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오늘도 일터의 아침 해는 떠오르면서 이글거렸다. 가게 건너편 공사판 일꾼들은 나보다 먼저 더위를 맞고 있다.  이젠 게으름이 아니라 느긋함으로 치장된 일상을 시작하며 보일러를 켠다. 그 느긋함으로 눈치챈 사실 하나, 해는 어느새 분명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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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일터의 아침이 참 좋다. 한땐 이 아침을 피해보려고 많이 질척이던 때도 있었다만, 이젠 그저 감사다.

그렇게 하루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이즈음 친한 벗이 된 호미와 함께 놀며 저녁 한 때를 보낸다. 새소리, 매미소리, 풀벌레소리에  더위는 이미 겁을 먹은 듯하다.

자리에 눕기 전, 장자(莊子)를 손에 들다.

<대지인 자연은 나를 실어주기 위해 그 몸을 주었고, 나를 일 시키기 위해 삶을 주고, 자연을 즐기도록 늙음을 주고, 나를 쉬게 하려고 죽음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힘써 일하는 내 삶이 좋다고 한다면, 당연히 휴식인 내 죽음도 좋다고 하게 되리라.>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 제 7장에서

자연으로 읽든 신이라 읽든 아님 내 스스로라고 읽든, 아직 죽음도 좋다고 할 만한 지경엔 이르지 못했다만, 그저 하루 일과 쉼에 감사할 나이엔 이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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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만나서 참 좋은 벗들이 있음은 내가 살며 누리는 복 가운데 하나다. 더더구나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엇비슷한 시각과 시선으로 함께 바라보며, 그 뜻을 헤아리는데 다툼이나 삐짐 없이 훅 또는 맘껏 제 속내 들어낼 수 있는 벗들임에랴! 그저 만나서 참 즐거운 일이다.

펜데믹 탓으로 거의 일년 반 만에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그저 소소한 서로의 일상에서부터 우리들의 공동 목표에 대한 이야기들로 모처럼 만남의 기쁨을 한껏 즐겼다.

나야 어쩌다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끼여들은 처지이지만, 함께 한 벗들은 지난 삼, 사십 년 동안 필라델피아를 근거로 평화, 통일, 민주, 인권 등등 거대 담론에서부터 그저 사람 답게 하루를 살아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에 이어진 행동들을 함께 해 온 이들이다.

벗들은 지난 수 년 동안 한 푼 두 푼 작지만 뜻있는 종자 돈을 모아왔다. 이는 우리 다음 세대들이 우리 세대 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만드는 일에 나설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자 함이었다.

앞으로의 일이야 어찌 알겠느냐만, 그저 나름의 역사성을 곱씹으며 오늘에 충실한 벗들이 참 좋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한 친구가 아직은 검은 머리인 내게 물었다. ‘염색 안하시죠? 어떻게 아직도…’. 이어진 내 짧은 대답, ‘아! 머리를 안 쓰고 사니까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거나 머리털이 아직은 까만 것은 내 노력과는 아무 상관 없는 그저 타고난 체질일게다. 그렇다하여도 이즈음 거의 머리를 안 쓰고 사는 것은 사실이다.

어찌보면 내 일상과 세상사(事)는 내가 살아 온 지난 시간들과 다름없이 혼돈(渾沌)의 연속이지만, 그냥 그대로 그 혼돈을 받아 들이며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즐기려 하는 편이다. 머리 쓰지 않고.

그러다 이 나이에 장주(莊周)를 만나면 그 또한 복일 터이니.

이즈음 내 삶의 또 다른 참 좋은 벗들, 내 뜨락에 푸성귀와 꽃과 풀잎들.

벗들로 하여 누리고 있는 내 복에 대해 그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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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에

이제 그만 둘 만도 한데 아내는 지치지도 않는지 그 일을 여전히 즐기며 좋아한다. 만  31년 째 이어가는 델라웨어 한국학교 선생 일이다.

아내는 이즈음 성인반을 맡고 있다. 학생들은 이십 대에서 환갑에 이르는 나이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비한국계 미국인들과 부모 한 쪽이 한국계인 이들이다. 학생들은 K-pop이나 한국 드라마를 즐기고, 몇몇은 한국여행도 다녀왔다.

지난 일년 동안 팬데믹 영향으로 온라인 수업을 이어오다가 다음 학기부터는 대면 수업을 하게 되어 학생들이나 선생이나 이즈음 새로운 기대가 넘치는가 보다. 온라인 수업을 정리라도 하는 듯, 선생과 학생들이 서로의 재능들을 모아 아주 짧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각자 녹음한 파트별 음원을 모아 믹싱을 하고 수화자막도 만들고 그렇게 비록 지극히 어설프지만 나름 대단하게(?) 만들어낸 ‘어머니의 은혜’ 동영상이다.

