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성과 속

이즈음 세상에 외국 여행 한번도 못했다면 ‘촌스럽다’라는 말 듣기 딱 십상이다. 허나 어찌하리! 그게 내 모습인 것을. 딱히 여행 경험 유무로 따지는 촌스러움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촌스러움’은 늘 내게 붙어 다니는 수식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큰 맘 먹고 첫 번 째 외국여행을 다녀왔지만 평생을 함께 한 촌스러움을 벗지는 못할 것이다.

그랬다. 정확하게 내 인생의 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반은 미국에서 살았다만 두 곳 모두 내게 외국은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내 일상을 이어가는 삶의 터전이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하여 이번 여행이야말로 첫 외국 나들이였던 셈이다.

내 나이 스무 살 무렵에 어지간히 싸돌아 다녔었다. 그래봐야 한반도 남쪽이었지만 웬만한 명산과 바닷가에 작은 발자국 꽤나 찍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서른을 넘어설 즈음 생활인이 된 내게 싸돌아 다닐 여유는 이미 사치였다. 미국 이주 이후 삶은 작은 사치도 허락하지 않았다. 변변한 재주가 없는 내게 이민은 그저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래도 차마 버리지 못한 버릇으로 돌아 다니기는 했으나 그 역시 미국을 벗어 나지는 못했다. 그나마 어찌하여 작은 여유를 부릴 기회가 오면 연어처럼 한국을 찾곤 했으므로 해외 여행은 차마 꿈꾸지 못하였다.

시간은 늘 생각과 무관하게 흘러 어느새 은퇴 시기를 저울질 하는 나이가 되었다. 몇 해 전 일이다. 아직 무릎이 쓸만할 때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 왔었다. 그 생각 끝에 속다짐을 했다. 아직 걸을 만 할 때, 해마다 며칠 동안 만이라도 싸돌아 다니며 걸어 보자고….

그 다짐의 하나로 짧게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내 체력이 딸릴 만큼 어지간히 걸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눈이 내려 앉은 뒤뜰을 바라보며 짧았던 여행길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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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性, 城, 成)과 속(俗, 贖, 速, 屬)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여행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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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연일 95도를 웃돌고 습기가 높은 날씨에 지친 몸이 만사가 귀찮다고 풀어질 즈음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늘 내일은 최고 기온이 70도 어간에 머무른단다. 그렇다하여도 지친 몸이 쉽게 탄력을 되찾지 못한다. 나이 탓이려니.

몸 생각만 하다가 맘 생각이 들어 노자(老子)를 펼쳐 든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은 늘 가난하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 그저 멍청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활발한데, 나만은 흐리멍덩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상세하고 분명한데, 나만은 우물쭈물 결단을 못 내린다. 바다처럼 흔들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정처 없다. 사람들은 다 유능한데, 나만은 우둔하고 촌스럽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20장의 한 부분이다. ‘그랬구나, 노자 어르신도 그 맘 아셨구나’ 그 맘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찌 노자 뿐이랴!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 조차 없다.>
예수는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한 모습을 고백하기도 했거늘.

노자와 함께 생각이 뒹구는데 튕기는 아내의 소프라노 소리.

“와요!”
저녁밥 준비되었다는 소리에 엉덩이 드는 순간, 이어졌던 아내의 웃음소리.
“미안, 미안! 밥솥을 안 눌렀었네….”

하여, 삶이란 무릇 살만한 것이려니.

삶이란!

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뜻맞는 이들이 모여, 작으나마 기금을 모아 밝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쓰자는 뜻으로 재단을 세운지도 제법 되었답니다. 비록 작지만 꾸준했기에 이제 거의 재단의 틀이 짜여져 간답니다.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이라는 이름으로 등록을 마친 일도 꽤 오래 전입니다.

그렇다고 이제껏 내세울만한 대단한 일을 해 본적은 없답니다.

그래도 명색이 재단이므로 이사회를 연답니다. 올들어 첫 이사회를 준비하면서 지난 분기에 했던 일들을 정리해 보는 것이지요.

그 중 하나랍니다. 지난 해 북한에 큰 홍수가 나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 고통을 이고 사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 무렵에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의 이름으로 적으나마 그들을 돕는 일에 함께 한 적이 있었답니다.

