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Go)!

참 제 앞가림도 변변히 하지 못하는 주제에 오지랖이 넓어서 이것 저것 생각만 많은 사람입니다만, 이 땅을 이민으로 살면서 고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회”이지요.

참으로 많은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인 이민들 앞날에 장애물 아니면 애물단지가 바로 이 교회라는 생각에 허풍 조금 보태면 잠 못 이루는 그런 날이 제법 있었다고 말씀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뭐 긴 말씀 드릴 요량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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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자 이야기는 예수의 이런 말씀으로 끝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표준 새번역 개정판)

“Neither do I condemned you; go and sin no more”(New King James Version)

이 구절에 대한 성서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자면 꽤 긴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우선 Go 다음에 나오는 “sin no more”라는 말, 다시는 죄 짓지 말라는  말은 후대 첨가구라는 것이 것이고 예수가 한 원형적 말은 “go” 곧 “가라”라는 말씀으로 끝났다는 것이지요.

근데 어디로 갑니까? 집으로 가는 것이지요. 간음한 여자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 당시에 병든 사람도 다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는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 주셨지요. 죄인의 죄를 씻겼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 때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가라(go)”입니다.

어디로 가라는 것일까요? 

가족에게로, 일상으로, 평범한 생활 가운데로, 이웃에게로 돌아감입니다. 아니 그 곳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성서에 다음 구절들이 다 그런 말씀들입니다.(마가복음 1장 44절, 2장 11절, 5장 19절,34절, 8장 26절, 10장 52절 누가복음 7장 15절, 17장 19절 요한복음 5장 9절, 9장 7절, 11장 44절등등)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 당시에 죄인들(병든 자를 비롯한 사회 하부계층 –쯧쯧, 이렇게 표현하면 좌파가 되겠고- 일테면 소외받은 자들 이라고 할까요- 그것도 좌파?)은 일상사에 있어서 “남들처럼 대접받지 못하는”부류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돌아가라”는 이른바 귀환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맹점이랄까 아님 이민교회의 부정적 측면이랄까 그런 것이 드러나는 까닭은 바로 이 “귀환명령”, “돌아가라”, “가라”하는 명령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기 얽매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이웃으로, 일상으로 돌아가 떳떳하게(신앞에서) 하루하루를 살 수 있도록하는 원천이 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얽매는 곳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찰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청정도량(淸淨道場)이란 바로 삶, 곧 일상을 위한 곳입니다.

곰곰 생각해 보십시요. 이즈음 교회나 사찰(사찰에 대한 부분은 깊이 천착한 바 없습니다만. 이민의 땅에서 말입니다.) 들이  얼마나 이민들을 얽매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북한의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펴낸 조선통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행여 오해가 있을까보아 말씀드립니다만 이건 대한민국 오월출판사에서 펴낸 책으로 뉴욕의 어느 서점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거기 옛날 삼한시대의 “소도(蘇塗)”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더군요.

“<삼국지> 위지 마한전에는 마한 사람들이 ‘도둑질’하고는 도망쳐 ‘소도’라고 부르는 종교행사를 진행하는 곳으로 들어 갔는데 거기에서는 그들을 돌려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중략- 도망쳐 온 인민들에게 종교를 초계급적인 것으로 미화함으로써 그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한편 저들의 노예로 부리기 위해 돌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계급의식”이라는 말이 좀 걸리기는 합니다만 어쩌면 예수의 “가라”라는 말은 소도라는 종교적, 사회적 제약을 깨고 어느 곳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라는 명령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요.

오늘날 “이민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명령 ”가라”하는 말씀을 전혀 귀 담아 듣지 않는 까닭에서 오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라는 말씀이지요.

믿음이란 무릇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소도”에 머물 일이 아닙니다. “가야”합니다. 몸만이 나니라 생각과 정신과 맘이 “오늘, 내 삶의 현장에 있어야”겠지요.

