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4

일하지 않는 하루는 여전히 길다. 이른 아침 가게로 나갔다. 당분간 영업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주정부가 내 업인 세탁업은 영업 가능한 업종으로 분류해 놓은 터라 만일을 대비해 놓자는 심산으로 가게에 나가 앉아 여러 궁리를 해 보았다. 우선 며칠 동안 손님들과 최소 9피트 정도를 유지하면서 영업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향후 며칠 간 그렇게 가게를 꾸며 볼 요량이다.

오후엔 목욕재계하고는 마스크에 장갑을 끼는 중무장 차림으로 노인들을 뵙다. 누군가 말했다지, ‘신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이젠 애기가 되신 어머니는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읊조리셨다. ‘얘야, 얘야, 그저 조심하거라!’

저녁 나절 읽던 책들을 손에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신문들을 훑다. 그러다 눈 번쩍 뜨이게 한 컬럼 하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을 찾자는 글이다.

<올 가을에 투표할 때, 오늘을 함께 사는 공동체로서 우리는 누구인지 또한 사람들을 서로 돌보고 연결 시키는 이들은 누구인지를 기억합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분열을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굳건한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 나갑시다.

델라웨어인들은  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내고 우리 공동체가 다시 번영할 수 있도록 내부적 결속과 창조적인 방안을 찾아 함께 나아갑시다.

우리가 올바르게 함께 한다면,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의지하고 그 연결의 고리를 단단히 한다면, 우리 모두는 오늘의 상황을 이기고 더 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

가을 선거를 앞 둔 여기나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한국 선거나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렴, 이 상황이 끝나면 사람살이는 또 한 발자국 성큼 진보적인 사회로 나아갈 터이니.

이렇게 또 하루에 대한 감사다.

 

하루 – 3

습관이랄까? 냉장고를 채워 놓고 살지 않는다. 그저 그날 그날 먹을거리를 사다 조리해 먹는 편이다. 노인네들 식사를 해 나르는 형편이 되면서 더욱 냉장고 신세를 지지 않으려 애쓰는 쪽이다. 신선한 게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게 바로 코 앞에 큰 그로서리 체인이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이도 저도 하기 싫을 땐 우리 두 내외가 외식을 하는 게 더욱 실리적일 수도 있다.

허나 세월이 하수상하여 간만에 냉장고를 그득 채웠다. 아내와 내가 당분간 장을 안 보아도 몇 주간은 너끈히 지낼 수 있을게다.

오후에 주지사 명령이 떨어졌다는 전화 알람 신호가 왔다. 모레 24일 아침 8시를 기해 전 주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집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이었다. 기간은 5월 15일 또는 지금처럼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끝날 때 까지란다. 앞으로 최소 두 달 여, 장기간으로 보자면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이다.

첨부된 화일에는 이 기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는 업종과 반드시 영업을 중지하는 업종들을 상세히 분류해 놓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내 업종인 세탁업은 삶에 필수적인 업종으로 분류되어 이 기간에도 영업이 가능 하다고 되어 있다.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들의 주변 상황과 일상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 편지를 보냈었다. 솔직히 내 평생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 주변의 상황들이 바뀐 경험은 처음이다.

한국전쟁 후 모습에 대한 기억들은 어렴풋하지만 엄연히 전후 세대이고, 내가 군에 간 바로 그 시기에 월남전도 끝나서 전쟁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다. 한국에 살던 젊은 시절엔 누구나 겪었던 만들어진 전쟁 위협 속엔 살았지만 그게 현실적 위협으로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몇 차례 당시 숱한 젊은이들이 겪었던 것처럼 체포 구금 고문 등의 아픈 기억을 채 지우지 못하고는 있지만, 내 주변이 모두 그 아픔을 함께 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이민 온 이후로는 내가 스스로 만든 어려웠던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개인적 경험에 한한 것이고, 이번처럼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게 주변 상황이 빠르게 변한 일은 그야말로 처음이다.

