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異邦人)

때론 뉴스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와 믿기 어려울 때가 많다. 종종 내 이해의 한계를 벗어난 한국 뉴스를 접할 때면 이방인이 되어버린 내 처지를 돌아보곤 한다. 가까이는 오십 여년 전 기억이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부터 스물 무렵까지 한남동, 보광동, 이태원동은 외가 식구들이 살던 곳이었다. 혼인 후 한남동 본가를 떠난 이모와 외삼촌은 이웃 보광동, 이태원에 새 살림을 차렸었다. 모두 어머니 손잡고 드나들었고, 조금씩 머리 굵어 가며 사촌들과 뒷골목 누비던 곳이었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통해 자주 듣는 용산의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완전히 낯선 이방인이 된 내 모습을 보곤 했다만,  오늘 이태원 참사 뉴스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먼 나라 소식으로 다가와 정말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왜 이리 아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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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가을 하루였다. 아직 철이 덜 들어 하루를 헤아려 살기엔 이른 나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만, 계절은 세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즈음 가을을 음미하며 산다.

텃밭 가을걷이를 하다가 허리 펴니 눈길 닿는 곳마다 그저 감사가 이어졌다.

그 넉넉함으로 하루 해를 보내고 맞닥뜨린 이태원 참사 뉴스였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목숨을 잃은 대다수가 젊은이들이었 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비록 이방인이 되어 산다만, 바라기는 거기나 여기나 편했으면 좋겠다. 두루 제 정신들 차리고.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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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휴일 하루

지난 여름 내게 눈 호사(豪奢)를 누리게 했던 글라디오스 구근을 거두었다. 참 고맙기도 하여라! 올 봄에 심었던 구근 수에 비해 숱한 종근들은 차치 하고라도 내년 봄에 다시 심을 실한 녀석들을 거의 세배에 달하게 거두어 갑자기 큰 부자가 된 듯 했다.

화단과 뒤뜰 여기저기에 수선화, 무스카리, 아이리스, 튜립 등속의 알뿌리들을 심고 나니 갑자기 짧아진 하루 해가 저물었다.

낮에 호미와 꽃 삽질 하다 문득 바라 본 하늘, 수리 한 마리 나무 꼭대기에서 한참을 두리번 하더니만 솟구쳐 날았다. 먹이 하나 찾았나 보았다.

하! 그 순간 문득 떠오른 후회 하나. “왜 그리 조급 했었을까? 나는…. 그저 한 계절, 아니 한 나절, 어쩜 그도 아닌 한 순간을 준비하지 않고 그 많은 시간들을 다 이룬 양 들떠 살았을까?”

한참을 하늘 바라보다 다시 호미를 들고 감사! 이제라도 이렇게 누리는 시간들에 대해.

** 씹는 맛의 즐거움 되찾은 날에. 먹는 즐거움이라니. 그저 넉넉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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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싸움

내 어릴 적 성경을 심히 공박(攻駁)하는 사람들이 ‘모세가 백 이십 살까지 살았다는 게 말이 안된다’며 ‘믿음이라는 게 다 헛것이다’ 라고 하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암만, 당시만 해도 나이 칠십이면 정말 오래 살았다는 소리 듣던 시절이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 이즈음에 나이 백 이십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거니와, 나이 칠십은 노년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허나, 모든 믿음이란 게 각기 제 맘과 제 생각에 달린 일인 것이고, 나이 칠십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만큼 산 것을 깨닫는 나이 아닐까? 어쩜 그게 내 믿음이기도 하고.

사실, 나이가 뭔 상관이랴! 예수처럼 서른 셋을 살든, 모세처럼 백 이십을 살든, 동박삭이처럼 삼천갑자를 살든 제 나름의 뜻에 따라 살다 가면 족한 삶이 아닐런지.

내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세상 어지럽기는 매양 마찬가지다만,  “내 힘이 닿는데 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거야.” – 그 맘과 몸짓으로 살다 가신 어른들 여럿 생각 나고, 오늘도 여전히 그리 사는 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들의 싸움은 평화롭게 더불어 함께 살아갈 이웃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었으므로.

오늘도 제 힘 닿는데 까지 작은 싸움들을 이어가는 내 참 좋은 이웃들을 생각하며.

*** 내가 살았던 남쪽을 ‘겨울 공화국’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내 푸르게 젊었던 날들을 보낸 시절이었다. 이제 노년의 초입에 서서 그 남쪽이 ‘사기(詐欺)단 독재 공화국’으로 변한 모습을 본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낙관적이다. “내 힘이 닿는데 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거야.”하는 민(民)이 있기 때문이고 그 민이 곧 신(神)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견했던 일이다만 나도 조만간 이웃 필라 한인 상가 앞에서 촛불과 깃발 들고 싸움에 또 나서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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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니

