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설

오늘 유엔 연설에서 자화자찬으로 웃음거리가 된 트럼프에 대한 ABC의 트윗에 달린 댓글들이 크게 웃음을 준다. 한 아낙의 뿜는 모습에 담긴 조롱이 가관이다.

트럼프는 정말이지 독특한 캐릭터이다.

한 두어 달 전에 플로리다에서 낯선 풍경에 놀랐던 경험이 있다. 트럼프를 찬양하는 거리의 대형 입간판과 트럼프를 응원하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달리는 도로의 자동차들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쿠바를 비롯해 하와이 버진 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를 위시하여, 베트남 등의 인도차이나, 한반도,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한 일들을 미국민들은 애초부터 이제까지 진실을 모른다고 일갈했었다.

역사의 역설이랄까?

평생 치열하게 싸웠던 하워드 진이 결코 이루지 못했던 워싱톤의 가면을 들추어 내는 일을 트럼프가 해 내는 것은 아닐까?

이 참에 정말이지 한반도 문제만이라도….

나의 노래

아침 일터로 나가는 길, 한 동안 보지 못하던 아이들 학교 버스를 만난 월요일 아침부터 오늘까지 나흘 동안 찜통 더위가 이어졌다.

오늘 아침도 해는 떠오르면서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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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열기 속 하루를 염려하며 일터 앞에선 내 머리 위로 캐나디언 구스가 이글거리는 태양을 비웃으며 낮게 날아갔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쳐 돌아온 내게 세상물정에 빠른 뒷뜰 나무는 낙엽을 떨구어 보여준다.

한여름 또 잘 보냈다.

그게 또 대견하여 늦은 밤, 월트 휘트먼의 나의 노래를 읊조린다.

나는 믿는다, 풀 한 잎이 별들의 여정에 못지 않다고,
개미도 똑같이 완전하고, 모래 한 알도, 굴뚝새의 알도,
청개구리도 최고의 걸작이며,
기어오르는 검은 딸기나무가 천국의 응접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내 손안의 아주 작은 관절 하나가 온갖 기계를 비웃을 수 있고,
풀 죽은 머리로 어적어적 여물을 먹는 암소가 그 어떤 조각상보다도 낫다고,
생쥐 한 마리가 숱한 이교도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고도 남을 기적이라고.

예술에

이웃집 코스모스가 활짝 핀 주일 아침에 내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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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저녁, 세탁소 영업을 마친 우리 부부는 Delaware Art Museum엘 갔었답니다.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박물관 관람을 위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올해로 네 번 째를 맞이하는 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 행사 준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실 이 행사를 위해 제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내가  매해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답니다. 주말학교인 델라웨어 한국학교에서 한국계 어린 다음세대들을 가르치는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매해 이 행사에 참여합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아내는 자신의 한국 전통 무용 공연을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 아내의 전통 무용복을 세탁하고 다려주는 일이랍니다.

그 날도 오는 9월 29일,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추수감사절인 추석을 맞아 열리는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행사 준비 모임에 참석한 것은 아내였고 저는 단지 아내의 운전기사였을 뿐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 저녁  Delaware Art Museum 입구 hall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어록들이 제 시선을 빼앗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음악이던 미술이던 일반적으로 예술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대해 아주 무식 하리만큼 문외한 입니다. 그러니 예술에 대해 남긴 유명인들의 가르침을 본래 뜻대로 제가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유명한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 의 명언 ‘예술이란 영혼에 붙어있는 일상의 먼지들을 씻어내는 일이다.’ 라는 말도 그 중 하나였답니다.

저는 그 피카소의 말을 몇 번 되 뇌이다가 어느 스님이 남긴 말을 떠올렸습니다.

<행복의 예술은 이 순간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입니다. 다른 때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지 마세요. 참된 행복은 오직 여기 이 순간에 있습니다.>

예술이던 행복이던 뭐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일상 속, 매 순간 순간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맞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예술일 터이고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여름도 어느새 끝 무렵 입니다.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끼며 행복을 누리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Last Friday evening, my wife and I went to the Delaware Art Museum after work. We didn’t go there to see the museum in the evening out of the blue. We went there to participate in the preparatory meeting for the fourth annual 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

Frankly, I don’t do anything for the festival. But my wife, Chong, has involved in the festival actively every year. She has been participating in it every year with the Korean American children who she has been teaching at the Delaware Korean School, which is a weekend school. As she did last year, she will perform a Korean traditional dance at the festival again this year. All I do is to clean and press her Korean traditional clothes for the dance.

On that day, I was just a driver, and it was my wife who participated in the meeting for the festival which will be held on September 29 in celebration of Chuseok (traditional Korean Thanksgiving day).