아 참! 예수는 “나를 따르라”<follow me>”를 주창하기도 하셨지요. 그건 또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애국(愛國)에

재작년 아흔 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뜬 Russell W. Peterson은 DuPont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고 1970대초 공화당원으로 내가 살고있는 델라웨어 주지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는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이며 환경론자이다. 오랜 공화당원 생활을 접고 민주당원으로 그가 당적을 바꾼 것은 1996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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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이 여든 셋에 백 쪽도 채 안 되는 작은 책자를 출간하며 제목을 <애국자들이여, 궐기하라!(Patriots, Stand Up!)”>라고 하였다.

 

책의 제목만큼이나 책의 내용이 직정(直情)적이다. 당시 부시행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과 독설, 그리고 애국민임을 자처하는 미국인들에 보내는 그의 충언을 읽으면 그가 팔순 노인은 커녕 스무 살 팔팔한 젊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는 9.11참사 이후 불어닥친 미국내의 애국주의가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뚤어진 애국심과 애국주의의 선동으로 미국은 처음 국가를 건설하며 꿈꾸었던 참되고 큰 미국정신을 잃어 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부시행정부로 대변되는 극우 보수 공화당원들이 앞장서고 있다고 비난한다.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시작하며 내걸었던 전쟁의 당위성 일곱 가지들 일테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알 카에다 조직과의 연계, 우라늄생산을 위한 시설 보유, 독가스로 수천 명의 인명 살상, 우라늄의 대량 유입, 생화학 무기 생산을 위한 연구 시설 보유, 미국의 안전 위협 등의 모든 전쟁 이유들은 단지 구실이었을 뿐 모두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참다운 애국주의의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할 때이며, 생각있는 미국인들이 이 운동에 앞장 설 것을 주문한다. 그는 진정한 애국심과 애국주의는 미국의 첫 정신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주창한다.

 

들어라! 선조들이 어렵게 지켜온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 곧 자유와 정의를 구가하는 생활 양식을 버리라고 주문하는 오늘날 극단주의 지도자들을 향해 이 미국이 울고 있는 통곡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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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러쎌은 주창한다.

 

애국자들이여, 궐기하라! 수 세대 동안 싸워 이룩한 이 위대한 국가의 명예를 위하여! 법 아래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정의를 구가하는 이 땅의 삶을 위하여! 전 세계 민중들의 꿈을 집중시켰던 식민주의, 노예제도, 파시즘,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통해 이룩해온 이 땅을 위해! U.N.헌장과 권리장전,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우리들의 기본적 권리들을 위해! 궐기하라!”

 

팔순 노인이 치켜든 열정적 반 부시의 깃발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민의 거의 반수는 부시행정부의 지지층들이었다.

 

애국의 길은 생각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가는 길이 다를 수도 있다.

다만 함께 공유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 곧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아래 상식적인 보편의 가치의 기반 위에 서서 부르짖는 애국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기반을 상실한 채 애국을 호도하는 세력은 타도의 대상이며 실로 애국자들이 궐기해야만 하는 세상인 것이다.

 

어찌 미국 뿐이랴!

보편 상식적인 가치를 따져 애국을 논해야만 한다.

 

밥이 된 사내 이야기 10

성서는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곧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를 하기 전, 예수가 사탄에 이끌리어 세 가지의 시험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돌로 밥이 되게 하라”, “기적을 보여라, 신이 너를 지키리니…”, “나를 경배하라, 세상을 네게 주리라” 하는 세 가지 시험 말이다.

이것은 바로 당시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던 유대 민중들이 원했던 절실한 바램을 해결해 줄 세가지의 열쇠이었다. 경제, 정치, 종교적 압제에서의 해방을 이루어줄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시작부터 “아니오”였다.

당시의 민중들이 바라는 해결책을 처음부터 “아니오”하며 그들 앞에 선 사람이 예수였다.  갈릴리 해변에 모여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예수와 듣는 사람들의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까닭이다.  예수는 당시 갈릴리 사람들처럼 밥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그런데 밥을 바라보는 예수와 듣는 청중 사이에 간격이 있었고,  그 간격 때문에 예수가 죽는다는 말이다.

밥의 문제 때문에 이야기를 들으려 온 사람들의 관심은 제 배 채우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예수는 “나누는 밥”을 말하였던 것이다. 있는 분, 없는 놈이 예수의 관심이 아니었다.

