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몸이 먼저 시간을 느끼는 나른한 토요일 오후, 손님 한 분이 빨래감을 맡기며 편지 봉투를 내어 민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내 미안한 마음을 담았는데…” 그렇게 봉투 하나 내어 밀고 내 가게를 나서는 그에게 영문 모른 채 그냥 웃음으로 주말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뜯어 본 편지 내용이다.

<아시안계 지역사회에 대한 추악하게 심한 편견과 인종 차별에 대해 당신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맞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다른 국가이며, 미국처럼 단지 몇 백 년이 아닌 수천년에 이르는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각각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하듯이) 제 고객들과 정치에 대해서는 절대 논의하지 않지만, 개인의 생명과 생계를 위협하는 사건들은 가벼이 무시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쩌면, 피해를 입힌 다수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정보가(피해를 입힌 다수의 잘못된 행위를 널리 알린다면) 평화와 수용의 시대를 맞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간절히 바랄 뿐…>

며칠 전 아틀란타에서 일어난 한인들을 포함한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 만행 사건 소식을 듣고 보며 한국계인 내게 전하는 그의 속마음 인사였다. 그는 나보다 조금 아래 연배의 백인 사내였다.

편견과 인종 차별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그 공감으로 연대하는 이들의 힘으로 세상은 느린 걸음이지만 늘 진보하는 것일게다.(나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까이 가는 역사의 진행이라고 말하곤 한다만…)

우리 부부가 세탁소에서 느껴보는 삶의 맛이다.

내 뜨락에도 하루 사이에 봄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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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

다시 Daylight Saving Time으로 바뀐 아침이다. 봄이다. 여전히 마스크 없이는 집을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봄은 어김없이 다시 왔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일터가 있음은 이즈음 내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다. 내 오랜 일터인 까닭이 우선이겠지만 내 세탁소에 대한 자부는 제법 크다.

델라웨어 대학이 있는  뉴왁시 한복판에 위치한 내 세탁소 주고객들에는 대학과 시관계자들이 많다. 대학 및 시 경찰 제복 세탁을 오랫동안 도맡아와 경찰출입도 꽤 잦은 편이다. 대학교 및 인근 뉴왁 고등학교 밴드복과 합창단 제복 등 역시 제법 긴 세월 내 세탁소 차지였다. 뉴왁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영업을 하는 세탁소로써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를 갖는 기반들이다.

그러나 지난 해 3월 이래 일년 여 동안 학교 세탁물들의 서비스는 중단되었다. 학교가 문을 닫았고 학생들의 활동이 없었으니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팬데믹으로 하여 모든 사람들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만, 특별히 아직 교육을 받고 있는 초, 중, 고 학생들과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팬데믹 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들로 남을 것이다. 그 어느 세대도 겪어보지 못한 장기간의 비대면 학습과 야외 및 단체활동의 제약 등을 겪어낸 아이들은 어쩌면 이제껏 보지 못한 아주 새로운 세대를 이룰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맞는 봄이고, Daylight Saving Time이다.

엊그제 뉴왁 고등학교 관계자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의 첫 문장이다. ‘드디어 우리학교 밴드부 제복 세탁할 때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을 맞을 준비로 기지개를 펴니 세탁물들을 수거해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다시 세탁물을 받아 서비스를 하게 된 것이 크게 기쁘지만, 그보다도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우리들의 일상이 이전으로 돌아가는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아 봄소식 치곤 최고였다.

내 집 뜰에는 지난 늦가을에 심은 구근들이 온 몸으로 기지개 피며 흙을 밀치고 나와 파랗고 붉은 움을 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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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사람들 모두 너나없이 활짝 기지개 피며 힘이 솟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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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아침 하늘은 때론 경이롭다.

이른 봄날

하루 사이에 봄이 왔다. 새떼들은 벌써 아침 햇살을 타고 무리 지어 봄놀이 나선다. 봄과 아침 기운에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운 것으로 보아 아직 괜찮은 나이다.

엊저녁 배운 들숨 날숨, 숨으로 몸을 다스리는 연습과 아주 작은 몸놀림으로 아침기운을 받는 운동을 하며 일을 시작하다. 살며 좋은 선생을 만나는 일은 내가 누리는 참 큰  축복이다. 춤꾼 김정웅 선생께 감사!