아무튼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낸 이메일 편지에 의외로 많은 손님들의 답장을 받았다.

우리 부부의 안녕과 무엇보다 내 세탁소가 동네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들을 전해 온 답장이었다. 우리 내외가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세탁소를 접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Landlord에게 한 동안 가게 월세를 면제해야만 한다는 편지를 보내겠다는 열혈 손님도 있었다.

손님들에게 받은 답장들을 읽으며, 오늘 하루 어수선했던 내 마음의 주름이 쫙 펴졌다.

냉장고를 채운 것은 헛 일이었나 보다.

하루의 감사가 이리 큰 것을.

하루 – 2

동네에 첫 확진자 발생 뉴스가 나온 후 일주일이 지났다. 한 주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오늘 오후 뉴스는 서른 번째 환자 소식을 전했다. 드러난 숫자가 그러할 뿐이지 실제 감염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해설 기사도 있다.

이런 저런 관련기사들을 훑어 보지만 이 상황을 조속히 종속시킬 마땅한 방안들은 아직은 없는 듯 하다. 그나마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e) 운동이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세탁소로 밥 먹고 산지 삼십 여년이 넘도록 이제껏 평일에 세탁소 문을 닫아 본 기억이 없다. 종업원들에게 맡기고 쉴지언정 가게문을 닫은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구순 노인들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가게 문을 계속 열고 있었을 게다. 이런 저런 걱정에 이번 주엔 사흘 가게 문을 닫기로 했는데, 지금 추세로 보니 다음 주엔 완전히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맞게 된 평일의 휴일은 너무도 길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닌가 보다. 이 또한 지속된다면 나만의 일상이 그려지겠지만 아직은 낯설다.

오전에 family doctor 사무실에서 보낸 이메일엔 행여 우리 부부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날 시 우리들이 해야 할 행동수칙들이 열거 되어있었다. 그리고 메일 끝 부분에 이어진 말이다. ‘우리 모두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냅시다. 집에서 하루를 보내신다면 건강 음식을 만들어 즐기시거나 밖에 나가 걷거나 운동을 하시기를 권합니다.’

오후에 받은 동네 신문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련된 최신 뉴스에 덧붙여진 마지막 안내. ‘마지막으로 밝은 소식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밖에 나가 다가오는 봄을 즐기십시오. 주립 공원들은 무료입니다.’

하여 김수미 선생표 장수제비국을  흉내 내어 배를 채운 뒤 아내와 함께 동네 공원에 찾아 든 봄을 맞아 걸었다.

늦은 오후 아이리스 영이 가르쳐 주는 복지 자본주의에 대한 글을 읽다.

오늘 부모님은 누나 당번.

이 이상한 하루들에게 또한 길들여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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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딱 닷새 사이에 내가 사는 세상이 바뀌었다. 동네에 첫번 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뜬 것은 닷새 전인 지난 수요일, 그리고 오늘까지 일곱 명이란다. 모두 내 가게가 있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뉴스들은 도시가 곧 숨이 넘어 갈 듯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참 평온하다. 사재기로 모든 물품들이 동이 난 듯한 뉴스에 비해 몇 가지 품목들을 제외하고는 일상용품들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주정부나 시정부의 대책들도 전례없이 발 빠르다. 이틀 전인 금요일부터 실시된 drive-through  검사를 비롯한 검사기관들의 결과가 내일 모레쯤 부터 나오면 확진자 수는 급증할 수도 있겠다만, 대체로 정부 기관들과 의료기관들이 전하는 뉴스들에 의하면, 사회 안전 시스템은 대체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딴 거 없다, 그저 나부터 잘하고 볼 일인데…. 이 지점에서 이는 염려와 걱정이 크다.

당장 내 생업인 세탁소 문을 닫아야 하나? 아니면?… 적어도 하루 걸러 한 번은 찾아 뵈야 하는 치매기 깊어가는 구순 노인들에게 가는 길은 어떻해야 할까?

