해와 올 한 해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뉴스들도 찾아 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 하나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제 세탁소에 들어오는 세탁물 중 가장 많은 숫자의 단일 품목으로는 남성 비지니스 셔츠가 단연 으뜸입니다.

그런데 손님마다 맡기는 셔츠의 모습들이 다르답니다. 남성 비지니스 셔츠에 달린 단추들은 보통 9개에서 15개 정도인데 가장 일반적인 셔츠에는 11-12개 정도의 단추들이 있답니다.

어떤 손님들은 셔츠에 달린 단추들을 모두 잘 채워서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단추들을 모두 풀어서 맡기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셔츠 앞 단추 맨 위에 한 두개를 푼 뒤 셔츠를 완전히 뒤집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도 계시고, 셔츠 단추를 모두 다 채운 뒤 새 것처럼 잘 접어서 맡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제 입장에서는 단추를 모두 풀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이 제일 반갑답니다. 왜냐하면 셔츠를 다릴 때 반드시 단추가 다 풀린 상태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셔츠를 빨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셔츠의 모든 단추를 푸는 일이랍니다. 그러니 만일 셔츠 단추를 모두 채운 셔츠 10장을 세탁하기 위해서는 세탁 전에 단추 100개 이상을 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엊저녁에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이란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 오면서, 모든 손님들이 셔츠 단추를 모두 풀어서 셔츠를 맡긴 날이 단 하루도 없듯이, 모든 손님들이 모든 셔츠 단추를 다 채워서 셔츠를 맡긴 날 역시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이랍니다.

대다수의 손님들은 그저 제가 일에 지치지 않을 정도로 목 단추 두 개, 소매 단추 두 개 정도를 제외하곤 다 풀어서 맡기신답니다. 지난 30년 거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이랍니다. 사는 게 다 그런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답니다. 내가 편하고 좋은 쪽 일들이나, 내가 하기 싫고 불편한 일들이나 모두 늘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확율 보다는 대개 내가 마주치는 일들이란 그저 불평도 만족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들의 연속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남거나 오래 기억하는 일들이란 아주 좋은 일이나 아주 나쁜 기억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 끝에 다다른 생각이랍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 하루 일상에 감사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워 본 올 한 해 제 계획이랍니다.

늘 감사가 넘쳐나는 2월 한 달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It seems like the Year 2020 started just a few days ago, but it is already February. I was simply busy every day and I had to deal with one thing and another. So I spent January without making New Year’s resolutions.

After a while, the other evening, I thought about the past year and this year with a somewhat relaxed mind and even looked for the news in which I was interested.

Then, one interesting thought came across my mind. I’d like to share it with you.

Among the items which were brought into my cleaners, a men’s business shirt is decisively at the top in terms of quantities.

But, the ways in which customers drop them off are various. The men’s business shirt has buttons from 9 to 15, and typically about 11 or 12 buttons.

Some customers bring shirts with all the buttons fastened and some do so completely unbuttoned. Some others bring shirts which are inside out with only one or two front top buttons unfastened. Some fasten all the buttons, fold them well like brand new shirts and drop them off for cleaning.

Those who undo all the buttons are my favorite customers. That’s because buttons must be unfastened in order to press shirts. The first thing that I should do before washing shirts is to undo all the buttons. So, if I process 10 shirts of which all the buttons are fastened, I should have to undo more than 100 buttons.

The interesting thought which had flashed across my mind the other day was that there had never been a day in which all the shirts were unbuttoned and also not a single day in which all the buttons of the shirts were fastened for my thirty-year-long cleaners’ life.

Most customers brought unbuttoned shirts except a few buttons on collars and sleeves, but not enough to make me too tired. It seems that it has been pretty much like that for the past 30 years.

It led me to an idea that life might be like that, too. Though we could face, anytime in life, the things which we feel good and comfortable in doing or the pesky things which we don’t like to do, the things that happen to us most of the time might be a series of simple everyday life events, without complaint or satisfaction.

However, the things which stayed long in our minds and memories might be ones which were extremely good or really bad. Just my thought.

It ultimately led me to the end. I should feel gratitude for simple everyday life. That became my New Year’s resolution.

I wish that you’ll feel overflowing gratitude in February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사는 맛 – 두가지

돌아볼수록 질척거리며 살아 온 흔적들이 부끄럽지만 내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 편이다.

딱히 언제쯤 인지는 모르지만 ‘단 한사람에게 만이라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다. 뭐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내 생각 하나, 내 행위 하나가 얼굴 맞대고 살거나 그저 소문으로 닿고 사는 그 누군가 한 사람과 서로 공감할 있는 하루를 산다면 그저 족하다는 맘으로 되뇌이곤 하는 말이다.

