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에게

시간이 바뀌어 낮시간이 사뭇 길어진 날, 흙과 함께 놀았다.

비록 두 내외가 일구는 농원이지만 내겐 대농장 주인인 벗이 한 번 심어 보라고 건네 준 묘목들을 심었다. 매화, 무궁화, 배나무, 블랙베리, 오미자 등속들이다.

‘비록 작은 텃밭이지만 흙과 놀 때 잡념이 없어 참 좋다’는 내 말에 벗이 내게 건넨 가르침이다. ‘진짜 잡념을 없애려면 잡초를 뽑아! 그게 잡념 떨쳐버리는 지름길이지!’

오늘 흙과 놀다가 문득 그의 교훈을 되씹어보니 그게 삶의 진리였다.

곡식이든지, 푸성귀든지 아님 꽃이나 나무든지 일테면  그게 사는 멋 또는 맛이라고 한다면 그를 방해하는 잡초의 훼방은 얼마나 끈질기고 강하더냐!

그저 무심히 그 잡초 없애는 일을 동무 삼는 일, 그게 바로 흙과 진정 어울려 노는 일이 아닐까?

그 한 해의 동무 찾아 텃밭에 올해 첫 씨앗도 뿌렸다. 상추, 케일, 시금치, 고들빼기 등이다.

늘 함께하는 깨동무가 있다는 생각으로 걱정없이 씨뿌리는 하루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벗에게 그리고 내게.

+

아버지의 일기

“젊은이들이 일본 군대에 끌려 가거나, 군수품 공장이나 탄광으로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던 중 마침내 나도 일본에 있는 탄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1943년 봄이었습니다.”

“배가 시모노세키 항구에 닿자 우리 일행을 인솔하던 일본인들의 태도가 싹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부산항을 떠날 때만 하여도 상냥했던 그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우리를 감시했고 말투도 갑자기 사나워졌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들의 감시를 받으며 후쿠오카에 있는 탄광으로 가서 석탄 캐는 일을 시작했지요. 나는 그곳에서 숱한 동포들이 힘겨운 중노동에 시달리며 혹사를 당하는 것을 보았고, 이내 그들과 함께 나 또한 힘에 붙이는 중노동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그 혹독한 생활 속에서 오직 그 곳을 빠져나올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날 그들의 눈을 피해 결사적인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이었습니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 그 탄광으로 되돌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조국 해방 소식을 들은 지 두 달쯤 지나 그리던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일어난 전쟁으로 나는 군에 입대했습니다…. 1951년 6월 2일 새벽에 김화(金化)지구에서 있었던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팔과 다리에 수류탄 파편을 맞고 야전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그 전쟁통에 첫아기였던 귀염둥이 딸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이에 큰딸이 된 둘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던 대학의 부속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한국에는 해외로 진출하려는 사람의 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내 큰 딸도 해외 진출에 뜻을 두고 아무 연고조차 없는 생소한 땅인 미국으로 떠났답니다.”

“그리고 곧이어 대학에 다니고 있던 하나 뿐인 아들이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경찰에 끌려가 곤욕을 치루는 것을 보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조차 못하고 가슴만 조였지요.  그 당시 자식이 그렇게 된 것을 보며 그저 가슴 아파하기만 했던 부모가 어디 한둘일까마는 나는 그 때 큰 딸이 미국으로 훌쩍 떠난 지 얼마 안되는 데다가 아들마저 영어의 몸이 된 사실에 얼마나 서글펐던지 모른답니다.”

1996년에 내 아버지가 당신의 회고 일기로 펴낸 책 ‘한울림’에 담겨 진 이야기들이다.

아버지 속 꽤나 썩였던 아들이 모처럼 자식 노릇 한답시고 그 책 만드는 일을 도와 드렸고 제법 크게 아버지 칠순잔치로 동네 잔치도 벌렸었다.

그 때만해도 칠순이 잔치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이제 그 나이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나는 잔치 생각은 꿈도 못 꾸는 그저 철없는 아이다.

