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필라를 다녀왔다. 좋은 사람들 만나려고 오가는 길은 즐겁다. 필라세사모 새해 맞이 모임이었다. 비록 서른 남짓 조촐한 저녁 모임이었지만, 올 한 해를 맞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자리였다. 자리를 마련한 이들에게 드리는 감사가 크다.

지난 한 해 참 좋은 친구들이 해 온 일들을 정리해 보여주는 동영상 자료를 보며 괜스레 눈가가 붉어졌다.

어느새 입 다물어 소리내지 않는 쪽이 내게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모처럼 이런 저런 우리들이 아직은 함께 이어가야만 하는 이야기들에 빠져들어 수다스런 저녁 시간을 즐겼다.

내려오는 길, 아내와 나는 우리시대의 노래꾼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며 왔다.

옛 노래는 옛 회상으로 즐겨야 하는 법인데, 여전히 오늘을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 세상은 조금은 슬프다.

그렇다 하여도 더운 가슴으로 아프고 모진 세월을 안고 이겨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찾아내고 알려주며 함께 나아가며 부르는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흥얼거려보는 노래.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 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 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 하얀 눈 내려 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참 좋고 아름다운 벗들에게 감사를.

a b c

행복에

“잊지 말아라!’, “적어 놓아라!”, “꼭 인사 전하거라!” 거듭 되뇌이시는 아버지의 당부였다. “그게…. 그게… 쉬운 일 아니야! 섣달 그믐날… 나같은 사람 찾아 주는 거… 인사 꼭 전해라!”

딱히 식사량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줄어든 끼니처럼 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작아들고 있다. 물 몇 모금으로 점심 끼니를 채우신 아버지는 연신 어제 당신을 찾아 주셨던 배목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라는 당부를 이으셨다.

오늘이 설날이라고 짚으실 만큼 정신은 아직 맑고 또렷하시다.

어제 섣달 그믐날,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밑반찬 만들어 싸들고 딸네 집을 찾았었다. 결혼 후 장만한 첫 집, 정리도 대충 끝났다 하여 나선 길이었다.

고마움, 기특하고 대견함 그리고 함께하는 이런 저런 염려들을 꾹꾹 눌러 숨기고 딸과 사위와 함께 꼭 기억할 만한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멋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며칠 전 생일을 보낸 사위가 내게 건넨 부탁이었다. “제 나이에 걸맞는 좋은 말씀 하나 해주세요.”

나는 사위에게 변변한 도움말을 건네지는 못하였다. 다만 그 순간 내 머리 속을 스쳐간 것들 두가지. 아이들 거실 벽에 걸려있는 바깥사돈이 지금의 사위 나이 즈음에 그리셨다는 그림들과, 내가 지금의 사위 나이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그 생각들이 딸과 사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되어 내가 건넨 말이었다. “이제껏 지내 온 건실하고 건강한 맘과 몸을 이어 갔으면 좋겠네. 늘 감사함으로.”

곰곰 따져 생각해 보니 어제 음력 2022년 섣달 그믐날, 아버지와 나는 꽤나 행복하였다.

설날 저녁, 떡국 한 그릇 나누고 돌아간 아들 내외에게 딸네 집에 싸들고 간 똑같은 밑반찬 전해주며 드린 내 속 기도.

바라기는 올 한 해도 지금 누리는 행복을 잊지 않고 살 수 있기를…

행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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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그리고 기도

어느해 부터인가 내 책상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는 달력 하나, 4.16재단에서 만든 세월호 달력이다.

“이 달력은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달력 속에 글 내용은 이들을 떠올리며 한 줄 한 줄 담았습니다.” – 달력을 소개하는 글이 담긴 달력 첫 장을 넘기면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이 펼쳐진다.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한번 꼼꼼히 새기며 읽어 본다.

선언문을 맺는 말이다.

