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夕陽)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 공기가 평소와 영 다르다. 후끈한 열기에 놀라 온도계를 보니 바깥 온도와 거의 맞먹는다. 에어컨 팬은 쉬지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기계 제품에 대해 문외한 이거니와  더더우기 전기와 연관된 물건이라면 손 될 엄두를 내지않는 내겐 난감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하필 오늘은 또 금요일 저녁이다. 사람을 부르기도 딱 쉽지 않은 날인데다 날씨는 찌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군데 에어컨 설치 및 수리 업체들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빨라야 사흘 후인 월요일 운운이고 주말에 급점검이라며 웃돈을 요구하는 형국이었다.

심호흡 길게 한 후 조금 느긋한 마음이 되어 내 형편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에 방책에 대해 구글신(神)에게  물었다. 안타깝게도 구글신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에어컨과 전기에 대해서는 나는 무지하였으므로.

그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더웠다. 하여 십 수년 넘게 내 가게 기계들을 돌보아 준 이에게 전화를 넣어 사정 설명을 하고 혹시라도 내가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언제나 처럼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 주었다.

그의 가르침대로 하나, 둘, 셋, 넷을 따라 점검해 보았지만 그저 땀만 더 흘렸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하늘엔 석양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 땀을 식힐 겸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그 하늘을 담아보았다.

구글신은 내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어컨 시스템의 사용 가능 연령은 10년에서 20년으로 추정하며 평균 사용연령은 15년 쯤이라고 일러 주었는데 기록을 찾아보니 내가 에어컨을 새로 갈았던 것이 딱 만 15년 전 일이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해 본 신, 사람, 기계 그리고 하늘(자연)인데 모두가 그저 내 삶과 연결된 것들이었고, 이런 생각의 모든 시작과 끝 그리고 연결 고리는 모두 나라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사나흘, 에어컨 없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삶의 주인공은 그저 나일 뿐.

하늘은 늘 그렇게 아름답다. 석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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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整理)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일요일,  온종일 집안에서 보냈다. 맞이하는 한주간 날씨예보는 연일 체감온도 100도를 오르내릴 것이란다. 정상적인 사람체온을 웃도는 수치이다. 허기사 여름인데 이런 더위를 한 두 번 겪은 나이도 아니고 이 또한 곧 지나갈게다.

이즈음 틈나는대로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며 산다. 정리라곤 하지만 안고 살아 온 쓰레기들을 버리는 일이다.

두 해 전이었나, 세 해전이었나? 어느새 멀리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은 비교적 정확한데 가까운 일일수록 가물하다. 아무튼 계절로 보아 이즈음 이었을게다.

필라에 사는 참 좋은 벗이자 인생 선배인 김경지형이 ‘집정리를 하는 중인데 김형(나)에게 줄만한 책들이 있어 원하면 갖다 드리려 고…’ 하는 전화를 주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경지형은 많은 책들을 내 집에 부리고 가셨다. 그 중 불교서적들은 이즈음도 내가 이따금 손에 들며 감사한 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러다 오늘 문득 그 때 집 정리하던 경지형 마음을 꿰뚫게 되었다. 그이 보다 조금 늦게 깨달은게다. 조만간 조촐하게 책장 하나 남기고 정리해야겠다.

그 맘으로 지하실에 쌓아 둔 서류뭉치들을 정리하다가 눈에 뜨인 신문 한 장이다. 따져보니 벌써 이십 오 년도 넘게 지난 세월 저 쪽 이야기다. 한인들 이야기를 실은 동네신문이었다. 당시 어찌어찌 내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사화 되었었다. 생각해보니 꿈 많았던 세월이었다. 당시만해도 한국 뉴스는 담쌓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내 나름으로 간직한 한국을 품고 미국시민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유민이 아닌 주인 되는 이민’운운 하며 살던 때였다.

누군가의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고 하지.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고.

지난 주간에 손님 둘이 각기 신문 한 장 씩을 들고 내 세탁소를 찾았었다.두 사람이 들고 온 신문은 공교롭게도 모두 ‘The Wall Street Journal’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둘 다 내 또래의 백인들이고 한사람은 남자 한 사람은 여자다. 둘 다 전형적인 우리 동네 중산층에 속한다.

