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治癒)에

1.

이른 아침에 가죽옷 세탁 배달원이 배달을 와서 하는 말. ‘김씨, 난 아직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우…’

‘뭘?’ 내 물음에 이어진 그의 응답이다. ‘왜들 문들을 안 닫고 버티는지? 어떻게들 견디는지? 그게 궁금하다니까? 내가 팬데믹 전에 한주 동안 걷어 들이던 세탁물의 절반을 두 주나 되어야 겨우 채우거나 그도 못하거나 한다우. 어떻게들 견디는지 난 정말 이해를 못한다우.’

얼마 후, 코트  한 벌 맡기고 내 세탁소를 나서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 말씀. ‘참 고맙다우, 문 닫지 않고 이렇게 계속 영업해 주어서…’

그리고 점심 무렵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선 우리 오랜 단골 Linda가 봉투 하나를 카운터에 놓으며 손가락을 자기 입에 대고 ‘쉬잇’하면서 내게 건넨 말. ‘네가 어제  보낸 주말 편지 읽고, 이건 내가 해야겠다 싶어서… 내가 눈 치우는 거 도와줄게.’ 그는 다시 ‘쉬잇’하면서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빠이’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그가 놓고 간 봉투에는 제법 큰 돈이 들어 있었다.

사연인즉, 습관적으로 매 주일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는데 어제 아침엔 우리네 명절인 설날 인사와 함께, 올핸 눈이 많이 와서 이런 저런 고민들이 많다는 이야기들도 전했었다. 팬데믹으로 장사도 잘 안되는데 눈이 많이 오면 눈 치우는 경비도 샤핑 센터 입주자들이 1/n로 감당하는 것이라 그도 만만치 않아 걱정을 더한다는 넋두리도 이어 놓았었다.  물론 건물주가 렌트를 삭감해 주어서 견딜 만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필라 인근 한인들을 중심으로 한 설날 치유음악회에 대한 소식도 전했었다.

올 겨울 눈치우는 경비는 충분히 감당할 돈을 놓고 간 Linda에게 전화를 걸어 ‘너의 우정이 너무 고맙긴한데…이건 우리가 받기엔 너무 과하다…’는 아내의 인사에 그녀가 한 말. ‘솔직히 펜데믹 이후에 내 장사가 잘 되고 있단다. 그래서 팬데믹으로 장사가 안되는 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도 있고…. 너희 세탁소는 늘 거기 있어야지.’

2.

어제 필라 <우리센터>에서 주관해 이루어진 온라인 줌을 통한 음악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환경의 변화란 그저 잠시 불편한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힐링음악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 행사였다. 솔직히 나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엔 그리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뜬금없이 유행하여 숱한 이들을 혹하다가 사라져버리는 유행어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치유란 결코 호들갑스러운 말이 아니다. 자기를 만나는 일, 삶을 느끼는 일, 이웃을 이해하는 일 사이에서 만나는 감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치유라는 생각이다.

어제 행사는 그래서 좋았다. 우리 소리여서 좋았고, 우리와 다른 공동체들이 녹여온 서로 다른 소리들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들이 좋았고, 그 소리와 몸짓을 만들어 낸 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치유란  삶 속에서 ‘육체의 가시’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일 터이니.

3.

어릴 적 내 고향 신촌에서는 억센 황해도 평안도 사투리들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내 또래 친구들 중에도 이북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내 친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부모들이 곧 돌아갈 고향을 그리다 이젠 거의 세상을 뜨셨다.

내 피붙이들 가운데도 그렇게 못 다 이룬 귀향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 뜨신 이들도 여럿이다.

통일(統一).

일 세대 통일 운동의 선구자들 중 마지막 사람 백기완 선생의 부음에 그를 기리는 소리들이 넘쳐난다.

통일, 농민과 노동자와 빈민와 민중들. 분단으로 잉태되고 이어지는 모든 불의에 온 몸으로 항거했던 맨 사람.

살며 때론 외로웠을 ‘노나메기’  꿈쟁이.

그가 있어 예까지 온 것만이라도 인정하는 산 자들이 되어야.

우리 세대의 치유를 위하여.


죽은 줄 알았던 내 세탁소 호접란((胡蝶蘭)이 다시 꽃을 피우다.

치유에.

 

설날에

‘눈이 더 왔으면 좋겠는지요?.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부터 앞으로 8일 중6일 동안 눈이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계속 된다네요.’

오늘 자 우리 동네 신문 기사 가운데 일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내린 눈을 치우다 몸살을 앓기 일보직전이다.

