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첫눈 내리다.

아기 주먹만한 함박눈이 펑펑

눈송이들이 내 시름들을 다독이며 덮다.

소리 없는 세상을 즐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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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에

아내와 나는 많이 다르다.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그래도 부부인데 그것도 마흔 해 넘은.

닮은 곳들을 찾아보지만 교집합의 크기는 보잘 것 없이 작다.

서로 딱 맞게 닮아 이제껏 부부의 연을 이어 온 큰 까닭 하나 찾자면, 남과 비교하거나 빗대어 놓고 우리들의 삶을 꾸리지 않았다는 것일게다.

아내에게 그런 성정이 깊었다면 애초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터이다. 생전 울 어머니 말씀마따나 아내가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성정이었다면 나는 열 두번이나 홀아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게다.

물론 나 역시 나 밖에 볼 줄 모른다.

우리 부부의 교집합이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더더구나 이 나이에 이르니 ‘누군가가 부러워지는’ 시간은 거의 없다. (과했나?)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참 부러운 사람 하나가 다가왔다. 시인 강남옥이다.

그의 세번 째 시집 <그냥 가라 했다>를 받은 것은 지난 주였다. 시집을 받자 마자 후루룩 넘기다 내 눈에 꽂힌 시는 <쌀과 꽃>이었다.

<쌀과 꽃> 을 관통하는 시어는 ‘값’이었다. 바로 가치, 삶의 가치였다.

오늘 저녁, 찬찬히 그의 시편들을 곱씹다 울컥하니 부러움에 빠지다. 가히 도발적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그의 시어들이 가  닿은 곳들은 사람들이었고, 그 곳엔 깊은 사랑이 함께 하였다.

남의 가게 일 도우시는 한국 분을/ 필라델피아 시내로 모셔다드린 적 있다/ 그분은 시청에서 자동차로/ 40분쯤 걸리는 곳에 사셨는데/ 필라델피아에서만 15년 사셨다 했고/ 15년 만에 시내는 처음 가 본다 하셨다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의 시 <슬펐다>이다.

40, 15, 20이라는 숫자들이 말하는 거리와 시간들은 그에게 그저 거추장스런 치장일 뿐이다. 일상에서 누려야하는 마땅한 일들이 처음인 사람을 마주하는 그의 슬픔은 옛 고향에서 부터 이민, 그 역시 떠나온 고향처럼 빠르게 변하는 이민의 땅에서 수시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의 시편들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부고(訃告)와 무고(無故) 사이에 놓인 모든 사람들을 향해.

모를 일이다. <그냥 가라 했다>는 시집 이름이 그의 생각인지는.

단언컨데 그에게  <그냥 가라>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게다. 사랑 한 줌 받지 않고서는.

남도(嶺이건 湖이건)말이 부러운 서울 촌놈의 열등감을 그가 헤아릴지는 모르겠지만.

부러움으로

그의 시집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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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밀린 뉴스들을 훑다가 느긋함이 분노로 바뀔 즈음 떠오른 김수영의 시 <하······ 그림자가 없다>의 시작 연이다.

제법 긴 그의 시 마무리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적으로 싸워야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그림자가 없다
하······그렇다······
하······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
응응······응······뭐?
아 그래······그래 그래.>

뉴스를 덮고 뒷뜰 떨어진 나무가지들 그러 모으며 봄을 구상하다. 곧 눈이 많이 내리고 춥단다.
오후에 아내와 딸과 함께 동네 공원을 걷다.
언제적 김수영이었던가? 환갑 세월이 흘러도 역사의 적들은 그림자가 없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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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일기

장모 기일을 기리며,  당신 자손 모두가 함께 얼굴 마주할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이즈음 비대면 세태 덕(?)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니 삶의 역설이다. 그렇게 서울 사는 두 처남네 식구들과 필라 아들 내외와 모처럼 집에 온 딸애와 우리 내외 모두 함께하는 시간을 누렸다. 장모 떠나신 지 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마침 아내의 생일 직전이기도 하여 두루 감사였다. 비록 그것이 온라인 모임일지언정.

조촐한 가정 예배를 드리며 단지 나이가 가장 많다는 까닭으로 하여 몇 마디 말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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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라도 얼굴들 볼 수 있으니 우리 모두 감사한 오늘이야! 세월이 빠르다는 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진부하지만 어찌 보면 늘 새로워.