성서를 다 인용할 수가 없다. 만일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지금 성서를 찾아 읽어 보라. 신약성서 누가복음 14장 12절에서 24절까지이다. 얼핏 읽으면 부자에 대한 피해 망상적인 기피증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일방적 편애가 나타난 것 같지만 “아니다”이다.

밥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을 예수는 우선 피력하였고 예수의 관심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잔치상에 모든 이들을 초대한다. 있는 놈, 없는 분을 가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도 나온다. 누가는 어떤 사람이 잔치를 열었다고 하였고 마태는 왕이 잔치를 열었다고 기록한다. 어쨋거나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먼저 초청을 받은 이들은 그들의 가진 것 때문에 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 화가 난 주인은 가난한 자, 불구자, 소경, 절뚝발이는 물론이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불러 내 집을 채우라고 명한다. 잔치상이 무엇인가?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이 나누어 먹는 잔치상을 차려 놓은 것은 주인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초대한 주인은 애초 어떤 편파성을 띄고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나누어 먹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잔치상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밥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끝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밥을 나누는 나라인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예수가 말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감을 얻어 “밥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오 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기적은 무엇을 말함인가? 나누어 먹는 밥상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김지하 이야기 나왔으니 한마디 하고 갈까. 그가 ‘밥이 하늘이다’고 선언했을당시만 하여도 그는 맨정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 ‘나누어 먹는 하늘’이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던가? 그도 제 배가 고팠을 터이고… 선언이 아뿔사였겠지. 그를 탓할 일 없다. 느끼고 깨달으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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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쉬우리라”고 가히 혁명적 선언을 한 예수의 참 뜻은 바로 나누어 먹는 밥상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결코 자랑일 수 없으며 부를 누리는 것이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부와 가난의 본질 곧 나누는 밥상 정신이 있고 없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말이다.

예수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살았다고 자부하는 부자청년이 “영생의 길”의 길을 묻자 그에게 한 대답 아니 명령은 “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갈파한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 내용이다. 나누는 밥 말이다. (나누는 형식에 대한 고민은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터이고, 비록 돌고 돌며 때론 뒷걸음치는 것같지만 그래도 공평한 방법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 있는 이들에 의해 역사는 발전해 나갈 것이다.)

두 번째는 “기쁨”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을 누리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누어 먹는 곳”이라는 말은 아주 현실적 표현이다. 나중에, 뒤에 가서, 그 날에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누어 먹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웠다”

 

 

***오늘의 사족

오병이어 곧 물고기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마리 그거 한 번 생각해 보자.

오천 명이 있었다. 애들과 여자는 빼고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종교적 모임 그러면 당연히 여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 거기 얼마나 있었을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명은 넘었었겠지. 글쎄 그 당시 인구로 이게 가능했을까? 믿자. 믿음인고로.

그러나 그 광야에 그렇게 나 온 이들 가운데 먹을 거 가지고 온 사람이 달랑 한 가족 뿐이였을까? 그건 아니였겠지. 딱 자기들만 먹으려고 짱 박고 있었겠지. 움켜 쥐고 있었겠지. 나와 내 가족들 배채우는 게 우선있을 터이니…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다. 기적은 있다. 나누려는 맘이 바로 기적의 씨앗이었다. 예수의 기적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 아닐까?

열 두 광주리 남은 이야기는 이 글의 이부(가슴으로 만난 예수 이야기)에서 이어가려 한다.

 

 

오만 잡생각

오만 잡생각”

이런 저런 걱정거리나 머리가 복잡할 때 종종 쓰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오만 잡생각”이라는 말엔 아주 과학적인 근거가 있더군요. 아주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하나 말씀드리지요.

 

National Science Foundation(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연구 결과랍니다.

 

사람은 보통 한 시간당 천 개가 넘는 생각을 한답니다. 물론 생각의 편린 곧 생각의 조각들(fragments)의 숫자이지요.  지금 저처럼 어떤 글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는 시간당 약 2천 5백가지가 넘는 생각들을 한다고 하네요.  보통사람들은 하루에  일만 이천개 정도의 생각을 하며 살고요. 생각을 좀 많이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약 5만개의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하지요.

