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

연휴를 맞아 나섰던 나흘 짧은 여행길, 돌아오니 그저 찰나(刹那)였다. 허나 참 좋은 벗 내외와 우리 내외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들을 내가 기억 하기에 따라 내겐 영원(永遠)이 될 수도 있을 터.

함께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걷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아내들이 쇼핑하는 즐거움을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구름 속에서 만난 신(神)에게 드리는 감사다.

보잘 것 없는 내 삶 뿐만 아니라 내가 함께 하는 가족들과 이웃들 나아가 뉴스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시는 신을 나는 믿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시고 평등하신 은총을 내리시는 신을 믿는다.

오늘 살아 숨쉬는 모든 삶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 간 이들과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내일의 생명과 함께 하시는 신을 믿는다. 이른바 역사와 함께 하시는 신을 믿는다.

허나 신은 언제나 내가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선 손길로 내 개인적 삶과 오늘이라는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무리들과 어제와 내일을 아우르는 역사 속에서 일하심을 믿는다.

일테면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이 행한 선과 악의 행태를 가름하는 잣대로 상과 벌을 주시는 일은 절대 않는다는 사실, 또는 도둑놈 강도 나아가 타락하여 저열하고 비겁하고 무자비한 권력자들에게 벼락을 내려 일거에 몰살 시켜 버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다.

신은 오직 그만의 깊고 독특한 방법으로 일하심을 믿는다.

때론 엇나간 내 삶을 향해 ‘사람되기’를 촉구하시는 그 방법대로 뉴스 속 답답한 세상사를 향해 신은 오늘도 기다리시며 그의 뜻을 헤아리도록 일깨우시는 일을 쉬지 않고 있음을 믿는다.

‘사람되기’를 일깨우시는 신의 소리를 듣고 사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구름 속에서.

오직 감사함으로.

7. 5. 23

세월

아버지날 아버지를 뵙다. 누워지내신 지 두 해 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신기하기도 하지, 욕창 하나 없이 얼굴은 아직도 맑으시다. 다 내 누이들 공덕이다.

“어 왔구나!”. 짧은 인사를 건네시는 아버지 얼굴이 환하다.  드믄드믄 건네시는 말, “이젠 내가 할 일이라고는 즐겁고 감사하게 마지막 시간 기다리는 일….”

그리고 채 십분이 지나지 않아 불편함을 토로하시는 짜증. 아무렴 내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

아들과 사위, 딸 며느리의 아버지날 전화 인사를 받다. 두어 주 후에 다들 오겠단다.

잔디를 깍다. 나는 아직도 Riding Lawn Mower가 아닌 내가 밀고 다니는 잔디 깍기 기계를 쓴다. ‘운동 삼아…’하는 내 말은 진심이다. 잔디 깍는 날이면 족히 만보는 걷기 때문이다. 물론 이즈음 잔디 깍는 날이면 ‘Riding Lawn Mower를 사야지…’하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하여 나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다.

아내에 대한 첫 기억은 내가 고등학교 이학년 때의 일이다. 아내는 중학교 일학년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다만 남는 기억은 그 때이다. 그렇게 한 동네, 한 교회에서 자랐다.

그리고 세월 흘러 아내가 한 여자로 내게 다가온 것은 그녀가 대학 삼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백수(白手)였다.

몇 년, 짧다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해 예까지 왔다. 그렇게 결혼 후 쌓인 세월이 또 사십 년이다. 하여 영원할 것 까진 없지만 오늘은 온전한 동지다.

2023년 아버지 날에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아쉬움을 품지 않고 저무는 삶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이제라도 후회를 되씹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지는 말진저.

하여 또 꿈을 꾼다.

그렇게 읊조려보는 정희성의 시 한편.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무릇 부부, 가족, 동지(同志)란 다 그렇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뒤적여보니 40년 전 우리 내외도 푸르렀었다.

*글라디올러스 꽃망울 맺힌 날에

평화 그리고 말씀에

필라델피아 아트 박물관을 찾은 건 거의 스무 해 만이다.  ‘언제 왔었더라….?’ 그 기억을 되찾는데 한참 걸렸다. 그 때는 박물관 구경이었고, 오늘은 박물관 앞 계단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를 외치기 위함이었다.

늘 그렇듯 이민사회에서 이런 모임 머리 수는 늘 소수다. 우리 내외가 아직도 그런 소수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어 참 좋다.

간만에 만난 후배가 모처럼 제 자리 찾아가는 듯 했던 <민주평통자문회의>가 다시 보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 기관에 대한 관심이 애초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들이 보이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과 행동에 대해 늘 박수를 아끼지 않는 내게 그의 안타까움이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떠올려 본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 그리고 그의 말씀 하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마태 10: 34)” 다른 곳에서는 칼이라는 말 대신에 ‘불’ 또는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고(누가 13: 49-51)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칼이나 불이나 분열은 모두 같은 뜻으로 폭력적 분쟁이나 갈등, 또는 전쟁을 의미하는 말들입니다. 예수의 이 선언은 확실히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거리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말입니다.