남자가 들고 온 기사내용은 탈북자 노철민이 부패한 북의 모습을 토로하는 기사였고, 여자가 들고 온 기사내용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대한 기사였다. 어느덧 노회해진 나는 적당히 죽을 맞춰 그들의 관심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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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각기 남긴 말들이다. ‘북한은 역시! 근데 요즘 애들은 안 믿지…’, ‘아니, 좋은 일 참 많이 한 사람인데 그깐 스캔들 따위로 죽다니… 쯔쯔’

형편없는 대통령 트럼프가 딱 잘 한 일 하나 들자면 북한에 대한 뉴스를 안 믿는 미국인들이 많아지게 했다는 것 아닐런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람마다의 생각 차이…

곰곰 따져보니 내게 외국은 비단 과거 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지금 여기 말고는 모두가 외국 아닐까? 내게는…

정리는 버린다고 되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들꽃

며칠 전 US News & Business Report라는 신문사 기자라는 이와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사연인즉은 그 신문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을 견뎌내는 Local Businesses를 다루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영업주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로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사업상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겪고 있는 일들과 이즈음 느끼는 점들을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CBS News에 실린 <세탁업의 최악 사이클: 세탁인과 재봉업자들이 겪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 – COVID 연대기 Laundry’s worst cycle: The coronavirus’ impact on dry cleaners and tailors – COVID chronicles>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가 왔다. 그리고는 취소가 이어졌다. :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주정부가 군중집회를 단속하여, 결혼식, 출장, 결혼기념일 축하 행사, 스포츠 대회, 종교적 휴일, 프롬, 졸업식 그리고 장례식 등 모든 행사들을 그만두게 되었다. 신부들과 졸업생들은 세계적 전염병이 중요한 날을 집어 삼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전국의 세탁인들과 재봉업자들은 자신들의 생계가 심각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초기에, 대부분의 세탁소들은 매상이 83 – 92% 감소했다고 하고, 지난 해 대비 80% 정도 매상이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이 기사는 여러 세탁소 주인들이 겪고 있는 저마다의 경험들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 이 기사는 전반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바뀐 생활 패턴에 따르자면 세탁업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뉴햄프셔주 시골지방 Littleton에서 Martin’s Cleaners를 운영하고 있는 Edward Martin의 말로 맺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견뎌 나갈 것이다.”

내 개인적인 사정도 일반 세탁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즈음 하루 하루를 보내며 해 보는 생각도 Edward Martin씨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부부가 일할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끝까지 견디어 보는 것이다.

이즈음 내가 누리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팬데믹이 발생한 지난 봄에 뒷뜰 언덕배미에 뿌린 야생화 씨앗들이 꽃으로 변해 내게 건네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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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무더운 날에.

흉내

아무런 계획없이 하루를 보내고자 했다. 공연히 내 감정에 기복을 일으키는 뉴스들도 보지 말고 아무 생각없이 아무 일도 않고 일요일 하루를 보내자 했다.

늦잠을 즐기는 맛도 보자고 간밤에 늦은 시간까지 앉아 있었다만 눈 뜨는 시간은 매양 같은 시간이었다. 뜰로 나가니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 새들의 아침 수다가 한창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평생 처음 뿌려 본 씨앗들이 꽃이 되어 아침인사를 건넨다. 괜히 겸연쩍어 카메라를 찾아 들고서 꽃들의 인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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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맑고 아침이라지만 여름바람 치곤 기분 좋게 마르다. 모처럼 근처 공원이라도 찾아 걸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내를 재촉하다.

공원길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이 서로 간 십여 걸음 가까워지면 마스크를 쓰곤 하는 모습들을 보면 뉴스들은 사뭇 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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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고 여유로운 공원에서의 아침 시간들을 즐기고 돌아와 아내가 준비한 냉면 한 그릇으로 더운 몸 식히고 달고 단 낮잠의 여유까지 누리다.

