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주말 오후, 친구 부부와 우리 내외가 함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펜실베니아  Swarthmore 마을의 소극장에서 락오페라 Jesus Christ Superstar를 보았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이젠 틈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살아보자는 배포가 맞는 친구의 생각이었다.

Swarthmore는 인구 6천을 조금 웃도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있는 소극장 Players Club of Swarthmore는 107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비교적 한적한 주택가 마을에 위치한 소극장은 마치 초등학교 강당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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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입구 제법 너른 로비에는 107년의 역사를 말해주는 게시물들이 벽을 채우고 있었는데, 음료수와 간식들을 파는 매대는 아이들 소꿉놀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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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입구에서 표를 받고 안내하는 이들을 보니 나는 아직 시퍼런 청춘이었는데, 내 나이는 300여석의 공연장을 거의 매운 관객들의 평균 연령 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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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에 각종 안내를 하는 사내도 내 또래였는데, 그가 소극장 클럽 멤버들을 위한 안내를 한다면서 멤버들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니 객석의 약 1/3정도가 손을 들던 것이었다. 소극장을 위해 연회비를 내거나 기부하는 멤버들의 연령 역시 대부분 내 나이 또래 중늙은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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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고, 오페라에 무지한 내 눈과 귀의 수준으로 보면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성은 놀랄만큼 대단했다.

내 무지함 탓이 우선이지만 이따금 내가 공연에 매몰되지 못했던 까닭은 바로 내 앞자리에 앉아있는 아이 때문이었다. 옆자리 제 엄마와 함께 공연을 보고 있던 아이는 덩치가 제법 큰 십대 나이 즈음의 정신 신체 장애아였다.

무거운 음악이 흐르거나 노래가 고음으로 불려지거나 조명이 갑자기 어두어지거나 하면 아이는 몸을 뒤틀며 제 앞자리나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찌르거나 머리를 만지거나 하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꼭 끼어 안고는 했었다. 그런 모자의 모습이 무대를 향한 내 시선을 뺏곤 하였다.

사실 내가 그보다 더 놀라운 시선을 보낸 관객들은 따로 있었다. 중간 휴식 시간이었는데 스물 언저리 처자를 양쪽에서 붙들고 걷는 중년 부부, 아마 가족일 듯한 일행이 그들이었다. 처자는 앞을 못보는 소경이었다.

아이들 소꿉장난 같던 로비의 매대는 중간 휴식이 되자 제법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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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 Superstar의 극 내용은 익히 아는 것이었고, 내 젊은 시절 70년대의 파격적인 예수나 유다의 해석이 오늘날에야 전혀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어제 그 자리에서 새롭게 예수를 만났었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을 향한 이어지는 박수 소리도 끝나고 객석의 관중들이 일어난 후의 일이었다.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지체아에게 시달림(?)을 받았던 주변의 사람들은 너나할 것도 없이 아이와 엄마에게 인사를 건네던 것이었다. “연극 잘 보았니?”, “재밌었니?”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 엄마에겐 따듯한 눈길을 보내며 한두 마디 씩 인사를 건넸는데 그게 결코 건성이 아니었다.

어쩜 예수를 재해석하고 만나 얼싸 안는 일이란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 객석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나는 모처럼 문화인 흉내를 내보았다.

세월

봄이라고 벌써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가게를 드나드는 젊은이들도 있다만 어느새 노년 할인을 받게 된 나는 아직도 겨울 점퍼를 걸치고 있다.

해는 이미 길어져 일 끝내고 돌아와도 한낮이다.

“얘야, 아직도 추운가 보다. 바람 소리가 맵구나!” 전화 속 목소리만은 아직도 정정하신 아흔 둘 내 어머니가 들으신 그 매운 바람에 뒷뜰 개나리, 이웃집 자목련 꽃잎들이 떨어져 날린다.

앞뜰 나이 오래 된 나무가 내민 꽃망울이 내게 말을 건넨다. “이 사람아, 봄은 이제 시작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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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한반도 종전(終戰) 운운하는 소식을 전하는데… 그것도 종잡을 수 없는 바람같은 Trump가 “They do have my blessing to discuss the end of the war”라고…

고목에 피는 꽃은 봄기운 때문이 아니라, 세월을 이겨낸 나무 스스로의 오랜 염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일상(日常)이 아닌 일에 대하여

이따금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 뒤 내 나이 탓을 하곤 하지만, 따져보면 그게 딱히 내 나이 탓만이 아니다.

어젯 일만해도 그렇다. 차 열쇠 두개를 모두 차안에 두곤 그만 문을 잠그고 말았었다. 이건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평소엔 차에서 내린 뒤 차 열쇠에 달린 자동 버튼으로 차문을 닫곤 하는데, 보조 열쇠까지 모두 차안에 두고는 차문에 달린 잠금 버튼을 누르고 차문을 닫아 버렸던 것이다.