이런 저런 염려들이 바이러스보다 먼저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하여 오늘 아침 내 가게 손님들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고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손님들은 여러 조언들을 보내 왔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 곧 돈에 대한 염려도 함께 보내 왔다. 그저 감사다.

늦은 저녁, 손님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하여 내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 영업 시간을 결정해 알림을 띄웠다,

우선 한 주간은 월, 수, 금 사흘간 하루 8시간만 문을 열기로 하고, 상황을 보아가며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안내였다.

재택근무 중인 아들 딸과 직장인 학교가 문을 닫아 쉬는 며느리, 아이들에게 ‘이 또한 곧 지나 가리니…’ 목소리 안부 전하며 하루를 맺다.

걱정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사는 동네는 이른바 청정구역이었다. 미 동부 쪽에선 유이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없는 주로 메인 주와 델라웨어 주를 꼽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받은 경보 뉴스,  ‘왔다! It’s here.’ 였다. 내가 사는 동네 델라웨어 주에 첫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나왔다는 뉴스였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뉴스가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한 것은 감염자의 신분이었다. 그가 50대 델라웨어 대학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내 세탁소는 바로 델라웨어 대학교 바로 코 앞에 있고, 내 가게 손님들의 주 고객들 중 많은 이들이 대학교와 연관된 이들이다.

우리 부부는 이런 저런 염려와 걱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곧 이어진 뉴스는 델라웨어 대학이 오늘부터 봄방학을 앞당겨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작 반시간 정도 지났을까? 내 이웃 가게인  liquor store에 학생 아이들이 줄을 이어 술들을 사가고 있었다.

마침 세탁물을 찾으러 가게로 들어 선 경찰 하나가 한 말, ‘에고, 오늘 밤 애들이 저리 마시면 밤 근무 하는 이(경찰)들이 고생 많겠네!’

그리고 늦은 밤, 필라에 사는 벗이 전해 준 성철 선사의 말씀 하나.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안 나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안 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죽을 병이면  두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갈 거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축복에

내 삶의 현장인 일터나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전혀 낌새를 느낄 수 없다만, 뉴스와 소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흉흉하다.

이웃 주들인 뉴저지, 메릴랜드주나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펜실베니아, 뉴욕 등지에도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늘어간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네 뉴스들이 호들갑스럽지 않다. 여기도 어김없이 손 안에서 깊은 생각없이  쉽게 오가는 스마트 폰을 통한 가짜 뉴스들은 넘쳐나지만, 아직은 비교적 덤덤하다.

저녁나절,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들을 나누며 조촐히 한 잔 했다.

이젠 거나할 정도로 마시지도 못하지만, 몇 잔 술 보다는 진국같은 벗들과 모처럼  나눈 이야기에 취한 저녁이다.

아직 생각이 통하는 친구들과 한 잔 나눌 수 있는 내 삶엔 복(福)이 넘치는게다.

집에 돌아와 낮부터 시작한 사골 곰탕을 마무리 짓다. 치매기 깊어 지시는 내 부모님을 위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오늘 곧  21세기 들어서 변한 사람살이 이야기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가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고, 기아로 숨진 사람이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으며,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다.>-  유발 하라리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그래도 사람 살이엔 여전히 이런저런 두려움들이 가실 날 없고, 그 두려움 사이로 오직 제 배 불리려는 각종 가짜들이 기승을 부리는 법. 종교, 이념. 신념이라는 가짜의 옷들을 입고.

더불어 함께 해야 하는 가족들과 , 만나서 좋은 벗들과,  누구나가 마주칠 수 있는 재해에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내가 숨쉬는 세상은 여전히 살만 한 축복 아닐까?

겸허에

오늘 받은 이메일 두 통, 하나는 보건국에서 다른 하나는 노인 보험 관리국에서 온 편지다.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검사에 대한 안내였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는 대양 건너 먼 곳이 아닌 내 곁에 있다.