길고 힘든 한 주간을 보냈다. 내 생업은 연중 이즈음이 가장 바쁠 때다. 비록 세탁업이 이젠 사양업이라도 하여도 나름 이 때가 되면 여전히 바쁘다.
바쁘면 늘 탈이 따른다. 잘 돌아가던 장비가 까닭 없이 속을 태우고, 도와주는 일손들에게도 개인적 일들이 생겨 자리를 비운다. 그런 일들이 함께 동시에 일어난 한 주간이었다.
그 중 최악은 내 틀니가 두 동강이 난 일이다. 비록 간혹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코로나를 넘지 못하고 며칠 앓은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큰 병치레 한 적도 없거니와 복용하는 약 하나 없이 산다. 다만 윗 잇몸이 부실하여 틀니를 사용한지 제법 되었다.
그 틀니가 반쪽으로 딱 쪼개져 치과로 달려갔더니 다시 만드는데 두 주가 걸린단다. 하여 각종 죽 끓여 배 채워가며 종업원 빈 자리 몫 때우며 보낸 한 주간이 내 힘에 매우 부쳤다.
‘뭘 먹지?’하는 생각에 쌓여 하루를 보내던 틀니가 망가졌던 이튿날, 아주 아주 오래전 내가 작은 도움을 주었던 K가 농장에서 사왔다며 사과 한 꾸러미를 놓고 갔다. 아침마다 그 사과를 갈아 먹는데 어찌 그리 달던지!
그 맛을 오래 이어가고 싶은 생각에 길고 길었던 한 주간의 일을 마무리하고 가을걷이 한창인 과수원을 찾았다. 틀니를 다시 찾기까지 내 끼니를 위해 이런 저런 과일과 채소들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내 늙어가는 과정을 즐기며.
• 내 텃밭에 무는 튼실하게 크고 있다. 틀니를 찾는 그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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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에

전화벨이 울린다. 낯선 전화번호가 뜬다. 망설이다 받아 본다. 대뜸 들리는 소리 “저예요, 오랜만이죠!.” 내 응답, “누구신지?”. 큰 웃음소리와 함께 들여오는 소리, “아이~ 제 목소리도 기억 못해요?”

끝내 그가 이름을 대기까지 나는 스무고개를 넘어야했다. 참으로 내 감이 무뎌졌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는데 그에게 미안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내 응답, “뭐 그냥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 뭐.”

오랜만에 만나거나 목소리 듣는 이들이 곧잘 묻는 물음, “이즈음 어떻게 지내느냐?”에 대한 내 응답은 마냥 같다. “똑같지요, 뭐” 아님 “그냥 숨쉬고 살지요.” 둘 중 하나다.

나만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다 엇비슷하게 특별한 일 없이 똑같은, 지나가고 나서야 아쉬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닐까?

바로 일상(日常)이다.

누군가는 그 일상에 대한 도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고, 때론 그 몸짓으로 역사를 바꾸는 사람들도 있고.

돌이켜보면 그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던 모습의 연속이었다. 내 지난 시간들은.

이즈음은 틀에 박힌  내 일상이  점점 다르게 다가온다. 그날 내가 누리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으로.

하여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내 응답, <“똑같지요, 뭐” 아님 “그냥 숨쉬고 살지요.”> – 그 속내는 예와 지금이 사뭇 다르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초가을 오후, 아내와 함께 정원 길을 걷다.

이른 아침, 다시 첫 서리 하얗게 내린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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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내 세탁소 한 쪽 벽면엔 가족 사진 몇 장과 내가 찍은 사진 몇 장 더하여 내가 좋아하는 시 몇 편이 장식으로 걸려 있다.

오늘 거기에 작은 소품 몇 개를 더했다. 천조각들과 실을 이용해 만든 내 바로 아래 누이동생의 작품이다.

내겐 누나 하나 동생 둘 그렇게 누이가 셋이다. 부모들에게 아리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느냐만, 우리 네 남매 가운데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은 아마도 세 째 였을 게다. 한국전쟁 통에서 다 키워 잃었던 맏딸 몫까지 온전히  받아 안았던 내 누나는 내 부모의 기둥이었고, 막내는 어머니 아버지의 재롱이자 기쁨이었고, 아들 하나인 나는 늘 걱정거리였다. 세 째에겐 늘 아린 구석을 내비치시던 내 부모였다.

거의 오 분 거리 한 동네에서 사는 나와 누나와 막내와 다르게 세째는 멀리 떨어진 남쪽에 산다.

그 동생이 나를 깜작 놀라게 한 것은 달포 전이었다. 바느질 일을 하며 살았던 동생이 가게를 접은 지도 꽤 오래 되어 그저 손주들 보며 사는 줄 알았는데, 천과 실을 이용한 작품들을 만들어 작은 전시회를 열고 작품집도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동생의 작품집을 받아 들었던 날, 나는 내 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 일어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 한 방울 찔끔했다.

동생의 작품집은 자연, 사계절 그리고 가족이라는 주제로 꾸며 있었다. 나는 그 주제들이 참 좋았다.

이젠 우리 남매 모두 노년의 길로 들어섰다. 이 길목에서 조촐하게 주어진 삶 속에서 신이 내려 주신 은총과 살며 만들어 나가는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사를 드러내며 살 수 있다는 기쁨을 잠시라도 나눌 수 있음은 우리 남매들이 누리는 축복일게다.