오후에 텃밭 가꾸기 준비하며 삽을 들다. 나무그늘 아래 잔설이 아직 겨울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지난 가을에 심은 구근들이 뾰족히 움을 틔어 언 땅 녹이는 봄이다.

봄엔 살아볼 만한 삶의 욕심들이 쌓인다. 하여 모종판도 계획없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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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응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음들이 겨울이라고 우긴다. 허긴 내가 바깥 일 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부지런한 농부는 아니므로.

내 직업인 세탁소에 봄은 부활절 즈음에 찾아오니 아직 이르긴 하여도 그래도 경칩(驚蟄)이 지났는데, 아무렴 봄이다.

바깥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으로 내 방안 봄맞이 준비를 하다가 만난 시인 윤동주의 동시집이다. 윤동주의 동시집이 내 방에 꽂혀 있는 줄 모르다 만나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1999년에 도서출판 <푸른 책들>에서  펴낸 시집이다. 아마도 2000년을 맞는 그 무렵에 뉴욕 서점에서 윤동주라는 이름에 혹해 내 방으로 모셔 온 시집이었을 듯. 내 방안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 미안하고, 오늘 시집의 책장을 넘기다 힘을 얻어 고맙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 전문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했던, 아직도 어수선한 그 길에서 너나없이 모두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은 어쩌면 여전히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이는 길 일게다.

그럼에도 내가 만나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아무렴!

하여 흉내일지언정 모종판에 흙을.

새 봄, 새로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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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엊저녁에 참석했던 온라인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어떤 직책에 이름을 걸어 놓은 유일한 단체인 <우리 센터(Woori Center> 정기 이사회 모임이었다. 자칫 딱딱한 분위기가 이어지기 십상인 모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참석자들에게 던진 이사장의 첫 물음은 내겐 사뭇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참석자들의 이즈음 근황을 물으며 던진 질문이었다.

“만일 한 달 여행이 가능하다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딘가요?”라는 물음이었다.

꿈을 꾸었었고, 꿈이 손에 닿은 듯 했었다. 더 나이 들어 먼 길 다니기 힘들어 지기 전에 아내와 함께 일년에 달 포 정도는 여행을 즐겨보자는 꿈이었다. 수 년 전에 그 꿈의 첫발을 내 디뎠고 몇 차례 여행을 즐기며 ‘다음은 어디, 다음은 어디’하며 꿈을 부풀리다가 부모님들이 눕기 시작하면서 그만 멈추고 말았다.

그렇게 지난 사 오 년 사이 장모, 장인, 어머니 순서로 떠나시고 이젠 아버지 수발로 먼 길 나서는 일은 그저 꿈으로 남았다. 게다가 이어지는 COVID 상황은 꿈이란 그저 품었을 때 아름다운 것일 뿐이라는 자족(自足)을 키워 내었다.

그런 내게 던져진 “만일 한 달 여행이 가능하다면…”이라는 질문은 모처럼 나를 흥분케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만, 오늘 세탁소 일을 하며 가라앉힐 만한 크기였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만기가 곧 다가오는 여권용 사진을 찍었다. 십여 년 만에 찍어 본 증명사진이었다. 운전면허용 사진은 디지털화 한지 오래 이고, 인화된 증명 사진은 단지 여권 갱신 때만 필요한 듯 하다. 앞으로 십 년 후는 또 어찌 변할지 모르는 일이고 보면, 살며 이제껏 찍었던 증명사진들만 놓고 보아도 세월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을게다.

아내는 즉석에서 인화된 사진을 보며 도저히 자기일 수 없다고 몇 차례 놀램과 실망을 털어 놓았지만 아내답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이중 잣대는 사는 한 늘 차고 다니는 법일게다.

십년 만기 여권 갱신 서류들을 챙겨 보내며 내가 맞이 할 새로운 십년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에 맞이한 질문, “만일 한 달 여행이 가능하다면…”에 자칫 혹 할 뻔 하였다.