감자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아 온 서울 촌놈인 내가 감자를 심어 꽃을 보는 신기한 즐거움을 누리는 이즈음, 아내와 내가 여전히 즐기며 좋아하는 일들이 있고 그를 누릴 수 있음은 감사다.

그 감사의 바탕에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워야 마땅할 얼굴들을 지울 수 없다만.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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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은 봄날 아침이었다. 이상 기온이 아니라면 다시 겨울을 맞기까지 서리는 내리지 않을 것이지만, 언제 이상기온을 맞지 않을 때가 있었던가 싶다. 이즈음엔 더더욱.

텃밭농사 흉내에 재미 들려 이즈음 틈나면 작은 밭을 일군다. 오늘 첫 작물로 콩과 감자를 심었다. 먹을 거리로 생각하면 평소 소식(小食)인 우리 두 내외에겐 농사보단 사 먹는 것이 몇 배는 경제적일 것이다만, 재미란 경제논리와는 무관한 것일게다.

이즈음에 탐닉하고 있는 맛도 따지고 보면 그 재미 때문이다. 우연히 만들어 본 무장아찌 맛에 홀려 한 달 여, 매 끼니 함께 했다. 옛날 옛날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무장아찌 몇 젓가락으로 찬 밥 물에 말아 훌훌 넘기던 그 옛 생각 맛에 홀린 탓일게다.

아무렴, 사는 일이란 늘 진일보 하는 법. 양파, 샐러리, 파프리카, 당근, 고추 등속을 저며 달인 간장으로 장아찌를 담다.

완연한 봄날 오후를 맞아 어머니와 장모 장인에게 모처럼 문안 인사 드리다. 부활절을 맞는 장식들 중에 바람개비들이 눈길을 끌었다. 부활절과 바람개비. 이런 저런 저마다의 우김질들로 세상은 늘 시끌벅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동서남북 어디에나 사람들 욕망은 늘 같다.

아내가 “이것 좀 봐!”라며 가르킨 어느 묘비명이었다. <LIVED AND LOVED WITHOUT HESITATION>

해 아래 그 어떤 삶이 제 맘껏 게다가 받을 사랑 다 받고 살다 간 사람이 있겠냐마는, 스스로를 그런 모습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마지막 순간을 맞은 사람에게 그렇게 그를 기억하며 남아 있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봄날엔 찬 밥 한덩이 물에 말아 변변한 건건이 없이 장아찌 하나 얹어 훌훌 넘기는 한 끼도 감사다. 맘껏 살아보고 맘껏 사랑받는 시간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계절의 시작임으로. 겨울의 기억과 함께.

비록 바람 따라 도는 바람개비 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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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응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음들이 겨울이라고 우긴다. 허긴 내가 바깥 일 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부지런한 농부는 아니므로.

내 직업인 세탁소에 봄은 부활절 즈음에 찾아오니 아직 이르긴 하여도 그래도 경칩(驚蟄)이 지났는데, 아무렴 봄이다.

바깥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으로 내 방안 봄맞이 준비를 하다가 만난 시인 윤동주의 동시집이다. 윤동주의 동시집이 내 방에 꽂혀 있는 줄 모르다 만나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1999년에 도서출판 <푸른 책들>에서  펴낸 시집이다. 아마도 2000년을 맞는 그 무렵에 뉴욕 서점에서 윤동주라는 이름에 혹해 내 방으로 모셔 온 시집이었을 듯. 내 방안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 미안하고, 오늘 시집의 책장을 넘기다 힘을 얻어 고맙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 전문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했던, 아직도 어수선한 그 길에서 너나없이 모두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은 어쩌면 여전히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이는 길 일게다.

그럼에도 내가 만나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아무렴!

하여 흉내일지언정 모종판에 흙을.

새 봄, 새로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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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눈이 더 왔으면 좋겠는지요?.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부터 앞으로 8일 중6일 동안 눈이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계속 된다네요.’

오늘 자 우리 동네 신문 기사 가운데 일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내린 눈을 치우다 몸살을 앓기 일보직전이다.

어제 아침만 하여도 눈을 치우고 일을 나가느냐고 보통 출근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었다. 좋아서 하는 일과 억지로 하는 일을 이젠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한다. 두 주 사이 서너 차례 이어진 눈 치우는 삽질로 만사가 귀찮은 지경인데 또 다시 눈이 내린단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런 날씨를 즐기고 있다는 기분도 있다. 그게 나이에 따른 게으름일지라도 게으름을 즐길 수도 있으므로.