예수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정의에 근거하지 않는 평화란 정글의 상태일 뿐으로 그러한 상태는 평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태여 평화라면 가짜 평화일 뿐입니다. 그런 가짜 평화가 지배하는 곳에 예수의 진정한 평화의 복음이 선포될 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분열과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유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중략…….

법, 질서,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불평불만과 저항을 강압적 수단으로 억압하여 사회를 조용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평화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상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의 해방과 정의 복음은 곧 이러한 가짜 평화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해방과 정의의 복음, 사랑과 평화의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는 곳마다 칼, 분열, 싸움이 일어났고 혁명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 예수의 복음 위에 굳게 두 발 딛고 서서 통일과 평화 운동 맨 앞 열에 서 계셨던 분. 아마 살아 계셨다면 윤석열 일당을 향해 예수의 검을 내리치셨을 터.

서울 법대 출신인 그를 생각하니 그 학교가 매양 무식, 무지, 무능 위에 비겁, 야비, 파렴치를 겸비한 윤석열 양아치 패거리들만 배출한 것은 아닌 듯.

언제나 굳건히 변함없는 후배를 위하여!

투쟁에

종종 한국뉴스들은 아주 먼 낯선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오곤 한다. 허긴 떠나온 세월이 있으니 어쩌면 그것이 아주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 먼 거리의 간격을 좀 좁혀보려는 생각으로 몇 권의 책들을 구해 읽고 있다. 그 중 하나, 시민운동가 안성용이 쓴 <한국에서의 정치 투쟁>이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제 6공화국 시기에 있었던 대선, 총선, 지선 등 모든 선거들의 결과와 선거를 전후한 상황과 민심, 정당과 시민사회 등의 당시 모습들을 잘 정리해 준 책이다. 그가 말하는 정치투쟁이란 곧 선거투쟁이다.

내가 온전히 겪지 않았던  시절들의 이야기라 비록 알고 있던 것이라도 이해의 깊이를 더해 주었고,  특히 교육과 입시제도의 변화에 대한 정리와 소개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뜨문뜨문 접하는 이즈음 한국뉴스들은 87년 체제 곧 제6공화국를 끝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굳게 하였었는데 저자 안성용은 이를 강하게 주창하고 있다.

<제7공화국 수립의 때가 왔다. 평등, 평화, 생태가 시대정신이다. 절대다수 대중을 위한 제 7공화국을 세울 때가 됐다. 위기는 새로운 대응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몇 가지 실천과제들을 제시한다.

그의 꿈들이 이뤄지길 빈다.

다만 체제의 변화,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든 개혁이라 부르든 그 변화의 시작은 정당이나 정치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그의 말마따나 “자각한 대중의 투쟁이, 거리에서, 새로운 미래를 여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언제나 큰 변혁의 시작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광장에서 자각한 대중이 만들어 내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다. 올바른 선거투쟁을 하기 위한 진정한 투쟁의 때이다.

책장을 덮은 오늘이 마침 6월 10일이다.

낯섦에

사흘 째 낯설게 붉은 빛으로 다가오는 아침 해를 마주한다. 그리고 온종일 잿빛 하늘과 때론 타는 냄새와 함께 다가오는 탁한 공기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사흘 째다.

이런 날씨가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 예보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산불 탓 이라는데, 그 산불의 규모가 가히 한반도 크기를 태우는 정도란다.

뉴스는 대기 오염 지수가 상당한 오염 단계에 이른다며 특히 노인들,  심장이나 폐질환 환자들은 조심하고 집 안에 머물라고 권고 한다.

제기랄!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노인 나이에 심장과 폐에 이상이 있다는 가정의의 소견에 따라 전문의의 처방을 앞두고 있는 내가 무시할 수 없는 권고였다.

흐흐흐… 하며 혼자 작은 웃음을 웃다. 노인, 심장, 폐… 어느날 문득 나와 가깝다며 찾아 온 말들이다.

곰곰 따져보니 살아 온 모든 걸음걸음 마다 만난 것은 낯섦이었다.

그 낯설음을 벗 삼아 여기까지 이른 세월 돌아보면 그저 감사 뿐.

*** 사흘 전 아침 내 뜰에서 노니는 여우와 사슴들을 보며 순간 든 생각이었다. “참 좋다.” 놈들이 망쳐 놓는 내 작은 텃밭의 작물과 화단의 꽃들은 잠시 잊고.

무릇 모든 아침은 낯설어야 좋다.

