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작

살며 ‘사’짜로 끝나는 직업군들은 만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내 바람일 뿐,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테면 판, 검사, 변호사, 의사, 박사, 목사 따위들을 말하는데, 다시 되뇌이지만, 그 직업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그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 검사나 변호사를 일로써 내가 만나게 되는 경우란 없어야만 백 번 좋은 일이다.  물론 소시민적 삶을 사는 내게 해당하는 말이겠다만.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 박사 역시 다를 바 없다. 내가 학문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전문 분야의 박사를 만나 시간을 보낼 특별한 까닭도 없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 굵어 제 생각 가질 나이를 먹은 후 신과 내 사이의 연결 고리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살다보니 내 가까운 가족들 가운데도 그 ‘사’짜 직업군들이 여럿 있게 되었다만 그들 업의 특성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하다.

그 바램은 여전하건만, 제 바램 대로 사는 삶이 어디 있겠나?

한 동안 꽤나 피곤 했다. 난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봄철 이후, 생업의 강도가 생각보다 조금 심했기도 했고, 인력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 그 피로는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달 포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가정의(醫)로 부터 들은 말이었다. “심장에 좀 문제가 있어요. 정밀진단을 받아야겠어요.”

며칠 전 정밀진단 결과를 알려 주는 가정의의 말이었다. “심장판막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젠 심장 전문의를 만나셔야겠어요.”

그렇게 심장 전문의와 약속을 잡아 놓고 이틀 여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오늘, 여느 일요일과 다름 없이 잔디를 깍고 물을 주고, 한 주 만에 꽃이 핀 열무를 ‘아뿔사’하며 거두어 김치도 담으며 환한 웃음을 짓다.

“에고, 이 눔아! 나이 따라 가는 게야~ 싫어도 의사 자주 만날 나이가 된게지!” 그 한마디 머리 속에 떠올리며.

곰곰 따져보니, 그저 감사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상용하는 약 하나 없거니와 그 흔한 바이타민 제대로  먹어 본 일도 없었으니 이젠 의사와 친해져도 불평할 일은 전혀 없어야 마땅할 일.

늦은 밤, 읊조려 보는 말, “그래 이젠 진짜 노년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나만에.

운동에

1.어느 공동체에 속한 이들의 삶을 뿌리 채 흔들어 바꾸는 현상을 무어라 일컫든 그 변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컬어 민이라 부르던 민중이라 부르던 시민이라 부르던 사람살이 큰 변화의 중심 축은 언제나 그들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들이 옳는 것 만도 아니고, 그들이 주인공이라는 역할도 깨닫지 못할 때가 더욱 많지만, 그렇다 하여도 사람살이 진일보의 큰 걸음 뻗쳐 내디딜 때면 그 공동체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들이 중심이었다.

사람살이를 바라보는 내 믿음의 잣대다.

2. 하루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내 피로를 풀어준 것들 – 쉴 곳 찾는 작은 새들의 소리와 내 눈길을 사로잡은 새 생명들이다. 따지고보면 다 내 게으름과 아둔한 탓일 뿐 사계절 어느 순간에도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움직임은 끊이질 않는다.

3.그리고 운동에 – 거창할 것 하나 없다. 지금은 이런 노래 따라 읊조려 보는 게 바로 운동이다.

이틀 연휴 잘 쉬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다. 일주일에 72시간은 그저 평범했거니와,  84시간 아니 아흔 시간 까지도 일하며 그러려니 하며 살았던 이민 세대다.

딸아이는 어릴 적에 내 가게를 ‘아빠 집’이라고 했었다. 그나마 내 업은 일요일 하루는 쉬었다만, 일년에 쉬는 날이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일에 매어 사는 이들이 넘쳐났던 이른바 이민 일 세대 친근했던 얼굴들은 이젠 떠나고 없거나, 은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업으로 한정 짓자면 동네에서 내가 가장 오래된 현업 일꾼인 듯하다.

딱히 특별한 재능도 없거니와, 이렇다할 취미나 즐기는 놀이조차 없는 나는 그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다만 일하는 시간은 할 수 있는 한 줄일려고 하고, 내 몸과 맘에 맞게 쉬며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는 있다.

에미 애비 된 마음이 다 엇비슷하듯 나 역시 우리 애들만은 우리 세대처럼 일에 매달리지 않고도 삶을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암튼 오늘 내게 주어진 이틀 연휴 하고픈 일 다하며 잘 쉬었다.