일요일 오후 뒷뜰엔 여름의 열기가 가득하다. 부지런히 고추와 깻잎을 따다가 두부와 간돼지고기, 당면, 양파, 당근 등속을 다져 넣은 고추튀김과 깻잎 튀김을 만들다.

어머니 떠나신 후 감정 기복이 심하시다가 이즈음 조금 평정심을 찾으신 아버지가 몇 번이나 ‘맛있다’를 이으셨다. 누나와 막내동생도 ‘덕분에’라는 인사를 건넸다.  별다른 재주 없는 내가 늙막에 이런 어머니 흉내라도 낼 수 있어 참 좋다.

늦은 저녁, 임어당(林語堂) 선생이 전해주는 장자(莊子)의 글을 읽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근심하거나 탄식하고, 때로는 변덕을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경망스럽거나 방종하고, 때로는 터놓거나 꾸며댄다. 이런 것들은 마치 텅 빈 악기의 구멍에서 나오는 음율처럼, 또는 습기처럼 돋아나는 버섯처럼 밤낮 교대로 눈 앞에 나타나지만 어디서 싹트는 지는 모른다.

아! 어디서 생기는지는 모르지만, 아침 저녁으로 이러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그 연유한 바가 있으리라. 감정의 변화가 없다면 ‘나’도 없는 것이며, ‘나’가 없다면 이러한 감정을 취할 수 없다.>

아무 계획 없던 하루해가 저문다. 계획을 세우고 보내는 하루는 늘 허전한 구석이 있게 마련인데, 어쩌다 계획없이 보낸 하루는 알찬 듯하다.

오늘 내가 만든 허상(虛像) 하나일 수도. 비록 그렇다 하여도 오늘 하루에 감사.

나이에

독립기념일 연휴 이틀 동안 무념무상으로 일에 빠져 지냈다. 일을 마무리 짓고 나니 온 몸이 천근 만근 이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했다.

이 집에서 산 지 만 23년이 지났다. 이 집에서 내 두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지만 이젠 아이들이 머무르는 일은 거의 없다. 매해 때 되면 어머니 아버지와 장모 장인 모시고 밥상을 나누던 추억들도 쌓인 곳이지만 이젠 다 떠나시고 아버지 홀로 신데 거동 불편하셔 내 집에 오실 일은 없다.

올 초만 하여도 나는 조만간 우리 부부가 조촐히 살기 적합한 작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맞이한 팬데믹 상황에서 내 일상도 바뀌고 계획도 바뀌었다.

갑자기 넘쳐난 시간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일들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텃밭과 화단을 가꾸어 보는 일을 시작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카펫을 들어내고 마루를 깔기 시작한 일도 그 중 하나이다. 그저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하자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자꾸 늘어져 아니되겠다 싶어 연휴 이틀간 맘먹고 마무리를 지었다.

카펫을 들어내면서 방안의 물건들을 옮기다가 시작한 또 하나의 일은 버리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이 버렸다. 버리면서 든 생각 하나, 쓸데없거나 과한 것들 정말 많이도 끼고 살았다.

마루를 새로 깔며 마주했던 격한 감사들도 있다. 묵은 카펫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먼지처럼 나와 더불어 함께 지내온 세월에 대한 감사와 아직은 이만한 노동이 그리 버겁지 않은 오늘의 내 나이에 대한 감사, 그리고 어느 날 모처럼 하루 밤 자고 갈 아이들이 변한 방 모습에 웃는 얼굴을 그려보며 느끼는 감사였다.

일을 마무리 짓고 가구들을 원래의 위치로 놓으려 하다 바뀐 생각 하나가 있다. 방 하나는 그저 텅 빈 채로 나두자는 것이었다. 뭐 딱히 법정스님을 흉내 내어 보자는 뜻은 아니다만 문득 텅빈 방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라는 법정의 말이 그대로 내 마음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 동안 나는 이를 즐길 것이다. 또 어떤 변덕이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만.

어쩌면 텅 비우는 연습이 아니라 실전을 해야만 하는 나이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기에.