 

참 우리 선조들은 연구하지 않아도  다 아시고  “오만 잡생각”이라고 하셨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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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지요.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5만에서 6만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고요. 그런데 그의 연구에 따르면 그 오만 잡생각 가운데 15% 정도는 긍정적인 생각들이고 나머지 85%가 부정적인 생각들이랍니다. 일테면 걱정, 근심, 불안 등등과 연관된 생각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지요. 

 

이게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당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젠가 고 김대중대통령의 마지막 일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를 죽 읽다가 저를 사로잡은 것은 2월 7일에 쓰신 단 두 문장으로 된 일기였답니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제가 감히 거기에 무슨 사족을 달겠습니까? 그냥 가슴이 싸하게 다가 온 말씀이었지요.

 

그 분도,  아니 그 분은 저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많은 생각을 하시며 사신 분이지요. 어쩌면 하루에 5만, 6만이 아니라 10만, 20만 아니 그 이상의 생각들을 하시며 사셨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하루를 보내고 그 날의 일기에 달랑 저렇게 두 문장으로 정리해 놓으신 것을 보면 누리셨던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일기를 다 읽고 제 마음에 든 생각 하나. “참으로 그 분은 긍정의 힘으로 사신 분이구나” 이거였답니다.

 

장사 – 역시 긍정의 힘이 이끌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하루 하루를 15%의 긍정적 생각들이 이끌고 가게해야 합니다. 긍정적 생각들이란 지푸라기라도 잡는 어떤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는 그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생각들을 참 그 방향으로 나가게 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 분이 살아 온 길이 바로 그렇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삶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큰  사람만이 그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작은 구멍가게 하나 잘 꾸려 나가는 일도 마찬가지겠지요.

 

장사 안 되어서 걱정”, “이거 진짜 큰일”, “아이고 어쩌지” 그 부정적 생각들을 머리 흔들어 떨쳐 버리고, “이건 내게 좋은 기회야”, “그래, 이거 하나 바꾸어 보자”, “이렇게 다시 시작해 볼까” 긍정적 생각들로 아주 작은 것부터 준비하고 행동으로 옮겨 보는 일.

 

어떠세요?

한 번들 함께 해 보시지 않으시려는지요?

 

 

실행하는 사람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행한다. 한 시대가 그 전 시대로, 또는 그 전의 문제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뜻이다포도주 병의 코르크 마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역사도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사실은 수준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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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또는 비지네스맨의 영원한 멘토라고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의 말입니다. 어떤 하나의 현상을 보면 마치 역사가 뒷걸음치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전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을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의 개인사나, 조직의 역동성을 굳게 믿는 단체나 크거나 작은 기업사, 민족의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진 민족사 나아가 인류 보편의 자유를 신봉하며 나아가는 세계사는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실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아주 많은 일상적인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매일 3시간씩 연습을 한다. 아무도 그가 연습을 좋아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을지라도 40살 이후에도 실력을 향상 시키려면 그것을 즐겨야 한다나는 몇 년 전 한 피아니스트에게서 “나는 내 손가락에 생명이 있는 한 연습을 한다”는 훌륭한 말을 들었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연습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책 ‘경영 바이블’에서 한 말입니다.

무릇 직업적인 일이란 대부분 아주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즐길수 있어야합니다. 그 삶이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지요.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이른 아침

버섯공장 거름냄새

앞뜰

파랗게 물오른 버드나무 아래

차마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진 잔가지들

뒤뜰

흐드러진 개나리 사이

겨우내

숨 져 마른 관목

아래

볼품없이 누워있는

내 머리만한

돌멩이 하나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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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예수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듯 부활도 끝이 아닙니다. 문제는 부활이후(以後)입니다. 탐스런 목련, 뒷뜰에  흐드러진 서울 개나리, 하얀 배꽃, 날렵한 더그우드 꽃잎들… 봄 꽃으로 꽉찬 세상만이 봄이 아닙니다.