신문은 보다 현실적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보다 급한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사실은 독감이란다. 인구가 고작 백만 미만인 곳에서 올 1, 2월 두 달 사이 독감으로 11명이 생을 마감했단다.

아무튼 주정부는 현재 중국을 다녀 온 13명을 포함 36명에 대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모니터링 하고 있단다. 다행히 현재로선 양성 반응을 보인 이는 없단다.

전하는 뉴스 논조들이 그리 호들갑스럽지 않아 그나마 안심이다.

비교해 따져 보자면 의료시스템 특히 의료 보험 체계는 내가 아는 한 한국은 미국에 비해 천국이다.

뉴스에 이르면 미국도 가짜들이 넘쳐나고 사안에 따라 호들갑 역시 마찬가지지만 한국보다는 아직은 많이 낫다는 생각이다. 이따금 드는 생각이지만 한국 뉴스 매체들은 한국사회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골치 덩어리이다.

이어져 떠오른 유발 하라리가 제언하는 더 나은 오늘에 대한 생각들이다.

<지난 수십 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농업사회 초기에는 인간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 사망률의 15%까지 올라갔지만, 20세기에는 5퍼센트로 낮아졌고 지금은 1%에 불과하다.>

<비록 기술적 도전들이 유례없이 크고 정치적 불일치가 극심하다 해도, 계속해서 우리의 두려움을 조절하고 자신의 견해에 대해 조금씩만 겸허해 진다면 인류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비단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폭력 뿐만 아니라 전염병도 마찬가지일게다. 인류가 진보해 온 모습대로 사람이 사람을 서로 겸손히 대하고, 신과 인간 앞에서 겸허해 지는 이들이 많아지는 내일을 꿈꾸며 살 일이다.

뭐 거창한 일 아니다. 우선 나부터 수시로 손 깨끗이 씻고, 기침 콧물 조심하고, 행여 아프면 집에 있고 의사를 찾고…. 그리 하는 일이 우선 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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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솔직히 내 나이를 인정하고 살지는 않는 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우습긴하다만, 내 가게 손님들이 종종 가늠해 주는 나이 쯤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비록 칠십이 손에 잡히는 처지지만 황송하게도 손님들은 오십 줄 운운하곤 한다.  착각하는 내가 나쁘지 그들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러다 내가 이미 늙고 지극히 보수적인 노인이 되었구나하는 현실을 직시케 해 주는 책 한권을 마주해 읽었다.

시인 허영선이 쓴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라는 책이다.

역사학자 서중석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4.3은 시인이 써야겠구나’ ‘시인이나 소설가, 화백이 가슴에 파고드는 진실을 정말 잘 그려냈구나’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2만 5000에서 3만을 헤는 4.3희생자의 처절한 모습. 오로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살게 된다)며’ 살아 온, 죽음의 문턱에 있었거나 죽음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심정과 삶은 시인의 마음을 통해야 온전히 그려질 것 같다.>라고 썻다만 내겐 시인이 쓴 역사의 현실이 읽기에 너무나 버거웠다.

바로 나이 들어 늙은 탓이다. 나도 젊어 한 땐 탐닉했던 문체였건만 정말 불편했다.

책장을 처음 열자 마주친 저자인 시인의 자서이다.

<기억하라. 반드시 기억하라는 이 기억의 통꽃.
더 이상 피어날 수 없었던 어린 눈동자를 대신해
살아있는 눈동자들이 봅니다.

수많은 꽃목숨들이 참혹하게 떠났습니다.
잊어라. 지워라, 속솜허라.(‘조용히 해라’라는 제주도 방언)>

그렇게 시작하는 책, 몇 장을 넘기다 그냥 덮어 두었던 책이었다. 책장을 이어 넘기기엔 아팠고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다 내 나이 탓이었다.