세월호 사주기를 맞아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행사에 참여하려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랬다. 이건 내 나이 탓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단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만나면 덤벙대는 오랜 내 습성 때문이었다.

세월호 행사 – 솔직히 내겐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세월호만 하여도 그렇다. 나는 물론 이거니와 내 일가 친척 모두를 따져보아도 그 일과 연관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더더군다나 나는 그 땅을 떠나 산 지도 한 세대의 세월이 지났다. 내 일상 속으로 스며들 그 어떤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상적이지 않은 일에 할 수만 있으면 함께 하려고 애쓰곤 한다. 그러다보면 허둥거리기 일쑤이다. 어제 주차장에서 벌어졌던 실수는 어쩜 당연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나는 행사에 거의 함께 하지 못했다. 서비스 맨을 부르고 기다리느냐고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내 차문을 열었을 때 행사는 이미 끝 무렵이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행사에 참여했던 유일한 벽안(碧眼)의 사내가 한 말이란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들만이 기억하고 되새길 사건이 아니다. 안전한 사회를 갈망하는 우리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기려야 할 사건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역사의 발전 또는 문화의 발전이란 내 가족, 내 친족과 친구, 내 편을 벗어나 더 넓은 범위이 이웃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 나아가 내 편이 아닌 저 편의 누군가일지라도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공감대를 확장 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되새기며, 원인을 규명하고 한을 풀어 주는 일은 문명으로 나가는 길이며,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일인 동시에 내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로 다가가는 일이다. 또한 내 개인적으로는 야만을 벗는 일이다.

비록 내겐 일상적이지도 않고, 차 열쇠를 안에 두고 문을 잠그는 우를 범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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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

뜰에 봄이 가득한 토요일 오후, 지붕을 범하려는 꽃나무 가지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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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줄 노트.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카메라는 그저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의 사진 강의 노트(Teaching Photography)에서

 

 

다시 부활에

유난히 더디 오는 봄입니다. 올핸 봄꽃 보다 먼저 부활절을 맞습니다. 부활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입니다. 예수와 부활과 봄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함께 생각해 보는 말들입니다.

하여 성서를 펴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마가복음 1장 14-15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마가복음 16장 6 – 7

예수 이야기가 시작된 첫 장소가 갈릴리였고, 이야기를 맺는 장소 역시 갈릴리라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물위를 걷고, 거친 풍랑을 잠재우고, 귀신을 내쫓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의 숱한 가적과 치유의 역사를 만들어 냈던 곳이 바로 갈릴리였다고 기록자 마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고, 무덤에 머물다 부활한 예수는 다시 갈릴리로 갔다고 기록한 것도 마가입니다.

갈릴리 – 그 땅에서 예수는 나병환자를 고치고, 중풍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고, 귀신들린 자의 정신을 바르게 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혈루증 걸린 여인을 치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예수는 병 고침을 받은 이들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명령했다고 마가는 이야기합니다.

이런 예수의 명령을 <가족(사회)에게로 돌아가라는 귀환명령>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일본 신학자 아라이 사사구(荒井献, 그의 책 ‘예수의 행태’에서) 입니다.

예수 당시 병든 자들은 죄인이요,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가 있어 죄인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외로운 처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죄 없는 죄인이요, 원치 않은 소외였기에 한맺힌 이들이었습니다. 예수의 귀환명령은 바로 한 맺힌 이들에게 한을 풀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의 명령에 따라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서는 귀환 이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전해지는 당시의 관습이나 체제로 미루어 귀환 이후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곤고 하였을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들은 여전히 그들을 비정상적이었던 사람으로 취급 하였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을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예수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고 가족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지만, 여인이 돌아간 곳에는 여전히 손에 돌멩이를 들고 아무 때나 그들이 맘만 먹으면 던질 수 있는 이들이 넘쳐 났을 것입니다.

바로 부활한 예수가 먼저 가 있는 곳, 갈릴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2018년 오늘, 예수가 먼저 와 있는 곳 내가 발 딛고 사는 여기의 모습입니다.

소외된 이들, 한 맺힌 이들이 사람 본래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현장에서 오늘도 함께한다는 예수의 선언 – 바로 부활입니다.

이 봄에 필라델피아  Schuylkill 강변을 함께 걷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예수가 먼저 와 걷고 있던 갈릴리를 떠올려 보는 까닭 역시 바로 그 부활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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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만우절 이자 부활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고, 어쩜 참 잘 어울리는 조합 같기도 하다. 부활, 누군가에겐 치열한 믿음일 터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갓 농담일 뿐.