2020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인류사에 있어 아주 독특하게 남을 한해가 될 것 같아. 나는 물론이거니와 오늘 함께 한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시간들이었지. 이제껏 전 세계인들이 함께 두려워 했던 것이 전쟁이었다면 올 한해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걸 뛰어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본 것일게야.

자! 이쯤 우리들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구.

내가 지금 보여주는 몇 장의 사진들은 우리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최용옥 할머니가 남겨놓은 일기장이야.

찬찬히 보라구. 매일 매일 일기의 글은 매우 짧아. 그런데 매일 매일의 일기에 똑 같이 반복되는 문장이 하나 있어. 자! 찾아 보자구.

맞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로 그 말이야.

내가 가지고 있는 할머니의 일기장은 처음 할머니가 암이라는 판정을 받은 후부터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펜을 들어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의 하루 하루 아주 짧은 생각들이 담겨 있어.

할머니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기록에는 몇 가지 일관된 이야기들이 있어.

첫째는 이미 말했듯 감사야. 하나님에 대한 감사인데 나는 그걸 시간에 대한,  삶에 대한 감사로 읽고 있어. 할머니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든 모두 너희들 몫이겠지.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 읽고 쓰고 말하고 숨쉬는 순간이 그저 감사라는 할머니의 생각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지.

둘째는 할머니의 일기에는 그 누구에 대한 원망이나 누구의 흉도 없어. 얼핏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결코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오늘 함께 한 우리 모두에게 최용옥 할머니가 남겨주신 큰 교훈이라는 생각이지. 살며 누구에게 대한 원망도 품지 말고 흉보지 않고 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할머니 흉내라도 내고 살면 좋겠어.

세째는, 두번 째에서 내가 누구에 대한 원망이나 흉 없다고 했지만 딱 한 사람 예외가 있었어. 때때로 흉도 보고 원망도 한 딱 한 사람. 바로 남편인 이영제 할아버지였어. 이건 아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태도였다고 나는 생각해. 살며 흉보고 원망하는 사람 하나 없다면 뭔 살 맛이 있겠어. 부부란 그런 것 아닐까? 원망과 흉을 품을지라도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관계가 바로 부부라는 생각 말이지. 물론 이즈음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난 부부사이에 대해 최용옥 할머니가 느끼고 남긴 말에 많이 동감하는 편이야.

어때 이쯤, 최용옥 할머니가 우리에게 남겨 준 유산이 뭔지 생각해 보자구.

감사와 사랑 가족. 나는 그렇게 정리해 보구 싶어. 매우 성서적이지.

최용옥 할머니는 그렇게 살았고 우리더러 그렇게 살라하는게 아닐까?

자! 우리 모두 최용옥 할머니에게 감사하자구.

–            장모 4주기에


 

Well! It is a grateful day today, as we can see each other like this. Though the expression, “Time flies!” is a cliché as we’ve heard so many times, it always seems new in some way.

Perhaps, the year 2020 will be remembered as a very unique year in human history. All of you, as well as I, have never experienced a year like this. If what human beings fear most thus far has been a war, all the people in the world may have been experiencing something even more fearful this year.

Now, let’s talk about your grandmother.

These pictures which I’m showing you now are those of the diary which Mrs. Choi Yong-ok, our mother and your grandmother, left.

Look at them slowly and carefully. What she wrote each day was short. But, one sentence appeared repeatedly every day. Well, let’s find it.

Right! “Lord, thank you.” That’s exactly it.

Grandmother’s diary, which I keep, held very short thoughts of hers each day from the time when she had been diagnosed with cancer to the day when she could not have held a pen any more, just a few months before she passed away.

What Grandmother wrote during her last some years showed some consistent and prominent features.

The first was gratitude, as I said before. Though it was gratitude to God, I’d like to read it as gratitude for time and for life. Of course, it is up to you how her gratitude may be read and interpreted. However, I hope that you won’t forget Grandmother’s thought that every moment, whether reading, writing, speaking or breathing, is to be grateful for, no matter how you read and understand.