어느새 여러 해 전이 되어 버린 시간에 맛보았던 환희에 가까운 여행의 맛 하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그림들이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는 거의 문맹에 가까운 내가 그저 가슴으로 느낀 희열이었다. 시대순으로 배열된 그림 속 얼굴들의 변화를 알아 챈 순간이었다. 중세에서 르네쌍스로 접어 들면서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그 변화는 내게 제법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 그림 속 얼굴들의 변화는 종교, 정치, 이념, 신념, 사상 등등 거창한 것들일랑 다 접고 사람 답게 사는 일이란 게 그리 큰 게 아니라는 가르침으로 내게 다가 왔었다.

그저 얼굴에 웃음 그리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 그게 바로 사람살이가 나아지는 세상이라는 배움을 얻은 여행이었다.

솔직히 이제껏 살아 온 시간들도 돌이켜보니 아는 것 처럼 느낄 뿐인데, 다가와  마주할 내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내게 여행의 꿈이 이어질런지, 새로 받을 여권에 몇 개의 도장들을 찍을 수 있을런지…

다만, 내 얼굴에 작은 웃음 잃지 않고, 마주 하는 이들에게 웃음기 전하는 시간 여행이라도 즐기며 살 수 있었으면…

여행에.

초대

내 어린 시절 기억들 중 많은 것들이  교회와 함께 한다. 서울 신촌에 있는 대현교회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교회는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일이 그저 당연했던 것으로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 무렵에 겪은 많은 이야기들은 접자.

새벽기도 대신에 명상과 선(禪)을 탐닉하게 된 것은 머리가 제법 굵어진 이후의 일이다.

이민을 와서 퀘이커 모임이 바로 집 앞에 있었던 까닭도 있었고, 어깨 넘어 함석헌 선생님께 배운 생각들도 있어 그 모임에 한 동안 함께 한 적도 있다.

이쯤해서 되돌아보면 새벽기도나 명상이나 선이나 퀘이커 예배방식이나 모두 신 앞에 홀로 선 나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 일이었다.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인근 한인들과 소수민족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센터(WOORI CENTER)>가 COVID 팬데믹 상황에서 아직은 불안한 일상을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작은 기쁨을 찾아 주고자 하는 노력을 보며 내 머리 속에 스쳐가는 지난 시간들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춤꾼 김정웅 선생이 ‘호흡과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나누고자 한단다.

다음 주 월요일(3월 8일) 부터 4월 12일까지 여섯 번 하루 45분씩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단다. 누구나 각자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단다.

눈으로 읽었던 책들을 접고 나도 함께 숨쉬고 움직여 볼란다.

http://bit.ly/breathing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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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눈치우다 보내는 이월을 배웅하고 설렘으로 맞는 삼월을 생각하며 손님들에게 일요일 아침편지를 띄우다.


응달에는 아직 녹지않은 잔설(殘雪)들이 남아 있지만 이제 삼월입니다. 머지않아 파릇한 새 생명들이 움을 트는 봄을 맞는 삼월입니다.

해마다 이 맘 때쯤 떠올려보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지요. <초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 앞에 눈도 녹는다. 그대가 평온한 마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거기서도 궁전에서처럼 즐겁고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어제 주보건국(The Delaware Division of Public Health)에서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에 대한 안내 였습니다. 제가 백신 접종 신청을 하였지만 아직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었습니다.

현재 65세 이상 접종 신청자 수는 123,000명이고 현재 접종을 마친 사람들 수는 51,000명 정도랍니다. 매주 조금씩 접종자 수를 늘리고는 있으나, 절대적으로 공급물량이 모자라고, 이차 접종과도 맞물려 원래 계획보다 모든 순서들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접종 순서가 늦어지는 이유들 가운데 가장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부분이랍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신보다 COVID 상황에 취약한 당신의 이웃들과 벗들을 위해…(서라고 이해해 주십시요.)’

그러다 뒤적여 본 지낸 해 이 맘 때에 쓴 제 일기장이랍니다. 작년 이 맘 때만 하여도 우리 주변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바이러스가 아직 우리들 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 때였답니다.

그 무렵 제가 읽고 있던 책 가운데 Yuval Noah Harari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책에 서 본 글 한 줄을 제 일기장에 남겨 놓았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가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고, 기아로 숨진 사람이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으며,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다.> 그 땐 이 대목이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로부터 일년 사이에 우리들이 경험한 21세기의 한 해는 유발 하라리의 생각도 미처 닿지 못한 시간들이었답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상 COVID는 사람들이 처음 겪어보는 현상일겝니다.  이 독특한 한 해를 잘 견디어 낸 지난 한 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품어 본답니다.