어제 아침만 하여도 눈을 치우고 일을 나가느냐고 보통 출근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었다. 좋아서 하는 일과 억지로 하는 일을 이젠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한다. 두 주 사이 서너 차례 이어진 눈 치우는 삽질로 만사가 귀찮은 지경인데 또 다시 눈이 내린단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런 날씨를 즐기고 있다는 기분도 있다. 그게 나이에 따른 게으름일지라도 게으름을 즐길 수도 있으므로.

엊그제만 하여도 그랬다. 밤새 눈이 3-6인치가 내려 쌓인다는 일기예보에 ‘흠, 내일 가게 문  열기는 힘들겠군, 열어도 느즈막히 열면 되겠고…’하는 맘에서 시작된 게으름을 맘껏 즐겼다.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를 보게 된 까닭이다. 몇 년 전만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느 해던가 일 피트 넘는 눈이 내렸던 날에도 나는 가게문을 제 시간에 열었었다. 그 역시 꿈같이 지나간 옛 일이다.

아무튼 영화 ‘승리호’. 내겐 좀 난해한 이즈음 세대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느낀 감상평 세 가지.

헐리우드식 만화적 상상력이 이젠 한국인들의 손에….라는 생각 하나.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 유해진의 영화에 대한 태도가….둘,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미나리에 이어 한국어가 말하고 듣는 이들에게 외국어가 아닌 영화 속 인물들의 말로 확인되고 인정되어 간다는 사실. 그건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마지막 세번 째.

그리고 보니 오늘이 한국 명절 설날이다.

나는 십 수년 전부터 해마다 이 맘 때면 내 가게 손님들에게 한국 명절 설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왔다. 음력도 아니고 중국인들만의 춘제도 아니고, 한국인들의 설날 명절이라고.

글쎄… 모를 일이다.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울타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먼 하늘 고향 찾아 떠나는 새떼들을 보며.

2021년 설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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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proposal

Our regional newspaper, The News Journal, made an interesting proposal to the readers.

The pandemic is still showing no signs of ending, though almost a year has passed since the first case in Delaware was reported The newspaper plans to publish readers’ stories which may send messages of hope to neighbors. So, it is asking the readers to submit their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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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ontinue to die of COVID-19, have lost their jobs, and have to take care of their children at home because of closed schools. In a word, our daily lives became chaotic, but we have to adjust ourselves to the abnormal. The News Journal says that it is waiting for the stories to give comfort and hope to other neighbors who may have been struggling through the situation day by day.

The proposal which asks for stories, like about what you have learned or felt anew for the past year, to share with other Delaware neighbors seems to be very interesting to me.

Indeed, all the people who live today had to go through a traumatic new experience in the past year. This new experience is still progressing and nobody knows when it will end.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like this, there are certainly people who always care and think about others, simply because it is a world where people live.

“Woori Center” is a group of such people. It has been trying to promote the rights and interests of the minorities, including Asians and Korean Americans, in Philadelphia and its vicinity, to help build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generations, to serve society, and to live in harmony.

In celebration of the Korean traditional holiday, “Seol-nal (New Year’s Day),” the “Woori Center” will hold a healing concert to send comfort and hope through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songs to neighbors who may be exhausted by 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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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ed by the interesting proposal by the regional newspaper, I’ve decided to let as many people as possible, know about the healing concert by the “Woori Center” with hopes that even one more person may participate in the concert because of my effort.

First of all, I’ll tell the customers of my cleaners, who are my closest neighbors, about it and my wife will recommend teachers and students at the Delaware Korean School to participate in it.

Those who read this and become interested in the concert may click the link below and RSVP, call the number 267-270-9466, or send an e-mail to [email protected]. Then, the center will send you ZOOM link.

As Dr. Min-sun Lee, a psychologist, will talk about the psychological difficulties which people may suffer from under the COVID-19 environment, I’m also making a proposal to you.

I cordially invite you to a healing concert which “Woori Center” will hold in celebration of New Year’s Day.

https://bit.ly/3aFdmvO

제안提案에

우리 동네 신문인 The News Journal은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제안 하나를 던졌다.

델라웨어주 안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약 일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대유행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웃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할 독자들의 이야기를 게재하려 하니 많은 응모를 바란다는 제안이다.

COVID -19으로 인해 죽어 가는 사람들은 연일 이어지고 있고, 일자리를 잃거나 비대면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현실, 나아가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서 뒤집힌 일상 등으로 오늘과 어렵게 씨름하며 사는 서로 서로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들을 기다린단다.