The second was that Grandmother had never written resentment at anyone or found fault with anybody. It could be passed easily as nothing unusual without notice. But it is not really so easy to do so. I think that it is a very precious lesson which Grandmother, Choi Yong-ok, left to all of us gathered together today. I know that living without holding resentment at and finding fault with anybody is not easy. But I hope that I will be able to imitate her, if not living like her.

Though I said earlier that Grandmother had never revealed any resentment or someone’s faults in her diary, there was only one exception. Who she resented from time to time was her husband and your grandfather, Lee Young-je. In my opinion, it was quite natural and commonsensical. How can a human being live, if he/she has no one to resent at or to find fault with? Isn’t the relationship of husband and wife like that? Yes, the world has changed a lot. But I empathize a lot with what Grandmother, Choi, Yong-ok had felt and left about the relationship of husband and wife.

Now, how about thinking about the legacy which Grandmother Choi, Yong-ok has left us?

Gratitude, love and family. I like to summarize it like that. It appears very biblical.

Grandmother, Choi, Yong-ok lived her life like that and she wanted us to live our lives like that, too. Don’t you think so?

Well! Let’s thank Grandmother Choi, Yong-ok together.

– The Fourth Anniversary to remember the late Mother-in-law

살아남기

1.

지난 주 바이러스 하루 확진자가 천명 가까이에 이르자 주지사는 주민들에게 “집에 머물라(stay-at-home)”는 명령을 재개하였다. 비록 강제 명령이 아닌 권고성이라 할지라도 현재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알 수 있는 소식이다.

백 만명이 사는 지역에서 하루 천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가히 공포다. 다행히 엊그제 사이 하루 칠백 여 명으로 숫자가 줄기는 하였지만 그 공포의 도가 줄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여도 도로를 달리는 차량 수를 보면 여느 일상과 전혀 다름없고, 나 역시 아침이면 세탁소 문을 연다. 내 가게 문을 들어서는 손님 숫자는 아직 공포에 이를 만큼 줄지는 않았지만 또 다시 뜸해진 것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즈음 사정을 두루 잘 아는 내 오랜 단골 하나가 지난 주에 내게 건넸던 말이다. ‘사는 놈이 이기는거지! 세탁소를 드나드는 손님들 총량과 빨래감의 총량은 당연히 줄겠지. 그러다보면 하나 둘 문을 닫겠지. 그럼 남는 놈이 줄어든 손님들과 빨래감들을 차지하겠지. 그래 그렇게 사는 놈은 결국 산다니까. 염려말라고 친구!’

나는 그냥 웃었다.

2.

두 주 동안 딸아이는 격리생활에 철저하였다. 두 주 전 맨하턴에서 차 뒷자리에 탄 아이는 내가 마스크를 벗자 아무말 없이 뒷 창문을 열었다. 나는 움칠했었다.

그렇게 아홉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아이는 집안에서 우리 내외하곤 거의 격리 상태로 지냈다. 나는 아이의 생각에 따랐다.

그리고 오늘 아이와 함께 ‘에고 제 시집가는거 보고 죽으면 다 이룬건데…’ 그 욕심 채우지 못하고 가신 어머님 찾아 뵙다. 어머니 가신 후 딸아이와는 오늘 첫 만남이다.

‘할머니 옆에 내 자리, 그 옆에 네 엄마 자리…’운운하는 내게 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와 장인 장모에게 성탄장식으로 계절을 알리다.

살아남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 역시 시간에 달린 일이지만.

3.

좋은 글들을 만나면 아직은 가슴이 뛴다.

<검찰 독립성의 핵심은 힘 있는 자가  힘을 부당하게 이용하고도 돈과 조직 또는 정치의 보호막 뒤에 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주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추미애가 그의 페북에 올린 글 첫 문장이다. 나는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숙성된 오랜 물음에 대한 선언으로 읽었다.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모든 권력과 제도가 마땅히 지켜 나가야 할 저지선을 굳건하게 만들고 지켜 나가는 일이 바로 그저 하루를 작은 욕심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살아남기 선언일 게다.

4.

오후에 두 시간 반 먼 여행길을 다녀 오다. 한국 EBS 방송 <세계 테마 여행 : 천상의 왕국-부탄>편을 넋 놓고 즐기다.