딸아이에게 바뀐 딸아이 방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보내온 답신이다. ‘다음엔 뭐해? 아빠!’ 나는 즉시 응답했다. ‘물론 계획이 있지! 또 보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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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손님들이 묻는다. ‘장사 어때?’, ‘견딜만 해?’, ‘가족들은 다 건강하지?’ 나는 마스크 속에서 활짝 웃으며 응답한다.’고마워요. 제가 여기 있잖아요. 당신은요?’ 손님들은 웃으며 떠난다.

손님 뜸한 오후,  가게 밖 하늘에 홀려 빠지다.

흐르는 구름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을 보면 내 삶의 연식도 제법 되었나보다.

살며 이렇게 반년이 흐른 것은 처음이다.

태초 이래 구름은 늘 변화무쌍이었을 터이지만 내겐 늘 처음이다.

그래 삶은 늘 홀릴만한 게다.

하여 구름에게 감사.

6. 3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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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대

가게문을 매일 열지만 손님은 여전히 뜸하다. 펜데믹 이전에 비하면 고작 1/3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가게에서 내가 할 일들이 별로 없다. 하여 아직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다.

나 나름으로 그 넘쳐나는 시간들을 즐긴다. 펜데믹 비상상황이 선포된 이후 씨 뿌려 볼 생각을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참 기특하다. 그 덕에 누린 지난 석달 간의 즐거움은 이즈음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풋배추와 열무 거두어 김치도 담고, 아욱과 시금치로 국도 끓여 먹고, 상추과 깻잎은 이즈음 우리 부부 밥상에 단골이 되었다. 고추, 오이, 호박 토마토 순을 쳐주고 달린 열매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즐거움은 정말 새로운 것이다. 머지않아 양파도 거두고 대파도 한 동안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며칠 전 부터는 콩나물도 키워본다고 엉성한 시루에 열심히 물을 주고 있다. 틈틈이 방마다 마루도 새로 깔고 있고, 뒤뜰 deck도 새로 꾸며보자는 생각으로 머리속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즐거움은 혼자 마음껏 생각의 줄기를 붙들고 노는 것이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대망의 70년대’라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리고, 라디오에서는 청룡과 맹호부대 군가가 흐르던 내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선생님들을 떠올린다. 교회 선생님들이다.

‘하나님, 이 아이들이 지금 열심히 공부에 전념할 때입니다. 공부할 시간에 바지 속에 손 넣지 않게 해 주시고….’ 기도하시던 선생님도 생각나고, ‘지금 너희들 나이야말로 그야말로 golden age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 하루 하루 한시 한시가 귀하다는 것 잊지 말길 바란다.’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선생님도 계셨다.

한강변 절두산이 바라보이는 풍광 좋은 저택에서 사시던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말씀하셨던 이야기도 생각난다. ‘이런 시절에 좋은 풍광 바라보며 즐기며 사는 내 삶이 옳은 것인가?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단다.’ 솔직히 당시 그 선생님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었다만 조금 머리 굵어진 이후 선생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난 받는 예수’를 침 튀기시며 외치시던 목사님도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엉뚱하고 나쁘고 못된 짓 많이 저지르며 살았으되 지금 이만한 부끄러움 안고 그래도 하루 하루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 모두 그 때 그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기도 덕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일흔 고개를 바라보고 서 있는 지금 내 하루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 황금시대가 아닐까?

혼자를 오롯이 곱씹는 시간을 즐기며, 역사라고 말하기엔 거창하고 그저 흘러간 시대와 내 시간들을 돌아보며 감사에 젖고 오늘을 즐기며, 내게 주어진 가늠할 수 없는 남은 시간들과 내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욕심 없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내가 누리는 황금시대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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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아들 딸 며느리가 밝은 목소리로 ‘Happy Father’s Day!’ 전화 인사를 했다. 난 ‘너희들이 최고다!’라고 내 기쁨을 전했다. 저녁 나절 하루하루 빠른 걸음으로 쇠해 가시는 아버지께 인사 드리다. ‘오늘 하루도 잘 지내셨단다. 그래 또 감사다.