엊그제만 하여도 그랬다. 밤새 눈이 3-6인치가 내려 쌓인다는 일기예보에 ‘흠, 내일 가게 문  열기는 힘들겠군, 열어도 느즈막히 열면 되겠고…’하는 맘에서 시작된 게으름을 맘껏 즐겼다.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를 보게 된 까닭이다. 몇 년 전만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느 해던가 일 피트 넘는 눈이 내렸던 날에도 나는 가게문을 제 시간에 열었었다. 그 역시 꿈같이 지나간 옛 일이다.

아무튼 영화 ‘승리호’. 내겐 좀 난해한 이즈음 세대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느낀 감상평 세 가지.

헐리우드식 만화적 상상력이 이젠 한국인들의 손에….라는 생각 하나.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 유해진의 영화에 대한 태도가….둘,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미나리에 이어 한국어가 말하고 듣는 이들에게 외국어가 아닌 영화 속 인물들의 말로 확인되고 인정되어 간다는 사실. 그건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마지막 세번 째.

그리고 보니 오늘이 한국 명절 설날이다.

나는 십 수년 전부터 해마다 이 맘 때면 내 가게 손님들에게 한국 명절 설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왔다. 음력도 아니고 중국인들만의 춘제도 아니고, 한국인들의 설날 명절이라고.

글쎄… 모를 일이다.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울타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먼 하늘 고향 찾아 떠나는 새떼들을 보며.

2021년 설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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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눈발이 끊겼다 싶어 드라이브 웨이 쌓인 눈을 치웠다. 예보는 더 많은 눈이 내린다고 하지만 이미 쌓인 눈을 치우면 나중에 힘이 덜 부칠까 하여 부지런을 떤 일이었다.

깨끗이 치웠다고 한 숨 크게 쉬자 눈발이 다시 이었다. 땀 식히는 사이 ‘네 놈이 언제 눈을 치웠더냐’ 싶게 다시 눈밭이 되었다.

‘헛짓이었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만, 아무렴 내일 아침에 눈 치우는 일은 한결 수월할 터이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히 눈만 쌓여 가는 오후, 이즈음 틈틈이 읽고 있는 선가(禪家)  이야기 중 하나가 머리에 꽂히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있었던 장헌충의 난(亂) 중에 있었던 일이란다. 잔학한 학살로 유명했던 장헌충의 난에 대한 기록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니 당시 310만명이었던 사천성(四川省) 인구가 장헌충에 의해 2만 명 이하로 줄었을 만큼, 장헌충은 점령한 도성 사람들을 거의 전멸시켰단다.

그의 부하였던 이정국이라는 이가 어느 성을 함락시킨 후 그 곳 백성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단다. 그 성에 파산선사라는 선승(禪僧)이 죽기를 각오하고 이정국을 찾아가 사람 죽이기를 그치라고 간청했단다. 그 때 이정국이라는 자가 양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등 각종 육류로 거하게 차린 상을 내어 놓고, 파산에게 이르길  ‘중은 고기를 먹지 않는 계율이 있다지? 중들에게 계율은 생명일 터이니… 만일 네 놈이 이 고기들을 먹으면 백성들을 죽이지 않으마!’라고 했단다.

이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파산이 한 마디 하고 그 고기들을 먹어 치웠단다. ‘사람 살리는 일인데 그깟 계율 따위가 뭔 소용이랴!’

나같은 중생이야 고기 앞에 계율이 뭔 소용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중인데!

가히 참 중이었던 파산의 이야기를 읽으며 든 생각 하나.

이런 저런 한국 뉴스들 보면서 이즈음 든 생각이지만, 특히나 내 어렸던 시절 추억이 하나하나 배어 있는  신문로 사거리에서 청와대 인근 백악까지 그 정든 거리에서 아직도 눈물 마르지 않는 얼굴들로 한 서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도대체 계율 따위가 무엇인지?

원칙과 절차의 정당성 운운에 얽매인 계율들이 이른바 사람이 먼저인 촛불의 뜻에 앞서는 것인지?

흔히들 촛불혁명 이라고들 한다. 성공이나 완성된 혁명은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없었다고들 말한다. 그렇다고 혁명은 늘 헛짓이었나?

아무렴, 혁명은 이미 권력을 누리는 자들과는 닿을 연이 없다.

다만, 그저 사람으로 살고파 오늘을 아파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오늘도 혁명은 계속된다.  역사 이래 언제나 그렇듯. 비록 오늘은 헛짓일지라도.

내일은 분명 수월할 터이므로.

혁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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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게으름을 즐기기엔 딱 좋은 날씨다. 아침나절부터 흩뿌리던 눈발이 오후 들어 쉬지 않고 내린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모레 화요일 아침까지 7인치에서 14인치 가량의 눈이 내릴 것이란다. 제법 오긴 올 모양이다. 음력 섣달 말미에 내리는 눈 덕에 연휴를 즐길 모양이다.