부족함을 넉넉함으로 느끼며 사는 삶과 넉넉함에 욕심을 더하는 삶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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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십 수 년 동안 한국관련 뉴스 하고는 거의 담 쌓고 살던 때가 있었다. 내가 의도했던 바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물리적으로 한국 소식을 접할 기회가 정말 적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리 살 수 밖에 없던 때였다. 컴퓨터니 인터넷이니 하는 물건이나 기능들이 아직 나와는 낯 선 때였고, 한국 소식을 들으려면 필라델피아나 뉴욕 또는 워싱턴 나들이를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전두환 시대가 끝날 무렵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실 즈음까지의 한국 소식은 언제나 내겐 낯설다.

그러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르러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내게 다가온 한국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박정희가 피살되어 그의 장례가 있던 날, 광화문 일대를 메우고 통곡하던 국민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세우는 시민이 되어 내게 다가온 세상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새 세상이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젠 내가 서울에 사는 것인지, 미국 촌구석에 사는 것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내 손 전화 뉴스 알림 기능은 실시간으로 내가 사는 동네 소식부터 우리 주 소식과  미국내 소식 나아가 한국 소식들을 속보로 알려주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하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 그렇게 빠르게 변했던 한국의 변화는 더디거나 뒷걸음 치기 일수였다.

빠른 소식으로 변화는 그렇게 너무나 더디어졌다.

오늘 그 더딘 변화에 대한 답답함 끝에서 떠오른 생각 하나.

변화는 언제나 답답한 걸음으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변화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라는.

내가 한국 소식에 한참 민감했던 십 수 년 전 어느 날,  우연찮게 잠시 마주쳐 인사 나누었던 추미애라는 사람은 나처럼 작고 연약했지만, 그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음에도 겸손하고 당당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가 웃음으로 새로운 변화가 이는 한국 소식을 기다리며.

오늘 따라 하늘에 구름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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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맛

이름이 뭐냐고 묻는 손님들에게 하는 내 답은 ‘Young’이다. 내 이름 김영근을 그리 줄인 것이다. Young- keun 이라고 하면 서로 복잡하고 그저 간단히 Young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간혹 ‘Young’이라는 성씨와 헷갈려 성씨 말고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또 친절히 내 이름을 다시 가르쳐 준다. 내 성씨는 Kim이고 이름은 Young이랍니다. Young, 바로 forever young입죠.

오늘 내 이름을 멋지게 불러준 손님 한 분의 편지를 받고 사는 맛을 즐기다.

매주 일요일 아침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지난 주 추수감사절날 내가 느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 보냈더니 그 응답으로 보내온 것인데, 자신의 지인들 열 댓 명에게 보낸 편지였다.

<부디 아래에 소개하는 글을 읽어 보시길. 아니, 김영근이 말하는 것을 느껴보시길. 내가 최소한 십여 년 동안 그리했듯이. 내 이메일주소를 그의 리스트에 약 20년 전에 올렸는데, 그는 사진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단체 이메일을 매주 일요일 오전 8시에 정확히 보내고 있지요. 정말이지 그는 그가 할 일에 철저합니다.

그는 또한 생각하고 그 생각을 곱씹는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들은 “선 (善)”에서 출발합니다. 읽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쯔쯔, 아마 원한다면 구글링으로 검색하면 그가 예전에 보냈던 글들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싶은 것을 하시길. 옷장에 오래된 코트가 있는데, 세탁을 해야합니다. 헌데 이 코트 세탁은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고, 더구나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간 상태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이번 주에 그에게 맡기려 합니다. 그의 세탁소 문이 닫혀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게 문 닫을지 말지는 요술 처럼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요.(장사란 손해나면 닫는 것이고, 남으면 계속되는 것일 뿐). 모두들 생각할 두뇌가 있을 것이니, 생각들 해보시요.(나는 코트를 들고 가지만 당신도 그에게 들고 갈 세탁물이 있을 터이니.)

어떤 이들은 이즈음 온라인 소통이 인간적 온기가 없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꽤 따뜻합니다. 직접적으로 그를 도울 수 없다면, 정말이지 무언가라도 해보시요. 김씨는 당신이 시간을 쓸 가치가 충분한 사람입니다. 영(젊은) 김 (Young Kim).

이제는 아무도 나를 젊은 죠 (Young Joe)라고 부르지 않는데.>

Please read below.  No.  Please feel what Young Kim, who has at least ten years on me, is saying.  I got on his mailing list about two decades ago and every Sunday, at 8 AM, he has sent out a mass email with photos and thoughts.  Duty is key with him.