지난 일년 간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델라웨어 이웃 주민들과 나눌 독자들의 이야기들을 보내 달라는 제안은 내게 매우 흥미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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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년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었다. 이 새로운 경험들은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늘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사는 세상이므로.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인근 주민들 특히 한국인들을 비롯한 아시안계 및 소수 민족의 권익과 세대간의 이해를 돕고 봉사하며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센터 Woori Center>도 그런 이들의 모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센터>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맞아 COVID – 19 상황에 지친 이웃들을 위해 우리 가락 우리 소리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힐링 콘서트를 연단다.

동네 신문의 흥미로운 제안에 덕에, 나는 <우리센터>가 여는 새해맞이 힐링 콘서트 행사를 이웃들에게 알리고 단 한사람 만이라도 더 이 행사에 참여하도록 권하려 한다.

우선 가장 가까운 내 이웃들인 내 세탁소 손님들에게 이 행사를 알리고, 아내가 시간을 함께 하는 한국학교 선생들과 학생들에게 참여를 권한다.

행여라도 이 글을 읽은 단 한사람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RSVP를 작성해 보내거나, 전화 267-270-9466, 또는 이메일 [email protected]로 문의하면 줌링크를 보낸단다.

심리학자 이민선 선생께서 코로나 환경에서 부닥치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신다니, 나도 이웃들을 향해 제안을 던져 본다.

<우리센터>가 여는 새해맞이 힐링 콘서트 행사에 당신을 초대한다고.

https://bit.ly/3aFdmvO

눈내리는 아침

지난 주에 눈 치우며 무리했던 허리가 ’이젠 좀 살만하다’ 큰 숨 내쉬려는데, 에고 아침나절부터 눈이 또 다시 펑펑 쏟아져 내린다.

눈 치울 염려랑은 눈 그치면 다시 만나도 되는 일, 그저 한없이 내리는 창밖 눈 구경에 빠져 일요일 아침을 보내다.

어제 밤 늦은 시간까지 스무 명 남짓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세월호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서 출애굽기 이야기를 종종 인용하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은 “모든 해방 활동은 출애굽기에 덧붙여지는 성서 이야기”라고 했다지. 결코 끝나지 않은 예수 이야기를 쓴 것은 마가였고.

오늘을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간절한 이들에게 실망이나 좌절은 그저 넘어야 하는 언덕일 뿐.

뜻을 품고 산다는 일은 그저 단 한 걸음만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것 뿐.

쉬지 않고 눈 내리는 주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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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

나는 예수쟁이라는 자부(自負)가 누구 못지 않게 강하다만 성실한 교인은 아니다. 아니 성실은 커녕 신실한 교인들 잣대로 말하자면 교인이 아닌 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를 고백하고, 내 일상적 삶의 물음들을 성서에게 묻기를 즐기는 편이고, 그런 흉내를 내며 이 나이까지 삶을 이어온 것에 늘 감사하는 편이다.

내가 고백하는 하나님과 예수는 ‘들어 주시는 신(神)’이다. 사람의 소리 보다는 사람들의 소리를 즐겨 들어 주시는 신이다. 특별히 한(恨)을 이고 안고 오늘을 견디고 이겨내며 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 주는 신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서 속 예수의 모습은, 지금 여기를 아프거나 소외 되거나 궁핍하거나  나아가 죽음 앞에선 이들에게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예수이다.

예수는 그의 명령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아프고 소외되고 궁핍하고 죽음 앞에 놓인 상황들을 해결해 주진 않았다. 다만 그의 명령은 그 한을 품고 살아야만 하는 그 상황 속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 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예수의 모습에 매료되어 살아 왔고, 이젠 내 버릴 수 없는 그에 대한 믿음이 되었다.

거기 누구나의 삶이라도 뜻이 새겨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월호 가족들의 오늘의 삶에 관심을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성서 신명기 이야기 속에 나오는 7년이라는 큰 뜻은 탕감과 면제에 있다. 비단 경제적 빚의 탕감과 면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들 속에 경제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 짐들과 맺힌 한들이 있다면 모두 다 털어버리는 공동체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나는 새긴다. 이즈음은 이 7년 이라는 뜻이 버젓한 직장과 먹고 살 만한, 종교적 사회적으로 누리고 사는 사람들의 사치로 전락해 버린 안식년이 되었다만.

그렇게 세월호의 아픔을 안고 산지 일곱 해를 맞는다.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듣는 일, 아주 작은 몸짓으로 부끄러운 손길 내밀다 마는 일에 불과하다만, 올해도 그저 듣고 손길 내미는 흉내라도 이어가려 한다.