제 딸년이 코끝에 사래질 치는 버섯공장 거름냄새도 주워 내다 버려야 할 떨어진 버드나무 잔가지들도 앙상히 말라 톱질 기다리는 죽은 나무도 일 년 내내 그 자리에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어 본 적 없는 못생긴 돌덩어리도 봄입니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 한 자리 꿈꾸었던 제자들…

부활이후에도 여전히 한자리 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여인이었다는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베드로는 바울에게 밀려 났고, 야고보, 요한 역시 한 자리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바울은 뭐 크게 출세했나요. 발품 팔아 돌아 다니며 멍석 짜는 일에서 벗어 나지 못한 삶이었지요. 봄은 그렇게 오는 것이지요. 부활 이후 말입니다.

“위로자로서

화의 축원자로서

삶의 조언자로서…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자로서”

밥이 된 사내 이야기 9

지난 이야기에서 민감한 부분에 대해 마구 휘둘려 말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어찌하랴 내 뜻을 나타내는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이야기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한 내 말에 꼬리를 단다. 사람이 죽은 후 또는 세상이 종말을 맞은 후에 대한 열쇠는 세상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말이다. 그것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다. 자 이렇게 한 걸음 물러서면 더욱 더 “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관심이 되는 것이다. 

 

일테면 “나”라고 하는 인생을 놓고 보자. “나”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하루에 열 두 번씩 지옥불에 던지어 진다. 끊이지 않는 탐심(貪心)과 욕심과 음심(淫心) 거기서 끝나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으리. 나 하나 세우자고 아니면 조금 편하자고 이어지는 거짓말과 허세 진짜 가도 열 두 번씩 간다. 지옥에. 

 

이 어쩔수 없는 “나”는 예수를 기댄다. 예수의 십자가에 기댄다.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기는커녕 그의 십자가의 공로 의지하여 “내가 예수 당신을 믿사오니” 그 말 한마디로 하루 열 두 번씩 지옥불에 던져지는 그 순간 나는 천국열차로 갈아탄다?

 

 

자! 이건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믿음에 백 제곱을 한다하여도 그건 사람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니 신께 맡기라고? 예수는 결단코 그렇게 쉬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선포를 들은 이들은 이 천 년 전 유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을 갖고 통치하는 나라이다. 유대의 역사는 이 전통으로 이어 온 역사이다. “오직 여호와만”이라는 기치 아래 역사를 일구어 온 민족이 그들이다. 다윗의 후예에서 구세주가 나타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믿음으로 지탱해 온 역사이다. “반가와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외치며 너희 하나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고 시온을 향해 이르는구나(이사야 52,7)” 유대민족 염원의 소리이다. 하나님이 왕권 곧 주권을 세우는 현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가 살았던 시절은 이 하나님의 주권이 아주 실종된 상황이었다. 유대민족은 로마의 식민이 되어 로마황제의 통치 아래 있었다. 조선총독부 통치 아래 일본의 식민이었던 한민족이었다. 썩을대로 썩은 성전체제는 유대민족에게 이중고(二重苦)를 안겨 주었다. 당시의 성전체제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였다. (덧글 하나 붙일까? 이즈음 한국에서 “그 때(일제시대)가 좋았다”는 미친 놈들이 널 뛴다고 하더라만, 그게 우리 민족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민족, 어느 때건 그런 미친 종자들은 있어 왔다. 더하여 역사는 정말 긴 것이다. 하여 자괴는 금물일진저.)

 

이른바 산헤드린과 성전의 두 권력은 당시 유대인들의 등에 엄청난 짐을 지우는 권력기관이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들을 대표한 최고의결기관, 오늘로 말하자면 국회쯤 되겠다. 당시 로마제국은 산헤드린에 보내는 공문서에 “정부”, “원로원” 또는 “예루살렘 시민”이라고 호칭했던 것으로 보아 유대민족을 대외적으로 내세우던 기관쯤 될 것이다. 대사제를 중심으로 10명 내외의 제사장으로 구성된 상임집행부에 의해 운영된 성전체제는 그 권한이 막강하였다.

 

일테면 경제발동권이 그것이다. 첫째가 십분의 일세(십일조)를 거두어 드리는 권한이다. 둘째는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조(이런 것이 바로 정치든 종교든 권력형 사기이다만)를 내세워 모든 유대인들을 최소한 년 1회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현실이 그러하였다. 만일 십일조를 못 내든가 최소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 참배를 못하는 경우, 그들은 죄인이 된다. 