그 중 하나, 검사 진혜원이 쓴 <검사의 검찰일기, 진실과 정의에 대한 성찰>을 차분히 완독한 일이다. 대충 한번 훑었다가 틈나면 완독해야지 미루어 두었다 마친 일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내가 놓치지 않는 희망을 보았다.

글쓴이 진혜원이 이 책에서 끝까지 놓지 않고 있는 화두((話頭) 둘은 사람과 민주주의였다. 책에 상당 부분이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있었는데 그 근본은 바로 사람에 대한 통찰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그는 몇 번에 걸쳐 이렇게 강조헀다. “귀찮아야 민주주의고 꼼꼼해야 속지 않는다.”

튜립 구근들을 거둔 자리에 다알리아 구근들을 심고, 진혜원의 책장을 덮은 후 바라 본 하늘, 내 눈이 닿는 끝에서 끝 까지가 모두 내 땅인 양 부자가 된 듯한 쉬는 날에.

5.29.23.

아내

모처럼 사람 붐비는 모습을 보았다.

‘좀 걸읍시다!’ 하며 나선 길이었다. 우리 내외가 종종 걷기 위해 찾아 가는 곳, Longwood Garden 은 비록 관광지라고 하지만 통상은 한적하니 꽃 구경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내 집과 가깝기도 하고 20분 정도 걸리는 숲길 드라이브 경관도 사철 즐길만 하여 몇 년 째 회원이 되어 틈나는 대로 찾곤 한다.

겨울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치장할 무렵도 아니고, 봄도 여름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에 사람들이 붐비는 것에 잠시 놀랐었다. 아마도 연휴 탓이었을게다.

하여 가급적 사람 드문 한적한 곳을 찾아 걸었다. 걷다가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한 동안의 통화를 끝낸 아내가 전하는 말이었다.

“한국학교 지역 연합회 회장 전화였는데… 내가 이렇게 저렇게 오랜 동안 한국학교 선생했다고 이번에 한국 대통령 표창 수여 대상자로 선정해 올리려고 한다며 내 생각을 묻는 전화야…… 근데 회장님을 비롯해서 임원들께 참 고맙긴 한데….. 어떻게 윤석열 이름이 박힌 표창장을 받겠어… 그 이름조차 창피한데… 그래 뜻은 참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했어. 대한민국 표창장은 받으면 참 좋겠는데 하필 윤석열이라니,,,, 암튼 나 잘했지?”

걷다가 쉬며 조촐히 맥주도 한 잔하고.

돌아와 내 자랑스런 아내를 위해 김치도 담고, 저녁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이젠 사람 붐비는 모습이 참 낯설다.

마음의 진보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것도 건성건성 책장을 훑은 것이 아니라 500쪽이 넘는 이야기들에 홀리듯 빠져 본 일은 아마 거의 수십 년 만의 일일게다. 누군가의 자서전으로 말이다.

<축의 시대>를 쓴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이다.  <(The Spiral Staircase(나선형 계단)>이라는 원제를 <마음의 진보>로 소개하는 역자 이희재 선생의  번역은 원저자의 생각에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여 참 좋았다. 역자의 우리말(한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이즈음 한국뉴스들을 보며 느끼곤 하는 절망감을 상쇄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한참 꿈 많았을 십대 나이에 신을 만나려는 꿈으로 수녀가 되어  칠 년을 보내다가 훌훌 털고 세상으로 나와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선생을 하다가 다시 종교를 찾아 돌아간 그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다만 그녀가 찾은 종교는 카톨릭도 아니고 개신교는 더더욱 아니고 이슬람을 품었으되 그도 아니었으며 탈무드에서 석가, 공 맹자 우파니샤드 등등 두루 다 만났으되 그 역시 아니었다.

이야기 거의 마무리 부분에서 그녀가 하는 말이다.

<공감은 물론 동정이나 연민과는 다르다. 공감은 같이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이스라엘의 예언자에게도, 탈무드의 랍비에게도, 예수에게도, 바울로에게도, 마호메트에게도, 또 당연히 공자, 노자, 붓다,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에게도 리트머스지였다.>

그녀가 찾은 종교의 가장 깊은 원천이자 궁극의 자리는 ‘아픔’을 깨닫는 일이요, 그 아픔을 ‘공감’하는 일과 행위야말로 참 종교에 빠지는 일이요,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저자의  시각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영국사회를 돌아보는 이야기들은 덤으로 얻는 수확이다. 내가 살아왔던 그 시대 경험들과 그 시대에 내가 느꼈던 영국에 대한 환상의 거리를 느껴 본 재미 또한 크다.