그러다 어제 오늘 내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일독하였다.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해 보자는 후배들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끝부분에 인용된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4.3 위령제에서 했다는 추도사의 일부이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확보되고 상생과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슴 뛰게 하는 시인의 문체가 아니라도 조곤조곤 나누는 지난 이야기들을 통해 변해가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늙긴 확실히 늙은게다.

그래 이젠 나도 보수다.

하여, 바라기는 이제껏 보수연하던 세력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픈 세월 꾸역꾸역 읽어내는 보수들이 노인 되는 세상을 위하여.

안식에

동네 신문은  Joe Biden이  South Carolina primary에서 기사회생 했다는 기사를 일면 탑에 올려놓았다. 아무렴 이 동네 출신이니 그 정도 호들갑은 눈 감아 주어야겠지만 그저 거기까지 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 뉴스는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19 소식과 간간히 총선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뉴스들을 접고 나를 위한 일요일 안식을 누리다. 하비 콕스 (Harvey Cox)의 ‘신이 된 시장(The Market as God)을 곱씹어 읽고 책을 덮었다.

이 책에서 하비 콕스가 말하고자 하는 주장이 요약된 제 3장의 제목은 <역사: 돈을 쫓다>이다. 그는 돈을 쫓아 이어진 역사, 특히 교회사를 이야기한다. 신학자인 그가 이해하는 근 현대의 자본시장은 바로 이 교회사를 쫓아간 것이다.

“돈” – 오늘의 뉴스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말이다.

하비 콕스가 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말들이다.

<어떤 이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단순한 탐욕이다. 그들은 탐욕의 전염병에 감염되었고, 탐욕은 어떤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다.> ….(정치, 종교 등 제반 분야에서 탐욕의 전염병에 전염된 사람과 세력을 구분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민중을 넘어 시민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죽음의 자리에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고 한다. “아아 슬프도다. 지금 내가 신이 되어야 할 텐데.” 어떤 인간 개인이나 기관도, 심지어 ‘시장’도 신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제 신이 될 필요가 없다면 ‘시장’은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콕스가 말한 ‘시장(market)’에는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교회(종교), 정치, 언론, 문화 등 제반 분야를 포함한다.

아담 스미스를 다시 읽게 하는 콕스의 가르침은 덤이다.

<부자와 권세가에 대해서는 감탄하고 거의 숭배까지 하는 성향, 가난하고 비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적어도 무시하는 성향은…. 우리의 모든 도덕 감정을 타락시키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원인이다.> –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서

모처럼 잘 쉬었다. 딱히 뭔지 모를 미안한 미음으로.

겸손에

이즈음 틈틈이 읽고 있는 책들이 있다. 신학자 하비 콕스가 쓴 <신이 된 시장>,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그리고 정치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들이다.

유발 하라리의 책은 재미있어 대충 일독 후 정독 중에 있고, 하비 콕스의 책은 내 이십 대 시절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들을 비교하며 읽고 있는 중이고, 아이리스 영의 것은 여러모로 버거워 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나이 들어 좋은 점 하나는 나 혼자 즐길 시간이 늘어가는 것이다.

아직 책들을 완독하지 못했지만 세 권의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 낼 수 있는 단어 하나 ‘겸손’이다.

사람살이에 얽혀져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겸손’이란다.

하여 요 며칠 동안 ‘겸손’을 읊조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바로 그거야!’라고 확인해 주는 이메일을 받았다.

호주에 계신 홍목사님의 편지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시드니 인문학교실 강의록 외에 은퇴 목회자 주일예배 설교문을 보내 주었는데, 그 설교문에서 그가 확인해 준 사람 답게 사는 해결책 역시 ‘겸손’이었다.

내 삶을 돌아보는 눈은 물론이거니와 이즈음 세상 뉴스들을 바라 보는 올바른 판단의 기준 바로 ‘겸손’ 아닐까? 그것이 신 앞에서건 인간 앞에서건.

부끄러움(염치)와 겸손을 상실한 시대는 늘 이어져 온 것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염치를 알고 겸손이 익은 몸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끊이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내 모든 선생님들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