“또한 우리는 다짐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할 것임을.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구조와 권력에 맞서 가려진 것을 들추어 내고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그렇게 넘긴 달력, 정월의 선언 <우리는 4월 16일을 잊지 않았습니다.>이다.

이 달력이 내 책상 가까이에 놓이기 까지 여러 손들을 거쳐왔을 것이다. 그 손길들 가운데 내게 가장 가까이 곳에서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에 함께 하는 ‘수많은 우리’중 하나가 된 ‘필라 세사모’ 벗들이 있다.

“상실과 애통, 그리고 들끓는 분노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위한 선언을 함께 외치더라도 결코 날카롭지 않게 삶의 넉넉한 감사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필라세사모’ 벗들이다.

벗들 하나 하나 얼굴들을 떠올리며 새해 기도를 드린다.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벗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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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아침, 일터로 나가는 길에 만난 해돋이 그 아름다움을 보다가 날짜를 꼽다. 어느새 새해도 열 하루 째.

아침이 어디 새해 아침 뿐이랴! 하루 하루 매일 매일 눈을 뜨는 날까지 맞이하는 아침인 것을.

바라기는 올 한 해, 내게 주어지는 시간과 순간들을 오늘 아침에 느낀 아름다움 처럼 간직할 수 있었으면….

아침에.

에그 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 스물 네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흐름은 저마다 다 다르다. 사람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이에게도 하루 하루 각기 그 흐름의 속도는 다를 수 있다.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지는 후배의 일주기 소식에 나는 ‘아니 벌써?’ 했었다만, 오늘 일주기 추모 자리에서 후배의 아내는 사뭇 길었던 일년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후배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올려 본 말, 공감 – 잠시만이라도 서로간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맞추어 보는 일이 공감 아닐까?

그렇게 필라를 다녀 온 길, 내침 김에 한국 식품 장을 보고 돌아왔다. 큰 장을 보고 온 일도 아닌데 우리 두 내외를 위한 작은 냉장고 냉동 칸이 만석이 되어 한참을 정리하였다.

냉동 칸을 크게 자리 잡고 있던 녀석은 에그 롤이었다.

이민 와서 처음 살았던 아파트에서 있었던 벌써 삼십 수년 전 일이다. 아파트 이웃 동에 한국 분이 새로 이사를 왔었다. 그의 남편은 중국인으로 제법 몸값 나가는 중식당 주방장이었다. 미국 어디를 가든 제 몸값 톡톡히 받을 수 있다는 상당한 자부가 넘쳐났던 이었다. 그 넘쳐났던 자부 덕에 미국 웬만한 도시는 두루 섭렵했다던 부부였다.

그 한국 아내가 마치 자기 어머니 같다며 내 어머니를 몹시 좋아하며 따랐었다. 종종 어머니를 초대하곤 했었는데 그 때 어머니 입맛에 딱 꽂히셨던 게 ‘에그 롤’이었다. 어머니는 그 중식당 주방장에게 ‘에그 롤’ 만드는 법을 전수(?) 받으셨다.

그 뒤로 어머니의 손주들은 어머니가 만드신 에그 롤을 간식으로 먹으며 자랐다.

그리고 지난 연말 성탄 연휴 기간에 모처럼 만난 어머니의 손주들이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에그 롤을 만들며 하루 해를 보냈었다.

어느새 큰 조카 아이가 사십 줄이고 막내 조카 아이도 서른을 넘어섰다. 모두 어머니 덕에 짝을 지어 어머니의 증손들도 열이다. 그 아이들이 모여 만든 에그 롤인데, 할머니 닮아 어찌 그리 손들이 큰지 우리 내외 몫으로 건네 받은 에그 롤이 차지한 냉동 칸의 자리가 그리도 컸다.

그렇다. 내 믿음이다.