작은 금액의 돈을 유엔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 WFP) 미국본부에 보냈던 것인데, 뒤늦게 WFP에서 감사의 편지를 받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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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를 준비하면서 잊고 있었던 함경북도 수재민들을 생각해 본답니다. 비단 북의 수재민들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연의 시계로 오는 봄은 때가 되면 오는 법이지만, 사람들이 기다리는 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일찍이 법정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주셨답니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련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비극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새날을 비상(飛翔)하는 의지의 날개가 꺽이지 않는 한 좌절이란 있을 수 없다. 어제를 딛고 오늘은 일어서야 한다. >

‘희망재단(Hope Network Foundation)’이 봄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 장난감, 손전화에 대해

‘쓸데없이 고집만 쎄서….’ 내가 종종 아내에게 듣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이다. 아내가 그 말을 던지는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절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아내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내가 지적하는  ‘쓸데없는 고집’ 가운데 하나는 손전화(스마트폰 또는 핸드폰)없이 사는 내 삶이다. 이런 나를 골동품 취급하는 이들은 아내말고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골동품으로 여기든 촌놈으로 여기든 ‘쓸데없는 고집’으로 치부하든, 아내를 비롯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일 뿐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손전화를 전혀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십 수년 전 아직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 모두들 투박한 모양의 핸드폰들을 사용하던 시절에 한 일년여 손전화기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그만 전화기를 없앤 이후엔 손전화기와는 상관없이 살았다. 뭐 큰 이유나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단지 편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내 나이 또래 이상의 노인들 조차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게 어색하기는커녕 당연한 세상이 되었어도 나는 그 물건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딴 이유없다. 그저 없이 지내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믿을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앱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기술적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지언정 스마트폰은 없이 살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편한 삶을 위해서였다.

아내에게 ‘고집세다’는 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없이 살았던 내가 마침내 손전화(스마트폰)를 사서 손에 넣었다.

내가 개인컴퓨터(pc)로 사용하는 텔레그램 말고, 스마트폰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카톡도 pc버전이 있지만 아내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에이 할 수 없다’하고 하나 장만한 것이다.

이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고 지금 열공중이다. 나는 이 장난감을 가지고 전화를 주고 받는 일에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밥 먹고 사는 업종인 세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 카톡 또는 sns등을 이용해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전달해 주는 일이나, 언어문제로 순간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해 보고자하는 내 늙으막 꿈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해 보고자 함이다.

내 새 장난감으로 하여 아내의 잔소리 가운데 하나는 사라질런지… 아님?

참 좋은 일

어제 제 이메일함에 들어온 편지 한통의 내용입니다.

“델라웨어 대학교 은퇴교수인 내가 이즈음 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뉴왁시에 있는 헬렌 그라함 암센터에서 환자와 간병인들에게 글쓰기 교실을 여는 일이다. 물론 자원봉사이고 이 교실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공짜이다. 오늘 네가 보낸 이메일 편지 내용은 내가 오는 2월 13일에 열리는 글쓰기 교실의 주제와 딱 맞는 것이다. 그래서 네 편지를 그날 참석하는 사람들과 네 편지를 함께 나누려고 하는데 괜찮겠니? …….”라는 것이었습니다.

I’m a retired professor from the University of Delaware, and I offer a writing program for patients and caregivers at the Helen Graham Cancer Center in Newark. I do it as a volunteer, and it’s free of charge and open to all. The post you sent out today fits perfectly with the topic of our next writing workshop, on February 13. Would it be all right with you if I print out copies to give to the patients and caregivers who attend that session? We usually have 12-18 people present. Of course I’ll include the contact information so that they can sign up for your weekly posts if they wish.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weekly reflections, which I enjoy very much, and for considering this request.

Joan DelFattore

이 편지를 받은 저는 당연히 제 세탁소 손님인 Joan DelFattore님께 답을 드렸답니다.

“저로서는 그저 영광일 뿐”이라고요.

제가 보냈던 편지 내용이란 사실 별거 아니었답니다. 내 마음으로 다스릴 줄 아는 하루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었지요. 그런 잠시의 제 생각 하나가 누군가에게 정말 순간일지라도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제게 참 좋은 일이지요.