말과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지 솔직히 내 보통의 하루 하루는 내 만족의 척도에 따라 웃고 울거나 펴지고 찡그리곤 한다.

지난 주말, 멀리 남부 지역에서 세탁소를 하시는 오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수 년 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는 새로 세탁 기계를 장만하려고 하는데 두 가지 서로 다른 솔벤트를 사용하는 기계들을 놓고 어떤 것으로 바꾸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였다. 부인과 함께 고민 하다가 내게 묻고 그 의견에 따르고자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전화였다. 나는 솔직히 삼십 년 넘게 세탁소를 해왔지만 솔벤트와 기계에 대한 지식은 거의 무지에 가까운 편이다. 살며, 한 십여 년 가까이 미 전역에 있는 세탁인들과 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산 일이 있긴 하다만,  솔벤트나 기계에 대한 문제는 내가 입 벌려 뭐라 할 만큼 아는 게 전혀 없다.

오선생은 무조건 내가 하라는 대로 기계를 선택해 사겠노라고 했다. 그의 아내도 전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었다.

정말 난감했다. 나는 이틀 말미를 얻어 주말 동안 그가 말한 두가지 솔벤트와 기계 종류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 비교해 도표를 만들어 오늘 아침 그에게 보내 주며 말했다. ‘그저 내가 주어진 시간 안에 살펴 본 자료에 불과한 것이니, 오선생께서 잘 선택하시라. 그리고 돈 잘 버시고 건강하시라.’고

오늘 일을 하며 온 종일 오선생 내외에게 감사한 마음이 그치질 않았다. 벌써 수 년 전에 그만 둔 일이지만, 내가 질척거리며 세탁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지 않을까 하는 내 스스로 얻은 위안 때문이었다.

또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 살아 온 일들에 가능하다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바탕엔 성서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내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에 더해 사람 살이 곧 역사 시대를 백년 단위로 끊어 훑거나, 내가 살아 온 세월들을 십 년 단위로 끊어 곱씹어 보며 얻은 내 나름의 깨달음 그 끝에서 얻은 결론 때문이기도 하다.

나야 그저 연緣의 끝자락 붙들고 별 행위도 없이 살곤 있다만, 새 세상 꿈꾸며 사는 이들이 연대를 이루며 사는 소식을 듣고 살 수 있음 만으로도 나는 이미 사는 맛을 느끼며 사는 터.

새해에는 사는 맛 더욱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단 한사람 만이라도 함께.

설날

오늘 가게 손님 몇이 ‘Happy New Year!’라며 인사를 건넸다. 손님에게 설날 인사를 받는 세월을 누리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무렴!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함께 지난 주에 장인 장모가 삼 년 만에 다시 만나 쉬시는 묘지를 찾다. 돌아서는 길, ‘모처럼 다시 만나 싸우지들 마세요’  웃으며 말하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 ‘에이 이제 며칠 되었다고,,, 아직은 아니겠지!’

한국식당에 들려 주문한 생선찜과 탕수육을 받아 들고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뵙다.

이즈음 도통 잡숫지 못하는 어머니는 입맛 없으실 때면 비린 것을 찾곤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특별한 것을 좋아하셨다.

‘엄마! 오늘이 설날이예요!’ 퀭한 눈으로 어머니가 한 대답. ‘설날…???’

아버지는 탕수육 맛이 별나다시며 맛있게 드시고, 어머니는 오랜만에 입맛에 맞아 많이 잡수셨다며 ‘고맙다’를 말씀을 이어갔다.

기실 아버지가 드신 탕수육은 딱 두 점, 어머니는 그저 밥 두어 수저.

우리 내외 또래 한식당 주인 마님은 우리 더러 ‘참 잘 맞는 짝’이라고….

나는 또 웃으며 말했다. ‘육십 년 넘게 함께 살다 간 내 장인 장모나, 칠십 년 넘게 살고 계신 우리 부모나 사십 년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 부부나 싸움 그칠 날 없었다’고

그렇게 또 설날에.

(딸아이가 보낸 꽃은 늘 오래 간다.)

2020. 설날 밤에

시간에

초침은 분침이 되고, 분침은 시침이 된 듯한 한주간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온전히 내 마음에 달렸다.

조금은 더 버틸 듯 하시던 장인 어른이 맥을 완전히 놓아 버린 것은 지난 화요일 밤이었다. 아내와 나는 준비했던 대로 조촐히 그를 떠나 보내는 순서를 진행했다.

생각할수록 죽음은 삶과 닿아 있다.

나는 어제 모처럼 추운 겨울 밤, 함께 했던 이들 앞에서 내 장인 어른을 기렸다.