But the man is also a philosopher; he thinks and feels, and it all originates from a kind of “goodness”.  You’ll see as you read.  Hell, you could probably google his old postings, if you wanted to.

Here’s what I’m going to do.  You do what you want.  But I have an old coat in my closet.  It needs a cleaning (way beyond my capabilities – need expert help here) and it’s missing a button.  Mask wearing, I’m delivering it this week.  I hope his doors are not locked.

There is no magic closing here.  You all have big brains.  Use ’em.

Some people think that electronic communication is cold.  Actually, the wires heat up a bit.  If you can’t help him directly, start a freaking revolution.  Kim would be worth your time.  Young Kim.

Nobody’s calling me Young Joe.

어릴 적 한 때 너무도 흔한 이름 영근을 지어준 아버지를 탄한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아버지께 감사를.

https://conta.cc/2HNGree

일상(日常) 그리고 감사

참 좋은 친구 내외와 우리 내외가 함께 물러가는 가을 길을 걸었다. 이렇게 사람 사이 정(情)을 나누는 일도 조심스런 이즈음이다.

올해 변한 우리들의 일상이다.  일상(日常)!

철학자 강영안은 일상의 삶을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곱씹는 행위가 바로 철학이라고 가르친다. 그가 말하는 일상(日常)에 대한 정의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은 문자 그대로 따라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그러나 그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 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그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 강연안 지음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솔직히 나는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말을 길게 이어갈 만큼 배움이 크지도 않거니와 생각도 깊지 않다.

다만 할 수 있는 한 흉내라도 내보고 살아보자는 생각을 때때로 하며 살기는 했었다. 그나마 그 생각 하나 얻어, 흉내라도 내는 시늉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서 때문이었다는 고백을 하며 산다.

뚱딴지 소리 같은 철학도 종교도 아니고 그저 일상 아니 오늘에 대한 감사로.

20년 가을 끝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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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이야기 셋

  • 하나.

“어제 어떻게 지냈니?” 가게 손님 한 분이 내게 던진 물음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 아주 조용히… 당신은?”. 내 응답에 그녀의 이어진 질문, “나도 남편과 단 둘이 조용히… 우리 가족들 하고는 Zoom으로 함께 두루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는데… 넌 그렇게 하진 않았니?” 유태계 은퇴 변호사 마나님의 연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그리고 내 응답, “그랬구나,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Zoom으로 함께 했단다.”

어제 추수감사절 오후 한 때, 필라델피아에 아들 내외와 아틀란타에 있는 동생 내외와 조카 조카손주들 그리고  사촌 동생네,  시카고와 워싱톤에 사는 조카들 조카 손주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사는 누이네들과 조카들 모두 Zoom으로 추수감사절을 함께 했다.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는 늦은 저녁 아이들 전화 인사로 흡족해 하셨다.

지난 일요일 거의 아홉 달 만에 집으로 모셔온 내 딸아이는 거의 상전이다. 뉴욕 맨하턴에서 차를 태운 순간부터 마스크를 써라 창문을 열어라 쉬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갔음 좋겠다 등등. 집으로 돌아와서도 따로 밥상 받기, 거리 유지 하기, 마스크 쓰기 등등 까탈스럽기 그지 없다. 재택근무 중인 아이는 연말까지 내 집에 머무를 요량인데 아내와 내게 내리는 명령들이 단호하다. 나는 그런 딸애가 참 좋다.

어제 추수감사절 밥상은 딸아이 혼자  다 차렸다. 고모들네 저녁까지 넉넉히. 아이의 손 솜씨가 제법이었다.

이젠 시집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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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

추수감사절 앞에 받은 옆서 한 장. 우리 부부에겐 영원한 우체부인 Johnson씨가 보낸 은퇴 인사였다.

내 세탁소 바로 뒤편에 있는 Newark 우체국에서만 만 36년동안 일했던 그가 은퇴한다는 인사 엽서를 보며 한 동안 찡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이즈음은 검은 얼굴에 허연 머리털과 풍성하고 흰 수염으로 마치 산타가 다 된 노인이 되었다만 참으로 억척스런 사내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이긴 하지만 아이들 나이가 서로 비슷해 친구 같은 이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땐 우체국 일이 끝나면 그로서리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다듬는 등 억척스레 애비 노릇을 다했던 사람이다. 보답이랄까? 아이들 모두 정말 잘 컷다.