제가 보냈던 편지 내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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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휴대전화 가게에 들릴 일이 있었답니다. 그날 대기 의자에 앉아  “참 세상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십 수년 전만해도 지금과 같은 휴대전화 가게 같은 매장은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십 수년 동안 새로 생겨 호황인 업종들과 잘 나가다가 없어지거나 쇠퇴한 업종들을 꼽아보게 되었답니다. 그 생각의 끝은 역시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이었답니다.

제 업인 세탁업도 마찬가지랍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참 많이 바뀌었답니다.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및 정보 통신 기술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른바 제3차 산업혁명의 결과들일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제가 잘 모르고요, 사람사는 모습들이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들 한답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변화에 대해 잘 모른답니다. 다만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빠르게 바뀌어 갈 것이고, 사람들이 먹고 사는 직업의 유형들도 빠른 주기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답니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보면 제 아이들 세대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어려운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제가 할 수 일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다만 그날 휴대전화 가게에서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가지를 생각해 낸 것이 있답니다.

조금은 느리게 살자는 것이랍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일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내 삶을 느리게 천천히 여유있게 사는 것이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자! 새로 시작하는 한 주간 여유롭고 넉넉한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A few days ago, I had to go to a cell phone store. On that day, while I was sitting on the chair and waiting, I got it into my head that the world had really changed a lot. Just a decade or so ago, I did not see businesses such as cell phone stores. I don’t think that anybody would have thought about that kind of business. Following such a train of thoughts, I started to think about newly-born and booming businesses and those once booming, but now declining businesses during the past decade or so. Expectedly, the thoughts ended in the conclusion: the world has really changed a lot.

So has the dry-cleaning business, which I have been doing. It has changed a lot in many respects.

Those changes may be the outcome of 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 which can be characterized by personal computers, the internet and information/communication technologies. Though I don’t have expert knowledge about it, I think what it tells us is that the way of our lives has been changing rapidly.

Then, it is said that now we are living in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Frankly, I don’t have any idea about that. But, I think that in the future, the world will change at an even faster pace and the rise and fall of businesses will change at a shorter cycle.

Following the train of this kind of thoughts, I started to wonder whether our children’s generation might confront a world which might be even harder to cope with than the one that we do.

Though the world is changing rapidly, I cannot do anything about that.

However, at the cell phone store the other day, I got an idea of one thing which I could do in the rapidly changing world.

It was to live in a little bit slower way.

Though I cannot do anything about rapid changes in the world, I can have my own way to decide how to live. To live my life in a slower and more leisurely way is totally up to me.

Well! I wish that you’ll have an easy and comfortable week.

From your cleaners.

2017년엔 대서소(代書所)로…

웬만하면 일을 줄일 일이지 늘일 나이가 결코 아니다. 허기사 내 주제가 그렇다는 것이지, 이즈음엔 칠순에도 새 일을 꾸미고 벌리는 사람들은 천지더라만.

지난 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나는, 한 해의 하반기가 아닌 인생의 하반기를 준비해야 할 지점을 막 통과하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반기를 준비할 시점’이라는 말을 되뇌며 첫번째로 든 생각은 욕심을 버리자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이어가되, 어느 순간에 내 뜻과는 상관없이 그만 끝나고 말지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나이에 이르렀다는 자각이었다.

딱히 신앙이 아니더라도 물리적인 나이가 종말론적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다다렀다는 내 생각이 결코 조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러던 중, 자꾸 내게 새 일을 던진 이가 있었다. 한인 세탁인들을 위한 월간지를 만든다고 나선 황주상이라는 이였다. 몇 차례 사양 끝에 결국 글 하나 써 보냈다. 그건 단지 글이 아니라, 새해 2017년에 내가 행해야만 할 일이었다.

내 세탁업 경력은 차치 하고서라도 적어도 이 업계의 정보를 일별하여 업자들 수준에 맞게 정리하여 재단하여 제공하는 일과 언어를 통한 마케팅 문제 등을 대서소 주인처럼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아직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대서소라도 있었으면 하는 이들에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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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의 미래 – 길을 찾아서

“미스터 김도 내 나이 되보면 알거야. 움직이는게 귀찮아 진다구. 미스터 김은 아직 내 말을  이해 못하겠지만…”.  얼추 십여년 전에, 나보다 열살 정도 나이가 많은 동네 어른 한 분이 내게 건냈던 말이다. 당시에 그 말을 듣고 있던 솔직한 내 심정은 “에이, 설마… 그 나이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해, 나는  딱 십여 년 전 동네 어르신이 하시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얼추 열살 정도 아래인 내 후배에게.