내 신심(信心)으로.


필라세사모 2021년 신년 모임 안내

일시 : 2월 6일 토요일 오후 7시 ~10시 (미동부시)

장소 : 온라인 ZOOM  미팅

참가대상 : 필라 세사모 활동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

<진행 순서>

1부 : 2021년 세월호 진상규명 현재 상황

1) 개회 및 모임 안내
2) 유경근 집행위원장님과의 줌미팅
2부: 필라 세사모 현황 및 활동 계획 (내부 토론 시간)

1) 2020년 세사모 활동 정리
2) 2021년 세월호 7주기를 앞둔 현황과 과제
3) 세월호 활동의 외연 및 참여 확대방안

– 필라 세사모

Zoom Meeting 접속방법 (Link or Dial)

https://us02web.zoom.us/j/82483918249?pwd=eHcvZ0ZLSWRRYjdjVXg1aUNTdDZjZz09

 

Dial by your l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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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눈발이 끊겼다 싶어 드라이브 웨이 쌓인 눈을 치웠다. 예보는 더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하지만 이미 쌓인 눈을 치우면 나중에 힘이 덜 부칠까 하여 부지런을 떤 일이었다.

깨끗이 치웠다고 한 숨 크게 쉬자 눈발이 다시 이었다. 땀 식히는 사이 ‘네 놈이 언제 눈을 치웠더냐’ 싶게 다시 눈밭이 되었다.

‘헛짓이었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만, 아무렴 내일 아침에 눈 치우는 일은 한결 수월할 터이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히 눈만 쌓여 가는 오후, 이즈음 틈틈이 읽고 있는 선가(禪家)  이야기 중 하나가 머리에 꽂히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있었던 장헌충의 난(亂) 중에 있었던 일이란다. 잔학한 학살로 유명했던 장헌충의 난에 대한 기록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니 당시 310만명이었던 사천성(四川省) 인구가 장헌충에 의해 2만 명 이하로 줄었을 만큼, 장헌충은 점령한 도성 사람들을 거의 전멸시켰단다.

그의 부하였던 이정국이라는 이가 어느 성을 함락시킨 후 그 곳 백성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단다. 그 성에 파산선사라는 선승(禪僧)이 죽기를 각오하고 이정국을 찾아가 사람 죽이기를 그치라고 간청했단다. 그 때 이정국이라는 자가 양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등 각종 육류로 거하게 차린 상을 내어 놓고, 파산에게 이르길  ‘중은 고기를 먹지 않는 계율이 있다지? 중들에게 계율은 생명일 터이니… 만일 네 놈이 이 고기들을 먹으면 백성들을 죽이지 않으마!’라고 했단다.

이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파산이 한 마디 하고 그 고기들을 먹어 치웠단다. ‘사람 살리는 일인데 그깟 계율 따위가 뭔 소용이랴!’

나같은 중생이야 고기 앞에 계율이 뭔 소용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중인데!

가히 참 중이었던 파산의 이야기를 읽으며 든 생각 하나.

이런 저런 한국 뉴스들 보면서 이즈음 든 생각이지만, 특히나 내 어렸던 시절 추억이 하나하나 배어 있는  신문로 사거리에서 청와대 인근 백악까지 그 정든 거리에서 아직도 눈물 마르지 않는 얼굴들로 한 서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도대체 계율 따위가 무엇인지?

원칙과 절차의 정당성 운운에 얽매인 계율들이 이른바 사람이 먼저인 촛불의 뜻에 앞서는 것인지?

흔히들 촛불혁명 이라고들 한다. 성공이나 완성된 혁명은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없었다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혁명은 늘 헛짓이었나?

아무렴, 혁명은 이미 권력을 누리는 자들과는 닿을 연이 없다.

다만, 그저 사람으로 살고파 오늘을 아파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오늘도 혁명은 계속된다.  역사 이래 언제나 그렇듯. 비록 오늘은 헛짓일지라도.

내일은 분명 수월할 터이므로.

혁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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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게으름을 즐기기엔 딱 좋은 날씨다. 아침나절부터 흩뿌리던 눈발이 오후 들어 쉬지 않고 내린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모레 화요일 아침까지 7인치에서 14인치 가량의 눈이 내릴 것이란다. 제법 오긴 올 모양이다. 음력 섣달 말미에 내리는 눈 덕에 연휴를 즐길 모양이다.

눈 치울 걱정일랑은 뒤로 미루고 오늘 하루는 그저 몸과 맘이 가는 대로 쉬기로 작정했다.