새 시작

살며 ‘사’짜로 끝나는 직업군들은 만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내 바람일 뿐,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테면 판, 검사, 변호사, 의사, 박사, 목사 따위들을 말하는데, 다시 되뇌이지만, 그 직업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그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 검사나 변호사를 일로써 내가 만나게 되는 경우란 없어야만 백 번 좋은 일이다.  물론 소시민적 삶을 사는 내게 해당하는 말이겠다만.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 박사 역시 다를 바 없다. 내가 학문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전문 분야의 박사를 만나 시간을 보낼 특별한 까닭도 없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 굵어 제 생각 가질 나이를 먹은 후 신과 내 사이의 연결 고리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살다보니 내 가까운 가족들 가운데도 그 ‘사’짜 직업군들이 여럿 있게 되었다만 그들 업의 특성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하다.

그 바램은 여전하건만, 제 바램 대로 사는 삶이 어디 있겠나?

한 동안 꽤나 피곤 했다. 난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봄철 이후, 생업의 강도가 생각보다 조금 심했기도 했고, 인력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 그 피로는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달 포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가정의(醫)로 부터 들은 말이었다. “심장에 좀 문제가 있어요. 정밀진단을 받아야겠어요.”

며칠 전 정밀진단 결과를 알려 주는 가정의의 말이었다. “심장판막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젠 심장 전문의를 만나셔야겠어요.”

그렇게 심장 전문의와 약속을 잡아 놓고 이틀 여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오늘, 여느 일요일과 다름 없이 잔디를 깍고 물을 주고, 한 주 만에 꽃이 핀 열무를 ‘아뿔사’하며 거두어 김치도 담으며 환한 웃음을 짓다.

“에고, 이 눔아! 나이 따라 가는 게야~ 싫어도 의사 자주 만날 나이가 된게지!” 그 한마디 머리 속에 떠올리며.

곰곰 따져보니, 그저 감사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상용하는 약 하나 없거니와 그 흔한 바이타민 제대로  먹어 본 일도 없었으니 이젠 의사와 친해져도 불평할 일은 전혀 없어야 마땅할 일.

늦은 밤, 읊조려 보는 말, “그래 이젠 진짜 노년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나만에.

운동에

1.어느 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삶을 뿌리 채 흔들어 바꾸는 현상을 무어라 일컫든 그 변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컬어 민이라 부르던 민중이라 부르던 시민이라 부르던 사람살이 큰 변화의 중심 축은 언제나 그들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들이 옳는 것 만도 아니고, 그들이 주인공이라는 역할도 깨닫지 못할 때가 더욱 많지만, 그렇다 하여도 사람살이 진일보의 큰 걸음 뻗쳐 내디딜 때면 그 공동체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들이 중심이었다.

사람살이를 바라보는 내 믿음의 잣대다.

2. 하루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내 피로를 풀어준 것들 – 쉴 곳 찾는 작은 새들의 소리와 내 눈길을 사로잡은 새 생명들이다. 따지고보면 다 내 게으름과 아둔한 탓일 뿐 사계절 어느 순간에도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움직임은 끊이질 않는다.

3.그리고 운동에 – 거창할 것 하나 없다. 지금은 이런 노래 따라 읊조려 보는 게 바로 운동이다.

이틀 연휴 잘 쉬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다. 일주일에 72시간은 그저 평범했거니와,  84시간 아니 아흔 시간 까지도 일하며 그러려니 하며 살았던 이민 세대다.

딸아이는 어릴 적에 내 가게를 ‘아빠 집’이라고 했었다. 그나마 내 업은 일요일 하루는 쉬었다만, 일년에 쉬는 날이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일에 매어 사는 이들이 넘쳐났던 이른바 이민 일 세대 친근했던 얼굴들은 이젠 떠나고 없거나, 은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업으로 한정 짓자면 동네에서 내가 가장 오래된 현업 일꾼인 듯하다.

딱히 특별한 재능도 없거니와, 이렇다할 취미나 즐기는 놀이조차 없는 나는 그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다만 일하는 시간은 할 수 있는 한 줄일려고 하고, 내 몸과 맘에 맞게 쉬며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는 있다.

에미 애비 된 마음이 다 엇비슷하듯 나 역시 우리 애들만은 우리 세대처럼 일에 매달리지 않고도 삶을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암튼 오늘 내게 주어진 이틀 연휴 하고픈 일 다하며 잘 쉬었다.

그 중 하나, 검사 진혜원이 쓴 <검사의 검찰일기, 진실과 정의에 대한 성찰>을 차분히 완독한 일이다. 대충 한번 훑었다가 틈나면 완독해야지 미루어 두었다 마친 일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내가 놓치지 않는 희망을 보았다.