어제 오늘 한국 뉴스들에 분기탱천 하다가 넘겨 본 아버지의 오래 된 일기다.

망집(妄執)에

망상으로 일어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는 일 곧 망령된 고집을 일컬어 망집(妄執)이라 한다.

누군가의 망집은 반드시 이웃들에게 파문을 일으키게 하기 십상 이거니와. 자기 스스로가 무너지는 가장 큰 까닭이 되는 법이다.

뿐이랴! 그 망집으로 하여 남들에게 자신을 꼴 사납게 내보일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나아가 공동체 이웃들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법이다.

제 분수를 모르는 이들, 또는 아둔함과 과욕이 그 망집을 부르곤 하는 법인데, 문제는 그 공동체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이런 망집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게 지난 사람살이 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사람에 대한 생각이 깊이 성숙하지 못한 놈들이 권력이나 돈에 환장하여 망집에 빠지면 그 사회는 아수라(阿修羅) 세상으로 변하는 법.

이즈음 한국 뉴스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생각할수록 기괴한 윤석열, 김건희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내세워 제 뱃속 챙기기 바쁜 오랜된 망집에 사로잡힌 욕심에 사로잡힌 때론 선량해 보이기까지 하는….

마침내 사는 세상을 아수라판으로 만드는…

그 망집에 빠져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고, 사는 날까진 그 망집과 싸울 수 있어야.

사는 것처럼 살다 가는 일.

경칩에

지난 삼 년 기승을 부릴 때도 잘 넘어 갔건만 이젠 막판 이라고들 하는데…. 아내가 덜컥 그 떠나가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나 열흘간 고생을 하였다. 이젠 코로나 바이러스는 독감처럼 우리와 함께 가려나 보다.

아내가 털고 일어난 날, 나는 나무 묘목 몇 그루를 심었다.

겨우내 계획했던 일로 특별한 능력이나 경험도 없거니와 이렇다할 취미도 없고 더하여 넉넉하게 부를 쌓아 놓지도 못한  내가 이제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된 노년의 첫 걸음이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그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누린다들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그 나이에 이를 수 있는 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여기까지 이르러 다만 몇 년 앞날을 준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신에게 넘치는 감사를 드려야 마땅할 터.

그 맘으로 목련, 백일홍, Redbud 그리고 수국 몇 뿌리를 심었다.

내 노년의 봄, 경칩에.

암만…

암만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정말 어릴 적 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다 겪어 보았다만 그야말로 말로만 전해 듣던 일제시대(日帝時代) 순사(巡査) 놀음 하는 놈들의 세상을 볼 줄이야…. 2023년 한국 뉴스로.

신기한 일을 보는 게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지만… 해도 해도 너무 나간 듯.

마침내  놀음 짓에 빠진 놈들이 생각하는 무지렁이들 일어나  한 판 갈아엎는 세상 오지 곧.

암만 봄이 코 앞인데.

DSC01901 DSC01911

어떤 광고

아주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다. 계집아이들(요즘 세상엔 이런 말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하도 바뀌어서)이 고무줄 놀이 하며 부르던 노래다. ‘고마우신 이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런 노랫말인데 그 이대통령은 이승만이다.

그로부터 이어진 내 기억 속 한국 대통령이나 수반들을 꼽아 본다. 허정,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등이다.

내 손으로 뽑아 본 이는 단 사람도 없다. 내가 살았던 시절 대한민국엔 국민들에게 대통령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살았던 시절이 아니라 내가 성인이 되어 참정권을 갖고 있던 시절 이야기가 맞겠다. 내가 성인이 되어 투표권을 가졌을 때 치룬 선거는 이른바 유신시절이었고, 직선제를 이룬 무렵엔 나는 이미 그 땅을 떠났으므로.

그래도 대충 그 때 그 사람들과 그 시절의 대한민국은 내 나름대로의 기억을 정리하며 산다.