  • 누군가는 역사의 진보란 나선형으로 발전해 나간다 하였다지. <마음의 진보> 역시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오르는 일일수도.
  • 이즈음 뉴스 속 종교는 누군가의 아픔을 이용해 가르고, 억압하고, 멸시하고 나아가 지배하려는 이야기들로 다가오곤 한다만.
  • 뜰을 가꾸며 깨달은 작은 생각 하나. 애지중지 보살펴 키운 꽃 한 송이 보다 손길 닿지 않은 곳에서 잡초 가운데 얼굴 내민 들꽃의 가늠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니!

다시 오월에

저마다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있을게다. 자신과 가족들의 기념일부터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잊지 못하는 날들, 아니면 이런저런 공휴일들까지 평범한 여느 날과는 다른 날들 말이다.

내 경우엔 나와 가족들의 기념일들을 제외하고 남는 특별한 날들로는 오래된 햇수로 따져 , 7월 4일, 10월 17일, 10월 26일, 5월 18일, 4월 16일 그리고 10월 29일 등이다.

1972년 7월 4일, 대학 일학년 첫 방학을 맞은 나는 아버지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유운리 작은 할아버지 댁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이른바 7.4 남북 공동선언 소식을 들었었다. 그 무렵부터 내 아버지의 고향에서 전통은 사라지고, 돈(돈錢과 돈豚)이 모두를 삼켜 버렸다.

그해 10월 17일은 박정희 유신이 선포된 날로 당시 대학 일학년 이었던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날이었다. 학교 앞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기관단총을 앞세운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내 대학 일년이 끝나던 날이었다.

몇 해가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밀실에서 죽고 내 스무 시절 젊은 인생은 또 한번 바뀌었다.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 다소 엉뚱하게 신학 공부를 하며 작은 출판사를 하고 있던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대학 마지막 학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80년 5월 18일,  다시 학교로 부터 도망하는 세월이 시작되었고, 그 잊지 못할 오월항쟁과 참사를 건너 건너 그 당시 이른바 유언비어를 통해 들으며 몸을 떨었고, 이내 잊지 못할 치도곤을 당했었다.

한참 후 환갑 지난 나이가 된 2014년 4월 16일, 삼백명이 넘는 시퍼렇게 젊은 아이들이 산 채로 바다에 수장되는 모습을 멀리 이 미국 땅에서 생중계로 바라보는 충격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29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이태원은 내 어릴 적 추억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한남동 외가와 막내 이모의 신혼방 이태원은 외사촌들과 뛰며 놀던 곳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의 면적과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는 내가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여 내가 잊지 못하는 날들이 되었다.

따져보니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날들보다 여기서 산 날들이 훨씬 많다만, 내가 잊지 못하는 날들은 모두 한국에서 있었던 날들이다. 어쩌랴! 점점 더 그리 되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점점 더 이해 불가능한 사회로 빠져드는 듯한 이즈음의 한국사회를 바로 알아보고자 몇 권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 검사 진혜원이 쓴 책 <진실과 정의에 대한 성찰>에서 건진 한마디.

진혜원 역시 인용한 말이다만,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는 방법이고, 신은 인간의 자기의식일 뿐”이라는 사회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마흐의 깨달음.

원컨대 조금씩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씩 만이라도 사람다운 본성을 찾는 믿음과 이념과 시대정신을 갈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이왕에 만드는 신이라면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신상을 만드는 사회가 되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다시 맞는 5월 18일에.

선입견(先入見)에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선입견(先入見)은 있게 마련이고, 강도의 차이일 뿐 고집 역시 너나 없이 품고 살기 마련이다.

그 선입견과 고집이 내게 이르면 좀 센 편이다. 그 세기가 점점 강하지는 것을 느낄 때면  이젠 확실히 늙어가는 나를 마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게 손님 가운데 이따금 내 가게와 가까운 경쟁업소의 흉을 보며 들어서는 이들이 있다. “저 쪽 세탁소에 다녔는데 이런 저런 문제들이 많아서 너희 가게를 찾아왔다”는 등의 수다를 떨며 들어오는 손님들인데, 난 이런 손님들이 참 마뜩잖다.