유발 하라리의 글을 적은 지난 해 일기의 마지막에 제가 남겨놓은 생각이랍니다. <더불어 함께 해야 하는 가족들과 , 만나서 좋은 벗들과,  누구나가 마주칠 수 있는 재해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내가 숨쉬는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축복 아닐까?>

새 봄 , 나아가 다가오는 한 해 내내 당신과 제 세탁소에 드나드는 모든 손님들 나아가 이웃들 모두에게 세상이 살 만한 축복들이 이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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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March now, though we can still see the un-melted lingering snow in the shade. Soon, new green lives will sprout everywhere.

Around this time every year, I always bring to my mind Henry David Thoreau’s words: “… the snow melts before its (poor-house) door as early in the spring. I do not see but a quiet mind may live as contentedly there, and have as cheering thoughts, as in a palace.”

Yesterday, I received an e-mail from the Delaware Division of Public Health. It was about the COVID vaccination. Though I signed up for vaccination, it explained in detail why I had to wait, including the limited supply of vaccine and the progress of vaccination in Delaware.

So far, 123,000 seniors, 65 and over, have signed up for the waiting list, and about 51,000 have been vaccinated. Though the doses which they received have increased somewhat, they said that they haven’t been able to make progress more quickly because of the still limited supply and the obligation to provide second doses to those who received their first dose a month or so ago.

Among the reasons for delaying my turn, I nodded in agreement to this: “part of the reason is because some of your friends and neighbors may be more at-risk for COVID than you are.”

Then, I happened to skim through my diary which I had written around this time last year. It was the time when we had lived normal daily lives without knowing about the virus around us and when people with facial masks looked weird.

From the book,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written by Yuval Noah Harari, which I was reading around that time, I wrote down a phrase in my diary: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more people die today from eating too much than from eating too little; more people die from old age than from infectious diseases; and more people commit suicide than are killed by soldiers, terrorists and criminals combined.”

At that time, it touched me so deeply. During the time since then, one year in the 21st century which we have just gone through seems to be the one which even Harari’s thoughts and insights couldn’t reach.

When boiled down to cold facts, COVID may be the first global phenomenon which humans have never experienced before. I’m trying to hold gratitude for persevering through the past unique year.

On the day when I wrote down Harari’s words in the diary, I also left my brief thought: “The world in which I’m breathing today while I am with my family with whom I live together, friends who are good to see, and neighbors who are humble in front of the disaster which anybody may confront – Isn’t it still a blessing?”

I pray and wish that you, all my customers, and neighbors will continue to be blessed in this spring and all the year round.

From your cleaners.

아침에 일을 나가려다 들려 온 경쾌한 새 소리를 찾아 사방을 훑었다. 앞 뜰 전나무 가장 높은 꼭대기에 앉아 봄을 부르는 작은 새의 노래소리였다.

어제 또 다시 내린 눈을 치우느냐고 밤새 뻐근했던 몸이 날아갈 듯 경쾌해진 밝은 소리였다.

그러고보니 어제 눈 내리는 하늘을 나는 것들도 새였고, 전봇대 꼭대기 앉아 내리는 눈을 즐기던 것들도 새들이었다.

눈과 추위 속에도 가장 높은 곳에 앉아 그 순간을 즐기거나 맘껏 날아다니는 새를 보는 것은 나이고, 하루 새 봄을 알리는 새의 노래소리를 듣는 것 또한 나다.

올 봄엔 새의 노래소리에 한껏 더 귀 기울여야겠다.

내가 누리는 하루의 축복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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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

한 이틀 옛날 생각 속에 지냈다. 엊그제 금요일 밤에 참여했던 온라인 줌(zoom) 모임 이후로 오늘 까지다. 마침내 황해도 운율 땅 밟으셨을 백기완 선생을 기리는 해외동포들의 모임이었다. 이젠 웬만하면 먼 거리 모임은 자제하는 편이고, 그건 온라인 모임도 마찬가지지만, 선생의 부음을 듣고 내 머리속에 이어지는 ‘외로움’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위해 참석한 자리였다.

약 12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이들이 미국내 각 지역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함께 한 추모모임 이었다.IE002763838_STD예정된 추모행사에 이어 참석자들이 백기완선생과 만남의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에 나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떳다.