That evening, well-known people’s quotes about art, which decorated the wall of the hall at the entrance of the Delaware Art Museum, caught my attention.

Frankly, I don’t know the first thing about the area which is called art, whether music or paintings. So it was hard for me to understand the real meaning of the quotes. One of them was Pablo Picasso’s: “Art washes away from the soul the dust of everyday life.”

While I was reiterating Picasso’s words in my mind a few times, what a Buddhist monk said flashed across my mind: “The art of happiness is to be fully content in this moment. Don’t seek happiness at any other time in any other place. It only lies here in this moment.”

Art or happiness may not be so difficult to catch or feel. If we can meet and value every moment in everyday life preciously, all that we see and hear at that moment may be art and happiness, I think.

Now summer is nearing its end. I wish that you will feel art and enjoy happiness in everyday life in every single day.

From your cleaners.

그를 위하여

엊그제 밤 평소 들을 수 없는 물 떨어지는 소리에 ‘뭔 비가 이렇게 많이 와!’하며 창문을 내다보니 지붕에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뿔사! 며칠 푹푹 찌는 더위 속에 비바람이 오락가락하더니 나뭇잎들이 떨어져 지붕 처마끝 물통이 막힌 모양이었다. 물통(gutter)에 낙엽 방지용 가림막을 친다 친다 하면서 미루는 내 게으름 탓에 해마다 한 두차례 겪는 일이다.

오늘 오후 지붕에 올라보니 물통 끝 빗물 내리받이(downspout)로 이어지는 부분에 한 두어 줌 낙엽들이 물 흐름을 막고 있었다. 지붕 위에 오르내리는 어려움에 비해 너무나 하찮은 노동에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지붕 위에 서서 바라본 동네 풍경은 보통 때와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 카메라를 찾아 들고 다시 오르내리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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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지내는 후배가 하나 있다. 그는 이 주 초에 세상 뜬 한국 정치인 노회찬 의원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노회찬에 대해 궁금했던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그가 어렸을 때 모습에 대한 기억에 대해. 후배가 내게 준 대답이었다.

‘한 땐 같은 반 이기도 했다. 나도 놀라 그에 대한 기사들을 다시 찾아 두루 읽어 보게 되더라. 참 잘 살다간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학년 때던가 생활관 학습 시간이었을 것이다. 방학 동안 있었던 경험들을 나누던 시간이었는데 그는 좀 남달랐다. 여름 방학 내내 전국의 산을 찾아 돌아다닌 이야기를 했으니….’

나도 후배의 말에 크게 고개 끄덕이며 동조했다. 참 잘 살다가 간 삶이라는 생각에.

그저 내 삶에 스스로 만족하며 살다가도 옳은 길, 외길 걸으며 사는 이들을 보면 웬지 부끄럽고 부럽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맞는 이들을 대할 땐 부끄러움과 부러움 이전에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애틋함에 흐르는 눈물을 애써 삼켜야 한다. 특히 내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노회찬에 대한 기사들을 읽으며 내가 그를 정리하는 생각이다. <소외된 이들을 위해 스스로 소외된 삶을 마다치 않은 삶을 살다간 사람>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지하의 삶을 이해하며 지붕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 앞에선 언제나 부끄럽고 부럽다.

그나저나 이젠 사다리 타고 지붕 위에 오르는 일은 멈추어야 하겠다. 다리가 떨려서…

소외의 힘에 대항하는 우리의 싸움에는 지름길이 없다. 이러한 힘에 대해서 정말로 승리를 거두려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기반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도전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사회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에 따르는 온갖 고뇌와 아픔을 감수해야할 까닭이 있다. 오늘의 인간 소외를 극복할 인간 역사의 새로운 단계를 위해 온갖 모험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프리츠 파펜하임이 쓴 현대인의 소외에서

인간 소외를 극복하는 죽음의 모험까지 감수한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위하여.

(그의 죽음을 빙자하여 그의 삶을 내리깍는 허접한 모습의 이웃들에게 그가 날렸을 이른바 촌철살인 그 한마디를 생각하며… )

– 7/ 28/ 18

삼가…

마른 체구의 내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으뜸 요인은 잠이다. 하늘 무너지는 걱정이 있어도 누우면 나는 금방 잠에 든다. 그리고 이튿날 정해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내 특별한 노력없이 되는 일이므로 내가 누리는 복 중 하나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짧고 깊게 낮잠을 즐기는 일은 덤으로 얻은 복이다.

그런데 어제 밤엔 두 시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며 멀뚱거리다 아침을 맞았다. 그 달고 단 월요일 낮잠도 건너 뛰었다.

한 밤중 두 시라는 시간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낯선 일이 였음으로 ‘이게 뭐야! ‘ 하는 생각이 앞섰는데 이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잠들기 직전에 보았던 ‘노회찬’에 대한 비보였다.