경험상 이런 류의 손님들은 쉽게 다른 경쟁 업소가 가서 똑같이 내 가게 흉을 볼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내 선입견 탓이다.

오늘 이른 아침에 밀린 한국 뉴스를 보며 떠올려 본 생각이었는데, 일반적으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로 누군가가 이른바 언론의 뭇매를 맞을 때면 그 뉴스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 잣대는 바로 이런 내 선입견이다.

그런 뉴스들을 판단하는 내 잣대는 그 뭇매를 드는 사람들이 지난 세월에 던졌던 말들과 쌓아 온 행적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하면, 답은 아주 명쾌 해진다. 내 고집과 선입견이 주는 명쾌함이다.

내가 노무현, 노회찬, 조국 이라는 이름에 애틋함과 함께 그들의 꿈을 이해하는 까닭은 그들에게 뭇매를 가하거나 때론 이용하는 이들의 행적이나 말들이 너무나 비상식적 모습이었음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본 김남국이라는 젊은 정치인의 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그에게 뭇매를 가하는 이들과 언론들의 지난 행태를 따져보니 그를 응원해야 마땅할 듯 하다.

물론 내 고집과 선입견 탓이겠지만, 내겐 그게 옳다.

* 어머니 주일, 돌아가신 두 어머니 찾아가 잠시 인사 드리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인사를 받다. 우리 내외 오늘의 삶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저 행복하다.

**뜰일을 하다가 땀을 식히며 바라보는 뜰 풍경에 느끼는 만족과 행복함이라니!

*** 내 어릴 때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하셨었다. “난 내 집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누리는 행복이 참 미안할 때가 많다네….”

  • 삶은 늘 미안함과 아쉬움의 연속이지만 내 선입견과 고집은 날이 갈수록 굳어진다. 하여 내 뜰에 감사를…

기다림

먹고 사는 일과 좋아서 하는 일을 차이는 사뭇 크다. 먹고 사는 일에서 오는 피로는 쉽게 오는 법이지만, 좋아서 하는 일일 땐 그 느낌이 더디거니와 때론 그 피로 조차 좋을 때도 있다.

날 좋은 휴일, 땀 흘리며 뜰 일을 하는 날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 주 내내 가게 일에 치어 ‘아이고 좀 쉬자!’ 했다가도, 쉬는 날 잔디와 잡풀 깍고 꽃나무 가꾸며 땀 흘리리다 보면 이 나이에 내가 누리는 행복에 그저 감사가 넘쳐나곤 한다.

수선화는 이미 지고 튜립도 끝물이다. 글라디올러스 등 여름 화초들이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어느새 봄이 기울고 여름으로 들어서고 있다.

꽃망울을 한참 들여다보다 떠 오른 말,  ‘기다림’ 이었다.

그리고 보니 ‘미세스 킴 라이락’이라는 이름에 홀려 심었던 라이락 꽃이 올해 활짝 피었다. 아내는 자기 이름에 자신의 성씨인 ‘이(Lee)’을 미들 네임으로 쓴다만, 통상 ‘미세스 킴’으로 불리운다. 삼년 만에 핀 꽃인데 따져보면 큰 기다림도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 온 세월에 비한다면.

산다는 것은 무릇 기다림의 연속 아닐까?

저녁 나절 텔방 친구들의 소식, <친일파 매국노 윤석열 탄핵 촉구>모임 안내였다.  화초나 꽃나무나 텃밭 채마 가꾸는 일은 늘 잡초와의 싸움이 가장 큰 일이다. 그 싸움을 잘 이겨내며 기다리는 일이 사람사는 일이고 역사 아닐까?

‘어쩌다 거의 광기(狂氣)에 사로잡힌 윤석열 무리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을까?’하는 물음에 내가 스스로 내려보는 답, “쯔쯔,,, 제 때 잡풀 뽑아내 버리지 못한 까닭…”

허나 사람살이 이어 온 이야기들, 곧 역사를 되돌아 볼 양이면 이내 깨닫게 되는 사실인 동시에 진실 하나, 기다림으로 꽃망울 품고 사는 이들이 꾸는 꿈으로 시간은 이어진다는…

이 나이에 함께 꿈을 꾸는 벗들과 연을 맺고 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며 <친일파 매국노 윤석열 탄핵 촉구>모임에 함께 할 일이다.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 좋아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므로.