스물 넘는  어머니의 손주들, 증손들이 모여 에그 롤을 만들어 먹고 나누며 추억 하는 한 내 어머니는 여전히 살아 계시 듯, 스물 넘는 이들이 모여 함께 그를 추억한 저녁 밥상에서 나는 아직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 숨길 수 없는 후배를 만난 것이다.

*** 에그 롤을 만들며 할머니를 추억하는 글을 페북에 올린 참 기특한 내 아들 녀석 내외와 함께 어제 밤, 이젠 또 덤덤해 져야만 하는 연말 연시 불놀이 꽃놀이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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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바램

온 종일 안개가 내 눈이 닿는 세상을 덮고 있다. 이른 아침 눈을 뜰 때부터 밤이 깊어 가는 무렵까지 거두어 지지 않는 안개 속 세밑 하루를 보낸 것은 내 생애 처음이다. 하여 삶은 늘 경이롭다.

이렇게 안개 속에 2022년 한 해를 보낸다. 돌이켜 아쉬움 없이 접은 달력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나는 감사함으로 그 아쉬움을 덮는다. 신이 내게 허락한 믿음 덕이다.

나 자신만의 일로 뒤돌아 보자면 그저 감사만이 차고 넘친 한 해였다. 코로나로 며칠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만, 나나 아내나 큰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보낸 시간에 대한 감사가 크다. 이젠 많이 쇠하시긴 하였으나 아직은 비교적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계시는 아버지가 만 아흔 일곱을 세고 계시다는 감사도 크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모두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즐거움에 대한 감사는 어디에 비하리. 그 나이에 어미 아비에게 말 못할 아쉬움과 아픔들이 어찌 없겠느냐만, 늘 밝은 내 아이들에게 그저 감사 뿐.

무엇보다 우리 내외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터와 그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즐거움을 이어온 한해에 대한 큰 감사는 곱씹어 마땅하다.

다만 아쉬움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던 한국뉴스들이 넘쳐난 한해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품고 새해를 맞는 답답함이 있다만…. 한국뉴스는 여기 아주 작고 좁은 한인사회 이웃관계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곤 하기에 결코 먼 뉴스들이 아니므로.

아무튼 신이 허락해 주신 2023년 새해를 맞는다. 하여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노년의 길로 들어선다. 길은 여전히 안개 속일 수도 있을게다.

바라기는 새해에도 아쉬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를 덮을 수 있는 감사를 찾을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시길. 새해, 전해오는 한국뉴스들을 지금 여기 내 이웃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길.

삶은 늘 경이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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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연휴

성탄 연휴, 아이들이 찾아와 사흘을 아무 생각없이 쉬었다. 갑자기 다가온 매서운 추위 때문이기도 하였고 사위와 딸이 애지중지하는 애완견과 함께 갈 수 있는 마땅한 곳도 없어 집에서 그저 편히 쉬었다.

늦은 나이에 음식 만드는 일을 즐거워 하게 된 내가 그저 대견 스럽고 감사한 연휴였다. 먹성 좋은 아들과 조금은 섬세하게 준비해야하는 며느리와 내가 결코 큰 소리치지 못하는 딸아이와 사위 입성까지 생각하며 마련한 밥상을 차려 놓고 흐믓해 하는 내 즐거움이라니!

가족들이 모이면 늘 부엌에서 하루를 보내셨던 어머니께 내가 역정을 내며 물었었다. “아니 뭘 힘들게 혼자 다 할려고 해요? 나누어 하든가 조금씩만 하든가!” 그럴 때면 하셨던 어머니의 대답, “이 눔아! 내 몸 놀려서 많은 식구들이 잘 먹는 거…. 그게 얼마나 좋은 지 넌 아직 몰라서 그래.”

그 어머니 흉내 낸 사흘이었다.

돌아보면 모두 흉내 짓으로 이어온 내 삶이지만 흉내의 대상이 결코 부끄럽지만은 않다.

그래  감사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아내 몫이었다.

그게 또 감사다.