그의 죽음이 내 잠을 앗아갈 만큼 내가 그를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를 만나 본 적도 없거니와  평소 내가 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어떤 아린 것이 내 잠을 자꾸 쫓아 내어 그대로 아침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 월요일 그 단 낮잠 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달아났다.

나는 모든 삶에 뜻이 있다고 믿는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생각은 그것이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여 모든 삶과 죽음에는 깊은 뜻이 있다. 그 뜻은 죽은 자가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이 새긴다. 그게 사람이 사람인 까닭이라고 믿는다.

나는 노회찬의 죽음 앞에서 부끄럽다. 매우 부끄럽다. 그와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삶을 나눈 적은 없지만 웬지 그냥 부끄럽다.

그저 그 부끄러운 생각에 딱 하루 내가 잠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남겼다는 유서에 있는 글이란다.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시대를 향해 그가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 그 처절한 순간을 던져 그가 꿈꾸었던 진보적 외침을 외친 것은 아닐까?

그의 죽음에 대해 두루 말 많은 이들의 말은 이어질 것이다. 그게 또 사람사는 세상의 한 모습일 터이니.

묘하다. 오래 전 투신으로 시대의 아픔을 안고 떠난 소설 속 주인공 이명준에게 생을 부여했던 최인훈의 부고를 함께 듣다니.

아마 나는 오늘 밤 깊은 잠을 즐길 것이다. 내 부끄러움은 늘상 값싼 것이었으므로. 다만 엇비슷한 내 또래 노회찬이라는 이름은 오래도록 아리게 남을 것 같다.

사람들

오랜만에 John이 가게에 들렸다.  John은 내 오랜 친구이자 선생이다. 지금은 빈 상태로 오래 되었지만 내 가게 옆엔 Radio Shack이 있었다. Malmstrom John은 바로 그  Radio Shack Manager로 오래 일했던 사람이다.

내가 세탁소를 처음 열었던 삼십 여년 전 그 때도  John은  Radio Shack Manager였다. 그는 매우 친절한 사내였다. 당시 막 새 가게를 열어 모든 것이 낯선 내게 그는 아주 자상한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었다. 드라이클리닝 기계와 장비들을 처음 들여오던 날 그가 내게 했던 말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친구야! 새로 마련한 네 장난감으로 돈도 많이 벌고 네 인생을 맘껏 즐길 수 있기를 바래!”

그렇게 오랜 동안  가까운  이웃으로, 친구로 선생으로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그와 어느 날 멀어지게 되었다. 그가 그만 일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떠난 Radio Shack은 활기를 잃더니 어느 날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해마다 7월이면 John은 그의 집에서 가까운 이웃들을 초대해 큰 야외 파티를 연다. 어느 해 부터인가 우리 부부도 그 파티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러다 최근 몇 해 들어 그 때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함께하지 못했었다.

John은 이 달 말에 있을 그의 잔치에 꼭 참석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내 가게에 들렸던 것이었다. 이즈음 어떻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일흔 다섯 살 John이 웃으며 한 대답이다. “벌어 놓은 돈, 약값으로 쓰면서 잘 지내지!”

활짝 웃는 광대 분장과 옷차림을 즐겨했던 John이 웃으며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잠시 되돌아 보았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딱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과 행복감에 잠시 젖었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쓸쓸함과 누군가 서로를 기억해 주는 이웃이 있다는 행복감이었다.

어제는 하늘의 뭉게구름이 참 아름다웠었다.


이 달초 여행길에서 얼핏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사진 속에 남아있다.

점점 더 팍팍해 지기만 하는 삶을 토로하던  내 또래 그 섬의 토박이 관광차 택시운전사 할아버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70대 후반의 할머니였던 lyft택시 운전사, 그녀의 차에는 핸디캡 스티커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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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여객선 안 일꾼들 중엔 영어가 되고 몸값이 싼 필리핀계와 인도네시아계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 영어 안되고 몸 값만 쌌던 내 모습이 잠시 어른대기도 했었다. 일본과 벨기에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선상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벨기에가 역전승을 거두던 순간 그들과 우리는 까닭없이 한 패가 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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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내 고향 신촌 기차역 앞 서커스 천막을 떠올렸던 공연 속 주인공들과 얼굴색과 나이에 걸맞게 나뉘어 즐기던 사람들 속에서 나와 아내는 그저 구경꾼이었다. 까만 사람들 속에서 까만 가수가 자마이카풍의 노래를 부르던 연회장에 우리 내외가 오래 앉아 즐겼던 까닭은 까만 내 며느리와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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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관광지 번화한 거리에서 “회개와 예수 천국”을 드높이 들고 있던 할머니는 그 거리에서 가장 가난한 차림이어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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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거리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던 부부는 아동복 코너에서 옷을 찾는 나보다도 작은 이들이었다.  끊임없이 속삭이며 해변을 향해 걷던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그 누구도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던 그거리의 사람들에게서 나는 아직은 남아있는 이 땅의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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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일상 속 헛것에 취해 비틀 거리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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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 길에도 하늘엔 푸근한 구름이, 그리고 내 곁엔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내와 벗들이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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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아침 빛나는 제 모습을 가린 안개에 한껏 심술이 돋았는지 해가 온종일 뜨거웠다. 이런 날엔 도인(道人) 흉내가 제 격이다. 비단 세탁소 뿐이랴! 더위 속 노동이 일상인 이들을 위하여! (7. 1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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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병