어제 동네 신문 온라인판은 ‘100 DAYS OF PANDEMIC’이라는 제목의 특별 기사를 전했다. 델라웨어주에서 첫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 지난 백일 동안 동네 사람살이 모습이 변한 과정들을 소개한 기사였다. 그리고 이제 맞이할 사람살이 새로운 일상을 조망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세상은 누구도 느끼지 못할 만큼 더딘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바뀌어 나아가지만 때론 한순간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느낌으로 뒤집어지기도 한다.

이른바 ‘new normal’을 이야기하는 이즈음은 마치 혁명같다. 그래 사람들은 이런저런 걱정도 많고 생각 빠른 사람들은 기대도 많다.

모든 혁명의 끝은 실패라는 사람들도 있고, 혁명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들도 있고, 혁명에는 배반이 따른다는 사람들도 있고…. 돌아보면 그 때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옳았다.

나 개인적으로 지난 삼개월여를 경제적으로 따지자면 완전히 파산이다. 나처럼 구멍가게 하는 이들이라면 거의 같은 심정일게다. 뭐 번 돈은 없고 나가는 돈은 일정하니 있는 돈 까먹고 앉아 시간 지나면 파산이지 별거 있겠나? 그래도 그저 고마운 것은 우리 부부 삼시 세끼 먹고 지내는 일 이외에는 크게 돈 들어갈 일 없으니 돈 문제로 걱정하지 않는 나날에 감사가 크다.

이즈음 미국 뉴스들이나 한반도 뉴스들을 보면서 아주 민감하게 걱정하고 날선 비관적 비판들을 하는 이야기들을 듣곤 한다만, 내겐 그리 와 닿지 않는다.

내 짧은 생각으론 그저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즈음 내 눈엔 쉽게 드러내기 힘들었던 미국의 아픈 치부들이 치료를 위해 까발려지고 있고, 한반도 역시 제 자리에서 자기 수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첫 발 내 딛는 시간을 맞이한 듯 하다.

세상일에 그리 밝지 못하다만 그저 내가 믿는 건 단 하나.  신은 사람을 믿는다는 것.

그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언제나 나는 진보이고, 민주이고 통일이고 내일은 희망이라는 것.

내 아이들과 아버지와 내가 서로 간 알지 못하는 오늘의 아픔을 딱히 나누지 않아도… 감사는 이어지듯이.

*** 빛이 있어 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DSC00496 DSC00497 DSC00499 DSC00500 DSC00501

뉴스에

뉴스들은 언제나 흉흉하다.

매일매일 호들갑스럽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하루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짧게는 내가 살아 온 세월이 그러하고, 길게 보면 사람들이 사람살이를 시작한 이래 변함 없었다.

다만 오늘만 사는 우리들에겐 오늘도 호들갑스럽게 흉흉하다.

내 가게가 있는 도시에는 인종 혐오 특히 동양인 혐오 전단지가 뿌려져 범인을 찾고 있다는 소식도 있고, 나같이 동네 구멍가게를 하는 이들은 점점 힘든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뉴스들도 제법 그럴싸한 자료들을 내밀며 다가서고, 총기사고 등의 사고사건 기사들은 어제만큼 여전히 이어진다.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재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노인들이 얼굴로 나선 선거판도 그렇고, 한반도 뉴스들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허나 따지고보면 이게 어제 오늘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늘 그렇게 이어져 온 일이다.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유일한 사실 하나는  사람 또는 시민들이 조금씩 조금씩 아주 더디고 느린 걸음으로 사람다워 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내 믿음일수도 있다.

하늘에는 여느 해 유월과 다름없는 초여름 구름들이 나른하게 흐르고, 뜰에는 여름 꽃 봉우리가 트이고, 새들이 노닌다. 뒷뜰 언덕배미에서 풀 뜯던 노루 한 마리 나와 함께 눈싸움하다 슬며시 피해 달아나다.