글쓴이 진혜원이 이 책에서 끝까지 놓지 않고 있는 화두((話頭) 둘은 사람과 민주주의였다. 책에 상당 부분이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있었는데 그 근본은 바로 사람에 대한 통찰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그는 몇 번에 걸쳐 이렇게 강조헀다. “귀찮아야 민주주의고 꼼꼼해야 속지 않는다.”

튜립 구근들을 거둔 자리에 다알리아 구근들을 심고, 진혜원의 책장을 덮은 후 바라 본 하늘, 내 눈이 닿는 끝에서 끝 까지가 모두 내 땅인 양 부자가 된 듯한 쉬는 날에.

5.29.23.

아내

모처럼 사람 붐비는 모습을 보았다.

‘좀 걸읍시다!’ 하며 나선 길이었다. 우리 내외가 종종 걷기 위해 찾아 가는 곳, Longwood Garden 은 비록 관광지라고 하지만 통상은 한적하니 꽃 구경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내 집과 가깝기도 하고 20분 정도 걸리는 숲길 드라이브 경관도 사철 즐길만 하여 몇 년 째 회원이 되어 틈나는 대로 찾곤 한다.

겨울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할 무렵도 아니고, 봄도 여름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에 사람들이 붐비는 것에 잠시 놀랐었다. 아마도 연휴 탓이었을게다.

하여 가급적 사람 드문 한적한 곳을 찾아 걸었다. 걷다가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한 동안의 통화를 끝낸 아내가 전하는 말이었다.

“한국학교 지역 연합회 회장 전화였는데… 내가 이렇게 저렇게 오랜 동안 한국학교 선생했다고 이번에 한국 대통령 표창 수여 대상자로 선정해 올리려고 한다며 내 생각을 묻는 전화야…… 근데 회장님을 비롯해서 임원들께 참 고맙긴 한데….. 어떻게 윤석열 이름이 박힌 표창장을 받겠어… 그 이름조차 창피한데… 그래 뜻은 참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했어. 대한민국 표창장은 받으면 참 좋겠는데 하필 윤석열이라니,,,, 암튼 나 잘했지?”

걷다가 쉬며 조촐히 맥주도 한 잔하고.

돌아와 내 자랑스런 아내를 위해 김치도 담고, 저녁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이젠 사람 붐비는 모습이 참 낯설다.

마음의 진보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것도 건성건성 책장을 훑은 것이 아니라 500쪽이 넘는 이야기들에 홀리듯 빠져 본 일은 아마 거의 수십 년 만의 일일게다. 누군가의 자서전으로 말이다.

<축의 시대>를 쓴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이다.  <(The Spiral Staircase(나선형 계단)>이라는 원제를 <마음의 진보>로 소개하는 역자 이희재 선생의  번역은 원저자의 생각에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여 참 좋았다. 역자의 우리말(한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이즈음 한국뉴스들을 보며 느끼곤 하는 절망감을 상쇄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한참 꿈 많았을 십대 나이에 신을 만나려는 꿈으로 수녀가 되어  칠 년을 보내다가 훌훌 털고 세상으로 나와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선생을 하다가 다시 종교를 찾아 돌아간 그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다만 그녀가 찾은 종교는 카톨릭도 아니고 개신교는 더더욱 아니고 이슬람을 품었으되 그도 아니었으며 탈무드에서 석가, 공 맹자 우파니샤드 등등 두루 다 만났으되 그 역시 아니었다.

이야기 거의 마무리 부분에서 그녀가 하는 말이다.

<공감은 물론 동정이나 연민과는 다르다. 공감은 같이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이스라엘의 예언자에게도, 탈무드의 랍비에게도, 예수에게도, 바울로에게도, 마호메트에게도, 또 당연히 공자, 노자, 붓다,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에게도 리트머스지였다.>

그녀가 찾은 종교의 가장 깊은 원천이자 궁극의 자리는 ‘아픔’을 깨닫는 일이요, 그 아픔을 ‘공감’하는 일과 행위야말로 참 종교에 빠지는 일이요,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저자의  시각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영국사회를 돌아보는 이야기들은 덤으로 얻는 수확이다. 내가 살아왔던 그 시대 경험들과 그 시대에 내가 느꼈던 영국에 대한 환상의 거리를 느껴 본 재미 또한 크다.

  • 누군가는 역사의 진보란 나선형으로 발전해 나간다 하였다지. <마음의 진보> 역시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오르는 일일수도.
  • 이즈음 뉴스 속 종교는 누군가의 아픔을 이용해 가르고, 억압하고, 멸시하고 나아가 지배하려는 이야기들로 다가오곤 한다만.
  • 뜰을 가꾸며 깨달은 작은 생각 하나. 애지중지 보살펴 키운 꽃 한 송이 보다 손길 닿지 않은 곳에서 잡초 가운데 얼굴 내민 들꽃의 가늠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