또 한 해를 내려놓는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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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아닌 물음에

연말연시라 고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저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이다. 허나 단지 그렇게 치부하기엔 삶은 때론 지나치리 만큼 역동적이기도 하고 지루하게 늘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하여 순간순간 단락 지어 되뇌이며 사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 또는 그 지혜를 허락한 신의 은총으로 낳은 게  월력이 아닐런지?

아무튼 이런저런 연말 어수선한 일들이 많은 어제, 한 주간의 일을 마치고 ‘필라델피아 민주시민모임’이 주최한 <10.26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윤석열 퇴진 촉구를 위한  모임>에 다녀 왔다.

생각이 엇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비록 처음 본 얼굴 일지라도 그저 즐겁다

오랜 벗들도 있고, 어제 처음 얼굴 마주 한 이들도 많았다. 어제 함께 자리하게 된 까닭들도 여러가지였다.

나는 그저 반갑고 만난 얼굴들이 고마웠다.

세상사 믿음이라는 엉뚱한 잣대로 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 내가 사는 시간, 나와 더불어 사는 우리를 묻는 물음으로 사는 얼굴들이 참 고마왔다.

엊저녁 멀리서 전해 드리는 위로가 참사 유가족들에게 전해지기를…. 하루가 다르게 뒷걸음질 하며 퇴행하는 내 모국(母國)을 위해 추운 날 거리에 나선 이들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원컨데 넋 잃은 믿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 바로 사람에 대한 물음으로.

다짐

뉴스가 비현실적으로 다가 올 때가 많다. 허긴 그래야 뉴스가 되기도 하지만. 이즈음 한국 뉴스는 더더욱 그러하다.

비현실적이라고 했지만 대개는 내 무지한 탓이지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았다면 예견할 수도 있는 소식들도 많다. 그런데 정말 꿈에서 조차 만나기 싫은 소식들을 듣거나 볼 땐 ‘아하! 다시는 한국뉴스 보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을 놓곤 한다. 물론 그 때마다 며칠 이어지지 못하는 다짐이지만.

꼽아보니 노무현대통령 서거, 세월호 참사, 조국 교수의 무너짐 그리고 최근의10.29이태원 참사 등은 마치 꿈을 꾸듯 다가 온 비현실적 뉴스들이었다.

비록 내가 다시는 돌아가 살지 못할 곳이지만 꿈 속에서 마주해도 아파할 소식을 듣노라면 내 삶의 연은 아직은 그 땅에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더하여 내가 그 땅에서 살았던 시절의 구호들, 이젠 박물관의 유물로 박제되어도 마땅할 일천 구백 칠 팔 십년 대   그 낡은 구호들, 일테면 반(反)민주, 반 민중, 반 노동, 반 통일, 반 평화 정권 타도의 구호들이 다시 절실해 진 뉴스들을 보며….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모이는 곳에 머리 수 하나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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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온 종일 쏟아져 내리는 비 탓에 가게가 한산한 날이었다. 겨울철 이런 날이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아이고 그저 감사하거라! 이 비가 눈이 되어 이렇게 내렸어 봐라, 여러 날 장사 망치지 않았겠니?’

그 말씀 생각나 비 탓 아닌 비 덕으로 한 해를 돌아보는 여유를 누렸다.

이즈음 내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언제 은퇴하시나?, ‘언제까지 일 하시려나?’.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이다. ‘계획 없고요.’ 또는 ‘글쎄… 그저 일할 수 있을 때 까지…’

한 해가 다 가고 이젠 일반적인 통념으로도 꽉 찬 은퇴 나이를 맞이하는 때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왜 없겠느냐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은…’

가게 한 켠엔 딸아이가 엄마 생일에 보내 준 꽃들이 아직 화사하고, 그 꽃을 보며 이야기 꽃 피우는 손님들이 있고, 내리는 겨울 비 바라보며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일터에 아직은 그저 감사 뿐.

온종일 겨울비 내리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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