이제 Social Security의 full benefit을 받을 수 있는 나이도 코 앞에 이르렀거니와, 아이들도 다 제 갈 길 찾아 나섰고, 우리 내외 둘이서 나누는 저녁 밥상은 날로 단촐해지니 움직이는게 귀찮다기 보다는 할 수 있는 한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하다.

아무튼 지난 해에 나는 많은 일들을 줄였다. 줄인 것은 비단 일 뿐만이 아니다. 집안 물건들도 많이 줄였다. 애초 그리 가진 것들이 많은 편이 아니였는데도 줄일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을 줄은 몰랐다.  집안이 휑할만큼 줄였다. 그렇게 줄이고 나니 어쩌다 들르는 아이들은 집이 두배는 넓어진 것 같다고 한다.

일에 이르러 따지자면 한참 때에 비해 거의 은퇴 수준이라 할 만 하겠다.  서른 해가 다 되어가는 세탁소 일들 뿐만이 아니라, 십 수년 이어오던 한인 세탁인들과의 여러 연들도 줄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줄여서인지 딱히 급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거의 없는 일상이 되었다.

느긋함을 만끽할 나이에 들어섰다는 자각을 실천에 옮긴 것도 지난해 일이었다. 미대륙횡단 기차를 탔던 일이다. 그 여행 이후, 이제 나는 내 인생 후반기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그리고 몇 가지 계획들을 세웠다. 아내를 위하여, 아이들을 위하여, 고령의 부모님들을 위하여, 무엇보다 내 자신을 위하여 이제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았던 것이다.

허나 삶이 살아 볼만한 까닭은 모든 삶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가 보다. 내가 새로운 삶을 계획하려고 하는 때에 장모가 먼저 저 세상으로 새 삶을 찾아 떠났다.

그 무렵에 내게 전화를 한 이가  Kleaners의 황주상사장이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거니와 통성명도 그날 전화로 처음 나눈 사이이다. 새로 시작하는 한인종합세탁전문지 월간 Kleaners에 컬럼을 부탁한다는 그에게, 이미 은퇴 수순에 들어선 나보다는 보다 활기찬 기운으로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분들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찾아오겠다는 그를 만류했다.

황사장은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로인해 나는 Kleaners에 실릴 첫 컬럼을 이렇게 쓰고 있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누구의 기억속에라도 남아 있을 “대서소 (代書所)”라는 곳이 있었다. 혹시 그 이름이 낯선 이들도 있을까? 그건 참 좋은 일이다. 젊은 사람이 세탁업을 이어 받았으므로. 아무튼 “대서소”란  출생과 사망신고서, 혼인과 이혼신고서, 진정서, 탄원서, 고소장을 써 주는 곳, 그야말로 삶의 희로애락을 대신 써주는 곳의 이름이었다.

이 첫 컬럼을 쓰고 있는 내 솔직한 심정은 바로 “대서소”를 개업하는 마음이다. 그저 내 느긋함을 즐기며, 내 경험과 지금 내 일상의 하나인 정보를 보고 듣는 일을 나누는 그런 대서소가 된다면 그 또한 내 나이에 맞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이다.

첫 컬럼에 뭔 글을 쓸까?라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하얀 얼굴의 여호와의 증인 한사람이 건넨 안내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How do you view the future?” 우리의 내일은? 나나  이 글을 읽는 당신 세탁소의 미래는?.

그 길을 찾는 것이  내가 이 컬럼을 이어가는 뜻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시 한편으로 이 글을 맺는다.

관점

  • 쉘 실버스타인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주일만찬은 즐겁지 않다 /부활절축제도 재수 없을 뿐 /닭과 오리의 관점으로 / 그걸 바라 본다면.

한때 나는 참치 샐러드를 얼마나 좋아했었던지 /돼지고기 가재요리, 양갈비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식탁의 관점에서 /식탁을 바라보기전까지는.

Point Of View

  • Shel Silverstein

Thanksgiving dinner’s sad and thankless/ Christmas dinner’s dark and blue/ When you stop and try to see it/ From the turkey’s point of view.

Sunday dinner isn’t sunny/ Easter feasts are just bad luck/When you see it from the viewpoint/Of a chicken or a duck.