눈 치울 걱정일랑은 뒤로 미루고 오늘 하루는 그저 몸과 맘이 가는 대로 쉬기로 작정했다.

이즈음 일요일이면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일주일치 빵을 굽는다. 이 일이 제법 재미있다. 오늘은 내가 새로운 빵에 도전해 보았다. 각종 야채 듬뿍 넣은 호빵이었는데 첫 작품 치고는 만족도가 높았다.

내친 김에 점심으로 수제비 떠서 해물 육수에 콩나물 넣어 땀 흘리며 배 불렸다.

밀려오는 낮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약속되어 있던 줌(zoom)모임에 참석했다.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리 센터(Woori Center) 이사회 연수회 모임이었다. 우리센터는 이젠 여러 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한인사회 및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조직하여 지역 및 국가 시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 목소리를 내어 주장하고, 스스로의 권익을 찾아 보자는 뜻으로 2018년에 설립된 단체이다.

나는 그저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 하는 일은 없지만 이 단체에 대한 애정은 지극하다.

적어도 내가 이민을 온 후 이제 까지 한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인근 외곽지역에서, 전문가들도 아니고 명망가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꽤나 있는 부유층들도 아니고 교회나 종교를 앞세우지도 않고 더더구나 진보적 가치를 내걸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큰 가능성을 보인 단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더해 이 단체에 대한 기대가 큰 까닭은 단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나누고자 함께 모였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른한 오후의 졸음 떨치고, 연수회 머리 수 하나 채웠다.

내 아이들 다 독립해 떠난 이후, 지펴 본 적 없는 벽난로에 불장난도 하면서 일월의 마지막 날 한껏 게으름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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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에

아직 할머니 소리 듣기엔 이른 손님 하나가 내게 물었다. ‘요즘 한국은 어때요?’ 내 대답, ‘뭘 말씀 하시는지?’

그렇게 이어진 오늘 내 가게에서 이어진 그녀와의 대화다.

손님 : ‘코빗(Covid) 상황이 어떤지?’

나 : ‘글쎄요,  제가 듣기론 이즈음 확진자 수는 하루 3-4백 명 정도라고 하네요.’

손님 : ‘그럼 여기랑 비슷하군요.’

나 : ‘아니지요. 거긴 오천 만 명에 삼 사백이고, 여긴 백만명에 삼 사백인걸요.’

손님 :  ‘아휴 그럼 갈 만하네요. 가면 아직도 두 주간 격리를 하나요?’

나 : ‘글쎄요???’

나보다 한국 상황에 더 익숙한 듯한 하얀 얼굴 손님의 말이 이어졌다.

손님 : ‘오는 사월에 한국엘 가려 하는데… 그래서 물어 보는 거예요. 내 아들녀석의 전 여친이 결혼을 한다고 우리 모자를 초대해서 가보려구요.’

나 : ‘글쎄, 이즈음 한국은 저도 잘 모른답니다. 그저 뉴스나 보는 정도이지…’

그녀가 가게를 떠난 후 한참 동안 난 좀 멍했다.

그녀 아들의 전 여친은 한국 아이란다.

아무렴, 모든 이들에게 통하는 상식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없다.

이제 난 틀림없는 쉰 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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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일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 이제 막 어둠을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훤한 얼굴을 내민다. 음력 섣달 보름이니 설이 멀지 않았다. 바람은 아직 차고, 다음 주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도 있지만 예부터 설은 이미 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참 좋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삼십 수 년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고향 신촌의 옛 날씨들을 그대로 만끽하는 순간들이다. 신촌에서 보낸 삼 십 수 년보다 조금 더 긴 세월들을 이 곳에서 살았다. 그렇게 따져보니 내 평생을 거의 엇비슷한 날씨 환경에서 산 게다. 내가 누리며 사는 또 하나의 복이라 생각한다.

굴곡 없는 삶을 꾸려온 사람들이 거의 없듯,  나 역시 평범하게 그 대열에 섞여 살아왔다. 헛 꿈도 참 많이 꾸었다. 지금도 아차 하는 순간,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는 생각들을 다잡아 다독일 때가 있다. 다행이랄까 아님 늙었다 할까, 행동이 그 생각을 쫓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곳에서 살며 시작한 세탁업에서 벗어 나고자 용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큰 꿈을 꾸고 있노라고 스스로를 다졌었다. 큰 꿈이 헛 꿈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쇠할 나이에 이른 후였다.

그제서야 세탁업을 내 생업이자 평생의 업으로 받아 들였었다.

그 무렵 즈음이었을 게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 것이.

손님 한 분이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내라며 작은 선물과 카드를 전했다. 말의 고마움이라니.

세탁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보름달에 새겨보는 감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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