물론 내겐 삶의 마지막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리 무거운 것은 아니다. 일 테면 어느 도(道)트인 신앙인의 절절한 기도문 가운데 탁하고 내 가슴을 치던 고백이 그렇다.

“아내에 대해 늘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시고, 혹 상처 입하는 말을 하게 될 때는 저의 혀를 묶어 주시옵소서.”

부활이란 그렇게 늘 치열하지만 농담처럼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일터의 아침

만일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무어라고 대답하시는지요? ‘내 취미가 뭐지?’라는 생각없이 바로 튀어 나오는 답이 있으신지요? 저 스스로에게 “내 취미가 뭐지?”라고 묻고는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대답이 없기에 물어보는 말이랍니다.

솔직히 저는 이렇다할 취미가 없답니다. Wikipedia는 취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더군요. A hobby is a regular activity that is done for enjoyment, typically during one’s leisure time. 여가 시간에 즐기는 정기적인 활동 이라는 정의에 맞게 제가 하는 일이란 잠자는 일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세탁소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저녁을 먹고 특별히 무언가를 할 여유없이 잠자리에 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잠자리에서 잠 들기 전에 몇 줄씩이라도 읽곤 하는 책 읽기 정도가 취미라면 취미하고 할 정도랍니다.

올해초에 나도 취미 활동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진기를 하나 장만했답니다. 사진 찍기 초보자들을 위한 카메라라는 설명에 솔깃해서 구입한 카메라랍니다. 평생 해보지 않던 일이라 배울 것이 참 많았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특별히 어딘가를 찾아 가지는 않는답니다. 그저 세탁소와 집 근처 제 일상적인 삶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답니다. 하늘, 나무, 새, 오리 등등을 찍고 있는데 평소에 눈에 뜨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답니다. 하늘만 하여도 매일 매일이 다르고 일을 나올 때와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다릅니다. 물론 그걸 다 카메라에 담지를 못한답니다.

이즈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제가 느낀 생각 하나랍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깨닫는 세상은 정말 작고 작은 세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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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are asked, “What is your hobby?” what would be your answer? Do you have an answer which you can give instantly without asking yourself the same question? For me, nothing came to my mind, however hard I’d tried to find an answer after I’d asked the question to myself. That’s why I ask you the question.

Frankly, I’ve got no hobbies to speak of. Wikipedia defines “a hobby” this way: “A hobby is a regular activity that is done for enjoyment, typically during one’s leisure time.” I almost thought that my hobby must be sleeping, if I looked back at my activities through Wikipedia’s definition. That’s because I go to bed without doing anything special. I don’t feel any time and energy left for doing some other things after I spent most of my time at the cleaners, returned home and ate dinner. If I really had to say my hobby, I might have said that my hobby was reading, as I read a book just before going to bed every night, even if I read only a few paragraphs at a time.

Earlier this year, I bought a camera with the thought that I’d make photography be my hobby. I got it as I was tempted by the explanation that it was excellent for photography novices. As it was something that I had never actually done, there were lots of things that I had to learn.

I don’t go to any places especially to take pictures. I try to capture things which I can find around my house and cleaners and in my everyday life. While I’m taking pictures of the sky, trees, geese and so on, I can see many things that I don’t think I’ve seen usually. The sky looks different every day and the sky when I come to the cleaners in the morning doesn’t look the same when I leave the cleaners in the early evening. Of course, I cannot capture all of them with my camera.

While I was carrying a camera recently, one thought which came to my mind was: the world in which I see, feel and realize is really nothing but a really small world.

희망 콘서트

“표 파는 게 정말 힘드네요.”, “열심히 다닌다고 다녔는데 표를 못 팔았어요.”,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 사람에게 표 파는 일이 참 쉽지 않았어요.”

애초 시작할 때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나선 일이었다. 내 이야기는 아니고, 어느새 4년 세월이 흐른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일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대 사건’이라는 생각으로 동아리가 된 사람들 이야기다. 이름하여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약칭 ; 필라 세사모)>이다.

이들이 아직 봄을 기다리기엔 이른 2월 초에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나선 까닭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죽은 자와 산 자가 자연스럽게 만나 대화하는 기억의 공간을 만들고, 아픔을 보듬어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참여와 실천 속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 모두가 존중 받는 국가, 서로가 협력하고 환대 받는 평화와 우정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의미 있는 행진으로 우리의 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 ‘4·16재단 설립 추진 대회’ 제안문 중에서

나는 믿는다. <기억과 희망이 흐르는 밤>을 위한 티켓을 파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쉽지 않다’, ‘힘들다’는 소리로 하여 기억은 더욱 새로워 질 것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은 이루어 질 것임을.

비록 음악회 자리가 차지 않을지라도.

기억, 즉 역사는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는 수단이며, 오늘 힘들고 어려운 아픔을 보듬어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를 이룩해 내는 도구임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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