Oh how I once loved tuna salad/ Pork and lobsters, lamb chops too/ ‘Til I stopped and looked at dinner

From the dinner’s point of view.

무릇 모든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그 다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가 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추석- 세월에 대하여

송편 대신 만두를 조금 빚었다. 솔직히 ‘송편 대신’이라는 말은 애초 가당치 않은 수사이다. 아무리 미국사람 다되어 산다하지만 노인들이 계시고, 그래도 명색이 추석인데 덕담 한마디로 넘어가기엔 예가 아니다싶어 만두를 빚게되었다.

“어제 막내네가 필라에 장보러 간다고해서 따라갔는데 파는 송편도 없더구나. 다 팔린건지…. 찾는 사람이 없는건지…. 이젠 추석도 없나보다.” 만두를 들고 찾아간 내게 어머니가 건넨 말씀이다. 노모는 손수 만들지는 못할망정 사서라도 송편 몇 점 아들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 한번의 추석이 그렇게 지나간다. 참 신기한 일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날씨만큼은 내 어릴적 추석날 같다. 창문을 여니 벌레소리가 벌써 가을이다.

무심코 손에 든 책이 아주 오래 전 것이다. <성서와 인간> –  1972년도이니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해에 나온 책이다. 그해 외할머니께서는 내게 손수 한복을 지어 주셨다. 나는 그 옷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눈에 들어 온 대목이다.

“돌이켜 우리는 혼란을 거듭하는 조국의 처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조국의 발전의 길은 지도층의 영웅화를 배제하고 대중이 참되게 계발되는 데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일석이조에 이와 같은 과업이 완수될 수는 없지만, 질서화를 위해 암중모색한 소크라테스의 인생관과 그의 논리성은 곧 우리의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소위 아테네의 영웅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는 ‘궤변의 논리’를 앞세우는 특권층을 ‘성실의 논리’로 막아냈으나 유감스럽게도 우매한 대중에 의해 사형당한 아테네의 선량한 평민이었다.”

예전 숭실대 총장을 지내신 조요한(趙要翰)선생님의 글이다.  글제목이  < 혼란과 질서 – 궤변론자들과 소크라테스>이다.

변한 추석풍경과 다르게 여전한 ‘궤변의 논리’들이 무성한 한반도 뉴스들이 마구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성실의 논리’들은 더욱 거세게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는 생각으로 넉넉한 한가위 저녁을 물린다.

따져보니 그 무렵 한복 지으시던 외할머니가 이고 있던 세월의 짐을 내가 이고 있다.

참여해야 힘이 생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적으로 소수이고, 힘이 열악한 집단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좋은 전략을 가지고 힘을 모아 함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시안 정치참여 단체인 ’80-20’는 오는 6월 7일에 있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아시안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캘리포니아 거주 아시안계 미국인들에게 예비선거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소수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선거에 임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일수록 전략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방법을 널리 알려야 할 것입니다. 80-20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6 7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예비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있다

다음은 그 방법이다. 단지 다음 사실들을 합해보라.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주장함으로써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기 위하여 자신의 의무를 이행한다면, ‘80-20’의 계산이 옳다고, 당신은 동의할 것이다.

사실:

  1. 대통령선거에서, 아시안계 미국인은 민주당원, 공화당원, 혹은 무소속 모두를 포함하여 캘리포니아주 투표수의 대략 7.4%를 차지한다.
  2. 하지만, 금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는 낮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본 선거 투표율의 약 1/3 수준일 것이다. 우리가 중요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에게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캘리포니아주 대통령 예비선거라는 것을 깨닫고, 만일 아시안계 미국인들 모두가 투표에 참여한다면, 그 7.4%는 세 배인 22.2%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3. 캘리포니아주 대통령 예비선거는 공화당은 그렇지 않지만, 민주당은 개방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무소속이라도 민주당 예비 선거에 등록, 투표할 수 있다.
  4. 아시안계 미국인들은 다른 유권자들과 비교하여 무소속으로 등록하는 경향이 두배로 많아서,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투표 영향력을 대폭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방 민주당 예비선거는 아시안계 미국인들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무소속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숫자는 최소한 민주당 등록 유권자 만큼 된다. 그들 모두가 ‘80-20’의 조언을 따라서, 6월 7일 예비선거에서 민주당으로 등록, 투표한다면, 그 22.2%는 44.4%로 되는 것이다.
  5. ‘80-20’는 이러한 유권자들이 우리의 권고를 따라서 샌더스 혹은 클린튼에게 투표할 것으로 확신한다. ‘80-20’가 지지선언한 후보자는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대의원 수가 가장 많은 주에서 아주 높은 퍼센트의 전당대회 대의원 수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결과!