아내와 매형, 매제들은 덤이 아니라, 이 관계의 실제 주인일 수도 있을 터.

*** 엊그제 막내가 내게 보낸 신문 기사 하나. 아틀란타 조지아 Gwinnett County 공립학교 올해의 교사상 semifinalist에 조카 아이 이름이 올랐다고.  열심히 사는 아이들에게 그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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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온종일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왠지 나른하게 게을러지고 싶다. 더더욱이나 오늘은 일요일이다. 허나 몸과 맘이 늘 함께 하지는 않는다.

바뀌는 계절에 따라 필요한 이런저런 집안 정리와 내 하고픈 일들로 종일 바쁘게 짧은 하루 해를 보냈다.

낮에 얼핏 창밖을 바라 보다가 나무들이 비를 맞으며 가을 옷을 바꿔 입는 풍경을 보았다.

그 풍경을 눈에 담아 하루의 감사를 곱씹었다.

계절이 내게 건네는 느낌을 만끽하는 오늘은 그저 감사다.

  • 다만 뉴스들은 언제나 그렇듯 비오는 날을 우울하게 만든다.
  • 한국뉴스는 더더욱 그러하다. 욕조차 아까운 인간들이 권력의 이름으로 판치는 세상처럼 우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 허나 세상 모든 일에 다 계절이 있는 법, 좋은 소식 듣는 때가 또 오겠지. 어느 날엔가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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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모국어

이즈음 내 목소리는 참 싫다. 듣는 일은 물론이고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 것 같지가 않다. 소리는 점점 가늘게 높아지고, 쓸데없이 빨라지는 내 목소리를 느끼는 순간 나는 움찔하며 입을 닫곤 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영어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말도 이젠 참 어눌해져 내 머리 속 생각을 차분히 내어 놓는 일이 쉽지 않다. 하여 말수는 점점 줄어 든다.

그렇다고 불편한 일은 없다. 비록 돋보기 도수도 점점 올라가 글을 오래 보는 일조차 버거워 지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느끼는 촉은 예전보다 예민해 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한번 꽂히는 일을 곱씹고 되새겨 보는 즐거움들이 새로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그래 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살기 마련일게다.

아침마다 스쳐 지나가곤 하는 옥수수 농장에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 농장에 봄꽃 가득하던 게 그야말로 바로 엊그제였는데…

맞다! 나는 여름을 너무 쉽게 잊곤 한다.

그 여름을 보내는 내 뜰도 가을을 맞이했다.

나도 이젠 시간을 쫓아 계절을 맞는다.

시인처럼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워 보는 시간을.

목소리도 말도 글도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 됨으로. 어차피 모국어란 신에게 닿아 있는 부호일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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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루 사이에 긴 팔 옷을 찾아 입었다. 계절은 늘 그렇게 바뀐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쯔쯔쯔…  비단 내가 모르는 것이 계절 뿐일까?

내 뜰에 있는 나무들에게 계절 옷 입힌다고 삽질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보낸 카톡 영상을 받았다.

에고, 울 아버지, 내 아버지!  내겐 목사 이전에 참 사람으로 느껴지는 배목사님이 보내 준 영상이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늘 모자란 아들이었다.

모자란 나는 늘 아버지가 못마땅 했었다.

그 모자람과 못마땅의 차이는 내 세대에서는 흔히 널려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 관계  일 터이다.

그런 아버지가 ‘하늘나라 가시면 누구 보시게요?’라는 목사님의 질문에 답하신다. ‘그거 말 못해….’

아이고, 이제사 아버지 뜻 조금은 헤아릴 나이가 되었나 보다. 내가.

열린 내일을 감히 말할 사람 누가 있으랴!

아버지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깨쳐준 배목사님께 감사 드리는 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초 가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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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 하늘을 보는 즐거움이 점점 줄어든다. 이제 곧 어두워진 밤하늘을 보며 집에 돌아 오리라. 그렇다 하여도 짧아져 가는 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내게 허락한 오늘 하루 하늘이 주는 아름다움에 족할 수 있다면.

저녁상 물리고 옛사람의 일기장 꺼내 읽으며.

<해질녘의 드라마는 결코 싫증이 나지 않는다. 매일 오후면 어떤 새로운 그림이 하늘에 그려질까, 또 어떤 새로운 광경이 펼쳐질까 하는 호기심에서 해지기 전 약 15분 정도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워싱톤거리나 브로드웨이에서도 이처럼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을까? 매일 하늘에는 위대한 예술가가 고른 듯한 빛으로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 반시간 가량 걸려 있다가 그것이 사라지면, 이내 밤의 장막이 내린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저널> 1852. 1, 7.>

We never tire of the drama of sunset. I go forth each afternoon and look into the west a quarter of an hour before sunset, with fresh curiosity, to see what new picture will be painted there, what new panorama exhibited, what new dissolving views. Can Washington Street or Broadway show anything as good? Every day a new picture is painted and framed, held up for half and hour, in such lights as the Great Artist chooses, and then withdrawn, and the curtain falls. – <Henry David Thoreau’s <JOURNAL> January 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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