위로에

*단지 나이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과한 한 주간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아이고! 이젠 진짜 일을 접을 나이???…’라는 생각이 온통 머리 속에 꽉 찬 오늘 저녁, 문득 내 눈에 박힌 창밖 저녁 하늘이 보내던 위로 한마디다.

“에고, 이 사람아! 뭘 또 그리 엄살을… 나를 보게나! 지난 한 주 동안 나의 이런 얼굴 볼 수 없었을 걸. 나도 계속 울상이었지. 비 내리고 구름 끼고. 생각해 보게! 맑은 날 그리 많지 않어! 나를 보고 어께 펴고 큰 숨 한 번 쉬라고!”

** 어제 늦은 밤에 넘겼던 책 갈피 속 이야기 하나.

‘가난이나 굴욕 속에서 삶을 마치는 것 밖에는 다른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민중이 있다. 그 삶의 시작 부터가 운명의 예고를 표시한다.’ –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생각을 해설하는 조국 선생의 책 <조국의 법고전 산책> 속 이야기다.

물론 나는 그런 민중과는 거리가 먼 축복된 삶을 누려온 편이다.

다만 민중의 관심에 대한 흉내라도 끊이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오늘 밤 토마스 페인의 상식(Common Sens)을 읽다.

그 상식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야기.

<모든 국가안에 사회적 단계는 축복입니다만 정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정부란 그것이 비록 최상의 정부라 할지라도 필요악일 뿐입니다. 정부가 최악일 경우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정부입니다. Society in every state is a blessing, but government, even in its best state, is but a necessary evil; in its worst state an intolerable one.>

이즈음 이어지는 참담한 뉴스들에 대한 위로.

*** 사위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게 그리 먼 일도 아닌데 어느새 내가 장인으로 불리는 처지가 되었다.

내 사위의 독특한 점 하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필름 카메라 애호가이다.

그가 사진 찍기는 좋아 하지만 찍히기는 몹시 싫어하는 내 모습을 담아 보냈다.

그게 참 좋았다. 크게 고마왔다.

쉽게 잊고 살았던 내 위로의 시간들을 담아 낸 사진이었으므로.

위로에.

혁명(革命)에

사흘 내리 비가 내린다. 그 비 덕에 모처럼 차분하게 바로 앉아 책 한 권에 빠졌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Karen Amstrong)이 쓴 <축의 시대>다.

‘위대한 변화(The Great Transformation)’라는 책 제목을 ‘축의 시대(Axial-Age)’로 번역한 역자(譯者)의 생각이 그럴 듯 했다.

인도, 중국, 그리스, 이스라엘, 중동을 오고 가는 약 3600년 전부터 2000년 전(이슬람교 생성까지 조금 다루었으니 서기 600여년 까지 연장 한다면) 아주 오랜 옛날 약 이 천 여년  동안 사람살이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 한 책인데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그 때로 부터 멀리는 3600년이 지났고 가까이는 1400년이 지난 오늘, 2023년 사람들의 생각이 그 때로 부터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기도 한데 참 재밌다.

아주 짧게 몇 문장으로 기술(과학)의 혁명을 이야기하는 최근 200년 동안의 변화 곧  ‘제2의 축의 시대’를 소개하는 것을 빼고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살이 크게 변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책이다.

그 오래 전에 사람들의 생각(철학, 종교 등)이 사람 답게 바뀌어 사람살이 축을 바뀌게 한 결정적 요인은 바로 “공감” 곧 ‘사람에 대한 공감’, ‘이웃에 대한 공감’ 또는 ‘약자에 대한 공감’이라고 나는 읽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억” 곧 사람살이 되새김 (저자는 ‘자기비판”이라고 명명했다만) 이 오늘을 사는 내게 필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이즈음 뉴스들에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함을 맛보았다.

사람살이 답답해 보여도 결국 옳은 길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그게 역사, 곧 사람살이다. 그 역사(歷史)를 역사(役事)하는 신을 믿고 살아가는 내 삶을 부추이게 하는 책이었다. 책을 덮으며 기쁜 마음으로 카렌 암스트롱(Karen Amstrong) 그녀의 책 <마음의 진보>를 주문하다.

내리 사흘 내리는 비가 앞 뜰 꽃잎들을 다 떨꾸었다.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유세를 떨며 제 존재를 알린다만, 사철 푸른 나무도 조용히 새 순 돋아 옷을 갈아 입는다.

혁명(革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