또 하나 성전체제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부과한 짐은 이른바 안식일법령과 정결법이다. 안식일법령은 가히 사람을 꽁꽁 얽매는 법령이었던 바 일테면 “안식일에는 이천 걸음 이상 걸어서는 안 된다‘,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 “두 글자 이상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자를 고쳐 다시 써서도 안 된다”, “물건을 옮겨서도 안 된다”, “안식일에는 구걸을 해서도 안 된다” 온통 아니된다였다.(이즈음 한국도 이 바람 불었더라. 안 되는 게 점점 많아진다지) 

 

예나 지금이나 있는 분들이야 무슨 고통이 있으리. 다 없는 놈들이 문제지. 신명기법전 곧 여호와를 고백하던 초기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분명 가난한 자들을 쉬게 하려는 정신으로 만들어 진 것이건만 체제화된 성전의 공권력은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는 방편으로 안식일을 이용하는 세태이었다.

 

이 위에 정결법은 더욱 가관이었다. 음식 그릇을 씻는 일에서부터 의복, 몸에 대해 어떻게 정결하게 하여야 하느냐를 아주 자세히 규정해 놓은 이 법은 사실 없는 놈들은 거의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다 죄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이 듣는 이야기 아니더냐. 성수주일, 십일조, 거룩 이거 지키지 않으면 지옥행, 오늘도 도처에서 그리 아우성들 치지) 

 

자! 로마에 뜯기고 동족의 성전체제에 뜯기고 죄인중에 큰 죄인이 된 사람들이 기다릴 것이 무엇이었겠나? “저 세상”아니었겠나? 그것이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나라이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하나님의 세상 곧 우리들의 세상이 꿈 아니었겠나? 물론 그 평온한(?) 세상이 천 년 만 년 가주기를 바라던 세력들도 있었겠지. 로마의 권력과 그에 아부하던 유대족들, 성전체제 아래 배 두드리던 권세가들 그 무리들에게야 바로 그 때가 천국이었겠지. 구태여 일제치하 한민족과 비교 아니하여도 알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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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때 갈릴리 바다 바람 맞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소리친 것이 예수이다. 몰려 든 사람들은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다 “행여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일까?”하는 설레임으로 다가 선 이들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는 구세주의 왕국 곧 메시아의 나라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랐겠는가? 정치적 해방, 경제적 평등, 종교적 자유 그랬겠지. 그 때나 지금이나 원초적인 사람들의 바램, 비나리 뭐 그런 것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여든 사람들과 예수의 생각은 처음부터 달랐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였다. 그의 죽음의 서곡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2013부활주일 아침에…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믿고 간구하며

 

아리랑

여러 해 전에 필라에 사시는 지인께서선명회 합창단 공연입장권을 보내 주셔서 가까이 지내는 몇 가정 부부들과 함께 그 저녁 어린 천사들의 화음을 만끽하였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밤 동행들에게오랫만에 누린 문화 생활이라고 말하였었고.

천사들이 마지막으로 청중들에게 선사한 노래는 우리 민요 ‘아리랑’이었는데 그 곳에 모인 모든 동포들이 목청 높여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 밤 그 곳에 모인 모든 동포들이 한 목소리로 불렀던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구전민요이다. 이 아리랑과 뗄 수 없는 말은 ‘한()’이다. 아리랑은 대개의 다른 민요와 더불어 두레노레 곧 ‘노동요(勞動謠:일하면서 부르는 노래)’이었다. 

 

아리랑

어느 누구든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잊혀지지 않는 한의 응어리는 갖고 살게 마련이다. 일테면 가난에서 오는 한, 까닭없이 빼앗긴 것에서 오는 한, 부모를 일찍 여윈 한, 자식을 앞세워 보낸 한, 성차별애서 오는 한, 고부간의 갈등에서 오는 한, 남녀간의 사랑에서 말미암은 응어리진 감정 등등 이런 것들이 집단화 되어 공동의 노래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아리랑이다.

 

비록 개인적인 넋두리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집단화 되어 표현될 때 그것은 이미 직업 또는 사회공동체의 공통적 애환을 담아내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아리랑’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기도 하였다.