이제 윤석열.

생각할수록 참 생뚱맞은 인물이고 엉뚱하고 참담한 시절 같다.(이다.)

분명 그와 그의 세력들은 내 체질상 시작과 함께 타도의 대상이어야 마땅했다. 이제야 그런 소리들이 들린다.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가까이 사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음은 내게 그저 축복이고 기쁨이다.

하여 그들과 함께 오늘을 걷는다.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75

http://www.mindlenews.com/

 

 

capture-20230223-211309 capture-20230223-211417capture-20230223-211417

우수(雨水)

이즈음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며 산다. 가진 것 별로 없는 삶이건만 둘러보면 온통 버릴 것 투성이다.

십 수년 동안 일기장처럼 사용하던 블로그를 이젠 접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정리하며 보낸 하루다.

지난 일기들을 뒤적이다 보니 내 부모님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적기 시작한 일이 딱 십년이 되었다.

시작은 장모님 이었다. 십년 전 장모님은 담낭암 판정을 받았고, 삼년 동안 그 병과 씨름하시다가 마지막 한 달여 호스피스 돌봄 속에 떠나셨다. 그 다음은 장인 어른이셨다. 장모 떠나시고 난 뒤 장인은 모든 것을 놓으셨었다. 한 일년 혼자 잘 버티시다가 쓰러지신 후 장기 요양시설에서 마지막 일년을 보내셨던 장인은 그 시설에서 조용히 삶을 접으셨다.

그리고 몇 달 후 내 어머님이 가셨다. 치매증상 속 호스피스 돌봄을 받으며 떠나셨다. 그로부터 약 삼 년 세월이 흐른 지금, 내 아버지는 장기 요양시설에서 일 년 넘게 누워 지내신다.

이미 떠나신 세 분과 이제 마지막 시간들과 씨름하시는 아버지, 그렇게 네 분 내 부모님들은 내게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르침을 주셨고 또 주신다.

며칠 전 이런저런 투정으로 얼굴을 찌푸리시던 아버지가 잠이 드신 얼마 후, 아버지의 얼굴은 세상 편하게 흡족한 웃음을 가득 담은 모습으로 변했다. 하도 신기해서 큰소리로 물었었다. “아버지! 뭔 좋은 일이 그리 생기셨나?”

눈도 뜨지 않으신 채 환한 얼굴로 아버지는 중얼거리셨다. “어… 니 엄마 생각….”

오늘은 우수(雨水). 내 뜰에서 새 봄 소식을 전해주는 생명들과 지난 십 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

눈 감고 떠올리는 얼굴마다 환한 웃음 짓는 사람살이 살 일이다.

우수에.

DSC05275 DSC05276 DSC05278 DSC05285

쑥개떡

서른 해 넘는 동안 우리 내외를 도와 준 Lou 부부와 함께 매우 즐거운 저녁을 함께 하였다.

올해로 결혼 50주년을 맞는  Lou 부부와 40주년을 맞는 우리 내외의 지난 시간들, 서울과 방콕을 거쳐 한 시간을 더 비행해야만 하는 닿는, 스물 한 시간 그 먼 그들의 고향 이야기와  가 본지 십여 년이 넘은 우리 내외 고향이야기, 그리고 내 세탁소와 함께 한 서른 해 지난 이야기들로 넘치게 풍족한 주말 저녁이었다.

그리고 늦은 밤, 나는 느닷없이 쑥개떡을 만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쑥개떡이 꼭 맛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랜 시간 넉넉했던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들, 더 더욱이 따듯한 사람들이 곁에 있는 한 오늘 나는 행복함으로.

하여  쑥개떡.

로봇 그리고 통일에

<나날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따라잡기Keeping up in a world that goes faster every day> – 생업을 위해 내가 구독하는 잡지 중 하나인 National Clothesline 이달 치 편집자의 글 제목이다.