그가 일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들을 전하는 일에 충실했다 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 그는 좋은 소식보다는 귀찮고 듣기 싫은 소식들을 더 많이 전했었다. 내가 가게에서 주로 받는 편지들이란 거의 대부분 각종 공과금 고지서나 공공 기관들에 서 보내온 서류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따지고 보면 그런 소식들에게 응답했기에 내게 오늘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감사로 응답하는 일은 당연할 터.

그의 은퇴에 박수를, 그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삶을 위해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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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아침에 읽은 블룸버그 발 뉴스 하나.  <정말 힘든 시간들- 재택근무 시대가 세탁업을 조이고 있다. ‘Ugly, Ugly Time’: Work-From-Home Era Crushes U.S. Dry Cleaners>라는 제목의 기사다.

팬데믹 이후 자영업들이 겪어 오는 어려움들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백신이 개발되어 공급되고 치료제가 일반화 되면 식당업이나 호텔 여행업 등등은 다시 호황을 맞을 가능성이 있지만, 세탁업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상당 부분 나는 그 기사 내용에 동의한다. 지난 구 개월 사이 6개 중 한개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거나 도산하는 업체들이 줄을 이을것이라거나, 여전히 평상시의 반도 못 미치는 매출을 기록하는 업소들이 대부분 이라는 상황 인식에도 동의한다.

오랜 재택근무의 경험들로 사람들의 의복 습관이 달라져 세탁업이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한가지.

추수와 절기는 때가 있듯, 모든 업종 역시 부침의 때가 있겠다만, 감사란 늘 나에게 달린 일.

뉴스가 내 추수감사절을 범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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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며 이따금 짜릿한 즐거움을 맛 보는 순간들이 있다. 가족들로 하여 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때 그 맛은 극에 이른다.

오늘은 델라웨어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린 날이다. 솔직히 내가 어떤 작은 관심도 기울이지 못한 행사이다. 아내가 한국학교 교사이고 며느리가 학생이긴 하지만 내가 관여할 어떤 틈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오늘 낮에 아내가 보낸 카톡을 받기 직전까지는.

아내가 보낸 카톡엔 내 며늘아이가 대회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펼친 녹음파일이 있었다. 듣고나서 아내에게 보낸 내 첫 응답은 아내를 나무라는 말이었다. ‘아니 좀 애 한테 쉬운 말을 쓰게 했어야지, 그렇게 어려운 말들을…’ 늘 그렇듯 내 나무람은 아내에게 닿지 않았다. 언제나 옳은 아내 대답이었다. ‘내가 며늘아이의 선생은 아니지, 그 반 선생님은 따로 계시지. 내가 뭐랄 처지가 아니잖아. 나도 오늘 처음 들었거든.’

저녁 나절에 아들녀석과 며느리가 전한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며느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에게 고맙고, 어눌한 한국말 구사력으로 제 아내를 도운 아들 녀석이 고맙고, 무엇보다 문장 하나 하나에 숫자를 매겨 외우고 또 외었을 며늘아이가 고마웠다.

그 무엇보다도 이젠 모두 떠나신 내 어머니와 장모와 장인까지 추억해 준 며늘아이에 대한 고마움이라니…

내 며늘아이 이름은 ‘론다야 김’.

<가족>- 론다야 김

  1. 가족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2.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3. 제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마다, 가족들이 영어로 말하면서 저를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 가족들은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 말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5. 제 어머님은 한국어로 특정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6. 제 아버님은 특정 요리에서 어떤 조미료가 가장 잘 맞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7. 제 할아버지께서는 군대와 한국사에 대해 알려주시고 할머니들께서는 제가 잘 챙겨 먹었는지 묻곤 하셨습니다.
  8. 저는 그분들의 친절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9. 그러나 저는 그분들에게 특정한 말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 저는 가족과 저의 언어 장벽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 말하는 모국어를 말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11.저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 몇 마디 말로 가족들 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2. 미래의 아이들과 언젠가는 한국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3. 저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웁니다.
  4.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