칠월에 동네 어딘들 덥지 않으랴만 내 세탁소의 더위도 만만치 않다. 오늘 내 세탁소의 더위를 식혀 준 꽃병 하나. 딸아이가 더위 속 제 어미를 생각해 보내 준 꽃다발이다. 아내는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마냥 자랑이다.

나는 그저 웃음만 흘릴 뿐.

  1. 14. 18

축제

우리 동네 Chinese Festival은 제법 연륜이 쌓인 중국계 시민들의 큰 잔치이다. 중국계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나 음식에 관심 있는 동네 주민들의 잔치이기도 하다. 매해 이 맘 때 주말 이틀간 열리는 이 행사는 지역 언론들이 잘 다루어 주는 연례행사이다.

내가 이 행사를 주관하던 중국인 회장 임박사를 처음 찾았던 게 2000년도이니, 제법 세월이 흘렀다. 당시 동네 한인회장이었던 나는 임박사를 만나 Chinese Festival이 아닌 Asian Festival을 한번 열어 보자고 제안을 했었다. 그 해 처음으로 한국 무용, 서예, 태권도와 한국음식으로 그 행사에 함께 했었다. 일본계와 인도계 등에게도 제안을 했었는데 반응은 신통치 않았었다.

이후 Asian Festival이 아닌 Chinese Festival은 이어졌고 해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팀이 함께 해 왔다. 한인회가 아닌 한국학교의 이름으로. 이 일엔 내 아내의 끈질김이 함께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젠 해마다 추석이면 Korean Festival로 Chinese Festival에 버금가는 행사를 치루게 되었다. 이젠 한인회의 이름으로. 그 역시 한국학교가 함께 한다. 한인회나 한국학교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후대들을 보면 자랑스러운 동시에 안쓰럽다. 나의 자부심과 그 보다 크게 쌓인 부끄러움 탓이다.

아무튼 오늘 아내는 이 행사에서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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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아내의 벗들은 쉬는 날에 흔쾌히 북채와 장구채를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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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난 임박사는 나와 아내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나 우리나 많이 쇠했다. 허나 우리 동네 중국계나 한국계나 다음세대들은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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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장터에서

엊저녁 아내가 사 온 오이 양이   두 식구 먹기엔 좀 벅차다. 쉬는 날, 오이김치나 담아 볼까 했더니 마늘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침 산보 겸 마늘을 사러 나간다.

이른 주일  아침, 마켓은 한산하다. 얼핏 보아 서로의 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내 또래 더는 사내랄 수 없는 사내들이 가벼운 장바구니를 채운다.

한 사내가 나를 불러 세운다. 사내나 나나 일요일 아침 게으름이 잔뜩 묻은 허름한 차림새다. 사내가 입을 뗀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해 주렴. 나는 진심으로 너를 환영한다. 네가 이 땅에 사는 것을 환영한다. 네가 이 땅에서 이틀을 살았건, 사십 년을 살았건, 아님 여기서 태어났건, 이방인으로 보이는 너를 환영한다. 내 선조들 누군가도 처음엔 이방인이었으므로, 내 말의 진심을 이해해 달라. 나는 이즈음 워싱톤에 있는 미치광이(트럼프)를 대신해 마주치는 이방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있단다.”

그는 은퇴한 변호사라고 했다. “나도 너를 환영해!” 내가 사내에게 던진 말이다.

나도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만은 아니라고 했다. 허나 이즈음 헷갈리고 있다. 트럼프가 수치스런 사내에게 동조하는 마음과 한반도 뉴스 속에서 박수칠 수 밖에 없는 트럼프의 모습 사이에서 헷갈리고 있다.

11월은 곧 다가올 것이고, 이방인인 나나 이방인이었던 사내는 또 한번의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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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동네 어귀 밤나무 집 밤꽃들이 한창이다. 코끝에 거슬리는 밤꽃 냄새와 가을에 맞을 그 튼실한 밤톨 사이를 생각하며.