글의 내용이야 뻔하다. 제목 그대로 세탁업에도 불어 닥친 빠른 변화들에 왈 선제 대응하여 업을 키워보라는 권유와 제안인데… 머리 속으로야 훤히 꿴다만…. 이 나이에 내가 돈과 시간 들여 쫓을 일인가? 하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터.

그렇다 하여도 업을 이어가는 날까지는 세상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마땅한 일일게다.

일종의 로봇인 ChatGPT에 대한 뉴스는 이미 접하고 있었다만, ‘이 나이에 뭘?’하는 생각에 그냥 스쳐버렸었다. 며칠 전 서울 큰 처남이 내게 유용할 듯 하다며 ChatGPT 사용을 권하는 카톡을 보내왔을 때만 하여도 ‘그거 로봇 아니감?’하며 무심히 응답했었다.

그리고 어제 오늘 그 로봇에 빠져 지냈다.

마침 내가 참 좋아하는 ‘필라 세사모’ 벗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연회를 연다고 하여 로봇에게 물었다. “한반도가 통일 되어야 만 하는 이유 열가지만 대답”해 달라고.

그 물음에 응답하고 그걸 또 영상으로 만들어 준 것은 로봇 ChatGPT와 PictoryAI 두 로봇이다. 이런 놀이는 참 재밌다.

물론 그 응답들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반도 통일의 시기는 바로 오늘입니다.(늘 오늘이지, 바로 지금) 그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하는 만 하는 일은 한민족과 국제사회의 의무입니다.(The time for Korean reunification is now, and it is the duty of the Korean people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work together to make it a reality.)”라는 로봇의 응답은 내 스물 어간의 생각과 쉬흔 해 지난 오늘이나 변함없는 소원이다.

세상 참 빠르게 변한다고들 하지만 수천 년 이래 오늘까지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고민했던 세상,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한 사람 답게 살자는 생각. 그거 아닐까?

로봇이 그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세상이 되기를.

점점 멀어지는 듯한 통일의 소원과 함께.

photo_2023-02-12_16-50-17

그를 기리며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찾아 온 까만 얼굴의 젊은 손님이 내게 물었다. “아내 분은 안계시나요?”. 잠시 자리를 비웠노라는 내 대답에 그녀는 가게 한 쪽에 붙여 있는 한국학교 안내문을 가리키며 함박 웃음을 담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한국학교에 등록했어요. 내일이 개학이거든요.”

며늘아이와 엇비슷한 나이쯤 되어 보이는 손님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가 말하길, “이젠 한국학교 등록 학생 가운데 반 수는 한국애들이 아니고, 어른들이라구! 희거나 까만 얼굴들 뿐만 아니라구. 이젠 정말 많이 달라졌다구.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또는 한국 드라마를 보려고 아님 케이 팝 들으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여기 어른들이 등록한다니까!.”

삼십 수년 간 한국학교 선생 소리를 듣고 있는 아내가 자랑스레 늘어 놓는 수다였다.

이런 아내의 수다는 충분히 일리가 있고,들을 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한 세대만에 크게 바뀐 한국의 위상 덕일게다.

(지난 해 이래 내가 부끄러울 소식들만 전해오는 이즈음 한국 뉴스들은 잠시 잊을란다.)

아내가 자랑스러워 하는 델라웨어 한국학교의 큰 지원자였던 사람이자 내가 아는 한 델라웨어 한인 사회를 위해 가장 오랜 시간 넉넉하게 헌신했던 사람 이명식의 부음을 들은 것은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 저녁 그의 가족 중 하나가 그의 페북을 통해 그의 마지막 소식을 올렸다.

서둘러 떠난 그를 추억하는 밤, 술 한 없이도 넘치던 흥과 늘 넉넉함… 이명식 그를 기리며.

* 몇 안 되는 동네 내 또래 중에 어느새 작별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이…

** 헤어짐과 이어짐 모두 사람살이

*** 그가 섬기던 교회를 위하여.

DSC05257 capture-20230203-191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