내게 1970년대는 아리고 아픈 세월이기도 했지만, 이제껏 내가 살아 온 시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멋지고 더하여 신이 내게 주신 절정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내 나이 스물 무렵이었으므로.

서울 한복판 신문로 뒷골목, 순두부집 등 음식점들과 대포집과 생맥주 가게들이 어지러이 늘어선 그 골목 안 <백범 사상 연구소>를 지키고 계시던 선생은 그 때만 하여도 훤칠한 대장부 청년이셨다. 그 무렵 선생 곁을 지켰던 내 또래들은 이젠 부끄러운 모습으로 변했거나 모습조차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선생과 외로움은 이어진다.

그리고 칠 십년 대 후반 몇 년간 잠시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들은 모두 떠나셨다.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김찬국, 송건호, 이우정, 이문영, 박현채 선생님들 모두 떠나시고 이제 백선생님도 가셨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통일, 민족, 민중, 민주 그리고 예수를 가르치며 고민하던 첫 세대의 마지막 사람도 이젠 떠났다.

그 선생님들 가운데 유독 ‘외로움’과 연결되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생이셨다. 백기완 선생님.

어느새 나도 이젠 칠십 대를 코 앞에 둔 나이. 그저 부끄러운 삶을 지우고 지워가며 다다른 1970년대의 삶과 만났던 이틀 동안의 시간들. 아무렴, 그나마 그 때 그 시간들이 그리고 그 선생님들과 만남이 있어, 오늘 요만큼 이라도 여기서 숨 쉬고 있는 것일게다.

<우리의 일상적 주변에서 ‘한’이라는 말의 머리에 있던 ‘원’자가 빠지게 된 것은 ‘원한’이라는 말을 똑바로 쓰기가 어려운 시대의 연속 속에서 원한의 뜻이 축소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 중략- 그런데 내가 주의해서 관찰해 본 것은 이 원한이라는 말에는 반드시 ‘풀이’라는 동명사가 뒤에 붙어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가? 원한이란 본래 이를 풀지 않으면  원한일 수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된다.> – 백기완 선생 쓰신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에서

훨훨. 백기완 선생님이 품고 사셨던 모든 원한들이 풀어지는 그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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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아내의 파마(perm) 머리를 말다. 생각보다 덜 다투며 이루어 낸 작업인데… 나름 결과가 나쁘진 않다. 눈 녹는 오후의 공원을 걷다. 눈밭 발자국 찍기 놀이에 신나 하는 아내도 어느새 예순 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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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 바른 곳, 햇볕 즐기던 텃새 한 마리 우리 내외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자리를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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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지난 주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뜰에 또 다시 눈이 쌓인다. 눈에 더해 밤톨만한 얼음비가 내린다. 이왕 맞이한 한가해진 시간들을 그냥 푹 쉬며 즐기라는 뜻인가 보다. 가게 문 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집에서 푹 쉬다.

무우 장아찌도 담고 생강청도 만들고, 내친 김에 버터크림 빵도 만들며 눈구경이나 즐기다. 늦은 오후 두어 시간, 쌓인 눈 치우고 나니 온 몸에 진이 빠진 듯 맥이 풀린다.

‘이 눔아! 누구나 다 지칠 때가 있는 법이여. 다 저녁 이 시간에 용쓰는 내 날개 짓도 힘들어!’ 머리 위로 날아가는 오리 떼들이 내게 던진 말이다.

지난 해 맞은 팬데믹 덕에 난생 처음 경험해 본 텃밭 농사, 올 핸 좀 제대로 해보자고 일찌감치 주문한 씨앗들을 받았다. 덤으로 몇 가지 더 넣었다며 풍성한 결실 맛보라는 종자상의 손편지가 썩 맘에 들었다.

아내의 저녁상을 기다리며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생각들을 곱씹으며 읽다.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 듯 삶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대가 가장 풍요로울 때에는 삶은 초라하게만 보인다. 불평쟁이는 낙원에서도 불평만 늘어놓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황혼의 빛은 부자 집 창문 뿐만 아니라, 가난한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 앞의 눈도 녹는다.>

<가능한 한 매일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라. 그것을 당신 삶의 묘약으로 삼으라.>

  • 2. 18. 21.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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