이즈음 일요일이면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일주일치 빵을 굽는다. 이 일이 제법 재미있다. 오늘은 내가 새로운 빵에 도전해 보았다. 각종 야채 듬뿍 넣은 호빵이었는데 첫 작품 치고는 만족도가 높았다.

내친 김에 점심으로 수제비 떠서 해물 육수에 콩나물 넣어 땀 흘리며 배 불렸다.

밀려오는 낮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약속되어 있던 줌(zoom)모임에 참석했다.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리 센터(Woori Center) 이사회 연수회 모임이었다. 우리센터는 이젠 여러 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한인사회 및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조직하여 지역 및 국가 시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 목소리를 내어 주장하고, 스스로의 권익을 찾아 보자는 뜻으로 2018년에 설립된 단체이다.

나는 그저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 하는 일은 없지만 이 단체에 대한 애정은 지극하다.

적어도 내가 이민을 온 후 이제 까지 한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인근 외곽지역에서, 전문가들도 아니고 명망가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꽤나 있는 부유층들도 아니고 교회나 종교를 앞세우지도 않고 더더구나 진보적 가치를 내걸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큰 가능성을 보인 단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더해 이 단체에 대한 기대가 큰 까닭은 단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나누고자 함께 모였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른한 오후의 졸음 떨치고, 연수회 머리 수 하나 채웠다.

내 아이들 다 독립해 떠난 이후, 지펴 본 적 없는 벽난로에 불장난도 하면서 일월의 마지막 날 한껏 게으름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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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에

아직 할머니 소리 듣기엔 이른 손님 하나가 내게 물었다. ‘요즘 한국은 어때요?’ 내 대답, ‘뭘 말씀 하시는지?’

그렇게 이어진 오늘 내 가게에서 이어진 그녀와의 대화다.

손님 : ‘코빗(Covid) 상황이 어떤지?’

나 : ‘글쎄요,  제가 듣기론 이즈음 확진자 수는 하루 3-4백 명 정도라고 하네요.’

손님 : ‘그럼 여기랑 비슷하군요.’

나 : ‘아니지요. 거긴 오천 만 명에 삼 사백이고, 여긴 백만명에 삼 사백인걸요.’

손님 :  ‘아휴 그럼 갈 만하네요. 가면 아직도 두 주간 격리를 하나요?’

나 : ‘글쎄요???’

나보다 한국 상황에 더 익숙한 듯한 하얀 얼굴 손님의 말이 이어졌다.

손님 : ‘오는 사월에 한국엘 가려 하는데… 그래서 물어 보는 거예요. 내 아들녀석의 전 여친이 결혼을 한다고 우리 모자를 초대해서 가보려구요.’

나 : ‘글쎄, 이즈음 한국은 저도 잘 모른답니다. 그저 뉴스나 보는 정도이지…’

그녀가 가게를 떠난 후 한참 동안 난 좀 멍했다.

그녀 아들의 전 여친은 한국 아이란다.

아무렴, 모든 이들에게 통하는 상식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없다.

이제 난 틀림없는 쉰 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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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일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 이제 막 어둠을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훤한 얼굴을 내민다. 음력 섣달 보름이니 설이 멀지 않았다. 바람은 아직 차고, 다음 주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도 있지만 예부터 설은 이미 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참 좋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삼십 수 년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고향 신촌의 옛 날씨들을 그대로 만끽하는 순간들이다. 신촌에서 보낸 삼 십 수 년보다 조금 더 긴 세월들을 이 곳에서 살았다. 그렇게 따져보니 내 평생을 거의 엇비슷한 날씨 환경에서 산 게다. 내가 누리며 사는 또 하나의 복이라 생각한다.

굴곡 없는 삶을 꾸려온 사람들이 거의 없듯,  나 역시 평범하게 그 대열에 섞여 살아왔다. 헛 꿈도 참 많이 꾸었다. 지금도 아차 하는 순간,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는 생각들을 다잡아 다독일 때가 있다. 다행이랄까 아님 늙었다 할까, 행동이 그 생각을 쫓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곳에서 살며 시작한 세탁업에서 벗어 나고자 용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큰 꿈을 꾸고 있노라고 스스로를 다졌었다. 큰 꿈이 헛 꿈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쇠할 나이에 이른 후였다.

그제서야 세탁업을 내 생업이자 평생의 업으로 받아 들였었다.

그 무렵 즈음이었을 게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 것이.

손님 한 분이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내라며 작은 선물과 카드를 전했다. 말의 고마움이라니.

세탁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보름달에 새겨보는 감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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