제가 장인어른에게 받았던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으로 제 장인 어른의 약력 소개와 추억을 대신 하렵니다.

장인과 사위 사이로 산지 거의 사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서로 알만큼 알만한 시간이 흐른 셈입니다. 장인 어른과 제가 닮은 게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즈음 세상과 달리 아들을 딸보다 귀하게 생각했던 시절에 딸 셋, 아들 하나로 태어나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들 바라기가 심한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이쯤 말씀드리면 장인과 제 성격이 닮은 거 빤하게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고집 세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서로 마주하면  자기 모습이 빤히 보이는데… 뭐 애틋한 정을 쌓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이해들 하실겝니다.

물론 장인 어른이 저하고 다르거나 뛰어나신 것들이 많으셨습니다. 우선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잘 생기셨고, 하나님께 받은 재능들이 참 많으셨던 분이십니다. 특히 예술적인 감각이랄까 이런데 아주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주색잡기 중에 주색은 모르겠지만 잡기에는 여러모로 뛰어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가 Diana 노래를 부를 땐 영락없이  Paul Anka 였고,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부를 땐  Tom Jones 인 듯 할 정도로 노래도 잘 했답니다.

그러다 어르신 떠나 가신 후 어른의 약력을 정리하다가 제 장인에 대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또한 제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삶의 모형이었습니다. 바로 이타심, 이웃에 대한 배려, 약자에 대한 삶의 자세 그런 것들이었지요.

제 장인은 유머에 매우 능했고 이야기 거리가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머가 때론 너무 과해 이른바 블랙 코미디를 즐겨하셔서 함께 있던 이들이 미처 그 웃음 코드를 이해 못해서 종종 난감해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그 바탕엔 그저 아이같은 순진함이 깔려 있었답니다. 제 아내가 딱 이런 점을 닮아서 제가 잘 이해를 한답니다. 제 아내가 참 순진하고 착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장인이 즐겨 하셨던 이야기거리의 두 중심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18살에 이른바 카투사라는 미군 배속부대 제 1기 로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지낸 6년여 동안의 군생활 이야기가 하나였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공로로 한미 양국에서 무공훈장을 받았으니 그 시절 이야기를 그가 질리도록 하여도 들을만 했답니다.

둘째는 제대 후에 거의 그의 전 생애 황금기를 이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소방대장이었습니다. 주한 미군병연내 소방대와 주베트남 미군병영내 소방대장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공항소방대장을 보낸 세월 이야기였습니다. 제 장인 어른의 별칭은 이대장이었답니다. 그 호칭을 자랑스러워 하셨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제 장인의 이력으로 그의 삶을 다시 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 그가 공부한 사회사업과 전쟁이후 맹아학교 선생님 이력이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삶의 한 단면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은퇴이후 이곳 윌밍톤시에 사시면서 한 이십여년 동안 영어로 언어 소통이 어려운 이웃들의 일상적인 삶에 작은 도움을 베풀며 사신 삶도 다시 새기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장모 먼저 보내고 홀로 사셨던 3년간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었습니다. 특히나 노인시설에서 그저 누어 지내셨어야만 했던 마지막 1년 동안, 그가 그의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덤덤히 준비하고 맞았던 모습들은 제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 이제 제게 주신 장인의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입니다.

몇 주 전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모처럼 정신이 말짱하셨던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가지고 간 셔츠를 입혀드리려고 하니 싫다며 짜증을 부리셨고, 아내는 굳이 입혀 드리려고 애를 썼답니다. 그 때 장인이 제게 하신 말씀. “김서방! 재랑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어?’

그리고 잠시 후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장인 어른 웃음 가득한 얼굴로 제게 말씀 하셨답니다. “김서방, 정말 고마워.”

장인과 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나눈 이야기랍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지요.

이제 내 장인 어른 영혼의 얼굴에 웃음 꽃이 끊이지 않을 것임을 믿고 기원하며…

일상(日常)에

겨울도 없이 봄이 오는 듯한 날씨에 들판 길을 걸었다. 집에서 반 시간 정도 달려 다다른 펜주 West Chester County의 Stroud Preserve 산책길은 일요일 아침 내 일상을 매우 풍요롭게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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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철학자 강영안 선생이 쓴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를 훑어 읽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日常)은 문자 그대로 따라 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때로는 파안대소할 정도로 즐거운 일이 있는가 하면, 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일이 있기도 한 삶. 그러나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할 일도 ,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이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영원히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중략-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받아들일 가슴이 있다면 일상은 단순한 반복도, 단순한 필연도, 단순히 평범하기만 한 현실이 아니라 자유를 경험하고 깊은 의미를 체험하는 삶의 장소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오간 생각들과 강영안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일상으로 이어지는 내 새로운 한해의 꿈을 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