뉴스들이 여전히 흉흉한 하루가 진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또 하루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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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觀點)에

이른 아침 첫 손님으로 맞은 Susan에게 물었다. ‘가족들은 어떠니? 이즈음 뉴스들이 너희 가족들에겐 좀 힘들지 않니?’ 내 짧은 물음에 그녀의 대답은 제법 오래 계속되었다. 다음 손님이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그녀는 내 물음에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내 세탁소를 떠났다.

Susan의 남편은 쌍동이다. 남편과 시동생, 쌍동이 형제들의 직업은 경찰이다. 형제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경찰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두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현역 경찰이다. 이른바 경찰가족들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왈 백인들이다.

그녀는 이즈음 경찰관련 뉴스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더 무섭단다.

한가해진 시간에 옛 생각을 더듬는다. 어느새 스무 해가 훌쩍 지났다. 그즈음만해도 내가 참 꿈이 많았었다. 당시만 하여도 내가 사는 동네 다운타운으로 일컫는 윌밍톤시에는 장사하는 한인들이 제법 많았었다. 물론 지금도 여러 분들이 계시지만 그 때에 비하면 많이 쇠락한 편이다.

왈 흑인 거주 지역인 다운타운에서 장사하는 한인들의 피해와 사건 사고들이 종종 일어나던 때여서 그 일을 의논하고자 시장과 경철서장을 만났었다.

그 때 시장이 내게 했던 말이다. ‘왜 한인들은 흑인 밀집지역인 시내에서 장사를 하면서 살기는 왜 여기서 안 살죠?’  내 체구에 비해 거의 세 배나 되는 인자한 모습의 흑인 시장께서 내게 던진 느닷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었다. ‘제 가게가 시내에 있고요, 제 장인 장모가 가게 이층에서 산답니다. 모든 한인이 다 그런 건 아니랍니다.’

생각해 볼수록 비겁한 대답이었다.

물론 내 장인 장모가 당시 시내에 있던 작은 건물에 있었던 내 세탁소를 돌보면서 이층에 살고 계셨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의 물음에 대한 응답은 적절치 않았다. 그곳에서 장인 장모는 두 번에 걸쳐 권총 강도를 만났었다. 건물을 처분한 지도 오래이고 두 분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때 일들을 생각해면  장인 장모에게 지은 내 죄가 크다.

그리고 몇 년 전 아들녀석 장가갈 때 이야기다. 느닷없이 결혼날짜를 잡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아들녀석에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다스리지 못했었다. 그렇게 갑자기 만나게 된 며느리는 정말 새까만 얼굴의 흑인이었다. 아마 내 화를 더욱 키운 까닭이었을게다.

몹시 힘들었던 여름이었다.

아들녀석의 가출이 이어졌고, 어느 날 아들놈의 연락이 있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아빠를 한 번 보자는 데 한 번 만날 수 있어?’ 나는 녀석에게 말했었다. ‘이눔아! 이건 내가 해결할 문제지, 목사님이 해결해 주는 게 아니야!’

그 여름에 우리 부부는 기차를 타고 서부 여행을 했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몹시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만났었고 그 해 늦가을 나는 까만 얼굴의 며느리를 맞았다.

그 어간에 아주 엉뚱한 자리에서 아들 녀석이 말한 그 한인 목사님을 만났다. 그의 이름 이태후 목사. 만난 곳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에서 이다.

며칠 전 그가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으며 내 마음에 넘치는 감사 하나.

내 아이들이 이런 목사님 영향을 잠시라도 받고 자랄 수 있었다니…. 그저 감사다.

이즈음 나는 며늘아이 얼굴을 보며 아들녀석 걱정을 잊는다. 덤으로 신앙과 교회관 나아가 정치적 관점 역시 엇비슷한 오리지널 까만 얼굴들인 사돈에게 얻는 감사까지.

그리고 이젠 점점 굳어져 가는 생각 하나.

무릇 관점의 핵은 인종도 신념도 이념도 사상도 더더구나 신앙도 다 헛것이라는 것. 다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사람의 관점,  그 마지막 하나 아닐까?

더운 날, 마루 새로 깔다 허리 피며 만나는 새 생명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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