 

아리랑이 언제 어느 때부터 불리워졌는지, 아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연구하는 학자마다 다 다른 소리를 하므로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아리랑(我離娘)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민중들이 괴로운 말만 듣게되어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한 말에서 나왔다는 아이농(我耳聾)설,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아랑전설(阿娘傳說), 신라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나왔다는 알영설(閼英說), 이밖에도 낙랑설, 아라리설, 아린설, 얄리얄리설등 연구하는 이마다 주장이 다르다.

 

그러나 이즈음은 노래의 조율성과 흥을 돋우기 위한 ‘무의미한 후렴소리’로 뜻이 모아지고 있으며, 노래의 기원은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다가 구한말 이후 전국적으로 파급되었고 특히 1926년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 이후 급속도로 번져 민중의 민요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는 이십여 년 전에 발표한 정호완의 “아리다, 쓰리다”설에 귀를 귀울인다. 밀양아리랑에서 나오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은 고유한 우리 말 ‘아리다’와 ‘쓰리다’에서 나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해석을 터로 한다면 “아리랑 고개를 넘는 일’이야말로 ‘아리고 쓰린’ 오늘을 이겨내는 일이며, ‘아리고 쓰린’ 한()을 훌훌 털어 냄 아닌가?

 

저마다의 아픔과 시림의 고개, 이민(移民)의 시림과 아픔의 고개 나아가 민족의 아픔과 시림 곧 조국의 분단 – 그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아니 아주 넘어선 후 부르는 <새 아리랑>을 기다린다.

 

새 아리랑은 감상적이고 슬픈 계면조(界面調)가 아니라 평안하고 화평한 평조(平調)에 담아 낼 일이며, 한에 응어리진 소리가 아니라 해원상생(解怨相生:원과 한을 풀고 모두 더불어 함께 사는)의 소리여야 할 일이며, 알량한 주의(主義)나 종파(宗派)가 아니라 ‘시리고 아린’고개를 넘어선 민족의 큰 정신 담아내는 노래라야 할 것이다.

 

그 새 아리랑 소리 높여 부를 날을 꿈꾸며.

 

이즈음 아내는 아리랑을 이용한 생활무용을 통해 한국어와 문화를 알리는 꿈에 젖어 있다.

 

꿈을 꾸는 한 삶은 아름다운 법 아닐까?

 

한과 꿈

얼추 이십년 전에 아버님께서 책을 한 권 펴내신 적이 있다.

일흔 해 이 땅을 살아오시면서 당신께서 겪고 느끼셨던 일들을 담담히 적어 내신 것이었다. 아주 평범하지만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아오신 모습대로 책의 내용 역시 지극히 평범하였지만 건강하고 바른 삶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었다. 책 제목이 <한울림>이었는데 나는 내용보다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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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부제로 붙여 논 <하나뿐인 인생을 위하여>가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하나뿐인 인생,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세월 – 동서고금의 철인(哲人)이나 현인들의 말씀에서부터 유행가 가사까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지만 그게 제 삶에 무르녹아 드러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하나 뿐인 인생을 외길로 걸어 온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뜻을 세우고 그 길을 서두르지 않고 오직 한걸음으로 또박또박 걸어 온 이웃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천방지축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엄벙덤벙 살아 온 내 삶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뭐 대단한 것을 이루어 낸 이들을 말함이 아니다. 이민와서 이삼십 년 때로는 사오십 년 가까이 다운 타운 코너 스토아나 세탁소를 꾸리며 웃음 잃지 않고 자식들 훤출하게 키워 내고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손길 선뜻 내어 밀지만 결코 내세우지 않는 모습들이 부럽다는 말이다.

 

꿈많던 어린시절이 어찌 나에게만 있었을까 보냐!

품었던 꿈에 소원과 기도와 비나리를 아니 실었던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걸어오다 보면 꿈은 그냥 꿈이 되고 꿈조차 꾸지 않았던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는 일이 나만 겪었던 일은 아니리라. 그랬다. 꿈이 많았다. 이것도 해 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꿈도 꾸었다. 어쩌랴! 모두 개꿈이었던 것을.