‘80-20’의 지지로, 캘리포니아주 예비선거 후, 버니 샌더스가 탄력을 되찾거나, 힐러리 클린튼이 샌더스를 물리칠 것이다. 따라서, ‘80-20’의 지지는 양 선거진영 모두에게 반드시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상기 사항은 대통령 후보 양자에 대한 ‘80-20’가 소지하는 협상 파워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도움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혹시 당신이 캘리포니아주 거주자가 아니라도, 이 이메일을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친척, 친구들에게 전송함으로써 여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AsAms can dictate the outcome of CA Democratic presidential primary on June 7th

Here is how.  Just put the following facts together.  You shall agree that 80-20’s calculation is right, provided that all CA AsAms voters will do their duty to fight for their children’s future by asserting our political clout.

Facts :

  1. In a presidential general election, AsAms roughly represent about 7.4% of the vote in CA among either Democrats, or Republicans or Declines/Independents.
  2. However, the turnout in recent Democratic presidential primaries this year has been low. It’ll be about 1/3 that of the general election.  If AsAm voters     will all turn out to vote, realizing that a presidential primary in CA is about our only chance to tell politicians that we can affect the outcome of an important election, then the 7.4% triples to 22.2%.
  3. The Democratic presidential primary in CA is open, though the Republican one is not. That is, Declines/Independents may register to vote in a Dem. primary.
  4. An open Dem. primary is a godsend for AsAms, because AsAms are twice as likely to register as Declines than all other voters, thereby drastically increasing AsAm voting clout. In CA, the number of AsAm Decline voters is at least as large as that of registered Democrats. If they all follow 80-20’s advice and register to vote as Democrats in the June 7th primary, then the 22.2% becomes 44.4% .
  5. 80-20 is confident that these voters will follow its recommendation to vote for either Sanders or Clinton. The one endorsed by 80-20 will win by a landslide, winning a huge % of convention delegates in a state with the largest number of delegates.

RESULT!

With the endorsement of 80-20, after the CA primary, either Bernie will regain his momentum, or Hillary will knock Bernie out.  So winning 80-20’s endorsement is a MUST for both campaigns.

The above is 80-20’s bargaining power with both presidential candidates.  But it can only succeed with your help.  If you don’t live in CA, you can still help by forwarding this email to your relatives and friends in CA.

뉴욕 나들이 후기

어제 딸아이 사는 모습 좀 보고 오느라고 뉴욕을 다녀왔답니다. 아이가 연휴면 종종 집에 오느터라 자주 가보지는 않는답니다.

뉴욕 맨하턴 나들이에서 제가 즐기는 몇가지가 있답니다. 주차비에 치이고, 맨하턴에서 차 사고를 한번 당한 이후에는 맨하턴 나들이는 언제나 기차 아니면 버스를 이용한답니다. 우선 그 교통 수단의 편안함입니다. 버스나 기차나 오고가는 시간에 누리는 편안함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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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턴 한인거리에 있는 서점 방문과 한식당에서 누리는 한끼 입맛의 호사와 곁들이는 소주 한잔의 즐거움 등이 나들이를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랍니다.

지난 가을에 뉴욕 나들이를 했을 때는 서점이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문을 닫아 그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놓쳤었답니다. 딸아이에게 서점이 공사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여서 내심 알라딘을 통해 구입하려던 책들을 이번 나들이 몫으로 미루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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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과 판매 서가에 꽂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책방과의 차이는 맛이 다름에 있지요. 같은 책을 구입해도 정말 맛이 다르답니다.

새로 꾸민 서점의 모습에 실망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움이 밀려 왔습니다. 우선 규모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 들었답니다. 그렇게 줄인 나머지 공간은 화장품 매장과 의류 매장으로 꾸며져 있었답니다.