 

이제 환갑줄이지만 철이 아니 든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스무 살 그 언저리쯤이었다. 나는 <한>이라는 말에 깊이 빠져 들었다. 한,  ,   깊이 천착(穿鑿)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마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동무처럼 내 삶의 그림자가 되어 쫓아 다녔다.  

 

신분이 미국시민으로 변신하며 <한>은 더욱 나를 따라 다녔다.

내 자식놈들 특별히 아들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놈의 <한> 때문이다. 딸아이의 이름 “한나”는 그런대로 넘어 가겠는데 아들 녀석의 이름 “한울”은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 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들녀석의 이름은 이제 <한 Han>이 되어 제 친구들이 다 그렇게 부른다. 감사한 일은 녀석의 맘 씀씀이나 이웃에 대한 배려가 크다.

 

이 나이에 다시 꿈을 꾼다 하였거니와 그 꿈은 다시 <한>에서 시작한다.

더러는 나더러 장사꾼이라고 말하지만 애시당초 장사와는 연()이 먼 사람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민을 가꾸는 우리 한인 동포들을 위하여”라는 내 말은 순수하다. 내 거울에 비추어 그렇다는 말이다. 그 맘으로 새롭게 꾸어 보는 꿈.

 

늘 그 꿈으로 산다.

원컨대 기도해 주시기를……

이따금 슬퍼지는 까닭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며 목청꺽어 노래한 사람은 나훈아요,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떨리는 고음으로 호소한 이는 남궁옥분이었다. 어디 유행가 뿐이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래와 무용, 미술과 건축, 문학 나아가 종교까지 ‘사랑’을 뺀다면  아마 인류사는 적막했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은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거나 아무리 사랑이 이것이다고 가르쳐 주어도 모르는 사람이다’ – 기독교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이다. 사랑에 대해 이보다 뛰어난 해석이 있을까? 사랑이란 말이 머리 속 또는 가슴 속에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사랑일 것이므로. 

그 사랑을 주제로 이 땅을 열심히 살다가 서른 셋의 나이로 육()의 삶을 끝낸 이는 바로 예수다. 그는 ‘나’와 ‘당신’ 그리고 ‘나와 당신’을 묶는 ‘우리’에 대응하는 ‘그들’까지 모두 사랑으로 묶고자 서른 세해를 살다 살다 ‘사는 것’으로 아니되자 자기가 죽음으로 그 본 보이고자 하였다. 

어디 죽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이들이 예수 뿐이겠나? 서로 사랑하다 하다 미칠 것 같이 사랑하다 끝내 죽은 연인들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요, 조금 넓게는 제가 사는 마을을 사랑하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널려 있고. 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여 목숨을 버린 이들의 이야기도 숱하다.  

그들과 예수의 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 예수는 스스로 신이었고. 그의 사랑은 신의 사랑임을 확신하고 선포한 것이 다르달까? 그러나 어디 스스로 신()임을 자처한 이가 또 예수뿐이겠나? 오늘 이 순간에도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미치광이들이 널려있거늘. 

예수는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쉬운 말을 썼다. 비록 깊은 비유로 숨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가 사용한 말들은 당시 하루 먹고 살기 바빳던 사람들의 일상적 언어였다. 소위 갈릴리 말, 아람어였다.  일테면 요새말로 어려운 신학적 용어, 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나와 당신들이 폼 잡지 않고 쓰는 말들을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사랑’을 전했다는 이야기다.    

사랑그가 쉬운 말로 전했던 사랑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대한 신의 절대적 사랑과, 서로 사랑하라는 인간 사이의 상대적 사랑을 말했다고 믿는다.  

어려운 말 하지말고 쉽게 쓰자.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상대적이란 말이다. 모든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백 퍼센트 전폭적으로 나는 사랑을 베푼 사람이고 너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오직 신 뿐이란 이야기다. 그것이 예수가 말한 사람 사이의 사랑이야기다. 

행여 “나는 너와 너희를 위해 절대적 사랑을 베풀었건만 너희가 나에게 무엇을 하였는가?”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직업이 어떤 것이든 이미 그는 예수의 사랑과는 동떨어져 있다.  

살며 ‘나는 주기만 했고, 너는 받기만 했다.’며 우기는 얼굴들을 보면 왜 이리 슬퍼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