그렇게 줄어든 공간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증폭시킨 것은 서가에 진열된 책들이었습니다. 웬 요리책들이 그리 많이 꽂혀있던지요. 좁은 공간에 거의 한 섹션을 이루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기독교 서적들과 자기 개발서들이 주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서점 비즈니스의 현실을 들어내고 있었답니다. 저만해도 서점 나들이는 그저 이따금 누리는 재미일 뿐, 아마존이나 알라딘이 편한 것을요. 그나마 서점을 그렇게 유지하려는 주인장의 아픔을 느꼈다할까요.

서점 방문에 앞서 들렸던 macy 백화점에서의 느낌도 새로운 것이었답니다. 사실 저는 뉴욕 macy 백화점 안에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아내와 딸아이가 샤핑을 할 때면 저는 늘 따로 놀곤 했었는데 이번엔 함께 했답니다. 늙어가는 징조일겝니다.

매장에 들어가서 제가 놀란 것은 매장 일층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의 춘절 곧 우리 설날을 중국풍으로 드러낸 장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 3, 4층으로 올라가면서도 똑 같은 느낌을 받았답니다. 바로 빨간색을 주조로 한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 서점에서 사온 책들을 훑어 보다가 눈에 들어온 대목입니다.

『논어』의 이 화동론(和同論)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IMG_20150426_082042얼마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 162-163쪽에 실려 있는 말입니다.

세상은 늘 변하고 시대의 대세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딱히 자본주의의 변화 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또는 한국 이라는 국가 단위 공동체도 부단히 변해갑니다.

점점 설자리 잃어가는 서점 주인과 쇠락해가는 macy 뿐만 아니라  동(同)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이 사회가  화(和)를 주창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이는 밤입니다.

도둑질에 대하여

대왕 알렉산더(Alexaner)가 붙잡혀온 해적에게 “너는 어찌하여 바다를 어지럽혔느냐?”고 물었답니다.

대왕의 물음에 해적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대왕이시여! 어찌하여 당신은 세상을 어지럽혔습니까? 나는 작은 배로써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적놈’이라고 비난받지만, 당신은 막강한 군대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정복자’라는 칭함을 얻은 것일 뿐입니다.”라고요.

신국론성 어거스틴이 쓴  “신의 도성(신국론), The City of God”에 나오는 이야기랍니다.

작은 좀도둑이나 국가나 자기만을 위한 생각에 빠져 있는한, 똑같이 도둑놈에 불과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고 작은 집단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기주의에 빠져서 자기 개인이나 집단만의 이익을 우선시하다보면 결국 도둑놈이 될 뿐이라는 교훈입니다.

해적이나 도적이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이나, 국가나 집단(물론 교회도 포함)이 주어진 권력을 신성시하여 개인에게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나, 똑같이 도적질이라는데는 다름이 없다는 이 이야기의 핵심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비단 물질적 소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욕망들 일테면 식욕, 성욕, 지식욕, 권력욕에 이르는 것들에 대한 소유입니다. 남보다 내가 더 가지려는 욕망, 끝내 내가 모두 차지해야만하는 욕망에 이르기까지 개인이나 국가 또는 교회, 각종 집단들이 지닌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욕망 곧 소유에 대한 개념을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사용(use)과 향유(enjoy)라는 개념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의 목적 또는 이익을 위해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가 원한다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전제로 말이다.”

어거스틴은 이 두 개념이 전도되는 상황을 악이요, 죄라고 말합니다. 향유(enjoy)할 것을 사용(use)하거나, 사용해야 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욕망의 향유(enjoy)와 사용(use)을 구분하는 잣대로 “필요(necessary)”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가 말하는 “필요”란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과 의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집단이나 단체, 국가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필요”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것들은 “여분(superfluous)”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여분”의 것들은 이웃과 나누는 것이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며, 개인나 단체 또는 국가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 “여분”의 것들을 “필요”라고 말하면서 자기 것 또는 권력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바로 도적질이요, 사기질이라고 강조합니다.

어거스틴(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Sanctus Aurelius Augustinus)이 보았던 도둑질과 사기질은 그가 죽은지 1600여년이 지난 오늘도 도처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는 그럼에도 사람사는 일은 여전히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다. 현실이 지금 모습대로인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현실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용기.”라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오늘도 “현실에 대한 분노와 용기”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 뉴스를 보며 자꾸 혀차는 습관이 늘어나는 나에게 희망을 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